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산큰스님 말씀

꿈도 없고 생각도 없을 때에 너는 과연 무엇이더냐

근와(槿瓦) 2014. 1. 9. 00:52

꿈도 없고 생각도 없을 때에 너는 과연 무엇이더냐

 

동산스님의 덕화가 어찌나 크고 넓었던지 전쟁이 끝난 후에도 전국 방방곡곡에서 수좌들이 찾아와 스님의 문하에 들여주기를 간청하는 바람에 범어사 청풍당에는 사람 발길이 끊어지질 않았다.

청풍당 김장김치에 동산스님이 소금을 듬뿍듬뿍 뿌려 연일 찾아드는 수좌들 먹거리를 해결해주려 했던 그 이듬해 겨울에도 웬 젊은이 하나가 찾아와 스님 뵙기를 청하였다. 자신의 이름을 고병완이라 밝힌 그 청년은 조실로 안내되어 정중히 예를 갖춘 후에 동산스님과 마주 앉았다.

"무슨 일로 날 찾아왔는지요?"

".....예, 저.......사내대장부가 사람 노릇을 제대로 하려면 참선 구경이라도 해야 한다기에.....그래서 찾아왔습니다."

그 청년은 절간 출입이 처음인 듯 머뭇거리며 더듬더듬 대답하였다.

"허허허! 그래서 참선수행하는 구경을 하러 오셨단 말씀이신가?"

스님은 얼핏 당돌하게 들릴 수도 있는 그 청년의 얘기를 부드럽게 받아주었다. 청년은 연이어 이르기를, 최소한 석 달은 절에 머물러 있어야 제대로 참선하는 모습을 구경할 수 있다고 들었던 바, 석 달 동안 자신을 청풍당에 있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동산스님의 입가에 알 수 없는 미소가 번져나는가 싶더니 그 청년을 향하여 한마디 툭 던지는 물음이 있었다.

"그럼 어디 한번 일러보시게. 꿈도 없고 생각도 없을 때, 과연 어떤 것이 그대의 본래 면목이신고?"

"예에?"

느닷없는 스님의 물음에 청년이 어리둥절해졌을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스님은 재차 똑같은 질문을 내려 청년을 더욱 당황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꿈이 있을 때는 꿈이 그대라 하고, 생각이 있을 때는 생각이 그대라고 하세. 헌데 꿈도 생각도 없을 때, 그때 과연 무엇이 그대의 실체라고 하시겠는가? 어디 그것을 한번 내놓아보시게!"

첫인사를 올리자마자 동산스님이 느닷없이 내던진 이 수수께끼같은 물음에 어느 누군들 감히 대답할 수가 있었을 것인가.

이날, 청년 고병완은 그 어떤 말로도 대답을 하지 못한 채 조실스님 방을 물러나와야 했다.

그가 바로 훗날의 선지식 광덕스님이 될 줄을 미리 예견하셨던 지, 동산스님은 생전 처음 참선구경을 하러 온 청년에게 첫대면에서부터 화두를 던져준 것이었다.

 

암울한 식민지시대의 백성으로 태어나 나라 잃은 치욕을 씹으며 살아온 청년 고병완.

그에게는 나라 잃은 백성으로서 겪어야 했던 굴욕과 수모를 어떻게 하면 씻을 수 있을 것인가가 가장 큰 과제였다. 그 과제를 풀기 위하여 그는 수많은 밤을 밝히며 학문에 열중했었고 그 와중에서 해방과 동란을 맞았던 것이었다.

그렇듯 청년기를 번민과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살아온 청년 고병완에게 난데없이 던져진 질문, 그것은 안개속을 헤매이는 듯한 답답함 속으로 그 자신을 몰아넣고 있는 것이었다.

그날 밤, 고병완은 조실 맞은편 원주스님의 시자 방에 머물며 밤새도록 생각에 잠겼다.

'꿈도 없고 생각도 없을 때, 그대의 본래 면목은 과연 무엇인가? 어디 그것을 한번 내놓아보시게.'

