넋두리

쓰레기는 쓰레기통으로.....

근와(槿瓦) 2014. 4. 26. 03:39

 

쓰레기는 쓰레기통으로.....

 

저는 작년 이맘때부터 다시 마라톤이라는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약 5년 정도 마라톤에 빠져서 하염없이 달리다가 어느 날 갑자기 그만 둔 후, 근 8년이라는 세월을 별 움직임 없이 그 흔하디 흔한 걷는 것조차 하지 않은 채, 방구석에 앉아 있다가 그것도 싫증이 나면 누워서 T.V를 시청하다가 졸리우면 자고 다시 눈이 떠지면 또 다시 그렇게 그러한 싸이클의 생활을 계속 반복하였죠. 약 5년간을 말입니다.

 

그런 생활의 끝에는 별로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가 당연히 다가오더군요. 살아야 하니 일단 먹어야 하고 먹고 난 후 특별한 움직임이 없이 시간을 보내니 그 탄력 있고 단단했던 몸은 어디 간 데 없고 육신은 야위어서 아주 볼 품 없이 되어버린데다가 혈중에 불필요한 성분들이 달라붙어 건강 검진 후 증상을 호전시키기 위해 약에 의존하는 신세가 되어버렸습니다.

 

우리 佛家에서 중요시 여기는 습기(習氣)란 것이 있는 것 아시죠?

지금 현세에서의 習性(習慣) 등에 의해 내세에 결정적으로 작용하게 되는 것의 因이 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5년이라는 공백의 끝에 드디어 제가 그동안 살아오면서 익혔던 습기가 발동하기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저는 공직에 있었으니 그 공직 생활 30여년 자체가 비록 못나고 어리석은 인간들이 만들어 낸 法들이긴 하지만 그것을 근거로 이뤄 낸 생활인 것임에, 또한 그래도 法은 法이기에 바를 정(正)자에서 크게 어긋나지 않은 생활이었다고 볼 수 있음이었고,

또한 비록 1년 4개월이라는 짧은 기간이긴 하였지만 불법에 푹 빠져들어 웬만한 그 어느 스님 못지 않게 수행을 해서 몸과 마음에 베어 있던 그 경험(禪 · 學 병행),

아울러 격렬하기는 하지만 속임수라고는 없는 즉, 정직한 운동의 표본이라고 할 수 있는 마라톤이라는 운동을 하여 웬만한 마라톤-매니아들이 감히 접근하기 어려운 그 어렵다고 하는 써브-쓰리(풀코스를 3시간 이내로 달리는 것을 일컬음)를 일궈냄,

이상 세 가지가 동시에 어우러져 게으르기 짝이 없던 저를 점점 자극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일단, 약해져버린 몸을 추슬러서 강해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걷기를 6개월에 걸쳐 했으며 그 이후 조금씩 달리기를 시작했습니다. 달리기를 시작할 무렵, 약 3km 정도만 해도 무릎이라든가 발목에 부하가 걸려 시큰거리고 아프다보니 일정 기간 쉬었다가 다시 뛰었고 조금 런닝이 되는가 싶어 거리를 늘릴라 치면 이젠 다른 부위에 통증이 생겨 또 다시 쉬고 그리하기를 수차례 반복하면서 지금 현재에 이르렀습니다.

 

지금은 풀코스 2회를 마쳤고 최근 하프 기록은 1시간 36분까지 접근한 상태입니다. 예전 한참 활동할 당시의 기록에 제법 다가간 셈입니다. 하지만 제가 항상 염두해 두는 것은 바로 그 바람직하다고 할 수 없는 "집착" 이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즐거웁거나 좋아하는 것에는 반드시 고통이 뒤따른다"는 것을 항상 유념하고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올림픽에서나 통용되는 것이 "좀더 멀리, 좀더 빨리, 좀더 높이"이던가요?

그런 것을 프로가 아닌 아마추어가 자기 자신의 기본적이고 근본적인 생활(직장, 가정 등)을 뒤로 하고 그 이상하고 이상한 숫자 놀음(기록을 말함)에 빠져든다면 이것이야말로 佛家에서 수없이 거론하고 있는 "어리석음" 그 자체일 것입니다.

하지만 예외는 있을 수 있습니다. 그건 다름이 아니라 마라톤을 아시는 분은 무슨 얘기인지 아실 것입니다만, 바로 일본의 엘리트가 아닌 마스터스(아마추어) 선수처럼 전문 프로선수 못지 않게 풀코스를 2시간 10분 초반대로 달려내서 국위를 선양한다면 예외로 들어 줄 수는 있으되 그렇지 않다면 그저 자기 만족에 그치는 것이 대다수의 아마추어들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또 한 가지의 예외가 있을 수 있다면, 다음과 같을 것입니다. 그것은, 자기가 참가하는 대회(주로 메이저 대회일 경우임)에 달성하고자 하는 기록을 정한 뒤 만약 목표를 이룬 후라면 그에 따른 결과물로 우리 佛家의 용어로 보시(1m당 1원)를 한다면 모르겠군요. 이런 정도의 마음씨라면 좀 지나치게 마라톤을 하였다 하더라도 불쌍하고 어려운 이웃을 위해 돈(?)이란 것을 썼으니 그 마음이 실로 가상한 것이 아니겠는지요?

