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가경(楞伽經)

입능가경(41)-410

근와(槿瓦) 2016. 1. 4. 00:33

입능가경(41)-410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401 / 415] 쪽

2 · 3재(災)가 없는 가운데에는

과거와 미래 세상도 또한 그러하여

여러 부처님께서 출세 아니 하시고

바른 시기에 세상에 출현하시네.

상(相)이 있음을 박탈할 사람 없고,

옷을 나누고 자르지 아니 하고

납의(衲衣)를 찢고 모아서 만들어

공작(孔雀) 그림의 색과 같네.

두 치[寸]와 혹은 세 치로서

얼기설기 납의(衲衣)를 깁을 것이니,

만약 이와 같이 아니 한다면

어리석은 사람에게 탐내고 빼앗기리라.

항상 탐욕의 불을 끄고

지혜의 물로 항상 씻고 목욕하며,

밤 낮 6시(時)에

여실히 법을 수행하라.

쏘는 화살과 돌과 나무는

힘이 다하면 다시 땅에 떨어지니

하나를 쏘면 다시 하나가 떨어지는 것처럼

선(善)과 불선(不善)도 또한 그러하네.

하나 가운데엔 많은 종류가 없으니

상(相)은 이와 같음이 없기 때문이네.

바람이 일체에 불어감과 같으며

전지(田地)가 불에 타는 것과 같네.

 

                                                                                                                          [402 / 415] 쪽

만약 하나가 능히 많음을 짓는다면

일체는 짓는 것 없을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일체를 잃음이니

이는 망각자(妄覺者)의 법이리라.

등불과 종자가 같은데

어찌 많음이 비슷하리요,

하나가 능히 많음을 내었다면

이는 망각자(妄覺者)의 법이리라.

호마[麻]엔 팥이 나지 않고

나락에는 큰 보리가 나지 않으며

작은 보리들의 종자가 나지 않으리니

어찌 하나가 많음을 내리요.

파니(波尼)가 성론(聲論)을 내었고

아차파(阿叉波)의 태백(太白)이며

말세에 범장(梵藏)이 있어서

세속론(世俗論)을 말하리.

가전연(迦旃延)이 경(經)을 지으며

야바가(夜婆伽)도 또한 그러하네.

부주가(浮稠迦)의 천문(天文)이여,

이는 다음 말세의 논이라네.

바리(婆梨)가 세복(世福)을 말하기에

세상 사람이 복덕에 의지하여

능히 모든 법을 두호하고

왕 바리(婆離)는 땅을 보시하리라.

 

                                                                                                                          [403 / 415] 쪽

미가마수라(彌迦摩修羅)와

아서라(阿舒羅) 등은

미혹과 왕론(王論)을 말하고

말세엔 여러 신선 나타나리라.

싯달타(悉達他)는 석종(釋種)이요

부단타(浮單陀)는 5각(角)인 자라네.

구력(口力)과 힐혜(黠慧)는

내가 멸도한 후 출세하리라.

아시나(阿示那) 삼굴(三掘)과

미구라(彌佉羅) 조관(澡罐)이었네.

내가 아란야(阿蘭若)에 있을 적

범천(梵天)이 나에게 보시하였네.

그대는 당래(當來) 세상에

큰 이진구(離塵垢)라 이름할 것이요,

능히 참 해탈을 말하리니

이는 모니(牟尼)의 모양이라네.

범천(梵天)이 범중(梵衆)과 함께

모든 하늘 대중과 더불어

녹피(鹿皮) 등을 나에게 보시하고

도로 자재천(自在天)으로 사라졌네.

여러 얼기설기 섞인 옷이며

걸식하는 발우를 만들어

제석과 사천왕(四天王)은

조용한 곳에서 나에게 보시하였네.

 

                                                                                                                           [404 / 415] 쪽

무생(無生)과 또한 인(因)과

생(生)과 불생(不生)을 말하고서

불생(不生)을 이루고자 한다면

이는 다만 언어를 말함이네.

