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보적경(大寶積經)

대보적경-100-20

근와(槿瓦) 2016. 6. 27. 00:25

대보적경-100-20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96 / 3476]

...여, 이 모든 법문·다라니문·원만한 구의(句義)와 온갖 법의 결정선교, 이러한 법문을 여래께서 말씀하시와 아직 성숙되지 못한 모든 보살을 다 성숙케 하시면, 이미 성숙한 이는 속히 신통과 온갖 지혜와 해탈지견(解脫知見)을 얻게 하소서.


세존이시여, 만일 보살들이 부정지(不定智)에 머물렀다면 이 보살들이 이 법을 듣고는 온갖 지혜의 경계를 성취하게 하여지이다. 세존이시여, 제가 이 인연으로 감히 큰 물음을 여쭙나이다. 바라옵건대 큰자비와 위력으로 모든 보살을 가피(加被)하시고 수호하시와 이러한 법을 말씀하소서.


세존이시여, 이 뒤 말세에 쟁론(諍論)이 일어날 때에 자기 주장에 집착된 중생이 서로서로 해치고 삼독이 부쩍 늘어 바른 법을 허물 때에, 모든 보살들은 그때에 큰 자비로 이 일을 견디어 참고 이 법을 유포하여 쟁론이 없게 하옵소서. 무쟁(無諍)의 법에 순응하므로 곧 능히 대자대비를 거두어 지니오면 모든 착한 뿌리를 쌓아 모으리이다.


세존이시여, 제가 이제 감히 이뜻으로 말미암아 여래의 걸림없는 법문의 결정의를 묻자옵니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하여 모든 보살의 한량없는 법문·법광명문(法光明門)과 온갖 법의 방편을 일으키게 하오리까?


다시 바라옵건대 여래께서는 '무너짐 없는 고요한 [不滅壞寂靜] 법문'을 말씀하시며, 겸하여 끝없는 비밀 법장을 연설하시와 구족히 성취하여 생각하는 힘이 끊임없게 하시며, 원수[魔怨]와 외도들을 항복받아 굴복되는 일 없게 하소서. 바라옵건대 여래는 바른 법을 연설하시어 중생들로 하여금 착한 뿌리를 쌓아 모으게 하시며, 또한 끝없는 방편을 쌓아 모으게 하시며, 온갖 지혜를 세상에 나타내시어 생각하는 대로 한량없는 법문을 엮어내어 모든 변재가 청정 구족하며 서로 잇달아 어지럽지 않은 최상의 구의(句義)를 얻어서 한량없는 법문과 다라니의 진실한 방편을 증득케 하시며, 또 중생들이 기쁜 마음을 내게 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먼저 하고 뒤에 할 정진 방법을 말씀하시며, 과거·미래·현재의 모든 수행법을 보여 주시어 이러한 인행(因行)에 자재하므로 법에 머무름 없게 하시며, 보살들이 시방 여래의 전생 일[本事]을 잘 알고 신통과 두려움 없는 힘[無畏力]으로 모든 부처님 세계에 가득하여 중생에게 청정
한 법의 눈[法眼]을 맡겨 주시며, 또한 생각할 수


                                                                              [97 / 3476]

없는 법을 열어 보여 부처님의 지혜 방편선교를 성취케 하옵소서.


제가 이런 뜻으로 말미암아 감히 청하오니 바라옵건대 세존께서는 여래지(如來地)의 광대 방편의 매우 깊은 법을 말씀하시어 온갖 지혜가 되도록 모든 선교와 헤아릴 수 없는 법 이취를 거두어 지니어 저 보살의 원과 방편선교를 원만케 하옵소서. 보살이 이 법을 듣고는 다 큰 법의 광명을 증득하여 보리의 수승한 선교와 넓은 서원을 성취하여 다 원만케 하옵소서.”


그때에 부처님께서 무변장엄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착하다. 무변장엄아, 네가 이제 모든 보살을 위하여 청정한 원력, 방편선교에 머무르며 또한 모든 중생을 불쌍히 여기는 까닭에 결정한 지혜로 여래에게 묻자옵나니, 너의 공덕은 한량이 없도다. 잘 듣고 사실대로 생각하라. 내가 이제 너를 위하여 법을 해설하여 모든 보살로 하여금 불지경(佛智境)의 한량없는 공덕을 길러내게 하리라.”

그러하옵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듣기를 원하나이다.”


만일 보살이 끝없는 선교원(善巧願)을 구하기 위하여서는 마땅히 모든 부처님의 비밀어(秘密語)를 알고 받아 지니고 사실대로 관찰할지니라.


어떻게 관찰하는가. 무변장엄아, 여래의 지혜는 모든 교묘한 방편을 거두어 지녔으므로 법을 설함이 청정하지 않음이 없느니라. 모든 보살은 마땅히 이러한 법요(法要)를 닦을지니라. 모든 부처님의 말씀은 다 평등하여 대비심에 머물러서 중생을 널리 덮어 주며, 결정코 모든 중생들을 성숙케 하느니라.


