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릉엄경(首楞嚴經)

업을 짓는 근본(19,수능엄경)

근와(槿瓦) 2015. 3. 10. 01:39

업을 짓는 근본(19,수능엄경)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둘째는 너희들이 菩提마음을 내고 보살법에 큰 용맹을 내어 모든 하염없는 법을 버리려면 번뇌의 근본을 자세하게 살펴보아야 하나니 이것이 끝없는 옛적부터 업을 짓고 나는 움을 싹트게 하되, 무엇이 짓고 무엇이 받는가 할지니라.

 

아난아, 네가 菩提를 닦으려 하면서 근본을 자세히 살펴보지 아니하면 허망한 根과 塵이 어디가 뒤바뀌었는지 알지 못하리니 뒤바뀐 곳을 알지 못하고야 어떻게 항복받고 여래의 자리에 나아가겠느냐. 아난아, 세상에서 맺힌 것 푸는 사람이 맺힌 데를 보지 못하고는 매듭을 풀지 못할 것이며 허공을 망가뜨렸다는 말은 듣지 못하였으니 허공은 형체가 없어서 맺히고 풀림이 없는 탓이니라. 너의 지금에 쓰고 있는 눈과 귀와 코와 혀와 몸과 뜻과 여섯이 도적의 앞잡이가 되어 집안의 보배를 훔쳐 내나니 그러므로 끝없는 옛적부터 중생세계에 얽히어 있는 탓으로 기세간(器世間)에서 뛰어나지 못하느니라.

 

아난아, 어떤 것을 중생세계라 하느냐. 世라는 것은 흘러 옮아가는 것이요, 界라는 것은 方位를 말하는 것이니 동과 서와 남과 북과 동남과 서남과 동북과 서북과 위와 아래는 界가 되고, 과거와 미래와 현재는 世가 되나니, 방위는 열이요, 世의 변천하는 수효는 셋이니라.

 

온갖 중생들이 허망함을 얽어 서로 이루는 것이므로 몸안에서 바뀌어 옮아가는 것이 世와 界가 서로 얽히느니라. 界가 비록 열(十) 방위이지마는 일정한 방위로 분명한 것은 세상 사람들이 동, 서, 남, 북만 말하나니, 위와 아래는 자리가 분명치 못하고 중간(中間)은 일정한 곳이 없느니라. 분명한 사방이 三世로 더불어 서로 얽히므로 넷과 셋이 서로 곱하여 일정한 곳이 없느니라.

 

분명한 사방이 三世로 더불어 서로 얽히므로 넷과 셋이 서로 곱하여 완연하게 열둘이 되고, 흘러 변하기를 세 번 포개어 하나가 열이 되고 百이 千이 되나니, 처음과 나중을 통틀어 말하면 육근의 공덕이 각각 一千二百이 되느니라.

 

아난아, 네가 이 가운데서 낮고 못한 것을 가리어 보라.

 

눈으로 보는 것은 뒤는 어둡고 앞은 밝되 앞은 온통 밝고 뒤는 온통 어둡고 좌와 우로는 곁으로 보아서 三분의 二가 되나니 통틀어 말하면 공덕이 온전하지 못하여 三분의 一분은 공덕이 없어서 눈은 다만 팔백 공덕이니라.

 

귀로 듣는 것은 시방에 빠지는 것이 없어서 떠드는 것은 가깝고 먼것이 있는듯 하나, 조용한 것은 끝이 없나니 귀는 일천이백 공덕이 원만하니라.

 

코로 맡는 것은 내쉬고 들이쉬는 숨을 통하였으니 내쉬는 것이 있고 들이쉬는 것이 있으나 중간의 어울림에는 공덕이 없어서 三분의 一분은 공이 없나니 코는 다만 팔백 공덕이니라.

 

혀로 말하는 것은 世間 지혜와 出世間 지혜를 다하는 것이니 말하는 것은 分限이 있거니와 이치는 다함이 없으므로 혀는 일천이백 공덕이 원만하니라.

 

몸으로 대보아 아는 것은 거슬리고 순함을 알거니와 댈적에는 깨닫고 뗄적에는 알지 못하나니, 뗄적에는 하나요, 댈적에는 둘이므로 몸으로 말하면 三분의 一은 공이 없나니 몸은 다만 팔백공덕이니라.

