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망경(梵網經)

범망경-10-2

근와(槿瓦) 2016. 7. 16. 08:55

범망경-10-2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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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체에 얽매인 견해의 성품은 바로 장애의 인연이니라. 흩어놓는 바람이 마음을 움직여 적정(寂靜)하지 못하다가 사라지면 텅 비어 공(空)하여서 여덟 가지 전도(顚倒)의 인연이 없어지느니라. 고요한 지혜를 빌려 관해서 일체의 거짓으로 이루어진 것을 생각마다 없애고, 일체 삼계(三界)의 과(果)를 받는 죄의 성품은 모두 정(定)으로 말미암아 없어지고 일체의 선을 낳느니라.


불자야, 혜심(慧心)이란 공의 도리를 관하는 지혜[空慧]로 인연이 없는 것이 아니며, 앎의 체[知體]를 마음이라고 이름하고, 일체의 법을 분별하며 거짓으로 주인(主者)이라고 이름한다. 도(道)와 통해서 함께 과(果)를 취하여 인을 행하고, 거룩함[聖]에 들어가 어리석음[凡]을 버려서 죄를 없애고 복을 일으켜 묶고 푸는 것이 다하니, 이것이 바로 체성(體性)의 공용(功用)이니라.


일체의 견(見)은 상(常) ∙ 락(樂) ∙ 아(我) ∙ 정(淨)의 번뇌와 지혜의 성품을 밝히지 못하기 때문에 지혜로써 으뜸을 삼느니라.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선정(禪定)에 의지한 지혜(觀慧)를 닦아서 중도의 진리(一諦)에 드느니라. 그 무명은 지혜를 장애하니, 상(相)이 아니며, 래(來∙淨土로 가게 하는 것)가 아니며, 연(緣)이 아니며, 죄가 아니며, 여덟 가지 전도(顚倒)가 아니니라. 생멸(生滅)이 없고, 지혜의 광명이 밝게 타오르며, 적멸을 즐거워함을 비추기 위한 방편으로 전변(轉變)하는 신통은 지혜의 체성이 지혜의 공용이 되기 때문이니라.


불자야, 원심(願心)이란, 원(願)을 크게 구하는 것이며, 일체를 구하는 것이니라. 과로써 인을 행하기 때문에 원심과 원심은 서로 이어져 상속하며, 백겁(百劫)으로 부처를 이루어 죄를 없애느니라. 구하고 구함은 지극한 마음으로서 무생공(無生空)의 하나이며, 원을 관하고 관하여 정(定)에 들어 비추느니라.


무량한 삼계의 견혹(見惑:見縳)은 마음을 구하기 때문에 벗어날 수 있으며,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오묘한 행(行)으로 마음을 구하여 보리를 이루며, 무량한 공덕은 마음을 구하는 것으로 근본을 삼느니라. 처음에 구하는 마음을 일으켜 중간에 도를 닦고 행하여 원을 채우기 때문에 불과(佛果)가 곧바로 이루어지느니라. 진리[一諦]인 중도를 관함은 비춤[照]이 아니며, 과(果)가 아니며, 사라짐(沒)이 아니며, 보는 소견[見見]을 내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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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이해하는 지혜가 아니니, 이는 원(願)의 체성이며, 모든 행의 근본이니라.


불자야, 호심(護心)이란, 삼보(三寶)를 지키고 모든 행의 공덕을 지키는 것이며, 외도의 여덟 가지 전도된 나쁘고 삿된 소견이 바른 믿음을 속이지 못하게 하는 것이니라. 나의 번뇌[我縳]가 없어지면 소견에서 나오는 번뇌[見縳]는 생겨나지 않으며, 2제[諦 : 진제(眞諦)와 속제(俗諦)] 를 비추어 통달해서 지금 일어난 마음을 관하여 근본을 지키기 때문에 상(相)이 없는 지킴이니라.


공(空)과 지음이 없음[無作]과 상이 없음[無相]을 지켜서 마음과 지혜가 이어져 무생(無生)에 들어가며, 공도(空道)와 지도(智道)는 모두 밝은 빛이니, 밝은 빛을 지키고 관하여 공에 드느니라. 이를테면 어지러운 환화(幻化)는 환화가 일으킨 것이어서 진실이 없으니, 진실이 없으므로 법체(法體)가 모이고 흩어지는 것도 지킬 수가 없으며, 법을 관하는 것도 또한 그러하니라.


불자야, 희심(喜心)이란, 남이 즐거움을 얻는 것을 보고 항상 희열(喜悅)을 느끼며, 일체의 물(物)이 가(假)이고 공(空)이어서 적멸함을 비춤에 미쳐서는 유위(有爲)에 들지 않으며 적연(寂然)하지 않음이 없어, 받은 것이 있어서 교화되고 법이 있어서 보는 것에 계합하지 않음을 크게 즐거워하느니라. 진리[玄]와 거짓[假]의 법성(法性)에 대해 평등하게 한 가지로 마음과 마음의 행을 관하여 부처님께서 행하신 일체의 공덕을 모두 들으며, 무상(無相)을 기뻐하는 지혜를 마음마다 기억하여 고요히 비추니, 즐거워하는 마음은 일체의 법을 반연(攀緣)하느니라.