밤새도록 동산스님의 물음이 잠의 고삐를 꼭 붙들어 매놓은 채 어서 그것을 내놓으라고 재촉하는 바람에 고병완은 그 밤을 뜬눈으로 지새워야 했다.

밤을 하얗게 밝혔건만 고병완은 뚜렷한 해답을 얻을 수가 없었다.

다음날 아침, 인사를 드리러 가니 동산스님은 청년 고병완에게 또 똑같은 질문을 던지는 것이었다.

"꿈이 있을 때는 꿈이 그대라고 하고, 생각이 있을 때는 생각이 바로 그대라고 하세. 그러면 꿈도 생각도 없을 땐 무엇이 과연 그대의 실체이겠는가?"

"......."

다음날에도, 또 그 다음날에도 똑같은 질문이 이어졌다. 스님의 물음에 해답을 구하고자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던 고병완이 궁리 끝에 몇 마디 의견을 사뢰었으나 번번이 틀렸다는 대답뿐이었다.

"방금 그대가 나에게 하신 말씀은 그 말씀 자체가 생각한 것 아니신가? 생각도 말고 꿈도 말고, 그대의 본래 면목은 과연 무엇인지 그것을 일러보시게."

아무리 정신을 몰두해 생각해보아도 과연 자신의 본래 면목이 무엇인지를 말할 수가 없었던 청년 고병완은 실로 참담한 심경에 빠지게 되었다. 너 자신의 본래 면목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살아온 이 얼간이 고병완아! 그러면서도 너는 책과 씨름하며 밝힌 그 수많은 밤들을 근거로 지식인 흉내나 내고 있었느냐!

고병완은 세상사람들 모두가 자신을 손가락질하며 비웃는 것 같아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는 그 조롱을 면하기 위해서라도 기어이 스님의 물음에 대한 해답을 찾으려고 무진 애를 태웠다.

그러나 오기에 끌려다니는 마음은 더욱더 무거워지기만 할 뿐이었다.

이럭저럭 이레째 되던 날 아침이었다. 고병완이 조실스님의 방문을 열고 들어가니 마침 스님은 붓끝에 먹물을 잔뜩 묻혀 글을 쓰고 있던 중이었다.

"스님, 밤새 안....."

청년 고병완이 절을 올린 연후에 문안인사를 하려고 입을 벌리려던 참이었다.

"일러라! 어서 일러!"

글쎄 동산스님은 먹물이 듬뿍 묻은 붓끝을 고병완의 입끝에 탁 들이대며 고함을 지르는 것이었다.

"......."

청년 고병완은 그 자리에서 그만 두 눈을 감고 말았다. 비로소 그는 이 수수께끼 같은 스님의 질문이 지식이나 이론으로는 도저히 풀어낼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던 것이었다.

청년 고병완은 비참한 심경으로 말없이 스님의 방을 물러나왔다.

 

 

그날부터 청년 고병완은 낯선 이방인처럼 청풍당 뜰 앞을 서성이면서 무언가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찾기 시작하였다.

그는 누가 시키지 않는데도 마당에 쌓인 눈을 쓸고, 마루를 닦아내고, 밤에는 댓돌 위에 가지런히 놓여 있는 그 수많은 스님들의 고무신을 깨끗이 씻어놓는 것이었다.

그러기를 하루, 이틀, 사흘, 나흘, 닷새가 지났다.

"스님, 선방 구경 왔다는 저 청년 말씀입니다요?"

하루는 동산스님의 시자가 고병완의 남다른 행동을 스님에게 전하였다.

"그래, 그 청년이 어쨌다는 얘기던고?"

"혹시 조실스님께서 스님들 고무신 닦아놓으라고 시키셨습니까요?"

"난 그런 일 시킨 적 없느니라."

"그런데 그 청년이 매일밤 저 많은 스님들 고무신을 깨끗하게 닦아놓곤 합니다요."

"그래.....그건 나도 보아서 알고 있느니라. 너 지금 선방에 가서 입승 좀 내가 보잔다고 일러라."

동산스님은 보지 않은 듯하면서도 벌써 청년 고병완의 몸가짐 하나하나를 유심히 살펴보았던 터였다.

이 당시 범어사 금어선원의 입승은 손경산 스님이 맡고 있었다.