 

뜻으로 생각하는 것은 十方과 三世의 세간법과 출세간법을 고요히 요량하며 성현과 범부를 모두 생각하여 남김이 없나니 뜻은 일천이백 공덕이 원만하니라.

 

아난아, 네가 지금 나고 죽는 흐름을 거슬러서 흐르는 근원까지 이르러 났다 없어졌다 하지 않는 데까지 나아가려 할진댄 이 여섯가지 근이 어느 것은 합하고 어느 것은 여의고 어느 것은 깊고 어느 것은 옅고 어느 것은 원통하고 어느 것은 원통하지 못한 지를 잘 알아야 하느니라. 만일 여기에서 원통한 근을 알아서 옛적부터 허망하게 얽힌 생사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되 원통한 근을 따라서 닦으면 원통치 못한 근을 의지하여 닦는 것과는 하루와 한겁의 비례로 틀리게 되리라.

 

내가 지금 육근에 본래부터 갖추어져 있는 고요하고 밝은 공덕의 수량을 말하였나니 너의 마음대로 닦아 들어갈 만한 것을 선택하여 보라. 내가 너를 위하여 닦아 나아갈 차례를 말하리라. 十方에 계신 부처님들은 十八界에서 하나 하나씩을 수행하였으되 모두 위없는 菩提를 원만하게 얻으시어 그 가운데 낫고 못함이 없지마는 너는 하열(下劣)한 根機라, 이 가운데서 원만하고 자재한 지혜를 갖추지 못하였을새 내가 지금 너로 하여금 한 문으로 깊이 들어가도록 말하노니 한 문으로 들어가서 허망한 것이 없어지면 저 여섯근이 한꺼번에 깨끗하여지리라.

 

아 난 : 세존이시어, 어떻게 하여야 생사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며, 한눈으로 깊이 들어가서 여섯근이 한꺼번에 깨끗하게 되겠나이까.

 

부처님 : 아난아, 네가 이미 수다원과를 얻어서 삼계중생들의 도를 볼적에 끊는 번뇌는 없어졌지마는 오히려 오랫동안 육근 가운데 쌓이어 오는 여러 가지 습기(習氣)는 알지 못하나니 이 습기는 도를 닦는 자리에서야 끊는 것이니라. 하물며 이 가운데 있는 나고 머물고 달라지고 없어지는 여러 가지 종류와 수량일까보냐.

 

너는 이제 다시 보라. 이 여섯 근이 하나이냐, 여섯이냐. 만일 하나이라면 귀는 어찌하여 보지 못하며, 눈은 어찌하여 듣지 못하며, 머리는 어찌하여 다니지 못하며, 발은 어찌하여 말이 없느냐. 만일 육근이 결정코 여섯이라면 내가 지금 여기서 법을 말하는데 너의 육근의 어느 것이 받느냐.

 

아 난 : 내가 귀로 법문을 듣나이다.

 

부처님 : 너의 귀가 듣는다면 몸과 입에는 관계가 없을 터인데 어찌하여 입으로는 이치를 묻고 몸으로는 일어나서 공경하여 받느냐. 그러므로 알지니라. 하나가 아니라 여섯이며 여섯이 아니라 하나인듯 하거니와 너의 근은 원래 하나도 아니오, 여섯도 아니니라.

 

아난아, 이 근은 원래 하나도 아니오, 여섯도 아니건마는 끝없는 옛적부터 뒤바뀌게 헤매는 탓으로 두렷하고 고요한 가운데서 하나라 여섯이라 하는 것이 생겼나니 너의 수다원이 여섯은 비록 없어졌으나 아직도 하나는 없어지지 못하였느니라. 마치 큰 허공에 여러 그릇을 벌려 놓으면 그릇 모양이 각각 다르므로 말미암아 허공이 다르다고 말하는 것이요, 그릇을 치우고 허공을 보면 허공이 하나라고 하거니와 허공이야 어찌하여 같기도 하고 같지 않기도 하겠느냐. 하물며 어찌 다시 하나라 하나 아니라 하겠느냐. 너의 깨닫고 알고 하는 여섯 가지 근도 역시 그와 같느니라.

