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나가 옳으냐 저가 옳으냐

근와(槿瓦) 2017. 1. 28. 04:00

나가 옳으냐 저가 옳으냐[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요즈음 저는 예전에도 그러했고 지금도 그렇지만 쉬지 않고 끊임없이 열심히 블로그에 올릴 내용들을 작성하고 있습니다[달리 말씀드리면 방일(放逸)이란 단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 작성의 대상인 고귀한 말씀들을 통해 저를 다스려 나가고 저절로의 수행이 되게끔 하고도 있습니다. 익히 아시겠지만 말씀이란 글자와 언어가 되겠죠.

 

우리들 모두는 이 세상에 태어나서는 말이란 것도, 글자란 것도, 아무 것도 모르기 때문에 그저 배가 고프다 싶으면 울고 그 울음 때문에 엄마가 젖을 주고 하였던 것이죠. 그러나 때로는 배고픔이 아니라 그 어린 몸이 어딘가 아프기도 하여 울 때도 있는 것인데 엄마나 이외의 식구들은 그것도 모르고 배고픈 모양이구나 하고 젖을 물리거나 우유를 담은 용기꼭지를 물리는데, 이럴 때는 말도 안통하니 그저 또 울어제껴서 자신의 의사를 전할 수밖에 없었던 그런 시절이 바로 우리들의 아기 시절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면서 거의 모두 다 처음으로 배우는 글자가 아닌 이 바로 엄마란 단어가 아닌가 합니다. 저의 어린 아기 시절의 그러함이 기억이 생생하게 나서 얘기하는 것이 아니고 저의 자식을 길러보면서 저 또한 그러하지 않았을까 하곤 이 글로 읊어보는 것이니, 제가 무슨 수행이 깊어서라든가, 또한 기억력이 출중해서 이와 같이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씀드리는 것이니 오해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위에서와 같이 처음으로 배우는 그 첫마디 말인 엄마란 단어도 기실 그 아기가 엄마란 말이 무슨 뜻인지 알고 하는 말이 아닐 것이라는 것도 또한 당연 아실 것입니다. 이젠 이 세상에 태어났으니 먹는 것은 입이 있으니 자연스럽게 먹게되는 것이니 별 걱정꺼리는 아니지만 아기의 식()과 입과 혀와 볼의 근육과 목젖과 이빨과의 어울림으로 탄생되어지는 그 이란 것을 어서 빨리 하게 되어야 이 아기가 뭔가의 잘못됨이 없는 그런 자신들의 아기란 것을 겉으로 드러내어 확인해 보고픈 것이 바로 이와 같은 엄마란 단어의 확인이 아닌가 하고도 생각해 봅니다.

 

그런 다음에도 한참이나 지나서 조금씩 기어다니고 그러다가 아장아장 걷기도 하면서 눈에 들어오는 사물들에 대해 궁금증이 생겨서 만지작거리고, 그후에도 한참 지난 다음에 엄마한테 엄마가 무슨 뜻이냐고는 물어옵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 중에 이러한 경우에 처했을 때나 또는 처하게 될 경우에 어떤 답을 아기에게 주었던 것이고 또한 주게 될 것인가요?

 

이어서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제목에서와 같이 라는 예의상의 인칭이 옳은 것인가요, 아니면 라는 말이 옳은 것인가요. “라는 말은 사전에서 보니까 의 겸사말이라고 나오네요. 조사 가 뒤에 붙으면 로 바뀌게 된다고도 나오구요. 그러면 라는 단어를 찾아볼까요? “, 자기 스스로를 가리키는 제1인칭 대명사 라고 되어 있습니다. 사전상으로는 이와 같이 풀이하고 있기는 합니다만,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는 라는 크게 두 가지로 분류되어 자기 스스로를 표현하고 있고, 우리말인 한글이 아닌 외국어중에서도 가장 대표격이라고 할 수 있는 영어에서는 간단히 (me)”로 되어 있는 것이죠?

늙은 사람이든, 젊은 사람이든지간에 상대를 지칭하고 싶으면 그저 간단하게 (you)”라고 하고 자기는 (me)”라고 하면 되는데 한글을 사용하는 우리들은 를 상황에 따라 달리 써야 되는 어쩌면 이중적이라고도 할 수 있다는 애매모호한 경우가 적지않이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는 어떠한 경우에 사용되어지는지 또는 는 이또한 어떤 경우에 사용되어지는지 이후로 설명하지 않아도 다들 잘 아실 것입니다.


그런데 가 각각 따로 떨어져 각기 독립되어져 있는 것으로 보이기는 합니다만 이 두 단어는 어디까지나 자기 자신을 가리키는 표현을 두 가지로 갈려 나누어 있어 보인다는 것이지 라는 단어는 를 가리키는 것이고 라는 단어는 가 아니라는 말은 아닌 것이니, 굳이 이 말이 옳은 것이고 저 말이 틀린 것은 아닌 것임은 누구나가 명확히 알고 있는 것이니 이에 따른 좀더 정확한 방향을 짚어본다면 라는 단어보다는 라는 단어를 구사했을 때에 상대방이 기분 좋아하더라는 것을 말씀드려보고 싶고요(實戰에서의 상황에 따른 것임), 아울러 불도(佛道)를 추구하는 우리들 불자들로서는 굳이 소승이든 대승이든 따지지 말고 향후의 수행으로 얻게 될 결과로, 이 세상에 같이 공생공존(共生共存)하고 있는 佛子와 비불자(非佛子. 사실 이 세상의 중생이 모두 佛子)들의 공통인 이 마음을 지닌 모든 중생(有情無情)을 구제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볼 때 가능하면 긍정적이고 복된 방향의 표현인 ()”를 사용하고 권장해야 함이 아닌가 판단해 봅니다.

 

그리고 이후의 내용은 저의 짧고 좁은 견해이긴 합니다만, 佛說經典에는, 거의 첫 부분에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라고 하는 아난존자의 표현이 나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사실 부처님께서는 양극단(兩極端. 유와 무, 좋고 나쁨, 이쁨과 추함 등)을 벗어나신 분이니 나중 후세에 뭇 사람들에게 읽혀질 佛經에 자신을 라거나 라고 표현하기가 무척 어색하고도 비합리적이라고 미리 아셨기 때문에 아난존자로 하여금 그리 표현케 하신 것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불현 듯 생각이 났습니다. 여하튼 , 때에 맞춰 시의적절하게 구사하여야 함이 옳다고 여겨지고, 이 때나 저 때나 만을 고집한다면 주변의 사람들에게 그리 호의적이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이 만의 생각이 아닌 우리 모두의 공통된 판단이 아니지 않나 생각합니다.

 

첨언 : 위에서 언급한 국어사전에서요... “라는 단어의 표현인 의 내용 밑에 또다른 가 있는데 그 해설은... -미처 생각이 잘 나지 않을 때-라고 되어 있군요.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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