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망경-20-4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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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한 지혜(空慧)가 항상 앞에 나타나느니라. 1지(地)와 2지로부터 마침내 불계(佛界)에 이르니, 그 중간의 일체의 법문은 일시에 행해지기 때문이다. 간략하게 말하면, 평등지의 공덕바다 보배창고의 행원(功德海藏行願)은 바다의 물 한 방울이 터럭 끝에서 이루어지는 것과 같으니라.
불자야, 보리살타의 선혜체성지(善慧體性地)는 일체의 선근(善根)을 청정하고 분명하게 통달한 것이니, 이른바 자(慈) ∙ 비(悲) ∙ 희(喜) ∙ 사(捨)의 지혜이니라. 일체 공덕의 근본은 초관[初觀 : 초각관선(初覺觀禪)으로 유심(有尋)의 제일선(第一禪)이다.] 으로부터 대공[大空 : 여기서는 해탈문과 같은 뜻으로 쓰였다] 의 지혜에 드는 것으로, 방편도(方便道)의 지혜 가운데서 모든 중생을 보되 고제(苦諦) 아님이 없으며, 모두가 식심(識心)이 있다고 보니, 3악도의 칼과 몽둥이와 일체 고뇌의 인연 가운데서 생기는 식(識)을 고제라고 이름하느니라. 세 가지 고(苦)의 모습은 몸의 초각(初覺)과 같으니, 칼과 몽둥이로부터 몸의 색(色)과 음(陰) 두 가지 연(緣) 가운데서 깨달음[覺]을 일으켜 행고[行苦 : 3고(苦)의 하나로 이 세상은 무상하게 전변(轉變)하므로 받는 괴로움을 말한다.] 의 연(緣)으로 삼느니라. 다음으로 의지[意地 : 여섯 번째 의식(意識)을 말한다.] 의 깨달음은 신각(身覺)이 반연하는 바를 반연하여 칼과 몽둥이와 몸에 생기는 종기 등의 법을 얻기 때문에 고고[苦苦 : 3고(苦)의 하나로 질병이나 굶주림 등의 괴로움에서 생기는 심신(心身)의 고뇌를 말한다.] 의 연을 깨달으니, 무겁기 때문에 괴롭고 괴로운[苦苦] 것이니라. 다음으로 수행[受行 : 가르침을 받아 실행하는 것.] 의 깨달음은 두 마음[진심(眞心)과 망심(妄心)을 말한다.] 이 신색(身色)의 쌓임[陰]이 무너지고 시작됨으로 향하는 것을 반연하는 가운데서 괴로움의 깨달음을 낳기 때문에 이름하여 괴고[壞苦 : 3고(苦)의 하나로 자기가 사랑하고 좋아하는 것이 무너질 때 생기는 괴로움을 말한다.] 를 연한다고 하느니라. 그러므로 세 가지 깨달음은 차례로 세 가지 마음을 낳기 때문에 고고(苦苦)가 되느니라. 나는 일체 유심(有心)의 중생에게 있어서 이 3고(苦)가 무량한 고뇌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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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키는 인연임을 보기 때문에, 이 가운데서 교화도삼매(敎化道三昧)에 들어가 일체의 색신을 나투어 6도에서 열 가지 변재로서 여러 가지 법문을 설하느니라. 고식(苦識)은 괴로움의 연(緣)과 칼이나 몽둥이의 연이 갖추어진 것을 말하니, 고식은 행신(行身)에 종기가 생겨 몸이 무너지게 되면 내외(內外)의 촉(觸) 가운데 혹 갖추어지거나 갖추어지지 않으며, 두 가지 연을 갖춘 가운데서 생기는 알음알이가 식(識)을 만들고 식을 받아 느낌을 인식하는 것을 이름하여 고식(苦識)이라고 하느니라. 두 가지 연을 행하기 때문에 마음 마음마다 색(色)을 반연하며, 마음이 촉의 고뇌를 접촉하여 번뇌의 독을 받을 때 고고가 되느니라. 마음이 식을 반연하여 처음에는 뿌리에 있으면서 연을 깨닫는 것을 이름하여 괴로움의 깨달음[苦覺]이라 하고, 마음으로 짓고 마음으로 받아서 촉식(觸識)이 닿음[觸]을 깨닫되, 아직 번뇌의 독을 받지 않았을 때를 이름하여 행고(行苦)라고 하느니라. 핍박하여 깨달음이 생기는 것은 돌을 쪼을 때 생기는 불과도 같으니, 몸과 마음에서 생각 생각마다 생멸하느니라. 몸은 흩어져 무너지고 전전하여 변화하며, 식(識)은 무너짐의 연에 들어가고, 연은 모이고 흩어져서 마음은 고뇌하느니라. 받아 생각한 뒤에 물들어 집착하는 마음을 반연하여 마음을 버리지 않는 이것이 괴고(壞苦)가 되니, 삼계의 일체는 고제(苦諦)이니라.