"그대도 저 귀티나는 청년을 보았겠지?"

이윽고 입승인 경산스님이 방 안에 들어와 예를 올리고 앉았을 때에 동산스님이 입을 열었다.

"성씨가 고씨라는 그 청년 말씀이십니까요, 스님?"

"그래, 성씨가 고씨라니 고처사로 부르면 되겠구먼."

"예, 스님."

"고처사를 옆에서 지켜보니 생각과 행실이 십 년 수좌보다 낫네."

경산스님 또한 그간 고병완을 지켜본 바에 의하면 동산스님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던 중이었다.

"거 고처사, 선방구경을 왔다니까 들여보내주시게."

경산스님은 동산스님의 분부를 받고는 어안이 벙벙하였다. 아무리 생각과 행실이 밝은 승려라 하더라도 선방에 들어가려면 절차를 밟아야 하는 게 불가의 관행이었다. 워낙 까다롭기 이를 데 없고 복잡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는 것이 또한 선방 절차였다.

선방에 들어가 참선수행하기 위하여 새로 찾아온 승려는 우선 객스님의 접수를 맡고 있는 지빈스님을 찾아 방부신청을 해야 한다. 이 지빈스님의 방부신청을 받은 뒤 조실스님께 인사를 올리고 방부허락을 받아야만 선방에 들어가는 게 가능한 것이었다.

객승의 방부신청을 받은 조실스님은 그에게 괘각(사찰이나 선원의 법도와 질서를 어기고 말썽을 부리는 일)한 일이 있느냐, 없느냐를 묻게 되어 있다.

만일 방부를 청하는 객승이 그전에 괘각한 사실이 있으면 어느 선원에서도 받아주지 않는 것이 불가의 관례인 것이다.

이렇게 하여 조실스님의 허락을 받으면 입승에게 인사드리고 점심공양 후 선방뒷문으로 들어가 대중 앞에 삼배를 올려야 한다. 이 때에 또 '조실스님 모시고 한철 지내겠습니다'하고 다짐을 마쳐야 비로소 선방수좌의 일원으로서 참선수행을 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아직 삭발출가도 아니한 고처사를 선방에 들여보내라 하는 조실스님의 명이 있었으니 경산스님은 당황스러울 따름이었다.

"선방에 들여보내라구요, 스님?"

경산스님은 동산스님에게 조심스럽게 다시 여쭈어보았다. 스님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 연후에 경산스님에게 당부를 내렸다.

"그냥 집어넣지만 말고 참선하는 법을 제대로 좀 가르쳐 넣어주시게."

이리하여 청년 고병완은 삭발출가도 하기 전에 동산스님의 특별한 배려로 선방출입을 허락받게 되었던 것이다. 고병완은 이후부터는 고처사로 불리우며 손경산 스님으로부터 참선방법을 배우게 되었다.

"자, 이제 되었네. 이렇게 앉는 것은 가부좌라 하네.....그런데 조실스님께서는 고처사에게 무엇을 참구하라 하시던가?"

"예, 꿈도 없고 생각도 없을 때에 너의 본래 면목은 과연 무엇이냐, 그걸 물으셨습니다."

"그럼, 바로 그것을 화두삼아 열심히 참구하시게, 아시겠는가?"

"예, 스님 분부대로 열심히 공부하겠습니다."

 

참선수행.

그것은 말 그대로 고행이었다.

새벽 2시 45분이면 어김없이 얼굴을 씻고, 새벽 3시면 대웅전 큰 법당에 올라가 예불을 올리고, 참선한 뒤 아침 죽을 먹고 나면 7시부터는 손에 비를 들고 도량청소를 해야 한다. 오전 9시부터 10시 반까지 다시 참선을 한 뒤 오전 11시 반에 점심공양에 들어간다. 이후 2시부터 다시 참선수행을 하다가 오후 4시에 방선을 하게 되며 오후 5시에는 저녁공양을 들고 6시에는 저녁예불 시간이 시작된다. 7시부터 다시 참선에 들어가 밤 9시에 일과를 마치면 참선수행하던 수좌들은 바로 그 자리에서 머리를 맞대고 목침을 베고 누워, 깔고 앉았던 방석 한 장을 배 위에 덮으면 바로 그것이 수행자들의 잠자리가 되는 것이다.

