수행(修行)도움말씀 130

게송-8(참선경어-제6장-8,145페)

게송-8(참선경어-제6장-8,145페)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참선에는 솜씨있고 서툴고가 없으니 깨닫겠다는 일념만이 귀중한 것이니라 손가락 끝 그림자를 알아보거든 곧 바로 하늘가의 달을 찾으라 가슴을 쪼개 열면 심장이 보이고 털을 도려내면 피가 흐르나니 분명 내가 그대에게 들어 보이겠노라 그래도 깨닫지 못하면 누구보고 설법할고 參禪無巧拙 一念貴超越 識得指上影 直探天邊月 劈開胸見心 刮去毛有血 分明擧似君 不會向誰說 참고 일념(一念,2132)-뉴사전 : ① 극히 짧은 시간. 60찰나, 또는 90찰나를 일념이라 한다. 또, 1찰나. 일순. ② 현재의 찰나의 마음. 극히 짧은 시간에 일어나는 마음의 작용. 현재 일순의 마음. 한 번의 생각. 하나의 사념(思念). 염려. ③ 오로지 염(念)하는 ..

단번에 깨치려고 하지 말라(참선경어-제1장-43,55페)

단번에 깨치려고 하지 말라(참선경어-제1장-43,55페)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참선할 때에는 번갯불 부싯돌(電光石火)처럼 반짝하는 사이에 깨치겠다는 마음을 먹어서는 안된다. 비록 빛이 문앞에 번득거릴 때 반짝하고 보이는 것이 있었던 없었던 간에 거기서 무엇을 건져낼 수 있단 말인가? 요는 착실히 실천해 가면서 직접 자기 눈으로 한 번 확인해야만 비로소 제대로 되었다 할 것이다. 만약 진득하게 하여 뜻대로 되어간다면 맑은 하늘 밝은 해 아래 잃었던 부모를 만난 듯하리니, 세상에 이보다 즐거운 일은 없을 것이다. 참고 선법(善法,1318)-뉴사전 : 선한 일. 바른 일. 도리에 따르고 자타(自他)를 이익되게 하는 법(法). 세상의 선법. 오계·십선을 말함. 혹은 출세간(出世間)의 선법...

화두가 절실하면 마(魔)에 떨어지지 않는가*(참선경어-제5장-10,131페)

화두가 절실하면 마(魔)에 떨어지지 않는가*(참선경어-제5장-10,131페)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능엄경」에 나오는 50가지 마(魔) 경계*를 자세히 살펴보면 모두가 집착(着)이라는 한마디에 대한 내용일 뿐이다. 예컨대 색음(色陰)이 명백한 데서 ‘모든 염(念)을 다 떨쳐버린 경지’를 이렇게 보고 있다. 이런 경계에 도달한 사람은 겁탁(劫濁 : 色陰이 體가 되어 생기는 단명, 기아, 질병, 전쟁 등 세상의 재앙)을 초월한 사람이다. 그러나 그 동기를 살펴보자면, 굳어진 망상이 근본이 되어 이것을 그 자리에서 녹여내지 못하고 그 망상 속에 들어앉아 열심히 정진하다가 희귀한 경계라도 나타나면 거기서 성과(聖果)를 얻었다고 생각하니 어찌 집착이 아니겠는가? 만일 성과를 얻었노라는 생각을..

쉬라고만 가르치는 외도(참선경어-제2장-33,84페)

쉬라고만 가르치는 외도(참선경어-제2장-33,84페)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경산사 대혜(徑山寺 大慧 : 1088~1163)스님이 말씀하셨다. “요즘 이런 외도(外道)가 있다. 즉 자기 안목은 밝지 않으면서 사람들을 죽은 갈단(獦狚 : 이리같이 생긴 힘센 괴물. 여기서 죽은 갈단은 기력없음을 비유함)처럼‘쉬라’고 가르친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쉰(休歇)다면 천불(千佛)이 세상에 다시 나온다 하더라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도리어 마음은 더욱 번민에 싸일 뿐이다.” 나는 이렇게 평한다. 의정(疑情)을 일으키려 하지 않으면 미세한 번뇌가 끊어지지 않으니, 미세한 번뇌(命根)가 끊어지지 않는다면 쉬어 보았자 되지도 않는다. 이 쉰다(休歇)는 말이 바로 생사의 근본이니, 비록 백천 겁을 지난다 ..

해 제(解題)(참선경어-7페)

해 제(解題)(참선경어-7페)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참선경어(參禪警語)」는「선경어(禪警語)」또는「박산참선경어(博山參禪警語)」라고도 하는데, 신주(信州) 박산 무이(博山無異)스님이 참선에서 생길 수 있는 병통을 지적하고 후학을 경책하기 위해 지은 글이다. 박산(博山)스님의 휘는 대의(大艤) 또는 원래(원來)이며, 자(字)는 무이(無異)이다. 용서(龍舒) 사람으로 속성(俗姓)은 사(沙)씨이며 명(明)나라 만력(萬曆) 3년(1575)에 태어나서 생후 7개월만에 어머니를 여의었다. 16세에 출가할 뜻을 굳히고 금릉(金陵) 와관사(瓦棺寺)에 가서「법화경(法華經)」강설을 듣다가, 구하는 것이 문자에 있지 않고 자신에게 있음을 깊이 느끼고서는 오대산의 정안(靜安) 통법사(通法師)를 찾아 출가하..

