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가경(楞伽經)

입능가경(32)-320

근와(槿瓦) 2015. 12. 21. 00:34

입능가경(32)-320                                                         (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311 / 415] 쪽

마음은 능히 모든 업을 짓고

지(智)는 그 속에서 분별하며

혜(慧)는 능히 고요함을 관찰하여

크고 묘한 법체(法體)를 얻는다네.

마음은 경계에 의해 얽매이고

지(智)는 각관(覺觀)에 의해 나며,

고요함인 수승한 경계는

혜(慧)가 그 속에서 행한다.

심(心)과 의(意)와 의식이

상(相)에서 분별하니

분별 없는 체(體)를 얻어야 하리.

2승(乘)은 참 제자(弟子)가 아니라네.

고요하고 수승한 사람에겐

부처님의 지혜가 청정하네.

능히 승의(勝義)를 내고서

이미 모든 행상(行相)을 떠났네.

법체가 있다고 분별하며

타력(他力)의 법은 없다고 하여

미혹에서 분별함을 취하니

타력을 분별하지 말지어다.

모든 대(大)에 색(色)이 있는 것 아니며

색이 있는 것은 모든 대가 아니요,

꿈과 환과 건달바이며

짐승이 물이 아닌 것을 갈애(渴愛)함이다.

 

                                                                                                                       [312 / 415] 쪽

나에게 세 가지 지혜가 있어서

얻어 의지했음에 성인이란 이름이었네.

마음은 법에 생함이 없으니,

그러므로 마음은 보이지 않네.

몸과 살림살이와 주지함을

중생은 훈습에 의해 보지만,

저 분별하는 상(相)에 의하여

모든 법을 말하였노라.

2승과 상응(相應)함을 떠났고

혜(慧)는 법상(法相)이 나타냄을 떠났는데,

허망하게 법을 취하므로

성문(聲聞)은 법을 본다네.

능히 유심(唯心)에 들어가면

여래 지혜가 청정하리.

진실과 진실 아닌 것이여,

인연으로부터 생긴 법이네.

1과 2는 사견(邪見)으로

필경 능히 취(取)하리라.

여러 가지 인연은

환과 같아 실이 없다네.

이와 같은 모양인 여러 가지는

능히 분별을 이루지 못하고,

번뇌상(煩惱相)에 의지하여

모든 속박이 마음으로부터 나네.

 

                                                                                                                         [313 / 415] 쪽

분별법(分別法)을 알지 못하면

타력(他力)도 분별일 것이니,

있는 바 분별인 체성은

곧 타력인 법이다.

여러 가지 분별의 견(見)이

타력에서 분별한다.

세제(世諦)와 제일의(第一義)와

제3인(因) 없이 생함인 것이다.

분별은 상속(相續)이라 말하고

그를 끊으면 곧 성인의 경계라네.

수행자는 하나인 일이건만

오직 마음이 여러 가지로 본 것이라네.

저 곳에는 마음의 체성이 없으니,

이와 같은 분별상은

사람의 눈(眼)속에 눈병 같아서

여러 가지 색(色)을 분별하네.

눈병은 색(色)과 비색(非色)이 아니며

어리석게 타력을 봄도 그러하여

금이 진구(塵垢)를 떠남과 같고

물이 진흙을 떠남 같다.

허공이 구름을 떠남과 같이

이와 같이 분별을 깨끗이 하리.

성문이 세 가지 있으니

응화(應化)함과 원으로 태어남[願生]과

 

                                                                                                                         [314 / 415] 쪽

탐(貪) · 진(嗔) · 치(痴)의 때를 떠난 것이니,

성문은 법으로부터 태어나네.

보살도 또한 세 가지이다.

여래께서는 상(相)이 없지만

중생심(衆生心)의 마음속에서

불 · 여래의 형상을 보인 것이니,

분별하면 이와 같은 것이 없고

타력(他力)인 법체로 있으리라.

유무(有無)인 2변(邊)을 보지만

이를 봄으로 분별을 보게 된다.

만약 분별 법이 없으면

타력이 어찌 있으랴.

법체가 있는 것을 멀리 떠난들

실로 법체는 생함이 있으니,

분별에 의지하여

타력으로 본 것이라네.

명(名)과 상(相)이 화합함에 의하여

분별을 내니,

항상 성취한 바가 없고

타력으로 분별이 생한다.

그 때 알음이 청정하면

제일의(第一義)인 실체(實體)일 것이다.

분별에는 열 가지가 있고

타력에는 여섯 가지가 있느니라.

 

                                                                                                                         [315 / 415] 쪽

진여(眞如)는 이 속 몸이니

그러므로 다른 모양이 없다.

5법은 진실인 법이요

또는 세 가지의 실상(實相)인 것이다.

이와 같이 수행하는 자는

진여법을 무너트리지 않으리니,

별과 구름의 형상이요

해와 달의 형체와 같으리.

중생의 보는 마음은

보여질 훈습으로 생김이라네.

모든 대(大)에는 자체가 없으니

능견(能見)과 가견(可見)이 아니었네.

만약 색(色)이 대로부터 생겼다면

모든 대(大)가 모든 대를 생하겠지만,

이와 같이 대를 생한 것이 아니기에

대 가운데엔 4대(大)가 없느니라.

만약 참으로 4대라면

땅과 물들에 인한 것이리니,

진실과 거짓 이름인 색(色)과

환으로 생기고 지음도 그러함이네.