수행자들은 방바닥에 요를 깔지 않는 것은 물론 이불도 없고 담요 한 장도 덮지 않는다.

여느 수행자처럼 목침을 베고 방석 한 장을 베고 누운 고처사는 제대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꿈도 없고 생각도 없을 때, 과연 무엇이 본래 그대의 면모더란 말인고?"

밑도 끝도 없이 떠오르는 화두를 풀어내지 못해 몇 날 며칠 밤을 뜬눈으로 지새우다시피 하였던 고처사는 마침내 철야정진, 묵언수행을 결행하였다.

입선과 방선을 알리는 죽비소리만이 경내의 침묵을 일깨워주는 하루가 지나고, 이틀, 사흘, 그리고 석 달이 모두 지나갔다.

어느새 이듬해 음력 정월 보름, 겨울 한철의 수행이 끝난 후 이윽고 동산스님의 해제법문이 있었던 날이다.

"여보시게 고처사! 내 방으로 좀 들어오시게!"

해제법문을 마친 동산스님이 고처사를 안으로 불러들였다.

"선방구경을 석 달만 하겠다 그러셨지, 아마?"

".......예."

"그래, 석 달 동안 선방구경은 제대로 하셨는가?"

"이제 겨우 선방 문고리를 잡은 셈이옵니다, 스님."

석 달이 지나는 동안 고처사의 마음자리가 얼마나 닦여져 있었는지 시험해보는 동산스님의 입가에 엷은 미소가 어렸다.

"그래, 그동안 그대의 본래 면목은 찾으셨는가?"

"말씀드리기 부끄럽사오나, 제 본래 주인은 마음이 아닌가 합니다."

이에 동산스님은 파안대소하며 기쁨을 나타내는 것이었으니 고처사의 눈빛 또한 푸른 정기를 머금어 맑게 빛났다.

'하하하하! 석 달 동안 죽 먹이고 밥 먹인게 헛일은 아니었구먼, 그래. 응? 하하하!"

"부끄럽사옵니다, 스님."

"허면, 그 마음이라고 하는 것은 대체 어디에 있는고?"

고처사는 잠시 대답을 않은 채 공손히 고개를 조아렸다. 동산스님이 재차 물었다.

"허면, 그 마음이라고 하는 것은 그 모양이 어떻게 생겼던고?"

이윽고 고처사가 고개를 들며 동산스님에게 되물었다.

"하오면 스님, 허공은 대체 어디에 있고, 그 모양은 대체 어떻게 생겼다고 이르시겠습니까?"

고처사의 대답이 끝나자 동산스님은 또 한바탕 호기롭게 웃는 것이었다.

"하하하하! 그대는 선방 문고리만 만져본 게 아니라 문턱을 수없이 넘나드셨네그려, 응? 하하하하! 헌데 고처사!"

"예, 스님."

"설마한들 선방구경을 중도에 그만두고 떠날 생각은 아니시겠지?"

".......밥값을 제대로 못하는 처지라 조실스님을 한철 더 모시고 싶다는 말씀을 차마 드리지 못하겠사옵니다만......."

고처사는 동산스님의 칭찬에 안색까지 붉어지며 부끄러워하는 것이었다. 동산스님은 고처사의 겸손함에 다시 한번 칭찬을 내리며 말을 이었다.

"그대 고처사는 이 청풍당에 석 달 머물면서 3년치 밥값을 너끈히 치루신 셈이야."

"아니 스님, 정말이시옵니까요?"

"암, 정말이구말구. 사실 말일세, 고처사가 떠나겠다고 해도 내가 놓아주지 않을 생각이었네. 내 말 뜻 아시겠는가?"

 

선근(善根)을 꿰뚫어볼 줄 알았던 동산스님의 혜안이 오늘날 우리나라 불교계에 한 재목을 심어놓는 큰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출전 : 벼슬도 재물도 풀잎에 이슬일세(동산큰스님)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나무석가모니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