불자야, 정심(頂心)이란, 사람의 가장 높은 지혜이니라. 윤회하는 소견(輪見)과 의심스러운 몸(疑身)과 모든 성냄[瞋] 등을 없애서 ‘나’가 없음이 정수리(頂)와 같으며, 관(觀)에서 관으로 이어 관함이 정수리와 같으며, 법계 중의 인과는 여여(如如)하여 하나의 도가 가장 뛰어나고 훌륭하기가 정수리와 같으니, 사람의 머리(頂)와 같으니라. 비비(非非∙否定의 否定)의 신견(身見∙我見과 我所見)과 62견(見)과 5중(衆∙五蘊)의 생멸함과 신아외도(神我外道)의 주인이 도리어 굴복하니, 지음이 없어서 받음도 없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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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행도 잡아 묶을 것이 없느니라. 이 사람은 이때 내공(內空)의 길을 만나 들어가 마음은 중생의 연(緣)을 보지 않으며 연이 아님(非緣)도 보지 않고, 정삼매(頂三昧)의 적멸한 정(定)에 머물러 도를 향해 나아가는 행을 일으키느니라. 성품이 실로 나와 중생이 항상하다는 소견 등 여덟 가지 전도를 일으키니, 불이법문(不二法門)을 연(緣)하여 8난(難)을 받지 않으며, 환화의 과를 필경 받지 않느니라. 오직 한 중생만이 가고 오고 앉고 서는 동안에도 수행하여 죄를 없애며, 10악을 없애고 10선을 낳느니라. 도에 든 바른 사람의 바른 지혜와 바른 행을 보살이 달관하여 6도의 과를 당장에 받지 않으며, 반드시 부처의 종성(種姓)중에서 물러나지 않아 태어날 때마다 부처의 집에 들고 바른 믿음을 떠나지 않느니라. 위의 10천광품(天光品)에 널리 설했느니라.”


노사나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1천불(千佛)은 자세히 들으라. 그대가 앞서 물은 장양(長養)의 10심(心)이란 무엇인가.


불자야, 자심(慈心)이란, 항상 어진 마음을 행하여 즐거움의 인(因)을 생기게 하는 것이니, 무아(無我)의 지혜 가운데서 즐거움에 상응하는 관(觀)으로 법에 들어가 수(受) ∙ 상(想) ∙ 행(行) ∙ 식(識) ∙ 색(色) 등의 대법(大法) 가운데 태어남(生)도 없고 머무름(住)도 없고 멸함(滅)도 없어서 마치 환화(幻化)와 같으니라. 여여하여 둘이 아니기 때문에 일체의 수행은 법륜(法輪)을 이루어 교화가 일체를 덮어 능히 바른 믿음을 낳게 하며, 마군의 가르침을 연유하지 않느니라. 또한 일체의 중생들이 사랑[慈]의 즐거운 과를 얻도록 할 수 있으니, 이는 실(實)이 아니고 선악의 과(果)가 아니어서 공한 체성의 삼매를 이해하느니라.


불자야, 비심(悲心)이란, 슬픔은 공하고 공은 상(相)이 없으니 슬픔을 반연하여 도를 행해서 스스로 일체의 괴로움을 없애는 것이니라. 일체 중생의 무량한 괴로움 가운데서 지혜가 생겨나니, 중생을 죽이지 않음을 연(緣)하고 법을 죽이지 않음을 연하고 나에 집착하지 않음을 연하기 때문에 항상 살생하지 않고 훔치지 않고 음행하지 않아서 한 중생도 괴롭지 않느니라. 보리심을 일으키면 공(空)에서 일체법의 여실한 상(相)을 보며, 종성(種姓)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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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 가운데서 도의 지혜로운 마음을 낳느니라. 6친(親)과 6악[惡 : 불법을 받드는 데 있어서 나쁜 여섯 가지 일로 악시(惡時)∙악세계(惡世界)∙악중생(惡衆生)∙악견(惡見)∙악번뇌(惡煩惱)와 악하고 삿되어 무신앙(無信仰)이 성행하는 것이다.] 의 친악(親惡) 3품(品)중에서 가장 훌륭한 즐거움과 지혜를 주며, 가장 악한 연 가운데 9품은 즐거움을 얻고, 과(果)의 공함이 나타날 때 나와 남과 일체 중생은 평등하여 함께 즐거워해서 대비(大悲)를 일으킨다.


