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가경(楞伽經)

입능가경(37)-370

근와(槿瓦) 2015. 12. 30. 00:32

입능가경(37)-370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361/ 415] 쪽

만약 인(因)이 없이 생장(生長)한다면

토끼 뿔도 또한 마땅히 나리라.

증장하는 인(因)이 없으니

어찌하여 분별을 내랴.

현재에 법이 없는 것과 같아서

이와 같이 본래도 또한 없네.

자체가 화합한 체성도 없으니

어찌하여 마음이 능히 생하랴.

진여와 공(空)과 실제(實際)와

열반과 법계(法界)와

일체법의 생(生)함 아닌 것이

이 제일의(第一義)의 법이네.

범부는 유무에 떨어져서

인과 연을 분별하니

인(因)은 없어 본래 생함이 아니지만

3유(有)를 알지 못하도다.

마음에서 가견(可見)을 본 것은

무시(無始)로 달리 본 것이다.

시초도 없고 또한 법도 없으니

어찌하여 견(見)의 다름이 있으랴.

만약 물건이 없이 능히 생(生)한다면

가난한 사람도 마땅히 재물이 많으리라.

어찌하여 물건이 없는데도 마음이 생하는지

모니(牟尼)께서는 저희를 위해 말씀해 주소서.

 

                                                                                                                        [362 / 415] 쪽

이 일체가 무심(無心)이지만

모든 법이 없지 않으며

건달바와 꿈과 환이어서

모든 법은 인(因)이 있지 아니하네.

생함이 없고 체상(體相)이 없는

공(空)한 법을 저희 위해 말씀하소서.

화합한 법을 떠난 것이여,

이는 모든 법을 보지 않음이다.

그 때엔 공(空)이며 무생(無生)이니

나는 법상(法相)이 없다고 말하네.

꿈과 털 바퀴와 환과

건달바와 물로 애착함이네.

인(因)이 없는데 견(見)이 있으니

세간법도 또한 그러하네.

이와 같이 하나[一]에 화합하여

가견(可見)을 떠나면 없는 것이다.

외도의 견(見)이 아니니

화합함도 이와 같음이 없도다.

의(依)가 무인(無因)임을 항복 받으면

무생(無生)을 성취하리라.

만약 능히 무생(無生)을 이루면

나의 법륜(法輪)이 멸하지 않으리,

인(因)이 없는 모양을 말하면

외도는 두려워함을 내느니라.

 

                                                                                                                          [363 / 415] 쪽

어찌하여 어떤 사람 위하랴.

어느 곳에서 모든 법이 나왔는가.

어느 곳에서 법이 생겼는가.

인(因)이 없이 법이 생겼도다.

인 없는 가운데에 나서

두 인(因)이 없으니,

만약 능히 지혜 있는 자의 견(見)있다면

그 때엔 사견(邪見)을 굴리리라.

생(生)을 말하여 일체법이라 하고

무생(無生)을 물건이 없음이라 하니,

모든 인연을 관찰하면

그 때엔 사견(邪見)을 굴리리라.

법이 있으므로 이름(名)이 있고

법이 없으므로 이름이 없으며

법이 없으면 생(生)함이 아니요

또한 인연을 기다림도 아니네.

이름은 법에 의(依)함이 아니요

이름은 체(體)가 없음이 아니네.

성문과 벽지불과

외도는 그 경계가 아니네.

7지(地)에 머무르는 보살이여,

그는 생(生)하는 상이 없으니

인연 법을 굴리기에

인(因)의 뜻을 막았느니라.

 

                                                                                                                        [364 / 415] 쪽

오직 마음에 의함을 말하니

그러므로 나는 무생(無生)을 말한다.

인 없이 모든 법 생하였기에

분별과 분별을 떠났다네.

유(有)와 무(無)의 세움을 떠났기에

그러므로 나는 무생을 말한다.

마음은 가견(可見)을 떠났으며

또한 두 체(體)를 떠났다네.

의지(依止)의 법을 굴리기에

그러므로 나는 무생(無生)을 말한다.

바깥 법체를 잃지 않으며

또한 내심(內心)을 취하지 않네.

일체 사견(邪見)을 떠났으니

이것이 무생(無生)의 모양이었네.

이와 같은 공(空)과 무상(無相)의

일체를 마땅히 관찰하리.

생함이 아니요, 공(空)하고 공한 법이니

본래 불생(不生)이 공(空)인 것이다.

모든 인연이 화합하여

생(生)과 멸(滅)이라네.

화합한 법을 떠나면

생도 아니며 멸(滅)도 아니다.

만약 화합법을 떠났다면

또한 실법체(實法體)도 없으리라.

 

                                                                                                                          [365 / 415] 쪽

같은 체(體)와 다른 체는

외도의 분별함이네.

유무(有無)가 생(生)하지 않는 법은

실(實)도 생(生)도 불생(不生)도 아니네.

모든 인연을 떠났으니

생(生)과 불생(不生)은

오직 이 명자로서

피차 번갈아 서로 묶임[鎖]이었네.

가생(可生)인 체성은 필경 없으며

차별 인연으로 묶임이었네.

가생(可生)을 떠나서 생(生)함이 없으니

이는 외도를 떠난 것이었네.

나는 오직 이 묶임[鎖]이라고 말하나

그러나 범부는 알지 못하네.

그러나 가생(可生)인 법체는

묶임을 떠나면 다시 차별 없네.

저 사람은 인(因)을 말함 없고

모든 묶임을 파멸하여 없애니,

등불이 모든 물건을 비추어 요달하듯이

묶임도 또한 마땅히 비추어 요달하리.

만약 다시 다른 법이 있다면

묶임의 체(體)를 떠나리.