 

밝고 어두운 두가지가 서로 성품을 내고 보려는 정기가 빛에 비치어서는 빛을 뭉쳐 근이 되었나니 근의 근본은 맑고 깨끗한 四大라 하고 인하여 눈의 自體라 하며 포도알 같은 四塵으로 된 거치른 근이라, 흘러나와 빛을 따라가느니라.

 

떠들고 조용한 두가지가 서로 닥침으로 말미암아 묘하고 두렷한 가운데서 고요한 것을 건드리어 들으려는 성품을 내고 들으려는 정기가 소리에 비치어서는 소리를 말아 근이 되었나니 근의 근본은 맑고 깨끗한 四大라 하고, 인하여 귀의 自體라 하며 새로 나오는 말린 잎같은 四塵으로 된 거치른 근이라, 흘러나와 소리를 따라 가느니라.

 

통하고 막히는 두가지가 서로 드러남을 말미암아 묘하고 두렷한 가운데서 고요한 것을 건드리어 맡으려는 성품을 내고 맡으려는 정기가 냄새에 비치어서는 냄새를 끌어들여 근이 되었나니 근의 근본은 맑고 깨끗한 四大라 하고 인하여 코의 自體라 하며 내려 세운 쌍손톱같은 四塵으로 된 거치른 근이라, 흘러나와 냄새를 따라 가느니라.

 

싱겁고 맛나는 두가지가 서로 말림으로 말미암아 묘하고 두렷한 가운데서 고요한 것을 건드리어 맛보려는 성품을 내고 맛보려는 정기가 맛에 비치어서는 맛을 쥐어짜 근이 되었나니, 근의 근본은 맑고 깨끗한 四大라 하고, 인하여 혀의 自體라 하며 초생달 같은 四塵으로 된 거치른 근이라, 흘러나와 맛을 따라 가느니라.

 

떼고 합하는 두가지가 서로 스침으로 묘하고 두렷한 가운데서 고요한 것을 건드리어 대 보려는 성품을 내고 대 보려는 정기가 觸에 비치어서는 촉을 주물러 근이 되었나니 근의 근본은 맑고 깨끗한 四大라 하고, 인하여 몸의 自體라 하며 장고통 같은 四塵으로 된 거치른 근이라, 흘러나와 촉을 따라 가느니라.

 

나고 없어지는 서로 잇대어짐으로 말미암아 묘하고 두렷한 가운데서 고요한 것을 건드리어 알려는 성품을 내고 알려는 정기가 法塵에 비치어서는 법진을 잡아당겨 근이 되었나니 근의 근본은 맑고 깨끗한 四大라 하고, 인하여 생각하는 뜻이라 하며, 어두운 방속에서 보는 것 같은 四塵으로 된 거치른 근이라, 흘러나와 법진을 따라 가느니라.

 

아난아, 이러한 여섯근은 저 본각의 밝은 성품에 밝히려는 명각(明覺)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그 정미롭고 맑은 것을 잃어버리고 허망한데 물들어 빛을 내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밝고 어두움을 여의면 보는 성질이 없을 것이요, 싱겁고 맛남을 여의면 맛보는 성질이 없을 것이요, 떼고 합함이 없으면 대 보는 성질이 없을 것이요, 나고 없어짐을 여의면 생각하여 아는 성질이 없을 것이니라. 네가 다만 떠들고 조용함과 떼고 합함과 싱겁고 맛남과 통하고 막힘과 나고 없어짐과 밝고 어두운 열두가지 하염없는 모양을 따르지 아니하고 어느 근으로든지 물든 것을 벗기고 속으로 굴복시켜 참된 근본으로 돌아가서 본래 있는 밝은 빛을 내게 되면 밝은 빛이 환하게 퍼짐을 따라서 다섯 가지 물들었던 다른 근들도 한꺼번에 벗어나리라. 앞엣 것들이 일으킨 알고 보는 것에 말미암지 아니하며 밝음이 근을 따르지 않고 근에 맡기어 맑음이 나게 되면 여섯근이 서로 작용하게 되리라.

 

아난아, 여기 있는 아나률타는 눈이 없으나 보며, 발난타용은 귀가 없으나 들으며, 항하녀신은 코가 없으나 맡으며, 교범바데는 다른 혀로도 맛을 알며, 순야다신은 몸이 없으나 대 보아 알기도 하고, 여래의 광명에 비치어 잠깐 나타났지마는 체질이 바람이어서 몸이 원래 없으며 멸진정(滅盡定)에 들어서 고요하여진 마하가섭 같은 이는 벌써 뜻이 없어졌지마는 마음에 의지하지 않고도 분명하게 아는 것이 아니냐.