또 무명을 관하여 무량한 마음을 모아서 일체의 업을 지으며, 서로 이어지고 서로 연결되는 습인(習因)과 집인(集因)을 이름하여 집제(集諦)라고 하느니라. 정견(正見)과 해탈과 공공(空空)과 지도(智道)와 심심(心心)을 지도(智道)의 도제(道諦)라고 이름하느니라. 유(有)의 과보를 다하고 유의 인(因)을 다하여 청정하게 하나로 비춘 체성(體性)과 묘지(妙智)의 적멸한 하나의 진리와 지혜의 품류(品類)를 구족함을 근(根)이라고 이름하니, 일체의 지혜의 성품이 공에서 일어나 관(觀)으로 들어가는 이것이 처음의 선근이니라. 둘째로는 일체의 탐착(貪著)을 버리고 일체의 평등한 공을 행하는 사(捨:버림)를 관하며, 반연함이 없이 모든 법의 공제[空際 : 공(空)의 궁극, 실제(實際).] 가 하나의 상(相)임을 관하느니라. 내가 일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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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방 국토를 관함에 모두가 나의 옛날의 몸이 수용(受用)하던 옛 땅이니, 4대해(大海)의 물은 곧 나의 옛 물이며, 일체의 겁화(劫火)는 곧 나의 옛 몸이 그 옛날에 쓰던 불이며, 일체의 풍륜(風輪)은 곧 내가 옛날에 썼던 기(氣)이므로 내가 이제 이 땅 가운데 들어가 법신을 만족하고 나의 옛 몸을 버리느니라. 끝내 4대로 나누어지는 부정(不淨)한 옛 몸을 받지 않으니, 이것이 사(捨)의 품류(品類)를 구족한 것이 되느니라. 셋째로는 교화할 일체 중생에게 있어서 인천(人天)의 즐거움과 10지(地)의 즐거움과 10악(惡)의 두려움을 떠나는 즐거움과 묘화삼매(妙華三昧)를 얻는 즐거움과 내지 부처의 즐거움을 베푸는 것을 관하니, 이와 같이 관하면 자(慈)의 품류를 구족하느니라. 보살은 이때 이 땅 가운데 머물며, 어리석음이 없고 탐욕이 없고 성냄이 없는 평등한 하나의 진리에 들어 일체 행의 근본을 아느니라. 부처님의 일체 세계에 노닐며 변화하여 무량한 법신을 나투니, 이는 일체중생천화품(一切衆生天華品)에서 설한 것과 같으니라.
불자야, 보리살타의 광명의 체성지(體性地)는 삼매요해지(三昧了解智)를 통하여 3세의 모든 부처님의 법문과 12법품(法品)의 뛰어난 내용의 구절을 알고, 거듭 읊어 기별[記別 : 부처님이 수행하는 사람에 대하여 미래에 성불할 것을 낱낱이 구별하여 예언하는 것.] 하느니라. 직어(直語)와 게(偈)와 불청설(不請說)과 율계(律戒)와 비유와 불계(佛界)와 옛날 일과 방정(方正)과 미증유(未曾有)와 담설(談說)은 이 법의 체성의 이름으로서 제일의(第一義)의 다름이니라. 이 뛰어난 내용의 구절 중에서 일체의 유위법(有爲法)으로 어지럽게 생을 받음을 설하니, 처음에는 알음알이의 태[識胎]에 들어 4대의 색(色)과 심(心)을 증장하는데 이를 육주[六住 : 종성주(種性住)∙해행주(解行住)∙정심주(淨心住)∙행도적주(行道迹住)∙결정주(決定住)∙구경주(究竟住)이니, 보살이 깨달아 물러서지 않는 지위를 말한다.] 라고 이름하며, 근(根) 중에서 실다운 깨달음을 일으키며 아직 괴로움과 즐거움을 분별하지 못함을 촉식(觸識)이라 이름하며, 또 괴로움과 즐거움을 깨닫는 알음알이를 3수(受)라고 이름하느니라. 줄줄이 이어서 깨닫고 집착하여 받음이 끊이지 않으며, 제 욕망의 아견(我見)과 계취[戒取 : 계(戒)나 서약을 세우는 집착.]와 선악이 있느니라. 알음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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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처음을 생(生)이라 이름하며 알음알이의 끝을 죽음이라고 이름하느니라. 이 10품은 현재의 괴로움의 인연과 과(果)를 관하는 것이며, 이 행상(行相) 가운데 도는 내가 이미 오래 떨어졌기 때문에 스스로 체성이 없느니라. 광명의 신통과 총지와 변재에 들어가 마음 마음마다 공을 행하되, 시방의 불국토 가운데서 겁화(劫火)를 나투고 백겁 천겁을 전전하며 교화하느니라. 국토 중에서 신통을 기르고 부처님 앞에 예경하며, 법의 말씀을 물어서 받으며, 다시 6도의 몸을 나투어 일음(一音) 가운데서 무량한 법의 품류(品類)를 설한다. 그리하여 중생은 각각 자기의 분에 따라 마음에 바라는 법을 들을 수가 있으며, 고(苦) ∙ 공(空) ∙ 무상(無常) ∙ 무아(無我)의 하나의 진리의 소리도 국토가 같지 않으므로 몸과 마음을 달리하여 교화하니, 이는 묘화광명지(妙華光明地) 중에서 간략하게 하나의 털끝만큼 열어 보였으며, 법품해관법문천삼매품(法品解觀法門千三昧品)에서 설한 것과 같으니라.