불자야, 희심(喜心)이란, 희열(喜悅)이 마음에서 생겨나지 않을 때는 종성의 체상(體相)과 도의 지혜가 공하고 공하여 희심으로 나의 것[我所]에 집착하지 않으니, 3세(世)의 인과를 벗어나서 모임이 없으며, 일체의 유(有)는 공에 들어 관행(觀行)이 평등함을 이루어 일체 중생을 기쁘게 하느니라. 공에서 일어나 도에 들어가 악지식(惡知識)을 버리고 선지식이 나의 좋은 길을 가리켜 줄 것을 구하여 모든 중생들이 불법의 집에 들어가도록 하며, 법 가운데서 항상 환희심을 일으키고 법의 지위 안에 들어가 다시 이 중생들로 하여금 바른 믿음에 들게 해서 삿된 소견을 버리고 6도의 괴로움을 등지게 하기 때문에 기쁜 것이니라.


불자야, 사심[捨心 : 4무량심(無量心)의 하나로 집착하지 않는 마음을 말한다.] 이란, 항상 버리는 마음을 내는 것이니, 지음이 없고 모양이 없는 공한 법은 허공과 같아서 선(善)과 악(惡)과 소견이 있음과 소견이 없음과 죄와 복의 두 가지에 대하여 평등하게 하나로 비추느니라. 남도 아니고 나의 것도 아니라는 마음으로 나와 남의 체성(體性)을 얻을 수 없는 것이 크게 버림[大捨]이 되니, 자기의 몸과 살과 손과 발과 남녀와 나라와 성에 미쳐서는 환화(幻化)와 물의 흐름과 등(燈)의 불꽃과 같아서 일체를 버리고 무생(無生)의 마음으로 항상 그 버림[捨]을 닦느니라.


불자야, 시심(施心)이란, 베푸는 마음으로 일체의 중생들을 덮어 줄 수 있는 것이니, 몸으로 베풀고 입으로 베풀고 뜻으로 베풀고 재물로 베풀고 법으로 베풀어 일체 중생을 가르치고 이끄느니라. 내신(內身)과 외신(外身)과 나라와 성과 남녀와 밭과 집이 모두 여여한 상(相)이며, 내지 재물을 생각하지 않아서 받는 자와 주는 자와 또 안과 밖이 합함도 없고 흩어짐도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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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無心)하게 교화를 행하여 이치에 이르며 베풀음에 이르러 일체의 상이 현재(現在)하여 먼저 행해지느니라.


불자야, 호어심(好語心)이란, 체성(體性)이 좋은 말[愛語]의 삼매에 들어가 제일의제(第一義諦:聖諦)의 법다운 말(法語)과 의로운 말(義語)을 일체의 실다운 말을 하는 이가 모두 하나의 말을 따라 일체의 중생들을 조화롭게 하는 것이니, 그 마음에는 성냄이 없고 다툼이 없느니라. 일체의 법은 공하고 지혜는 반연이 없으므로 항상 사랑[愛]을 낳으며, 마음과 행은 부처님의 뜻을 따르고 또 모든 다른 사람들을 따라서 거룩한 법어(法語)로써 모든 중생을 가르쳐 항상 마음과 같이 행하여 선근(善根)을 일으키느니라.


불자야, 이익심(利益心)이란, 중생을 이롭게 하고자 하는 마음일 때는 실다운 지혜의 체성으로 널리 지혜의 길을 행하여 일체의 밝은 법문(法門)을 모으고, 관행(觀行)의 일곱 가지 재물을 모아 앞 사람이 이익을 얻게 하기 때문에 신명(身命)을 받아 이익삼매(利益三昧)에 드는 것이니, 일체의 몸과 일체의 입과 일체의 뜻을 나타내어 대세계(大世界)를 진동시키며, 일체의 하고자 하는 바를 다 하느니라. 다른 사람이 법종(法種)과 공종(空種)과 도종(道種) 안에 들어가 이익을 얻고 즐거움을 얻으며, 형체를 6도에 나타내어 무량한 괴로운 일을 근심하지 않으며 다만 다른 사람을 도와 이롭게 하느니라.


불자야, 동심(同心)이란, 도의 성품의 지혜로써 공한 무생법(無生法) 가운데서 같게 되며, 무아(無我)의 지혜로써 둘이 없는 생(生)과 같게 되는 것이니라. 공(空)은 모든 법의 경계로서 진실한 모습과 같으며, 세간의 법은 항상 생겨나고 항상 머물고 항상 소멸되어서 상속하고 유전함이 헤아릴 수 없으니, 그러므로 능히 무량한 형상과 몸과 빛깔과 마음 등의 업을 나타내어 모든 6도에 들어가 일체의 일과 같게 되느니라. 공과 같아서 생겨남이 없고, 나(我)와 같아서 무물(無物)이 되니, 몸을 나누어 형상을 흩어지게 하기 때문에 동법삼매(同法三昧)에 드느니라.


불자야, 공심(空心)이란, 다시 정심(定心)을 따라서 관혜[觀慧 : 선정(禪定)에 의거한 지혜]로써...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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