 

아난아, 너도 모든 근에서 벗어나서 속으로 빛을 내게 되면 허망한 티끌과 기세간의 여러 가지 변천하는 것들이 끓는 물에 얼음 녹듯하고, 한 생각을 따라서 위없는 각을 이루게 되리라.

 

아난아, 세상 사람이 보는 정기를 눈에만 모았다가 갑자기 눈을 감아서 캄캄한 모양이 앞에 나타나면 여섯근이 아득하여 머리와 발을 분별하지 못하거니와 그 사람이 손으로 몸을 만지면 비록 보지는 못하나 머리와 발을 낱낱이 분별하게 되어, 알고 깨닫는 것이 밝을 적과 같으리라.

 

반연할 것을 보는 것은 밝음에 말미암은 것이므로 어두워지면 보지 못하거니와, 밝지 아니하여도 보는 작용이 생긴다면 어두운 것이 영원히 어둡히지 못하리니, 근과 진이 없어지기만 한다면 어찌하여 각의 밝음이 원만하고 묘하여지지 아니하겠느냐.

 

아 난 : 세존이시어,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인행때에 깨닫는 마음으로 항상하는 과를 얻으려면 과위의 이름과 같아야 한다”고 하셨나이다.

 

세존이시어, 果位에서 얻는 菩提와 열반과 眞如와 佛性과 암마라식과 공여래장과 대원경지(大圓鏡智)의 일곱가지 이름이 비록 다르나 그 본체는 맑고 깨끗하고 원만하고 굳고 흔들리지 아니하여 마치 금강이 항상하여 망가지지 않는 것과 같은 것이온데 만일 이 보고 듣는 것이 밝은 것 어두운 것 떠드는 것 조용한 것 통한 것 막힌 것을 여의고는 필경에 자체가 없다하오면 마치 허망하게 생각하는 마음이 앞엣 것을 여의고는 제 성품이 없다하신 것과 같을터이어늘 어떻게 이 필경에 자체가 없는 것으로써 수행할 인을 삼아가지고 여래의 항상있는 일곱가지 과를 얻겠나이까.

 

세존이시어, 만일 밝은 것 어두운 것을 여의고는 보는 것이 필경에 없을진댄 마치 앞엣 것이 없으면 생각하는 자성이 없다던 것과 같을 것이오니 아무리 이리저리 생각하여 보아도 내 마음도 마음할 바도 없겠나이다. 무엇으로 인을 삼아서 위없는 각을 구하오리까. 부처님께서 먼저 말씀하시기를 고요한 정기가 두렷하고 항상하다 하였사오나 진실한 말씀이 아니어서 희롱거리가 될 것이오니 부처님을 어떻게 진실한 말씀을 하는 이라 하오리까. 큰 자비를 베푸시사 우리들의 어리석음을 깨우쳐주소서.

 

부처님 : 아난아, 너는 많이 기억만하고 번뇌를 끊지 못하였으므로 뒤바뀐 인연을 알기는 하면서도 참말 뒤바뀐 것이 앞에 나타난 것은 알지 못하는구나. 네가 아직도 진심으로는 믿지 않는듯 하니 내가 이제 속세에 있는 일로써 너의 의심을 덜어주리라.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라후라로 하여금 종 한 망치를 치게 하시고 아난에게 물으셨다.

 

부처님 : 네가 지금 듣느냐.

 

아난과 대중 : 우리가 듣나이다.

 

종소리가 없어진 뒤에,

 

부처님 : 네가 지금 듣느냐.

 

아난과 대중 : 듣지 못하나이다.

 

그 때에 라후라는 또 한 망치를 쳤다.

 

부처님 : 네가 지금 듣느냐.

 

아난과 대중 : 듣나이다.

 

부처님 : 아난아, 너는 어떤 것을 듣는다 하고 어떤 것을 듣지 못한다 하느냐.

 

아난과 대중 : 종을 쳐서 소리가 나면 우리가 듣는다 하고, 친지가 오래 되어 소리가 없어지고 메아리까지 사라지면 들음이 없다 하나이다.

