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보적경(大寶積經)

대보적경-110-22

근와(槿瓦) 2016. 6. 29. 00:20

대보적경-110-22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106 / 3476]

...을 깨달아 알아서 열어 보이어 연설하느니라.


무변장엄아, 마치 자모가 ''자로 머리를 삼아서 나머지 일체 문자를 분별하여 만들고는 뜻을 지어 서로 이어서 써[書寫] 들어갈 적에, ''자 뒤에는 다시 문자로 내세울 것이 없는 것과 같으니라. 이 두 가지 작용으로 말미암아 능히 일체 의사를 표현하게 되느니라. 저 두 가지의 분별이 진실됨이 없느니라. 저 진실에는 적은 문자도 없으며 본연의 자성이 또한 분별과 분별 아님이 없으며 그 가운데 또한 조금이라도 지을 것이 없느니라.


무변장엄아, 온갖 법은 지혜로써 알게 되나니 이 지혜가 다 문자로 좇아 건립되므로 생기나니, 이 문자가 성취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저 지혜도 또한 형상 얻을 것이 없느니라. 왜냐하면 저 진실에는 형상이 없나니 이러한 형상 없는 데 들어감으로 말미암아 일체의 지을 사업을 놓아 버리며, 지을 바가 없으므로 일체 유위의 일을 놓아 버리느니라.


무변장엄아, 이것이 다라니의 청정선교 총지법문이리니라. 만일 모든 보살이 이 법을 배울 때에 일체 어리석음 없는 사업을 일으켜 중생을 위하여 바른 법을 연설하여 모자람 없게 하며, 모든 생각의 덮임과 집착심에 머무르지 않고 또는 능히 생각과 작의(作意)를 여의고 능히 모든 법 깨달음의 지혜에 들어가서 끝없는 지혜 이취선교(理趣善巧)를 증득하느니라.


무변장엄아, 모든 보살이 널리 이름[]을 취하고는 온갖 법이 오직 온갖 쌓아 모은 언설[言說]에 의하여 일어난 바 이름이 있을 뿐, 진실이 없는 줄을 깨달을지니라. 이렇게 아는 자는 마땅히 다라니문 이취선교에 들어가게 되느니라.


어떤 것이 다라니문 이취선교에 들어감이냐? 온갖 이름이 머무르는 곳이 없어서 모든 법의 안이나 바깥이나 중간에 머무르지 않아 일체처에 도무지 얻지 못함인 줄 아는 것이니라. 다만 쌓아 모든 온갖 언설에 의하여 거짓 시설함이니 저 시설한 이름에 사실대로 여실구(如實句)를 깨달을지니라. 이 여실구로써 마땅히 온갖 법이 이름도 없고 말도 없는 줄을 깨달아 알라. 이것이 모든 부처님의 두려움 없는 힘의 경지니라. 저 온갖 법에 마땅히 이 문으로써 열어 보이어 연설할지니라. 여래가 말한 바 온갖 법은 일성(一性)도 아니며 이성(異性)도 아니니 모든 법이 일성·이성이 없는 까닭이니라.


                                                                             [107 / 3476]

온갖 법이 난 것도 아니요 있는 것도 아니니, 이렇게 모든 법이 또한 '()'이라고 베풀어 보이느니라


법이 만일 공일진대 그것이 곧 무상(無相)이요, 만일 무상일진대 곧 원하여 구함이 없고[無願求] 만일 법이 공·무상·무원일진대 곧 알지 못할 것·변계[徧知]하지 못할 것이니 마땅히 있느니 없느니 말하지 말지니라. '있다, 없다' 말하는 것은 다만 말뿐이니라. 그 가운데 집착을 내지 말지니라. 왜냐하면 여래가 항상 말하기를 '온갖 법에 집착하지 않는 이것이 가장 깊은 이치[眞勝義]' 하느니라. 만일 집착이 있는 자는 이 집착으로 말미암아 모든 법에 집착을 내나니 이와 같은 집착이 일체가 다 공이라, 이것은 실패[敗壞]의 법이니 오직 허망한 희론의 분별이니라.


무변장엄아, 네가 마땅히 모든 법을 연설할 적에 모든 법을 보이어 말할 것이 없는 줄을 관할지니라. 어찌 이 가운데 능히 설하는 자가 있어서 남을 위하여 말하겠느냐?


무변장엄아, 이 청정법은 모든 여래에게서 연출된 것이니 능히 깨달아 아는 자는 매우 기특하니라.