체(體)도 없고 또한 불생(不生)으로

자성이 허공과 같네.

 

                                                                                                                         [366 / 415] 쪽

묶임의 법을 떠났건만

어리석은 이는 달리 분별하니,

이는 생함이 아닌

성인의 얻은바 법과 다른 것이네.

저 법은 생(生)이면서 불생(不生)이니

불생(不生)이 무생(無生)인 것이다.

만약 모든 세간이

곧 이 인연의 묶임임을 본다면

세간이 무슨 묶임이랴.

그 때엔 마음이 정(定)을 얻으리니,

무명(無明)과 애착과 업 등은

이는 안의 묶임의 법이다.

깃발과 진흙덩이와 바퀴 등으로

4대(大)가 바깥 법임을 요달하니,

다른 법체(法體)에 의하여

이는 인연으로부터 생(生)함이라 하네.

묶임의 체성 뿐만 아니라

양(量)과 아함(阿含)에도 머물지 않네.

만약 생하는 법이 없다면

지혜는 무슨 법으로 인(因)이 되었으랴.

저 법이 번갈아 서로 나니

이 모든 인연도 아니다.

뜨거움 · 젖음 · 움직임 · 굳음을

어리석은 이는 법으로 분별하네.

 

                                                                                                                          [367 / 415] 쪽

이 묶임은 법이 없으니

그러므로 체상(體相)이 없다네.

의사[醫]가 병에 의하여

병 다스림의 말함이 차별되듯이

병의 논함은 차별이 없으련만

병에 따라서 차별하니

나는 중생의 몸에 의하여

번뇌탁(煩惱濁)을 말해 주네.

모든 근기와 힘을 알고서

나는 어리석은 이를 위해 말한다.

번뇌와 근기는 차별하나

나의 교법은 차별이 없느니라.

나에게 오직 일승(一乘)이 있으니

시원하게 성도(聖道)에 드는 것이었네.

병(甁)과 모직과 갓과 뿔이여,

토끼 뿔은 인(因)이 없네.

인(因)이 없는데 저에 의해 생겼으니

저 인(因)의 법은 없는 것이었네.

저는 인(因)이 없는 법이니

그대는 무(無)를 취하지 말지어다.

인이 있음에 인에 의하므로 없음이요

무(無)에 의하여 상응(相應)이 아니네.

유법(有法)은 무(無)에 상대함이니

이는 함께 상대인 법이라네.

 

                                                                                                                          [368 / 415] 쪽

만약 조금 있는 법에 의한다면

조금 있는 법을 본 것이다.

인(因)없이 소법(少法)을 봄이니

소법은 이 인이 없는 것이네.

만약 그것이 다른 법에 의함이라면

피차가 번갈아 서로 보리니,

이와 같이 무궁(無窮)한 허물일 것이며

소(少)도 또한 소(少)의 체(體)가 없으리라.

색(色)과 나무 등에 의하여

환상과 같은 가견(可見)의 법이 있으니,

이와 같이 일에 의지하여

사람의 보는 것이 여러 가지가 있네.

요술쟁이는 색(色) 등이 아니요

나무도 아니고 또한 돌도 아니다.

어리석은 이는 환 같은 것을 보지만

환인 몸에 의지함인 것이다.

사실에 의하여

만약 작은 일이라도 본다면,

견(見)은 두 법이 없으니

어찌하여 작은 일을 보랴.

분별은 분별이 없으나

분별 없는 것 아니니,

만약 분별이 없는 법이라면

속박도 해탈도 없으리라.

 

                                                                                                                          [369 / 415] 쪽

분별은 없는 법이기에

그러므로 분별을 내지 않으리니,

만약 분별을 내지 않는다면

유심(唯心)이라 말하지 못하리라.

여러 가지 마음이 차별함이요

법 가운데엔 진실한 법이 없으니,

진실한 법이 없기 때문에

해탈도 세간도 없느니라.

외물(外物)은 가히 볼 것이 없는데

어리석은 이가 허망하게 분별하네.

거울 모양에 나타남과 같은 마음에서

훈습으로 마음이 미몰(迷沒)함이네.

일체법은 생함 아니요

있는 것 아니면서 생함 있는 것 같으니,

이는 일체가 유심(唯心)인 것이라

모든 분별을 떠났었네.

어리석은 사람은 법을 말함에

인연을 따르기에 지자(智者)가 아니다.

실체는 마음을 떠난 것이요

성인의 마음은 청정함이라네.

승구(僧佉)와 비세사(毘世師)와

나체(裸體)인 바라문과

또한 자재천(自在天)은

진실이 없어 사견(邪見)에 떨어지네.

 

                                                                                                                         [370 / 415] 쪽

체(體)도 생(生)함도 없고

공(空)과 환 같아 때[垢]가 없네.

부처님께서 무엇을 말씀하였으며

부처님께서 어느 사람을 위해 말씀한 것인가?

수행이 청정한 사람은

사견의 각관(覺觀)을 떠났다네.

여러 부처님께서 법대로 말씀하시며

나의 말함도 또한 이와 같다.

만약 일체가 유심(唯心)이라면

세간은 어느 곳에 머무르고

가고 오는 것은 어떤 법에 의하며

어찌하여 지위를 보는가?

새가 허공에서

바람을 의지하여 가는데

머무르지 않고 관찰하지 않고

땅 위에서 가듯이

이와 같이 모든 중생은

분별의 바람이 움직임에 의하여

자심(自心) 가운데에서 가고 오는 것이

공중에 나는 새와 같네.

몸과 살림살이와 그릇[器]을 보는 것이

부처의 마음은 이와 같다 말하네.

어떤 원인으로 현재 보는 것이

유심(唯心)인지 저희 위해 말씀해 주소서.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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