 

부처님께서 또 라후라를 시켜 종을 치게하고 아난에게 물으셨다.

 

부처님 : 네가 지금 소리가 난다 하겠느냐.

 

아난과 대중 : 소리나나이다.

 

종소리가 없어진 뒤에,

 

부처님 : 지금 소리 나느냐.

 

아난과 대중 : 소리 없나이다.

 

조금 있다가 라후라는 또 종 한 망치를 쳤다.

 

부처님 : 지금 소리 나느냐.

 

아난과 대중 : 소리나나이다.

 

부처님 : 아난아, 너는 어떤 것을 소리난다 하고, 어떤 것을 소리 없다하느냐.

 

아난과 대중 : 종을 쳐서 소리가 있으면 소리 난다하고, 친지가 오래되어 소리가 없어지고 메아리까지 사라지면 소리가 없다 하나이다.

 

부처님 : 네가 어찌하여 말이 이랬다 저랬다 하느냐.

 

대중과 아난 : 우리들을 어찌하여 이랬다 저랬다 한다 하시나이까.

 

부처님 : 내가 듣느냐 물으면 네가 듣노라 하고, 내가 소리나느냐 물으면 네가 소리난다 하여 듣는 것과 소리나는 것에 대한 대답이 일정하지 아니하니, 이것이 이랬다 저랬다 하는 것이 아니냐.

 

아난아, 소리가 없어지고 메아리까지 사라지면 들음이 없다하니 참말 들음이 없다면 듣는 성품이 아주 없어져서 나무등걸 같을 것이어늘 종을 다시 치는 것을 네가 어떻게 아느냐. 있는 줄 알고 없는 줄 아는 것은 소리가 있었다 없었다 하는 것이언정, 어찌 너의 듣는 성품이 있었다 없었다 하는 것이겠느냐. 들음이 참으로 없을진댄 무엇이 소리 없는 줄을 알겠느냐. 그러므로 아난아, 듣는 가운데서 소리가 났다 없어졌다 함일지언정 네가 소리나고 소리없어지는 것을 듣는다고 하여서 너의 듣는 성품이 있었다 없었다 하는 것은 아니니라. 네가 오히려 생각이 잘못되어 소리없는 것을 들음이 없는 줄로 아는터이니, 육근의 성품이 항상한 것을 없어지는 것인 줄로 여기는 것이어늘 무엇 그리 이상타 하겠느냐. 그러나 떠들고 조용하고 막히고 열림을 여의고는 듣는 성품이 없다고 말할 것이 아니니라.

 

마치 깊이 잠든 사람이 한창 잘적에 그집 사람들이 다듬이질을 하거나 방아를 찧으면 그 사람이 꿈결에 방망이 소리나 절구 소리를 듣고 북소리나 종소리로 여기면서 종소리가 어찌하여 나무 두들기는 소리 같으냐 하다가 문득 깨면서 절구 소린 줄을 알고는 집안 식구들에게 말하기를 내가 지금 꿈을 꾸었는데 이 절구 소리를 북소리로 들었노라 하느니라. 아난아, 이 사람이 꿈속에서 어떻게 조용하고 떠들고 열리고 막힘을 생각하리요마는 몸은 비록 잠을 자나 듣는 성품은 혼미하지 아니하였나니, 설사 네 몸이 죽어 목숨이 없어진들 이 성품이야 어찌 없어지겠느냐.

 

중생들이 끝없는 옛적부터 빛과 소리를 따라 허망하게 헤매면서 깨끗하고 항상한 성품을 깨닫지 못하므로 항상한 성품을 따르지 못하고 났다 없어졌다 하는 것만 쫓아다니면서 세세생생에 허망하게 흘러다니거니와 만일 났다 없어졌다 함을 버리고 참되고 항상한 성품을 찾으면 항상한 광명이 앞에 나타나서 근과 진과 식이 한꺼번에 없어지리라.

 

생각하는 모양이 티끌이요, 인식하는 것이 때묻는 것이라 이 두 가지까지 멀리 여의면 너의 법눈이 즉시에 밝아질 것이니, 어찌 위없는 각을 이루지 못하랴.

 

 

출전 : 수능엄경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