꿈과 건달바와

짐승의 물로 애착함이 제5이다.

일천제(一闡提)도 다섯 가지이며,

모든 성(性)도 또한 이와 같네.

 

                                                                                                                          [316 / 415] 쪽

5승(乘)과 비승(非乘)이며

열반도 여섯 가지요,

음(陰)은 24가 있으며

색(色)은 또한 여덟 가지가 있네

부처는 24가 있으며

불자도 두 가지가 있고

도문(度門)은 백 가지요

성문은 세 가지가 있느니라.

제불(諸佛)의 국토는 하나이고

불(佛)도 또한 하나 있다네.

해탈은 세 가지 있고

심려(心慮)는 네 가지 있다네.

아(我)와 무아(無我)는 여섯 가지요

가지(可知)의 경계는 네 가지라네.

모든 인연을 여의고

또한 사견의 허물도 떠나리.

속몸을 알고 때(垢)를 여의면

대승의 위없는 법일 것이다.

생(生)과 불생(不生)이

여덟 가지와 아홉 가지 있으니,

일시로 증득함과 차제로 함이나

법을 세움은 오직 하나라네.

무색(無色)은 여덟 가지가 있으며

선(禪)의 차별도 여섯 가지라네.

 

                                                                                                                         [317 / 415] 쪽

연각과 불자의

능취(能取)함이 일곱 가지가 있다.

3세(世)의 법이 없는 것이요

항상됨과 무상(無常)도 또한 그렇다네.

짓는 것과 업과(業果)는

꿈속에 짓는 일과 같다네.

불(佛)은 종래로 불생(不生)이며

성문과 불자도 또한 그러하네.

마음은 가견(可見)을 떠났었고

또한 항상 환의 법과 같건만

출태(出胎)하여 법륜(法輪)을 굴리며

출가하거나 도솔(兜率)에서 생하리.

모든 국토에 머무르면서

보였지만 생함이 아니니,

감과 행(行)과 중생과

설법함과 열반인 것이다.

실제(實諦)와 국토와 각(覺)은

인연으로부터 생긴 법이다.

세간의 모든 나무숲이며

무아(無我)와 외도행이라네.

선승(禪乘)과 아리야(阿梨耶)와

과(果)를 증득함과 부사의(不思議)며

달과 별의 종류와

모든 왕(王)과 아수라(阿修羅)이며,

 

                                                                                                                          [318 / 415] 쪽

야차와 건달바 등은

업으로 인하여 발생한다

불가사의변(不可思議變)은

물러나서 훈습의 연(緣)에 의지한다.

변역(變易)을 끊으면

그 때 번뇌의 죄는 소멸하리라.

일체 모든 보살의

여실히 수행하는 자라면,

재물과 보물과

금 · 은과 말과 코끼리와

소와 염소와 종들(奴婢)과

미곡(米穀)과 전택(田宅)을 저축하지 아니하리.

뚫어진 구멍인 평상에 눕지 않고

진흙으로 땅을 바르지 않으며,

금 · 은과 적백(赤白)인 구리(銅)와

발우와 모든 그릇을

청정한 행을 닦는 자는

일체를 저축하지 아니하네.

제사야(諦奢耶)의 명주 의복은

일체 입지 아니하네.

흠바라(欽婆羅 : 모직옷)인 가사를

소똥과 풀의 열매와 잎과

푸르고 붉은 진흙물로

흰색을 물들여 무너뜨려야 하네.

 

                                                                                                                          [319 / 415] 쪽

돌과 진흙과 쇠와

흰 마노(瑪瑙)와 유리(琉璃)인

이러한 발우를 두도록 하니

마타량(摩陀量)에 만족함이었네.

옷을 베고 끊기 위하여

네 치[4寸]의 칼을 두도록 하니,

칼날은 반달 같이 굽고,

그 기술은 배우지 말아야 하네.

여실히 수행하는 사람은

사고 팔고 하지 아니하고,

필요한 일은 백의(白衣)와

우바새(優婆塞)에게 청한다네.

항상 모든 감관을 두호하며

여실한 뜻을 알고

수다라(修多羅)를 독송하며

비니(毘尼)를 배울 것이다.

백의(白衣)와 더불어 섞이지 않을 것이니

수행하는 사람은 이와 같이

조용한 곳이나 무덤 사이와

굴속과 나무숲 아래에서

시타림(屍陀林)의 풀 속에서

내지 한 데[露地]에서

여실한 수행을 하는 사람은

마땅히 이러한 곳에 머물러야 하네.

 

                                                                                                                         [320 / 415] 쪽

세 옷[三衣]은 항상 품에 지니고

가외 돈과 재물은 저축하지 않으며

몸이 의복을 필요할 때엔

타인이 스스로 주면 받아주리.

걸식하려고 출행할 적엔

좌우를 돌아보지 말고

앞의 6척(尺)의 땅만 보고

태연스럽게 바로 나아가리.

벌이 꽃을 채취함과 같이

걸식도 또한 이와 같네.

비구와 비구니가

뭇 사람 속에서 혼잡하다면

내가 불자에게 말하기를

'이는 나쁜 생활이다'라고 하니,

여실히 수행하는 자는

이러한 곳에선 걸식하지 아니하네.

왕과 소왕(小王)과 왕자(王子)와

대신(大臣)과 장자(長者)에게

음식을 구하기 위해서는

일체 가지 아니하리.

죽은 집이나 생가(生家)에서와.......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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