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음보살전기-37 (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37. 백상(白象), 큰 뱀에 물려죽다
영련은 백상을 달래면서 움직이도록 애썼으나 움직이려 하지 않으므로 이어 큰소리로
“어찌해서 걷지 않는가? 완고하게 무슨 고집인가? 자아 가요.”라고 무리해서라도 움직이도록 하려 했으나 무언가에 겁을 먹은 듯 몸을 떨면서 역시 걸으려 하지 않았다.
이것을 본 대사는 백상은 설련봉에 가는 길이 틀렸으므로 움직이려 하지 않는 것이라 여기고 코끼리의 코를 어루만지며 물었다.
“백상이여! 그대는 금륜산에서 나의 목숨을 구해 준 이후 줄곧 나와 같이 수많은 고로(苦勞)를 거듭 겪으면서 결국 이곳까지 온 것인데 이제 우리 앞에 수미산이 솟아 있지 않은가? 지금이 제일 중요한 때에요. 용기를 내어 전진해요. 여기까지 와서 영기를 잃고 본래의 야성으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겠지?”
코끼리는 고개를 크게 옆으로 저었다.
“그러면 이 봉우리가 설련봉이 아니기 때문인가?”
또 한번 코끼리는 고개를 젖는다.
“백상이여! 여기까지 왔으니 용기를 내어 나아가자. 시종여일해야지 정과성취를 그르쳐서는 안된다.”
대사의 유시에 백상은 코를 위아래로 끄덕였다. 사람의 말을 알아들어도 스스로 말할 수는 없다. 실은 동물의 본능적 육감으로 치명적인 위험을 느끼고 나아가려 하지 않는 것이었다.
말을 할 수 있다면
“이 산에는 괴물이 숨어 살고 있어서 대단히 위험합니다. 그러나 대사님이 알면서 가신다면 저도 즐거이 따라가겠습니다.” 라고 말하고 싶었으리라.
마침내 백상은 비장한 결심이 섰는지 힘차게 일어나 대사일행을 태우고 걷기 시작했다. 세사람은 비교적 완만한 비탈을 골라 나아갔으나 해가 산에 가리워질 무렵 불어오는 바람결에 일종의 이상한 비린내가 풍겨옴을 느꼈다. 앞으로 나아감에 따라 이 비린내는 불쾌한 냄새가 더욱 강해지면서 종래에는 구역질이 날만큼 고약한 비린내로 변했다.
“이 불쾌한 비린내가 도대체 무엇일까?”
영련이 의아해서 말했다.
“아마 무성한 수풀 속에 나무나 풀이 열기에 찌다싶이 되어 습기가 오르며 이렇게 불쾌한 냄새로 된 것 아닐까?”
대사의 대답에 영련은 납득이 안되어
“그렇다 해도 이 냄새는 불쾌하여 숨이 막힐 듯 하므로 뭔가 이상합니다. 정신이 흐려지고 마비되는 것 같사옵니다.”
하며 괴로운 바를 호소하였기에 대사가 한마디 일러주었다.
“비리다든지 향기롭다든지 하는 것에 집착해서는 안됩니다. 모든 차별에 착(着=집착)해서도 안됩니다. 우리들 수행자는 항시 육근(六根)이 청정(淸淨)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육근청정이란 무슨 의미인지 알지요?”
“안, 이, 비, 설, 신, 의(眼, 耳, 鼻, 舌, 身, 意) 이것은 육근(六根)이라 합니다. 눈을 시근(視根), 귀를 청근(聽根), 코를 취근(嗅根), 혀를 미근(味根), 몸을 촉근(觸根), 뜻을 염근(念根)이라 합니다. 그대는 육근을 알고 있어도 비리다, 향기롭다 함은 육근을 아직 초연해서 단절치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중에도 각별히 비근(鼻根)은 여러 향기에 착하며 전염에 따라서 여러 가지의 촉(觸)을 일으킵니다. 이러한 광혹(狂惑)의 코에 염(染)이 따라서 여러 가지의 진(塵=근이 일으키는 상태)이 생기겠지요. 법의 실상을 관한다면 무슨 냄새를 맡겠는가?”
영련은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이고 말없이 걸었다. 세사람은 거듭 나아갔으나 이 냄새는 더욱 강해져 취각이 예민한 백상은 중독에 걸린 듯 다리걸음이 정상이 아니었다. 영련은 필사적으로 구역을 눌러 참느라고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 대사도 지나친 고약한 냄새애 무엇인가 이상함을 느끼고 백상의 위에서 내려 섰다.