불자야, 보리살타의 체성지(體性地) 가운데 진(眞)은 그대로고 속(俗)은 신기루이며, 끊어진 것[斷 : 모든 것은 소멸하여 사라짐.] 도 아니며 항상하는 것[常 : 모든 것은 영원불변함.]도 아니며, 생에 즉[卽 : 하나가 되는 것. 그대로 그 자체가 되는 것. 둘이 아닌 것.] 하고 주(住)에 즉하며 멸(滅)에 즉하느니라. 일세(一世)와 일시(一時)와 일유(一有)로서 종자가 다르고 나타남도 다르고 이유도 다르니, 인연 가운데 도(道)는 하나가 아니며 둘이 아니며, 선(善)도 아니며 악도 아니며, 범부도 아니며 부처도 아니기 때문에 불계(佛界)와 범계(凡界)는 하나하나 이를 이름하여 세제(世諦)라고 하느니라. 그 지도관(智道觀)은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니며, 현도정품(玄道定品)에서 이른바 부처의 심행(心行)이 처음 깨달은 선정의 인은 신각(信覺) ∙ 사각(思覺) ∙정각(靜覺) ∙ 상각(上覺) ∙ 염각(念覺) ∙ 혜각(慧覺) ∙ 관각(觀覺) ∙ 기각(猗覺) ∙ 요각(樂覺) ∙ 사각(捨覺)이라고 말했으며, 이러한 여러 가지 방편의 도에 의하여 심심(心心)의 선정의 과에 들어가니, 이 사람은 선정 중에 머물러 법을 신기루로 보며 공을 행하느니라. 만약 염정(念定)을 일으켜 심정(心定)을 내어 사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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낳는데 들어가면 도를 따라 도법(道法)으로 중생을 변화시키니, 법락인(法樂忍) ∙ 주인(住忍) ∙ 증인(證忍) ∙적멸인(寂滅忍)이라고 이름하느니라. 그러므로 여러 부처가 입광광화삼매(入光光華三昧) 중에서 무량한 부처를 나투어 손으로 이마를 만지며 일음(一音)으로 법을 설하며, 백 천으로 교화를 일으켜 펴되 선정에서 나오지 않느니라. 선정에 머물며 선정의 즐거움을 맛보고, 선정에 집착하고 선정을 탐하여 1겁 천겁 중에 선정에 머무르며 부처님이 연화좌에서 온갖 법문을 설하는 것을 보느니라. 이 사람은 공양하고 법을 들으며 1겁 동안 선정에 머무르니, 그때 여러 부처님이 광명 가운데 머리를 어루만지느니라. 정품(定品)의 출상(出相) ∙진상(進相) ∙ 거향상(去向相)을 일으키기 때문에 가라앉지 않고 물러서지 않고 떨어지지 않고 머물지 않으며, 가장 으뜸인 삼매법의 최상의 즐거움의 인(忍)이 길이 다하여 남음이 없으니, 즉 일체의 불국토에 들어 무량한 공덕의 품류를 수행하며, 행마다 광명으로서 선권방편(善權方便)에 드느니라. 일체 중생을 교화하여 능히 부처의 체성인 상(常) ∙ 락(樂) ∙ 아(我) ∙ 정(淨)을 보게 하니, 이 사람은 이 땅에 태어나 머물며, 행하고 교화하는 법문은 점점 깊고 오묘하여 화관지(華觀智)로 체성 가운데 도에 드느니라. 일체 법문의 품류를 모두 갖추니, 마치 금강과 같으니라. 위의 일월도품(日月道品)에서 이미 이 뜻을 밝혔느니라.
불자야, 보리살타의 지혜의 비춤인 체성지(體性地)는 법에 열 가지 힘이 생기는 품류가 있으니, 일체 공덕의 행을 일으켜 하나의 지혜의 방편으로써 선악의 두 가지 업이 따로 행함을 아느니라. 처력품(處力品) ∙ 선작악작업지력품(善作惡作業智力品) ∙ 일체욕구원육도생생과욕력품(一切欲求願六道生生果欲力品) ∙ 육도성분별부동성력품(六道性分別不同性力品) ∙ 일체선악근일일부동근력품(一切善惡根一一不同根力品)과, 그리고 삿된 선정과 바른 선정과 선정이 아닌 것을 정력품(定力品)이라 이름하며, 일체의 인과는 이 인을 타고[乘] 이 과를 타고서 과처(果處)에 이르러 인도(因道)를 올라타니, 이것은 도력품(道力品)이니라. 5안(眼)으로 일체의 법을 알고 일체의 생을 받음을 보기 때문에 천안력품(天眼力品)이며, 백겁의 일을 낱낱이 아니 숙세력품(宿世力品)이며, 일체의 태어남[生]이 번뇌의 멸(滅)이고 일체의 받음[受]이 무명의 멸인 것이 해탈력품(解脫力品)이니라. 이것이 10력(力)의...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