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가경(楞伽經)

입능가경(35)-350

근와(槿瓦) 2015. 12. 26. 01:14

입능가경(35)-350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341 / 415] 쪽

여러 경에서도 항상 이를 말했노라.

자(字) · 구(句) · 명신(名身) 등의

명신의 수승한 법에서

어리석은 사람의 분별함은

코끼리가 깊은 진흙에 빠짐과 같네.

천승(天乘)과 범승(梵乘)

또한 성문승(聲聞乘)과

여래와 연각인

나는 이러한 승(乘)을 말하였노라.

모든 승(乘)은 다할 수 없으니

마음이 이와 같이 생(生)함이네.

마음이 전멸(轉滅)한다면

승(乘)과 승자(乘者)도 없으리라.

심(心)과 분별과 식(識)과

의(意)와 또한 의식(意識)이여,

아리야(阿梨耶)가 셋이 있는데

사유심(思惟心)은 다른 이름이었네.

명(命)과 따뜻함과 식(識)에서

아리야(阿梨耶)는 명근(命根)이었고,

의(意)와 그리고 의식(意識)은

분별의 다른 이름이었네.

심(心)은 몸을 주지하고

의(意)는 항상 모든 법 지각하며,

 

                                                                                                                         [342 / 415] 쪽

식(識)은 자심(自心)의 경계로서

모든 식(識)과 함께 분별하네.

나[我]의 애착[愛]은 어머니요

무명(無名)은 아버지라 말하니,

모든 경계를 알아 깨달으면

그러므로 부처라 말한다.

모든 사(使)는 원가(怨家)이며

뭇 화합은 음(陰)이니,

상속(相續)하는 자체가 없어서

그를 끊으면 무간(無間)이라 이름하네.

두 아(我)의 번뇌 없어짐과

두 가지 무아(無我)와

불가사의(不可思議) 변화와

생사(生死)가 없으면 부처라 이름하네.

의(意)는 상응하는 법체이며

아법(我法)은 속 몸이니,

만약 능히 이와 같이 보면

그는 망각(妄覺)을 따르지 않으리라.

실로 모든 법은 없는데

어리석은 이의 분별함은

허망한 법에 의지한 것이니,

어찌 해탈을 얻으랴.

생멸이 화합한 속박으로

 

                                                                                                                          [343 / 415] 쪽

유위(有爲) 법을 본 것이니,

2견(見)을 증장하였기에

인연법을 잃지 아니하네.

파초와 꿈과 환(幻) 등으로

이 세간은 이와 같다네.

오직 한 법만이 진실함이니

열반은 의식(意識)을 떠났다네.

탐심과 진심(嗔心)이 있으며

어리석음과 인(人)이 있고

애착으로부터 음(陰)이 생겼으니,

음(陰)과 유(有)는 또한 꿈과 같다.

어느 밤에 법을 증득했고

어느 밤엔 멸(滅)에 들겠다는

이 두 중간에

나는 한 자(字)도 말 아니하였네.

속 몸으로 법을 증득했다는

나는 이와 같은 말에 의지하니,

저 부처님과 나의 몸은

수승한 법을 말한 것 없노라.

실로 신아(神我)인 물건 있다고 하지만

5음(陰)은 저의 모양을 떠났네.

음(陰)의 체(體)가 실로 있다지만

저 음에는 아(我)가 없네.

 

                                                                                                                          [344 / 415] 쪽

각각 자기 견(見)의 분별로

수번뇌(隨煩惱)와 사(使)가 있으니,

세간의 자심(自心)을 얻으면

고통에서 벗어나 해탈을 얻으리라.

모든 인(因)과 인연으로

세간이 이와 같이 생겼으니,

이 네 법이 상승함이라

그는 나의 교법에 머무르지 아니하네.

유(有)와 무(無)도 생법(生法)도 아니요

유무(有無)를 떠나면 불생(不生)이니,

어리석은 이는 어찌하여

인(因)과 연(緣)으로부터 생겼다 분별하랴.

유무(有無)의 4구(句)를 떠나고서

만약 능히 세간을 본다면,

그 때엔 심식(心識)을 굴리고

곧 무아(無我)법을 얻으리라.

모든 법은 본래 생(生)함이 아니니

그러므로 인연으로 생긴 것이다.

모든 연(緣)이 곧 과(果)이니

과(果) 가운데에 유(有)가 생하였네.

과 가운데에 두 가지가 생겼기에

과 가운데엔 마땅히 둘이 있으리라.

그러나 둘 가운데에 과가 없으며

과 가운데에도 물건을 보지 못하네.

 

                                                                                                                          [345 / 415] 쪽

관(觀)과 가관(可觀)을 떠나서

만약 유위(有爲)법을 본다면

마음을 떠나 오직 이 마음이니,

그러므로 나는 유심(惟心)이라 말하네.

양(量)은 실체와 형상이

연(緣)을 떠난 실체로서

구경(究竟)이며 제일 청정함이니,

나는 이와 같은 양(量)을 말한다.

만약 거짓 이름을 나[我]로 여긴다면

실법(實法)을 가히 보지 못하리니,

이와 같은 음(陰)과 음의 체(體)는

거짓 이름이요 진실이 아니네.

평등은 네 가지가 있으니

상(相)과 인(因)과 생(生)이며

무아(無我)도 또한 평등함이며

이 넷은 수행자의 법이다.

모든 견(見)을 전환(轉)한

분별과 가분별(可分別)은

견(見)도 아니며 생(生)도 아니기에,

그러므로 나는 유심(惟心)이라 말한다.