마라톤 얘기가 제법 길어졌습니다만, 여하튼 佛家에서의 교훈적 말씀을 굳이 거론하지 않더라도 우리들에게 아주 친숙한 말씀이 있으니 "중용"이라는 단어입니다. 原語 내지 근접한 뜻을 들어본다면 "중용"을 "알맞음"이란 단어로 표현해 볼 수 있지 않을까요?

항상 이 "알맞음"이라는 단어를 유념하여 생활해 나간다면 우리들의 마음을 흐리게 만드는 잡념(후회, 미련, 집착 등)들이 우리와는 그다지 상관없는 것들이 됨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요즘 저의 일과는 주로 야간에 이뤄지고 있습니다. 밤 11시에서 그 다음날 4, 5시까지가 그것입니다. 과거처럼 초저녁에 운동을 해 보았습니다만 그 시간대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산책을 하거나 운동을 해서 서로 부딪히기[자기의 가는 길(오른쪽 보행)을 잘 모르고 아무렇게나 자기 가고 싶은대로 걷는 사람 또는 핸드폰에 정신 팔려 맞은편에서 사람이 오는 지도 모르는 상태] 일쑤이기 때문에 그러함을 피하다보니 야간의 적막함을 택한 것입니다.

운동의 대부분 마무리 지점을 동대문으로 설정, 부근의 24시 음식점에서 허기를 채운 후 다리 근육을 풀어줄 겸 걸어서 귀가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점을 거론하고자 하는 것은, 쓰레기[꽁초, 담배갑, 물병, 음료수병, 휴지, 광고지, 요구르트병, 커피병(테이크 아웃에서 취급하는 것]들이 보도를 온통 점령하고 있다는 것을 혹시 보시거나 아시는지요?

 

저는 처음 이것을 목격하고 크게 놀랐습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가 하고 말입니다. 제가 젊었을 때만 해도 그다지 상품이라고 할만한 것들이 없던 시절이었고 그에 따라 버릴 것들이 없기는 하였기에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보도가 꽤 정리가 되고 깨끗했었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말입니다. 지금 현재 이게 사람들이 다니는 길인지가 의심될 정도로 말 그대로 엉망진창인 것입니다. 그것뿐만이 아니라 보도에 있는 각종 시설물(전화부스, 한전의 전력시설물, 지하철 환기구, 화단 등)에도 온통 종이컵, 물병, 커피병 등이 버려져 자리잡고 있는 것입니다. 과연 이러한 행태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보도 등 기타 공공시설물은 어느 한 개인을 위해 시설된 장소가 아니라 그 지역을 지나다니는 수많은 사람들을 위해 시설된 장소이며 어쩌면 휴식 공간이랄 수도 있는 곳입니다. 이러한 곳에다가 자기 자신의 일을 다 마쳤으면 그 이후 아무렇게나 버려버리는 행위에 대해 별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는 지금의 이 현실!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실로 할 말이 없고 그저 부끄러울 뿐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배가 고파 허기를 채울 곳을 찾으면 어김없이 식당 및 음식점이 있듯이, 버리는 자가 있으면 줍는 자가 있음이란 것입니다.

하여 약 2개월 정도 되었지만 저는 집에서 운동하러 출발할 때 반드시 주머니에 빈 봉투와 비닐 장갑을 챙겨 운동을 시작하고 끝난 후 식사를 한 다음 귀가길에 그냥 무작정 걷기보다는 온통 버려져 있는 쓰레기들을 주우면서 집에 오고 있습니다. 쓰레기가 진짜 너무 많아 큰 봉투를 채우고도 넘쳐나서 전부를 다 주울수는 없어서 제법 큼지막한 쓰레기들을 주로 줍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러한 행동에 조금이라도 영향이 있었음인지 동네에 있는 편의점의 알바를 하는 청년이 이젠 비짜루로 한가한 틈을 타 자신이 근무하는 편의점 주변을 말끔히 정리하더군요.

 

지금까지의 것을 다시 말씀드린다면 대부분의 보행자들, 특히 야간에 나다니는 사람들이 야간이라는 어둠을 악용하는 것 같다는 것이고, 그네들의 마음은 타인들을 배려하는 마음이 결여된 이기주의자들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새벽에 그다지 사람들이 다니지 않으니까 즉, 쓰레기들을 함부로 버릴 때 감시의 눈초리라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없으니까 자기 마음대로 보도나 차도에다가도 그냥 버리는 그 마음씨.....

이러한 부끄러운 행태가 굳어지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냥 일시에 지나지 않는 행위들이라고 판단되어졌으면 하는 바람인 것입니다.

 

계속해서 속절없이 버리면 이에 따라 그저 주울뿐인 행위를 그저 그렇게 계속할 것입니다.

마라톤도 해서 예전의 건강을 거의 찾았고 부수적으로 탄탄해진 근력을 어찌하면 좋을까 했는데 그 해소 방법을 아주 근사하게 찾아낸 것이죠.

 

이 글의 서두에서 밝힌 "쓰레기는 쓰레기통으로" 란 이유는,

사람들을 비롯,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제 스스로 적정하게 찾아 가야 할 곳이 있다라는 점이며, 그럼에 제자리에 있으면서 그곳에서 나름대로 제 구실을 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라고 생각해 보았기 때문입니다.

 

쓰레기는 쓰레기통으로.....

公務를 집행하는 자는 공무하는 장소에서 최선을........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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