이때 돌연 수풀속으로부터 일진광풍이 일었다. 모래먼지와 더불어 고약한 비린 냄새가 눈과 코에 튀어 박혀 당장 쓰러질 것 같았다. 바람이 지난 후 눈을 떠보니 바로 앞쪽에 난란(爛爛)히 눈을 빛내며 큰입에서 갈라진 긴혀를 날름거리는 몸길이가 오, 육장도 넘는 맹독의 대사(大蛇)가 이쪽을 응시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또다시 괴음을 쏴아하고 내면서 대사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대사는 등뒤에 붙어 떨고있는 보모와 영련에게 급한 소리로 일렀다.
“빨리 옆으로 피해! 뒤로 물러서도록!”
세사람은 옆으로 비키며 바로 내달렸다. 백상은 대사의 소리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한걸음도 물러나지 않고서 코를 상하로 움직이며 큰 독사뱀을 향해 큰소리로 포효하고 있었다. 대사는 코끼리에게 “빨리 물러나라!”하고 소리높이 외쳤으나 코끼리는 큰 뱀과 대결한 채 물러나려 하지 않았다. 큰 독사는 노한 채 독을 뿜으면서 공격목표를 겨냥하는 듯 했다.
큰입속의 새빨간 긴혀를 널름거리며 연기같은 독기를 뿜어내어 이에 취해 혼미해진 코끼리 코를 재빨리 달려들어 단단히 물었다. 코끼리는 코를 크게 흔들어 큰독사를 떨쳐내려 하였으나 한번 물은 독사가 다시 놓을 리 없었다. 큰발로 큰뱀을 밟으려 하나 뱀은 재빨리 몸을 좌우로 피하며 코끼리 다리를 감아들었다. 그러는 사이에 독은 이미 체내에 번져 백상의 몸을 마비시켰다.
백상은 “쿵”하는 소리를 내며 땅위에 쓰러지고 말았다. 큰독사는 넘어진 백상의 몸과 동체를 재빨리 휘감아 죄이면서 꿈쩍 못하게 했다. 마침내 백상은 기진하여 죽고 말았다. 큰뱀은 코끼리의 천적으로 영특한 백상이라 해도 이길 수 없었다. 처참한 사투 끝에 대사의 은상(恩象)은 영영 저세상으로 떠나고 말았다.
한편 대사와 보모 그리고 영련은 열심히 뛰다가 뒤를 돌아보니 뒤쫓는 큰뱀도 없고 코끼리도 안 보임을 알고는 잠깐 백상이 오기를 기다렸으나 올 기미가 없기에 어쩐 일인가 싶어 다시 되돌아 가보니 독사뱀이 이미 백상을 쓰러뜨리고 그 몸체를 몇겹으로 칭칭 감은 채 조이고 있질 않은가! 세사람은 모두 숨을 죽이며 너무나도 처참한 광경에 몸서리를 쳤다.
세사람을 구하기 위해 스스로 희생된 갸륵하고 불쌍한 백상, 자기의 운명을 예감하고 산기슭에서 움직이지 않으려 했던 백상을 무리로 산에 오르게 한 회한(悔恨)과 그래도 명에 따라 사신구제(捨身救濟) 살신성인(殺身成仁)한 백상에 대한 연민(憐憫)의 정(情)으로 세사람은 얼어붙은 듯 그대로 서서 두손으로 합장한 채 코끼리 명복을 빌어마지 않았다.
한참후 천도기도(薦度祈禱)를 끝낸 대사가 말하였다.
“참으로 슬픈 일입니다. 생각할수록 갸륵하고 불쌍합니다. 여기까지 우리들과 노고를 같이하며 왔는데 이제 한걸음 더 오르면 되는 곳에서 정말 안타깝고 애석하기 짝이 없군요! 우리들은 영원히 이 일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장차 우리들이 무상도를 증득하여 정과를 성취해 보리(菩提)를 달성한 즉시 백상에게 먼저 보은하지 않으면 안될 것입니다.”
보모도 영련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감임을 표시하였다. 대사는 다시 두손을 합장하며 백상이 있는 곳을 향해
“백상이여! 그대의 헌신호법에 감사를 드린다. 그대는 축생에 태어났으나 오히려 훌륭한 보살행으로 살신성인한 지념견고(志念堅固)는 후인의 존숭을 받아 마땅할지니라. 생사의 괴로움은 영구히 다함이 없을지나 그대는 불도를 호지한 것으로 인하여 극락으로 가 해탈을 얻으리라. 불연(佛緣)이 있은 연유(緣由)로서 가애(罣礙)없는 묘법을 얻어 왕생하기 바라노라. 원하노니 내가 무루 정각(無漏正覺)을 증득한 때에는 바로 중생을 위한 기상(騎象)의 역(役)을 따라 맡기 바라노라.”라고 기원했다.
출전 : 大聖 관세음보살일대기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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