무변장엄아, 너희들이 이제 내 앞에서 이러한 법을 들어 능히 깨달아 알고 청정한 믿음에 머물러서 능히 잘 이해하는 자가 많다 하더라도 후세에 중생이 이 법 가운데 능히 잘 깨달아 알기는 드무리라. 오직 오늘 나의 처소에서 큰 서원을 세우기를 '바라옵건대 오는 세상에 모든 중생을 이익케하고 안락케 하기 위하여 여래의 교법을 받아 지니리이다'라고 하였거나, 혹은 지난 옛적에 여래의 처소에서 받들어 섬기고 공양하고 깊이 믿음을 내어 법을 좋아하고 원을 발하여 저 깊은 법의 이취선교에 들기를 원한 자는 제외하노라. 이런 보살은 항상 능히 다라니법을 얻게 되느니라.


무변장엄아, 옛적에 여래를 공양하고 다시 한량없는 부처님을 만나서 받들어 섬기고 공양하여 저 깊은 법의 인연 이취에 깊이 믿어 이해하는 자와, 법을 잘 구하여 깊은 이취를 이해하는 자는 나아가는 행이 깊고 넓어서 대승을 구하는 자지만, 성문승(聲聞乘)의 사람은 삼계를 여의려고 깊은 법에 부지런히 수행하는 자니 이러한 사람들은 일찍이 이런 깊은 법을 듣지 못하였느니라.


                                                                             [108 / 3476]

무변장엄아, 여래가 이러한 중생을 이익케 하고 안락케 하려고 깊고 넓으며 한량없고 보기 어렵고 알기 어려운 불종지(佛種智)를 증득케 하기 위하여 다시 매우 깊은 법을 연설하노니, 이것은 어리석은 사람은 들음이 없이 집착하며 법을 구하지 않는 자를 위해서이니라. 이치와 같이 수행하여 착한 뿌리가 갖추어져 작은 허물에도 크게 두려워하여 모든 공표에서 벗어나기를 구하는 이런 사람들의 의지할 곳이니라.


무변장엄아, 여래가 이제 너희들 천상·인간 세간을 위하여 항상 법을 연설하되 싫증을 내지 않음은 여래가 지나간 옛날 보살도를 행할 적에 무량 억 겁에 부지런히 이 깊은 법을 닦아 배우고, 이미 닦아 배우고는 방편으로 그 공덕을 돌이키되 '어떻게 하면 중생을 위하여 최상 미묘한 법의 바퀴를 굴리며 중생을 위하여 위없는 큰 지혜를 시현하여 온갖 지혜의 종성(種性)이 끊이지 않게 할까'라고 하였느니라.


무변장엄아, 이것은 여래의 지나간 날의 원력으로 말미암아 온갖 지혜의 종성이 끊어지지 않게 하기 위하여, 또는 위력으로 이 다라니구를 힘 입히어[加持] 매우 깊은 법을 연설하고 널리 유포하여 중생으로 하여금 불법 가운데 능히 깨쳐 들어가서 온갖 지혜의 종성이 끊이지 않게 하기 위해 이 모든 교법을 천명하여 널리 펴느니라.


무변장엄아, 너희들이 이제 여래를 따라 배우고자 하거든 법 구하는 중생에게 열어 보이어 연설하되 싫증을 내지 말지니라.


무변장엄아, 모든 보살이 들은 바 법이 있거든 대중 가운데 널리 온갖 법행(法行)을 열어 연설하라. 이것으로 말미암아 장차 불지(佛智)에 가까워지며 능히 빨리 다라니문을 증득하리라. 다라니를 증득함으로써 적은 공력으로 능히 광명을 드날리는 청정 법문을 받아 지니게 되리라.


무변장엄아, 온갖 법이 본성이 청정하니 만일 법의 본성으로는 저와 서로 응하는 것도 아니요 서로 응하지 않음도 아니며 화합으로 머무름도 아니요 화합 아님도 아니니라. 모든 법 가운데 법 있다고 할 것이 없나니 만일 있다는 것이 없으면 무엇으로 보이어 말하겠는가. 오직 인()의 다함은 제하느니라. 인이 다함도 여의고 여의므로 곧 멸하느니라. 내가 중생이 깨달아 알게 하기 위하므로 온갖 법의 본연의 자성을 말하거니와 그곳에 인()이 없


                                                                             [109 / 3476]

으므로 곧 인이 다함도 없느니라. 인이 다함도 없으므로 여읨도 없고 멸도 없느니라.


무변장엄아, 네가 여래의 말한 바 법이 이렇게 청정하다 관하라. 만일 법으로써 여래를 보는 자는 여래에게 청정치 못함을 볼 것이다. 왜냐하면 여래는 법도 아니요, 법 아님도 아니다. 여래는 오히려 작은 법에도 머무르지 않거든 하물며 법 아닌 것이랴. 만일 비법에 머무른다면 그런 이치가 없느니라. 여래는 모든 표시하는 법을 뛰어나서 베풀어 말할 수 없느니라. 일체의 언어가 다 청정한 까닭이니 이러므로 여래의 법은 가장 깊고 넓고 한량이 없느니라.


