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능가경(38)-380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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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과 살림살이와 주지함을
현재 보는 것은 훈습에서 난 것이니,
수행이 없는 중생은
현재 보고 분별을 낸다네.
경계의 체(體)를 분별하여
마음은 경계에 의해 난 것이니,
가견(可見)의 마음을 알면
다시 분별을 내지 않으리라.
만약 능히 분별을 보고
각(覺)과 소각(所覺)을 떠나면,
명(名)과 명(名)이 서로 합하지 않으리니
이는 유위(有爲) 법이라 말하리.
이는 오직 이 가각(可覺)이요
명(名)과 명이 서로 혼합하지 않음이니,
만약 사람이 각지(覺知)와 달리한다면
자각(自覺)과 타각(他覺)이 아니리라.
5법의 실법체(實法體)와
여덟 가지 식(識)과
두 가지 무아(無我)는
대승에 포섭되는 것이네.
만약 지(知)와 가지(可知)를 보아서
고요히 세간을 본다면,
명(名)과 명 가운데의 분별이
그 때엔 다시 나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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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자의 분별을 짓는 것이
저를 보면 다시 나지 않으리.
자심을 보지 못했기에
그러므로 분별이 나니라.
4음(陰)은 모든 상(相)없으니
그것은 수(數)가 없는 법이다.
어찌하여 색(色)이 여러 가지이며
4대(大)가 각각 다른 모양인가?
모든 상(相)의 법을 버리면
모든 대(大)와 대는 없으리라.
만약 다른 색상이 있다면
모든 음(陰) · 입(入)을 보지 못하리.
경계와 근(根)과 식(識)에 의하여
그러므로 여덟 가지 식(識)이 났다.
상에 의하면 세 가지 있거니와
고요함은 이와 같음 없다네.
아리야(阿梨耶)와 의(意)와 아(我)와
아소(我所)와 지혜에는
두 법 취함으로 인한 것이니,
그를 알면 법이 곧 법이리.
피차의 법을 떠나서
만약 서로 떠나지 않음 보면
세간은 오직 마음의 분별일 것이다.
세존께서는 저희를 위해 말씀해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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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다시 둘인 아(我)와
아소(我所)를 분별하지 아니하고
분별을 증장하지 않으면
또한 의식(意識)의 인(因)도 없으리라.
인(因)과 연(緣)을 떠났으며
물건도 아니고 또 생함도 아니다.
분별은 다만 이 마음인 것을
세존께서는 저희 위해 말씀하소서.
모든 인연을 떠났으며
능견(能見)과 가견(可見)을 떠났으니,
자심(自心)의 여러 가지를 본다면
허망한 분별임을 가히 보리라.
자심의 견(見)임을 알지 못하고
마음과 다른 뜻임을 깨닫지 못하여
견(見)없이 사견인 성립하고,
만약 지혜에서 보지 못한다면
저것은 무슨 까닭으로 있지 않는가?
저 사람은 마음에 유(有)를 취함이었네.
유무(有無)가 아니라고 분별하여
그러므로 유(有)의 마음 내지 않으며
유심(惟心)의 견(見)임을 알지 못하기에
그러므로 분별을 내는 것이라네.
분별과 분별이 없음이여,
이는 인(因)이 없다함을 멸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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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가지 붕당을 막고서
만약 모든 법에 인(因)이 있다면
이는 명자상(名字相)과 다름이라.
그 사람은 짓는 것을 이루지 못하리라.
그는 마땅히 다름이 스스로 날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마땅히 인(因)이 날 것이다.
인연이 마땅히 화합한 것이리니
인연으로 생긴 법을 막으리라.
나는 항상된다는 허물을 막으니
만약 모든 인연이 무상(無常)하다면,
이는 불생불멸(不生不滅)이며
어리석은 이의 무상(無常)한 견(見)일 것이다.
멸상(滅相)인 법은 법이 없는 것이니
인(因)을 짓는 것도 보지 못한다.
그러므로 무상(無常)이 유(有)를 냄을
어찌 사람이 보지 못하랴.
나는 중생을 포섭하는데
계(戒) 지닌 것으로 항복 받으며
지혜로 사견(邪見)을 없애고
해탈에 의하여 증장(增長)하네.
일체 세속에서의
외도는 허망한 말을 하고
인과(因果)의 사견에 의하니
자법(自法)이 능히 성립하지 못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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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스스로 세우는 법만 이루고
인연과 과(果)를 떠나서
모든 제자들에겐
세속 법을 떠났다 말하네.
유심(惟心)이요, 가견(可見)은 없으니
마음이 두 가지를 나타낸다.
가취(可取)와 능취(能取)를 떠났으며
또한 단(斷)과 상(常)을 떠났네.
다만 마음이 움직이고 구르는 것은
모두 세속 법인 것이다.
다시 일으키고 굴러 나지 않으면
세간이 자심임을 보리라.
오는 것은 이 일이 생함이요
가는 것은 이 일이 멸함이다.
여실히 거래(去來)를 알면
다시 분별을 내지 않으리라.
항상됨과 무상함과 짓는 것들은
또한 피차를 짓지 아니한다.
이와 같은 일체는
이 모두 세속의 법이라네.
하늘 · 사람 · 아수라 ·
축생 · 아귀(餓鬼) · 야마(夜摩)에
중생이 저 곳으로 가기에
나는 6도(道)를 말했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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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 · 중 · 하의 업인(業因)은
능히 저 곳에서 나오니,
모든 착한 법을 잘 두호하면
수승한 곳의 해탈을 얻으리.