수증(修證)에 집착하지 않음(참선경어-제5장-11,134페)

수증(修證)에 집착하지 않음(참선경어-제5장-11,134페)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우리 선문에서는 근기가 영리하거나 둔하거나 잘나고 못나고를 막론하고‘믿음’하나로 입문한다. 우선 맹렬하게 발심했다면 마치 은산철벽(銀山鐵壁) 속에 앉아 있는 듯 오직 어떻게 하면 나갈 수 있을까만을 생각한다면 온갖 망상심이 전혀 들어올 수 없다. 이러한 경계에서라면 지혜로 대상을 관조(觀照)하는 수행이 어느 자리에 설 수 있겠는가. 그러다가 과연 한 생각 탁 트이게 되면 마치 구름 걷힌 하늘을 보듯, 또는 잃어버렸던 물건을 찾은 듯 하리니, 여기에서 관조하는 노력이 더 이상 무엇에 필요하다는 것인가? 중요한 것은 참구하는 마음이 몹시 절실할 것 같으면 그 참구 역시 수행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다만..

담담한 경계를 궁극적인 깨달음이라 여기는 장애(참선경어-제4장-8,108페)

담담한 경계를 궁극적인 깨달음이라 여기는 장애(참선경어-제4장-8,108페)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참선하다가 의정을 일으켜 법신도리와 상응하게 된 어떤 이는 행주좌와(行住坐臥)에 마치 햇빛이나 등불 그림자 속에 있는 듯 아무 맛도 없는 담담한 경계에 빠진다. 혹은 다시 모두 놓아버리고 맑은 물 영롱한 구슬이나 맑은 바람 밝은 달과 같은 경계에 앉게 된다. 이렇게 되고 나면 자기 자신과 바깥 세상을 몽땅 뭉쳐서 한 조각으로 만들고, 그 청정하고 날카로운 상태를 궁극적인 경지라고 여긴다. 그리하여 몸을 돌려 숨을 쉬지도 않고, 더 이상 망념을 떨쳐버리려 하지도 않으며, 선지식에게 인가(印可)를 받으려 하지도 않는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깨끗한 경계 속에서 또 다른 생각을 일으키면서 그것..

참선경어(參禪警語) 서(序)

참선경어(參禪警語) 서(序)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경(警)자는 깨어난다는 뜻이다. 또 어떤 사람은 놀래킨다는(驚) 뜻이라 하며, 다음과 같은 비유로 설명하기도 한다. “도둑이 큰 집을 내려다보고 있다 하자. 이때 주인이 등불을 밝혀놓고 대청마루에 앉아서 기침소리를 내면 도둑은 겁이 나서 마음을 놓지 못한다. 그러다가 조금 후에 깊은 잠에 빠지고 나면 그 틈을 타서 집안에 들어와 보따리를 다 기울여 털고 달아난다. 그러므로 경계가 엄한 성에서는 밤에 딱다기를 치면서 야경을 돌고, 군대의 진중(陣中)에서는 조두(刁斗 : 밥그릇 모양의 징)를 치면서 밤경비를 한다. 그러므로 갑자기 사고가 생긴다 해도 아무 근심이 없게 되니, 이는 미리부터 경비를 철저히 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사람에..

신기한 경계에 현혹되는 장애(참선경어-제4장-9,109페)

신기한 경계에 현혹되는 장애(참선경어-제4장-9,109페)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참선하다가 의정을 일으켜 법신도리와 상응하게 되면 어떤 이들은 무엇이나 된 듯 여긴다. 빛이나 꽃이 보이고 여러 가지 신기한 모습이 나타나면 자기가 성인(聖人)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이런 신기한 모습으로 사람을 현혹시키면서 스스로는 확실히 깨달았노라고 한다. 그러나 그들은 이것이 전부 병통이지 선이 아니라는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다. 경계로 나타나는 신기한 모양은 자기 망심(妄心)이 맺혀서 만들어지는 경우도 있고, 혹은 마(魔)가 틈을 타고 들어와서 그런 경계를 짓는 수도 있고, 혹은 제석천신이 변화해서 수행인을 시험해 보느라 나타나는 수도 있다. 망심이 맺혀 그런 경계가 나타나는 경우는 정토(淨土)수..

조그만 경지에 집착하는 장애(참선경어-제4장-1,100페)

조그만 경지에 집착하는 장애(참선경어-제4장-1,100페)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참선하다가 의정을 일으켜 법신도리(法身道理)와 만나서 온누리가 밝고 밝아 조그만큼의 걸림도 없음을 보게 되는 이가 있다. 그들은 당장에 그것을 어떤 경지라고 받아들여서 놓아버리지 못하고 법신 주변에 눌러앉게 된다. 그리하여 미세한 번뇌가 끊기지 않은 채 법신 가운데 어떤 견지(見地)나 깨달음의 상태(受用)가 있는 듯(似有) 생각한다. 그러나 그들은 이것이 모두 종자(種子) 번뇌임을 까맣게 모르는 것이다. 옛사람은 이 법신을,‘언어를 초월한 소식(隔身句)’이라고 불렀다. 미세한 번뇌가 끊기지 않았다면 이미 온몸 그대로가 병통이니, 이는 선이 아니다. 이러한 경지에 도달하거든 오직 온몸으로 부딪쳐 들어가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