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심수행장(發心修行章)

발심수행장(2~4)

근와(槿瓦) 2014. 11. 28. 00:53

발심수행장(2)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본문(本文)]

無防天堂에 小往至者는 三毒煩惱로 爲自家財요 無誘惡道에 多往入者는 四蛇五欲으로 爲妄心寶니라.

[번역(飜譯)]

막힘없는 저 천당에 가는 사람이 적은 것은 삼독의 번뇌로 자기집 보물을 삼기 때문이요, 꾀임없는 저 악도에 가는 사람이 많은 것은 사사(四蛇)와 오욕(五欲)으로 망녕되게 보배를 삼는 까닭이다.

[뜻풀이]

막는 사람도 없는 하늘 나라에 가서 이르는 이나 가는 이가 적은 것은 세 가지 독의 번뇌로 자기 집의 재산을 삼음이요, 꾀어내는 사람도 없는데 육도(六道)에 들어가는 이가 많은 것은 네 가지 뱀과 다섯가지 욕심(五欲)으로 망녕된 마음에 보배를 삼기 때문이다.

[해설(解說)]

삼독(三毒)은 탐진치(貪瞋癡), 곧 애욕(愛欲) ․ 진에(瞋恚) ․ 우치(愚癡)를 말하며, 사사(四蛇)는 중생들이 몸뚱이를 애착하여 온갖 죄악(罪惡)이 되는 바, 이 몸뚱이를 이루고 있는 요소가 四가지이므로 이것을 뱀이라고 나쁘게 비유하여 말한 것이다.

몸은 지 ․ 수 ․ 화 ․ 풍(地水火風)의 四大로 이루어졌는데 부처님께서 이 몸은 四마리(四大)의 독사뱀을 한 상자속에 넣고 기르는 것과 같다고 하신 말씀에서 연유되어 나온 말이다.

악도는 우리 중생들이 돌아다니는 길이 크게 여섯가지가 있는데 천도(天道) ․ 인도(人道) ․ 아수라(阿修羅)의 세 갈래 길은 비교적 좋은 길이고, 지옥(地獄) ․ 아귀(餓鬼) ․ 축생(畜生)의 세 갈래 길은 악하고 좋지 못한 길이므로 악도라고 이름한다.

다시 말하면 천당은 복 받은 곳으로 오는 사람을 굳이 막는 것도 아닌데 가는 사람이 적은 것은 삼독번뇌를 마치 자기의 재산인양 길러준 때문이고 그렇다고 지옥에는 어서 오라고 유혹하는 것도 아닌데 꾸역꾸역 미어터지도록 가는 것은 역시 四蛇와 五欲을 자기의 보배인 양 간직한 때문이라는 것이다. -2終-

 

 

발심수행장(3)

[본문(本文)]

人誰不欲歸山修道이오마는 而爲不進은 愛欲所纏이어다 然而不歸山藪修心이나 隨自身力하야 不捨善行이어다.

[번역(飜譯)]

누군들 산에 가서 도 닦고자 않으리오만 다만 하지 못하는 것은 애욕속에 얽매임이요, 고요한 산에 들어가서 용맹수도 못하여도 힘과 경우 닿는대로 모든 선행 지어보세.

[뜻풀이]

수도하는 것의 목표는 생사의 속박을 벗어나 절대의 해탈을 성취하는 데 있는 것이니만큼 누구나 이것을 원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애욕에 얽매여 실행에 옮기지 못할 따름이다. 그러나 세속에 몸을 담고서라도 그 형편과 능력에 따라 열가지 착한 일을 비롯하여 독경 ․ 참선에 이르기까지 불법을 배우는 마음을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한다.

[해설(解說)]

사람이란 누구나 할 수만 있다면 산에 깊이 들어가 도를 닦아 참 나를 찾고 삶의 보람을 갖고 싶지 않은 것도 아니지만 저마다 그렇지 못한 것은 다 부모나 처자, 그리고 명예, 지위 등 모든 애욕에 얽혔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다 세상 일을 버리고 깊은 산중에 들어가 도를 닦는 것만으로 능사를 삼는 따위는 결국 인간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니 그것만이 불교의 옳은 길이라고는 할 수 없는 것이다. 사회의 여러 가지 일에 종사하면서 자기의 힘에 따라 선행만 하면 되는 것이다. 즉 불교의 주관적 목적이 사회교화에 있으니만큼 선행으로서 자기도 행복하고 사회도 안락할 수 있다면 족한 것이며 굳이 세상을 등지고 깊은 산에 들어가 수도만 할 필요는 없다. -3終-

 

 

발심수행장(4)

[본문(本文)]

自樂을 能捨하면 信敬如聖이오 難行을 能行하면 尊重如佛이니라 慳貪於物은 是魔眷屬이오 慈悲布施는 是法王子니라.