만약 무명(無明) 등의 인(因)이

능히 모든 마음을 내었다면

색(色)이 나지 못했을 때엔

중간이 어디에 머무르랴.

즉시 마음에서 멸하고

다시 다른 마음을 낸다면

색(色)은 한 생각도 머무름이 아니니,

무슨 법이 능히 생김을 관찰하랴.

무슨 인연에 의지하는가?

마음은 이 전도(顚倒)의 인(因)이다.

그는 능히 법을 이루지 못하리니,

어찌 생멸(生滅)을 알 것인가?

수행자가 정(定)에 합하면

금안사나(金安闍那)의 체(體)일 것이니

광음천(光音天) 궁전에는

세간법이 무너지지 않네.

증득할 바 법에 머무름은

이는 일체 부처님과

여래 등의 지혜이니,

비구는 그 법을 증득해야 하리.

 

                                                                                                                           [405 / 415] 쪽

나머지 증득한 바 법이란

그 법은 항상 무너지지 않네.

어찌하여 허망하게 볼 것인가?

모든 법은 생각에도 머무르질 않는다.

무슨 까닭으로 생각에도 머무르지 않는가?

건달바와 환(幻)의 색(色)이다.

모든 색(色)은 4대(大)가 없거니,

모든 대(大)는 무슨 소위(所爲)이랴.

무명(無明)으로 있는 마음과

끝없는 세계에의 훈습으로

생멸(生滅)에 의한 화합(和合)이니,

망각자(妄覺者)의 분별이었네.

승구(僧佉)가 두 가지 있으니

훌륭함과 전변(轉變)이다.

훌륭함 속에 과(果)가 있으니

과(果)가 또다시 과를 성취하네.

훌륭함은 대(大)의 체상(體相)이니

공덕의 차별을 말하는

인과(因果) 두 가지 법은

전변 가운데엔 없다네.

수경(水鏡)은 청정하여

진토(塵土)가 더럽히지 못하듯이

진여(眞如)는 이와 같이 청정하여

중생이 의지하였다네.

 

                                                                                                                          [406 / 415] 쪽

흥거(興渠)와 파(葱)와

여인(女人)의 회태장(懷胎藏)과

소금과 소금 가운데 맛과 같아

종자(種子)가 어찌 없으랴.

이체(異體)와 불이체(不異體)라고 하는

2체(體)의 두 법을 떠났고

유(有) 법과 인연 없음의

유위(有爲)에 없는 것이 아니라네.

말(馬) 가운데엔 소(牛)가 없듯이

음(陰) 가운데 아(我)도 그러하여

유위(有爲) · 무위(無爲)라 말하는

이 법은 말할 수 없다네.

악견(惡見)의 양(量)과 아함(阿含)은

삿된 각(覺)의 구염(垢染)에 의함이네.

깨닫지 못하고 아(我)있다 말함이니

인(因)도 인을 떠남도 아니었네.

5음엔 아(我)가 없으니

아(我)를 취함은 허물이다.

같음과 다름에서

망각자(妄覺者)는 깨닫지 못하네.

수경(水鏡)과 눈(眼)에서

거울 속의 모양을 보는 것과 같아서

일(一)과 이(異)를 멀리 떠났으니,

음(陰) 가운데 아(我)도 또 그러하네.

 

                                                                                                                           [407 / 415] 쪽

가관(可觀)과 능관(能觀)과

선도(禪道)로 중생 보는 것인

이 세 법을 관찰하여

사견(邪見) 법을 떠나야 하리.

곧 지견(知見)을 곧 없애면

구멍 속에 허공 보는 것 같으리라.

모든 법의 전변(轉變)하는 상(相)을

어리석은 사람은 허망하게 분별하네.

열반은 유무를 떠났으니

여실(如實)한 견(見)의 자리에 머물러서

생멸법을 멀리 떠나고

또 유무(有無)의 체(體)도 떠나리.

