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보적경(大寶積經)

대보적경-115-23

근와(槿瓦) 2016. 6. 30. 00:30

대보적경-115-23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111 / 3476]

...이니 그 가운데 희론과 분별을 내지 않을 것이니라.


이와 같이 모든 구의(句義)라는 것은 모두가 다 분별 없는 법구며 희론 없는 법구니라. 이러므로 관행(觀行)을 닦는 자가 모든 법구를 찾아 관찰할 적에 마땅히 이것이 다 없어진 것[離滅]이요, 열반인 줄을 알지니라. 이러한 모든 법구가 열반과 다르지 않으며 또한 가히 말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니라. 그러나 다름 아님도 아니니 언설의 법구는 다 허망한 까닭에 청정구라고 하느니라. 말 잘하는 방편[善巧]으로 모든 법구를 표시하건만 실로 표시가 아니니라. 혹은 표시도 아니며 표시 아닌 것도 곧 중도(中道)에 머무름이니라. 만일 중도에 머무르면 곧 분별이 없나니 이 가운데 분별이 끊어지므로 이 법성에 평등하게 따라 들어갈 때에 작은 악행이라도 행할 것이 없나니 얻을 바가 없는 까닭이니라. 이렇게 행하지 않으면 또한 경계 따라 행하지 않으며 어디에도 치우친 행[等近行]을 하지 않느니라. 만일 이렇게 행하면 모든 부처님이 '보살승(菩薩乘)'이 된다고 말씀하시느니라. 어떤 법도 행할 것이 없을 적에 그는 보살지(菩薩地)를 닦아서 더없는 청정한 다라니에 머무르는 까닭이니라.


무변장엄아, 나는 이제 다라니 법구를 말하리니 이 법구로 말미암아 모든 보살로 하여금 다라니를 얻어서 끝없는 법장을 열어 보이어 이런 것이 다툼 없는 경지[無諍地]에 머무른다고 말하나니, 능히 모든 이론(異論)을 꺾어 깨뜨리는 것이 가장 적정한 까닭이며, 널리 설법하는 까닭이니라. 어떤 것이 저 법문 다라니구이냐?”


                                                                             [112 / 3476]

무변장엄아, 이것은 다라니 표석(標釋)의 법구라, 모든 보살이 이 법구로 말미암아 능히 한량없는 부처님의 법장을 기억하며, 또한 능히 모든 중생을 위하여 다툼없는 경지에 머무르는 법을 열어 보이고 연설하며, 다시 능히 일체 의구(義句)의 이취선교에 따라 들어가서 능히 한량없는 광대한 차별지혜


                                                                             [113 / 3476]

의 깨달음[智覺]을 사무쳐 알고 그 원하는 바를 알아 다 만족케 하느니라.”


                                                                             [114 / 3476]

대보적경 제5권 
대당 삼장 보리류지 한역

송성수 번역


2. 문변장엄회


1) 무상다라니품(無上陀羅尼品)


그때에 부처님이 무변장엄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다라니문의 이취·차별 지혜의 선교방편을 말하여 모든 보살로 하여금 다라니 선교방편을 얻게 하며 이것을 얻음으로 말미암아 능히 법에 따르는 비밀 선교방편을 깨달아 알게 하며 이것을 얻음으로 말미암아 능히 법에 따르는 비밀 선교방편을 깨달아 알게 하리라. 무엇이 깨달아 아는 것이냐? 무변장엄아, 눈에 보이는 빛깔의 다라니, 내지 뜻으로 아는 법의 다라니문이니라.


무변장엄아, 어떤 것이 안[]의 여섯 감관이 밖으로 취하는 법 다라니문이냐? 무변장엄아, 만일 보살이 눈으로 빛을 보고는 가리어 빼앗기지 않는 지혜의 힘[不可映奪智力]과 잊지 않는 염선교[念善巧不迷忘]로 말미암아 색[]이 항상됨이 없어서 나고 멸해 머무르지 아니하고 다 여의어 없어지는 이치를 깨달아 두루 지니나니[徧持], 이것으로 능히 눈[內眼界]'[]''나의 것[我所]'에 집착하지 아니하고 안처(安處)의 청정에 잘 머무나니[安住] 색깔의 경계에 이끌리지 않는 까닭에 능히 청정다라니문에 잘 관찰하여 다 여의어 없애므로 곧 희론이 없으며, 희론이 없는 총지선교로 말미암아 망념 없는 데 머물러서 분별의 쌓임이 없으며, 행하는 도중에 능히 눈과


                                                                             [115 / 3476]

또한 안식(眼識)과 아는 바의 법을 놓아 여의었으므로 분별이 없나니, 여실한 지견이 청정한 까닭이며, 또한 능히 모든 법이 환술과 같은 줄을 생각하고 주관·객관에 청정한 선교로 총지를 얻을 때에 세간에 뛰어나는[不共世間] 광대한 지온(智蘊:智藏)을 거두어 잘 잡아 지니느니라. 이와같은 뜻으로 아는 법의 다라니문을 간략히 말하리라.


보살이 뜻으로 법을 알고는 가리어 빼앗기지 않는 지혜의 힘과 잊지 않는 염선교로 말미암아 능히 모든 법이 항상됨 없이 나고 멸해 머무르지 아니하고, 다 여의어 없어지는 이치를 지니고 뜻[內意處]의 총지에 머물러서 또한 '''나의 것'에 집착하지 아니하고, 안으로 의식지(意識地)에 잘 머무르는 이는 능히 묘하게 총지선교를 관찰하고 다음엔 의처(意處)의 청정에 잘 머무르나니 바깥 법처(法處)에 이끌리지 아니하는 까닭에 능히 청정한 다라니문을 얻느니라.


안팎의 법과 나머지 번뇌의 매듭[]과 부림[使]이 서로 응하지 않으므로 능히 따라 관찰하고 다 여의어 없애므로 희론을 하지 않느니라. 희론이 없는 총지선교로 말미암아 망념 없는 데 머물러 분별의 쌓임이 없으며, 닦아 나아가는 도에 능히 뜻과 의식과 아울러 아는 바 법을 놓아 버리므로 희론이 없고 분별을 일으키지 않나니 여실한 지견이 청정한 까닭이며, 능히 모든 법이 환술과 같은 줄을 생각하고 또한 능히 주관과 객관을 총지하는 청정선교로 세간을 뛰어나는 수승한 복(()를 거두어 지니며, 또 과거·미래·현재와 안팎 온갖 법에 뜻대로 깨달아서 방편선교 지력(智力)을 거두어 지니므로 그 어떤 법에도 인()이 없다는 견해를 일으키지 않으며, 그 인에 연()의 견해를 일으키지 않으며, 또한 저 연에 인의 견해를 일으키지 아니하고 온갖 법이 각기 서로 응하지 않음을 알아서 여실히 따라 모든 본성에 들어가나니, 이 온갖 법은 본성이 청정하고 또한 적정하리라.


만일 온갖 법이 서로서로 의지하여 종류를 따라 서로 지니며 총지[徧持]와 서로 응함으로 말미암아 편안히 머무르는 이는 마땅히 알아 저 법이 의지와 서로 응함을 말미암지 않으므로 불생(不生불기(不起)에 머물러 유전치 않느니라. 또한 언설로 능히 저 지닌 바 뜻을 얻을 것이 아니니라. 온갖 법이 각기 같은 성질의 것이 아니므로 같이 서로 응하는 것이 아니며 서로...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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