무변장엄아, 이와 같이 여래는 물질[]로 표시할 것이 아니며, 느낌·생각·지어감·의식으로 표시할 것이 아니며 여래는 또한 물질이 다[]하므로 해탈함이 아니며, 느낌·생각·지어감·의식이 다했다고 해탈이 아니니라. 그러므로 여래는 모든 표시가 끊어져서 물질 따위 법과 서로 응함도 아니며, 서로 응하지 않음도 아니요, 온갖 힘이 있고 함이 없는 법에 다 해탈하여 분별을 일으키지 아니하고 희론이 없느니라. 여래는 색취온(色取蘊)과 서로 응하지 않으, 또한 느낌·생각·지어감·의식의 모든 취온과 서로 응하지 아니하고 길이 일체 취온의 근본을 끊었으며, 또한 모든 법의 근본을 여의어서 희론이 없으며, 들어감도 아니요 나감도 아니며, 번뇌의 폭포수[瀑流]를 뛰어 건너서 더없는 부처님 지혜의 경계에도 머무르지 않으며 또한 머무르지 않음도 아니니라. 마땅히 '여래는 어떤 법에도 머무르지 않으며 취함도 아니요, 버림도 아니다'고 말하라.


이 말과 같이 여래의 설법도 또한 그러하니라. 여래가 모든 법과 서로 응하지 않으므로 여래의 법도 또한 서로 응하지 않으며, 여래의 법과 같이 모든 법도 또한 그러하니라. 여실한 이치에 의지하여 모든 법이 다 이러하므로 세존이 말하기를 '온갖 법이 다 이것이 진여(眞如)'고 하느니라. 온갖 법과 '불진여(佛眞如)'가 둘이 없고 다름이 없으며, 하나도 아니요 다름도 아니니라. 여래는 분별없는 법에 머무르나니[安住] 부질없는 생각[徧計]이 아닌 까닭이니라.


무변장엄아, 여래의 설법은 끝내 온갖 법을 뛰어난 것이 아니니라. 왜냐하


                                                                             [110 / 3476]

면 어떤 법도 뛰어난 것이 없는 까닭이니라.


무변장엄아, 여래가 어느 때에 '무상정등보리'를 증득하였느니라. 그러나 그때에 법에 얻을 것이 없었나니 온갖 법과 그 법에 따르는 인연은 얻지 못할 것이므로 분별을 일으키지 않으며 법과 법 아닌 것과 작의(作意)라는 생각조차 일으키지 않기 때문이니라.


그 본성이 본래로 청정한 법성에 머무르지 않으며 또한 법이 있다고 주장하지도 않나니, 이와 같이 깨달아 알고 법을 간택할 때에 또한 깨달아 안다는 것과 간택한다는 생각이 없느니라.


무변장엄아, 이에 연설한 제일의구(第一義句)는 곧 이것이 여래의 법구(法句) 아닌 법구니 법구가 청정한 까닭이니라. 이 뜻으로써 모든 보살이 일체의 법구 청정의 지혜를 얻으려면 이것으로 말미암아 능히 끝없는 이취다라니문에 들어가되 또한 어떤 법도 증득할 것이 없으며 오는 것도 아니요, 가는 것도 아니니라.


무변장엄아, 법구라고 말하지만 법구를 얻을수 없나니 법구 아닌 법구인 까닭이니라. 일체 법구를 마땅히 이렇게 알지니라. 이러한 모든 법구는 이것이 여의어 버릴 법구이니라. 만일 여의어 버릴 법구일진대 이것은 허망의 법구며, 만일 허망의 법구일진대 곧 여의어 버릴 법구이니라. 저 일체의 법구가 이 멸해 없어진[滅盡]구요, 만일 멸해 없어진 법구일진대 곧 진여(眞如)의 법구며, 만일 진여의 법구일진대 곧 마지막[究竟] 법구며, 만일 마지막 법구일진대 곧 열반구며, 만일 열반구일진대 곧 세속이 아니니 법구라고 내세울 수도 없으며 또한 보이어 말할 수 없느니라.


무변장엄아, 한 법구라고 말한 것은 일체 선법·불선법에 평등하게 들어가느니라. 그 한 법구란, 말하자면 '여읨[]'의 법구니라. 저 여읨 가운데 어떤 법구도 있을 수 없나니 이것은 일체 법구가 마치 여읨의 법구나 또는 법구 아니라는 것과 같나니 법구가 청정한 까닭이니라. 만일 법구가 청정하면 곧 열반이 청정하고 열반이 청정하면 곧 법구가 청정하리니, 이러한 법구는 다 말할 수 없느니라. 만일 말로 써 법구를 드러내어 보인다면 그 말을 시방세계에 구하여도 얻지 못하리라. 누가 누구를 위하여 말하였는가. 이러므로 모든 언설이 다 공한 것이니라. 그것이 만일 공일진대 곧 뜻이 없는 것...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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