[번역(飜譯)]

세상 쾌락 버린다면 성인처럼 공경받고 어려운 일 능히 하면 불타처럼 존중되며 재물만을 간탐함은 마귀 집안 권속이요 자비만 맘 보시하면 법왕성의 아들일세.

[뜻풀이]

누구에게나 출가구도에 대한 진리탐구 욕망이 있으므로 향락을 버리고 애정을 끊는 이를 보면 자연 성인처럼 공경하는 마음을 내게 되고 중생을 위해 하기 어려운 고행을 하고 봉사하는 사람에게는 부처님에게나 다름없이 귀의하는 마음을 일으키게 한다. 인색하고 간탐하여 일가 친척이나 이웃이 주려 쓰러지는 것을 보고도 구해줄 줄 모를 뿐 아니라 나아가 남을 희생시키고 자기 욕심만 채우면 마귀요, 어려운 사람을 돕고 자비로 구해주는 사람은 부처님의 제자이다.

[해설(解說)]

탁발을 하고 승복을 입고 승체(僧体)를 들어냄 보다 자기의 정진과 수행이 절대 필요하며 동시에 자제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도덕이 뛰어난 것도 자제의 힘이 강한 때문이고 사물의 이치에 정통할 수 있는 지혜도 사심이 없는 데서 얻어지는 것이다. 그러기에 자기의 하고 싶은 일, 좋아하는 일이라도 남을 위해 자제할 수 있다면 그로하여 남들이 나를 믿고 공경함이 성인같고 또한 이러한 자제력으로 말미암아 보통 하기 어려운 일을 능히 행하면 부처님같이 존중함을 받을 것이다. 공자의 말에 40에야 비로소 불혹(不惑)이라고 했으니 자제에 얼만큼의 노력이 필요한가 알 수 있다.

사람들의 자제중에서 가장 비굴하면서도 또 근본적인 것이 간탐이다. 아낀다는 것은 소극적이고 탐한다는 것은 적극적인 것으로 다 물욕을 말하는 것이다. 물욕만 떨어지게 되면 다른 사람에게 감동을 준다. 자기중심적 집착과 만심을 떠나지 못하고 오직 세상 명예와 이익이나 존경만을 간탐하게 되면 그는 악마의 권속이 되고 반대로 자비심으로 모든 것을 보시하면 법왕의 아들이 된다. 보시(布施)에는 세 가지가 있어 재물을 남에게 주는 재시(財施)와 불법을 남에게 가르쳐줌으로서 마음의 광명을 베푸는 것이 법시(法施)며 재난등을 당하여 공포에 떠는 이에게 두려움이 없게 해주는 무외시(無畏施)이다.

또 자비(慈悲)는 예수교의 박애(博愛)와 공자의 인(仁)과 같이 부처님의 근본 정신이다. 즉 남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이 자(慈)요, 남의 괴로움을 없애주는 것이 비(悲)다. 그러므로 자비의 보시란 이웃 ․ 동포를 위해 나의 모든 것, 재산 ․ 명예 ․ 권세 ․ 육신까지라도 아무 조건없이 바치는 것이 부처님의 참 아들인 보살의 보시행이다.

법왕자(法王子)라 함은 법왕의 아들이며 제자라는 뜻이다. 부처님의 진리의 왕이시고 마음을 깨닫고 일체의 진리를 깨달아 일체지(一切智) ․ 일체종지(一切種智) ․ 깨달음과 행이 원만한 이(覺行窮滿) ․ 지혜와 복덕이 구족하신 어른(福慧兩足)이므로 진리의 법왕이시며 하느님 가운데 하느님이시고 성인중의 성인이므로 법왕이라고 한다. -4終-

 

 

출전 : 발심수행장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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