혹은 하승법(下乘法)에 해탈을 구하여 성문도에 진실·최상의 열반을 목적하는 이에게 넓은 서원을 원만히 채워 온갖 지혜를 이루게 하며, 내가 이제 무상 해탈에 머무르게 하여 나머지 소승법을 멀리 여의게 하고 모든 부처님 비밀어에 잘 들어가게 하며, 여래의 미묘한 언구(言句)를 말하여 광대 청정하여 모든 법을 거두어 가지며, 중생들의 그 근성을 따라서 해탈을 성취케 하느니라. 그러나 이 법은 평등하여 느는 것도 아니고 주는 것도 아니며 모자람도 없고 잃어버림도 없으며, ()도 없고 등색(等色)도 없으며 끝없고 가없는 자성의 청정함은 모든 부처님이 연설하신 바이니라.


본래의 자성을 진실히 깨달아 알면 어떤 법이나 다 깨달아 알게 되리니


                                                                              [98 / 3476]

왜냐하면 온갖 법은 다 여래가 이름을 붙여(假名] 말했을 뿐이기 때문이니라.


만일 모든 법이 다 이 붙인 이름을 말미암았다면 이것을 곧 법으로써 시설하지 못할 것이며 또한 나타내어 보일 수 없을 것이다. 나타내어 보일 수 없으므로 여래가 말씀한 것이 다 진실한 제일의(第一義)니라. 법을 따라 다 같이 온갖 법에 들어가서 온갖 법의 분별에 머무르지 않으면 또한 머무르지 않음도 아니니라. 분별법과 분별 없으므로 진실하고 평등하게 온갖 법을 증득하여 차별이 없느니라.


법은 남[]이 없나니 이렇게 나는 법이 없는 까닭이니라. 법이라 함은 실로 법이 없나니, 망령된 분별을 내어 널리 계탁(計度)하는 까닭이니라. 법은 일어남이 없나니 자재하지 못한 까닭이니라. 법은 관()할 경계[]가 없나니 원만도 버린 까닭이니라. 법은 작용이 없으니 가고 옴이 없는 까닭이니라. 법은 자성이 없으니 일체의 자성법(自性法)을 뛰어넘은 까닭이니라. 법은 본래 평등하여 차별이 없나니 희론(戱論)이 없는 까닭이니라. 하는 일[所作]을 따라 수승한 원을 일으켜 성취되지 않음이 없나니 그 가운데 하는 자[作者]가 없으며 적은 법이라도 얻은 것이 없이 다 '()'에 돌아가느니라. 이러므로 온갖 법이 꼭두각시 같고 꿈과 같아서 높고 낮음이 없나니 내가 마땅히 청정한 넓은 원으로 중생을 교화할 적에 실로 적은 법에라도 집착함이 없었느니라. 무변장엄아, 이것이 모든 보살의 법광명을 얻느니라.


무변장엄아, 만일 모든 보살이 안으로 바로 생각하고 밖으로 산란한 마음이 없이 조용히 머물러서 모든 장애를 끊은 자는 보살의 보광상매(普光三昧)를 따라서 생각하고, 매우 깊은 법을 믿어 아는 자는 마땅히 이 모든 법문을 관찰할지니라. 온갖 법을 여래가 다 알고 연기문(緣起門)으로써 열어 보이어 연설하느니라. 이와 같은 연기는 허망하여 실답지 않은지라 본래의 자성이 다 공적하나니 이 연기성도 또한 진실이 아니지마는 능히 중생으로 하여금 물들게도 하고 청정케도 하나 시방에 구해도 다 얻지 못하느니라. 얻을 것이 없으므로 받아 지닐 것도 없으며, 받아 지닐 것이 없으므로 내가 설한 법을 오히려 놓아 버릴 것이니, 하물며 법 아닌 것이랴. 놓아 버린다 함도 또한 있는 것이 아니며 또한 취할 것이 없으며 공용(功用)도 없고 본성이 청정


                                                                              [99 / 3476]

하여 온갖 법이 분별이 없나니 분별의 진실성을 분명히 안 까닭이니라. 온갖 법이 머무를 것이 없으며 또한 보지 못하나니 다른 성질이 없는 까닭이니라. 이러므로 모든 법이 머무름이 없고 의지할 것이 없건마는 다만 이름을 붙임으로써 있느니라. 저것이 다 공적하여 자성이 없으며 머무름이 없이 머무느니라. 이러므로 모든 법 머무를 곳이 없느니라. 머무를 곳이 없는 까닭에, []한 까닭에, 멸한 까닭에, 변역(變易)한 까닭에, 여래가 다만 다른 이름으로 연설할 뿐이니라. 이러한 그윽한 뜻을 응당 잘 알 것이요, 선과 불선에 집착하지 말지니라. 만일 선법에 집착하면 불선법도 또한 집착하리라. 이러한 불선법에 집착하므로 모든 번뇌를 내나니 부처가 다른 이름으로 말하여 고성제(古聖諦)라 하며, 선과 불선에 집착하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느낌[惑受]이 없어지나니 여래가 이 선법으로 끊을 것을 다른 이름으로 말하여 집성제(集成諦)라 하느니라.