부처님께서 생각 생각이 생멸(生滅)하여
나고 죽고 또 물러가는 것 말하여
비구(比丘) 대중을 위해 말씀하신 것인데
무슨 뜻으로 저희 위해 말씀하십니까?
마음이 제 2에 이르지 않으면
멸하고 무너져서 계속되지 않으니,
나는 제자를 위하여
생각이 전전(展轉)히 생멸한다 말했노라.
색(色)과 색을 분별로서 있다하여
생함과 멸함이 바로 이루어지니,
분별하면 곧 인(人)이요
분별을 떠나면 인(人)이 없느니라.
내가 염법(念法)을 말함은
저에 의한 것으로 나의 말함을 마쳤으니,
색상(色相)의 취함을 떠나면
생도 멸도 아니라네.
인연은 연(緣)으로부터 생겼으며
무명(無明)과 진여(眞如) 등은
두 법에 의해 생긴 것이나
진여에는 이러한 체(體)가 없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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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이 연(緣)으로부터 생겼으니
만약 그렇다면 다른 법은 없을 것이요,
항상됨으로부터 과(果)가 생기고
과(果)는 곧 이 인연일 것이다.
외도와 다름없고
인과가 서로 혼잡하리니
부처님과 여러 부처님의 말과
큰 모니(牟尼)도 다름없다네.
이 한 길[一尋]의 몸에서
고제(苦諦)와 집제(集諦)와
멸제(滅諦)와 도제(道諦)를
나는 여러 제자를 위해 말했노라.
셋을 취하여 진실로 여김은
취(取)와 가취(可取)의 사견(邪見)이니,
세간법과 출세법을
범부들은 분별하네.
나는 다른 법을 알았기에
3법을 말하여
저 사견(邪見)을 막기 위함이니,
실체(實體)라 분별하지 말지어다.
말해 본들 고정된 법 없고
또한 다시 마음의 생(生)함이 없다.
진실도 또한 2취(取)가 아니니
진여(眞如)엔 두 가지가 없는 것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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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無明)과 애착과 업(業)과
식(識) 등이 사견으로부터 나오니,
무궁한 허물을 짓지 않으면
짓는 가운데에도 유(有)는 생하지 않으리.
모든 법이 네 가지로 멸한다 함은
지혜 없는 이의 말한 바요,
두 가지로 생(生)한다 분별함은
물질 있는 것과 물질 없는 것이네.
네 가지 법을 떠나고
또한 네 가지 견해를 떠나면
두 가지 분별이 나는 견해도
다시 나질 않으리라.
모든 법은 본래 생(生)함 아닌
지혜의 차별에서 일어나서
현재 모든 법이 나고 있으나
평등하게 모두 분별하지 말지어다.
원컨대 큰 모니(牟尼) 어른이시여,
저와 모두를 위하시어
법에 상응(相應)함과 같이
두 가지인 두 견해 떠남을 말씀해 주소서.
저희는 사견을 떠났으며
다른 여러 보살들도
항상 유무(有無)를 보지 않으니,
저 법을 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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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도와 화합하여 섞임을 떠났고
성문과 연각도 떠나서
부처님께서 성인의 법을 증득하시고
저희 위해 말함을 잃어버리지 않으셨나이다.
전도(顚倒)의 인(因)과 연(緣)의 인(因),
무생(無生)과 일체,
다른 이름인 모든 미혹을
지자(智者)는 멀리 떠날 바이네.
비유컨대 구름 · 비 · 누각(樓)과
궁각(宮閣)과 무지개와
아지랑이와 털 바퀴와 환상의
유무(有無)는 마음 따라나네.
모든 외도는 분별하여
세간이 자인(自因)으로 생겼다 하나
불생(不生)인 진여법과
실제(實際)와 공(空)이라 하는
이 모든 다른 법의 이름을
없는 물건이라 분별하지 말 것이요,
색(色) 위에서의 여러 가지에도
없는 법이라 분별하지 말지어다.
세간의 손과 손톱으로
자재롭게 능히 물건을 부수듯이
이와 같은 일체법을
없는 법이라 분별 말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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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色)과 공(空)이 다르지 않음을 떠나서
또한 생기는 법체도 없느니라.
없다 다르다 분별하지 않을 것이니
분별하면 사견에 집착하리라.
분별과 가분별(可分別)은
모든 사상(事相)을 취하는 것이요,
길고 짧고 모나고 둥근 것들은
분별하는 상(相)에 포섭된 것이라네.
분별은 심(心)의 법이요
가분별(可分別)은 의(意)이니,
만약 능히 법과 같이 안다면
능상(能相)과 가상(可相)을 떠날 것이다.
외도는 불생(不生)을 말하며
아(我)와 법(法)을 취하여
이와 같은 상(相)을 분별하나
이 두 견(見)은 차별이 없다네.
무슨 뜻으로 이렇게 말했느냐
만약 능히 이와 같이 안다면
저 사람은 양(量)에 들어가서
능히 나의 설법 알으리라.
견(見)을 인함은 침몰(沈沒)하는 것이요
무생(無生)은 의지함이 아니니,
이 두 가지 뜻을 알았기에
그러므로 나는 무생(無生)을 말한다.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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