법이 없고 또한 없는 것 아니어서

유무(有無)의 체성을 떠났으니,

진여는 마음을 떠났기에

그러므로 나는 유심(惟心)이라 말한다.

 

                                                                                                                         [346 / 415] 쪽

진여와 공(空)과 실제(實際)와

열반과 법계(法界)는

뜻대로 나는 몸과 마음이기에,

그러므로 나는 유심이라 말한다.

분별이 훈습에 의하여

여러 가지가 여러 가지를 내며,

중생은 마음이 바깥을 보기에

그러므로 나는 유심이라 말한다.

가견은 외물(外物)이 없고

마음의 여러 가지 견(見)과 몸과

살림살이와 주지함을 본 것이니,

그러므로 나는 유심이라 말한다.

성문의 극진한 지혜에서

불 · 여래께서는 낳을 것이다.

일체 벽지불은

화합함이 없이 생(生)한다.

바깥 색상(色相)은 없는 것이요

자심에서 바깥 법을 본 것이니,

자심을 깨달아야 하는데

어리석은 이는 유위(有爲)를 분별하네.

어리석은 이는 외법(外法)임을 알지 못하고

자심에서 여러 가지를 보지만,

비유로서 어리석은 사람을 막아 말하기를

네 가지 법에 집착했다고 한다.

 

                                                                                                                         [347 / 415] 쪽

인(因)도 없고 분별도 없음과

비유와 다섯 가지 논(論)과

자심의 체성과 형상을

능히 알면 슬기로운 것이리.

분별과 가분별(可分別)에 의하면

이는 분별의 상(相)이니,

분별에 의지하여

분별이 거기서 나타나네.

낱낱의 분별이 화합함은

이 한 종자의 인(因)이라.

객(客)이 둘이요, 법도 둘이니,

그러므로 사람의 마음은 나지 않는다네.

분별의 심(心)과 심법(心法)은

삼계에 머물러서

모든 법을 나타냄이니,

저 자체는 허망함이라.

인(因)이 나타나는 화합에 의하여

그러므로 12입(入)이 있으니,

인(因)에 의해서 화합을 관찰하는

나는 이러한 법을 말하지 아니하네.

거울 속에 물상을 보며

눈병으로 털 바퀴를 보듯이,

이와 같이 훈습하는 마음에 의하여

어리석은 사람을 마음에서 본 것이네.

 

                                                                                                                          [348 / 415] 쪽

분별과 가분별(可分別)이 함께 하여

분별을 내었으니

외도의 분별함과 같은

이러한 바깥 모양은 없느니라.

어리석은 사람은 노끈을 알지 못하고

그것을 뱀이라고 하듯이

자심의 의(義)를 알지 못하고

바깥 법을 분별한 것이라네.

노끈은 노끈의 자체에서

1과 2의 자체를 떠났지만,

노끈을 분별하기 때문이니

이는 자심(自心)의 과실이네.

어떤 법이 어떤 체(體)에 의지하랴.

분별로는 능히 보지 못하리.

저(彼)를 없다고 말하지 못할 것이니,

모든 법체(法體)는 이와 같음이네.

유(有)에 의하므로 무(無)를 말하고

무에 의하므로 유를 말함이니,

그러므로 무를 말할 수 없고

또한 유를 말할 수도 없느니라.

곧 분별과 분별이여

이는 저 법체가 아니다.

어찌하여 견(見)은 체(體)가 없는가?

분별을 내었기 때문이네.

 

                                                                                                                          [349 / 415] 쪽

색(色)의 체(體)는 색의 몸[色身]이 없으니,

병(甁)과 모직[氈] 등과 같다.

보여진 것은 없는 법이니

어찌 분별함이 있으랴.

만약 분별이 미혹이라면

유위(有爲)법의 끝없는 데에서이다.

어느 법이 중생을 미(迷)하게 하였는지

모니(牟尼)께서는 저희 위해 말씀해 주소서.

모든 법은 법체(法體)가 없고

오직 이 마음이라 말하니,

자심을 보지 못하고서

분별을 일으킨 것이라네.

만약 분별이 없다면

어리석은 이의 분별함인

저 법은 다른 체(體)가 없을 것인데,

그러나 지혜로는 능히 깨닫지 못하네.

만약 성인에게 저 법이 있다면

범부의 허망한 저 법이 아닐 것이니,

만약 성인에게 허망한 저것 있다면

성인과 어리석은 이 다름없으리.

성인은 미혹이 없으니

마음의 청정함을 얻었기 때문이네.

어리석은 사람은 신심(信心)이 없기에

그러므로 분별하며 분별하네.

 

                                                                                                                          [350 / 415] 쪽

어머니가 아들을 위하여 말하기를

허공에서 과일을 가지고 오리니,

너는 과일을 가지고 울지 말라 하거든

아이가 그 여러 가지 과일을 가지듯이

나는 모든 중생에게

여러 가지 과일을 분별하여

탐내도록 여러 가지로 말하였으나

유무(有無)의 붕당(朋黨)을 떠났노라.

만약 본래 법체가 없을진대

인(因)도 인을 따름도 아니요,

본래 생함이 아니면서 처음 생함이나

또한 그 자체는 없는 것이라네.

몸도 없고 또한 생(生)함도 아니며

인연을 떠난 곳도 없으니,

생멸의 모든 법체는

인연을 떠난 곳[處]이 없네.

대략 이와 같이 관찰하여

유무(有無)는 다른 곳이 아니라고 하리.

인연으로부터 생긴 법이니

지혜 있는 자는 분별하지 말지어다.

1체(體) 2체라 말함은

외도의 어리석은 말이다.

세간은 환과 꿈 같고

인연으로부터 생함도 아니다.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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