능견(能見)과 가견(可見)을 떠나며

전변하는 법을 관찰하고

외도의 말을 떠나며

명상(名相)과 형체(形體)를 떠나리.

속 몸의 사견(邪見)에 의하여

전변하는 법을 관찰하면

모든 하늘과 지옥과

촉감과 핍박과 고뇌라네.

중음(中陰)의 법은 있지 않으니

어찌 식(識)에 의하여 나리요.

태(胎) · 난(卵) · 습(濕) · 화(化) 등은

중음(中陰) 가운데에 난다.

 

                                                                                                                          [408 / 415] 쪽

중생의 몸 여러 가지에서

마땅히 가고 오는 것을 관찰하여

양(量)과 아함(阿含)이

능히 번뇌 종자 내는 것을 떠나리.

모든 외도의 헛된 말을

지혜 있는 자는 취하지 말 것이요,

먼저 아(我)를 관찰하고

다음에 인연을 관찰하라.

유(有)를 알지 못하고 유를 말하니

그러므로 석녀의 아이[石女兒]가 수승하리.

반야(般若)는 육안(肉眼)을 떠났으니

묘한 눈으로 중생을 보라.

유위(有爲)와 음(陰)을 떠나면

묘한 신체의 중생일 것이다.

좋고 나쁜 색(色)에 머물러서

속박을 벗어나 해탈하라.

유위(有爲)에 머무름을 묘하게 증득하면

능히 묘한 법신(法身)을 보리라.

6취(趣)에 있어서는

망각(妄覺)이요, 그 경계가 아니다.

아(我)는 인도(人道)를 벗어났고

다른 망각자(妄覺者)는 아니며,

그리고 아(我)의 마음 생김이 없거늘

무슨 까닭으로 이와 같이 나는 것인가?

 

                                                                                                                          [409 / 415] 쪽

강물과 등불과 종자가 같다고

어찌 이와 같이 말하지 않느냐?

식(識)이 나지 않을 때에는

무명(無明) 등도 있지 아니하네.

무명을 떠나면 식(識)이 없으니

어찌 상속하여 생기겠는가?

3세(世)와 또한 무세(無世)와

제5는 가히 말할 수 없네.

이는 부처님의 경계요,

망각자(妄覺者)가 관찰하는

행(行)에서는 말할 수 없음이니,

지혜와 행(行)의 속을 떠났기 때문이네.

모든 행을 취하는 가운데

지혜는 행의 법을 떠났다네.

이 법에 의하여 이것이 생겼으니

현재 보인 것에는 인(因)이 없다네.

모든 인연은 볼 수 없어서

지음 없는 것도 떠났네.

바람과 불에 의해 능히 태우니,

바람이 움직임으로 능히 나며

바람이 불을 불어 움직이게 하고

바람이 다시 불을 능히 없애리.

어리석은 이는 분별하지 못하니,

어찌하여 중생이 생긴 것인가?

유위(有爲)와 무위(無爲)를 말하나

 

                                                                                                                          [410 / 415] 쪽

의(依)와 소의(所依)를 떠났네.

어찌하여 저 법이 성립함인가?

바람과 불을 어리석은 이가 분별하니,

피차(彼此)의 증장(增長)하는 힘이다.

피차의 법은 미치지도 못하네.

어찌하여 불이 생김인가?

말 뿐이요, 뜻(義)은 없는 것이네.

중생은 이 누구의 조작이냐고

그를 분별함은 불과 같다.

능히 음입(陰入)의 몸을 지은 것은

의(意) 등의 인연으로 생김이네.

항상됨과 무아(無我)의 뜻(義)이

마음과 함께 항상 굴러 생한다.

두 법은 항상 청정하여

모든 인과(因果)를 떠났으며,

불이 능히 그를 이루지 못하고

망각자(妄覺者)는 알지 못하네.

마음과 중생과 열반은

자성이 항상 청정하다.

끝없는 허물과 더럽힘이.....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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