제이 성제를 능히 깨달아 아는 까닭에, 멸한 까닭에, 다한 까닭에, 억상(憶想)이 없는 까닭에, 생사를 여의어 버리고 아무 것도 없는 것을 관찰한 까닭에, 생각[]과 느낌[]을 즐기지 않고 분별이 없는 까닭에, 여래가 다른 이름으로 말하여 멸성제(滅性諦)라 하느니라.


제삼 멸성제를 깨달아 앎으로써 이 구할 것의 도에 사실대로 깨달아 들어가 온갖 법에 생각·분별·희론의 경계를 뛰어넘어서, 8()의 성도(聖道)와 서로 응하여 바른 소견[正見)과 바른 선정[正定]을 닦아 익히므로 괴로움이 없어지고 도에 나아가는 성제(聖諦)를 깨달아 알게 되나니 부처는 다른 이름으로 제사제(第四諦)를 삼았느니라.


모든 부처님이 이 괴로움을 알고, 괴로움의 원인을 끊고 괴로움 없는 이치를 깨닫고는 도를 닦으며 괴로움·괴로움의 원인·고멸 및 괴로움 없는 데로 나아가는 도를 베풀어 놓으셨느니라. 그러나 괴로움이 본래 없는 것이지만 세속적으로 이름을 붙여 놓은 것이니라.


'무명(無明)' 등의 일체가 다 무지(無智)로 인연할 뿐이니라. 왜냐하면 저 무지에는 작은 반연도 가히 취할 것이 없으며, ()할 것이 없으며, 광명 있을 것도 없으며, 깨달아 알 것도 없으며, 또한 얻을 것도 없느니라. 그 가운데 무엇이 있겠는가. 일체가 다 이 허망하고 없어지는 법이라 결심함이 없


                                                                             [100 / 3476]

느니라. 그 가운데 만일 실물이 있다고 내세우면 저들이 곧 세속의 상법(常法)에 집착할 것이다. 만일 분별 없다는 데 집착하면 저희들은 곧 끊을 것에 집착하리라. 이러므로 괴로움에 분별을 내지 말고 지혜로써 무지의 자성이 곧 괴로움의 자성인 줄을 비추어 보아라. 무명과 서로 응하는 까닭이니라. 무명이 또한 물(:경계)과 서로 응하지 않나니 서로 응하지 않으므로 저것도 또한 없는 것이니라. 저것이 서로 응하지 않으므로 무명이 분별도 아니며, 별 아닌 것도 아니니, 만든 것도 아니며, 없어지는 것도 아니며, 또한 만드는 자도 없나니 시설해 만드는 자를 얻을 수 없는 까닭이니라.


무변장엄아, 이것이 모든 보살이 무명의 자성을 깨달아서 밝은 법을 따르는 문이니라. 이 문으로 말미암아 능히 일체 무명의 어둠을 놓아 버리고 눈앞의 밝은 법에 수순한 줄을 알게 되므로 보리분법(菩提分法)을 잘 닦아 익혀 모든 진리를 깨달아 알게 되느니라.


이 보살들은 이 법문에 능히 청정함을 얻나니, 말하자면 불생(不生)으로 말미암아 괴로움에 청정하며, 반연하지 않으므로 괴로움의 원인[]에 청정하며, 괴로움이 다함으로 말미암아 없어짐의 이치에 청정하며, 닦아 익힘으로 말미암아 도에 청정하며, 믿음이 평등하므로 도가 곧 평등하나니 이와 같이 모든 법의 다른 이름을 알아 둘지니라. 알고는 마땅히 끊고 깨닫고 닦을지니라. 만일 여래의 말을 능히 이해하면 그는 곧 널리 알 것이며 그는 곧 따라 끊을 것이며, 그는 곧 깨달을 것이며 그는 곧 닦아 익히리라. 이러므로 성자가 이렇게 알고는 온갖 법에 집착하지도 아니하고 놓아 버리지도 아니하며, 곧 사제 법문에 편히 머무느니라.


무변장엄아, 온갖 법이 분별이 없으며 또 자라남[增長]도 아니며 쌓아 모임[積集]도 아니니라. 성자는 사실대로 잘 앎으로써 분별을 일으키지 않으며 희론을 행하지 않으며, 능히 사실대로 보고 훼방하지 않고 집착하지도 않으며, 도로 말미암아 끊을 것을 끊으므로 모든 선법에 분별을 일으키지 아니하고 희론이 없나니 하물며 불선법임에랴.


분별과 서로 응하므로 다시 법과 비법을 끊음에 머무르지 않느니라. 만일 널리 끊을 줄을 알면 곧 법의 얽매임[]과 비법의 얽매임이 없느니라. 그가 능히 얽매임의 법이 허망한 줄을 알면 이 허망한 법이 비어서 있는 것이 없...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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