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능가경(31)-310 (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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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엔 뜻과 같은 몸을 얻고
부처의 땅에 도달하리라.
모든 연(緣)과 음(陰)과 계(界)는
법의 자체상이네.
거짓 이름과 사람의 마음은
꿈과 같고 털 바퀴와 같다네.
세간을 환과 꿈과 같이 보아서
진실을 얻어 의지하리.
모든 상(相)이 실상(實相)과 합하여
침량(斟量)의 인(因)을 떠나고
성인이 안으로 얻는 경계이니
항상 묘행(妙行)을 관찰하리.
미혹하여 침량하는 인(因)으로
세간을 진실로 여기게 하니
일체 희론은 떠나야 하며
지혜로서 미혹에 머무르질 않으리.
모든 법은 체상이 없으니
공(空)과 상(常)과 무상(無常)이다.
마음이 어리석음에 머물러서
미혹했기에 분별한다.
모든 법을 말하는 자여
무생(無生)을 말함이 아니다.
하나와 둘과 또 둘에서
홀연(忽然)과 자재(自在)와 유(有)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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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時)와 훌륭함과 미진(微塵)과
연(緣)에 의하여 세간을 분별하니,
세간과 종자는 식(識)으로
저 인(因)에 의지해서 생기니라.
벽에 의지한 그림 모양과 같아서
사실을 알면 바로 없어지리니,
사람이 환상을 보는 것과 같아
생사(生死)를 본 것 또한 그러하네.
어리석은 사람은 어둠에서
속박과 해탈이란 생각을 일으키니,
안과 밖의 여러 가지와
모든 법과 인연이네.
이와 같이 관찰하고 수행하여
고요한 곳에 머무르고
훈습(薰習)에서 무심(無心)하면
마음이 훈습과 함께 하지 않는다.
마음은 차별상(差別相)이 없는데
훈습이 마음에 얽힌 것이니,
때[垢]와 같은 훈습으로
의(意)는 식(識)을 따라 난 것이네.
비단[帛]과 같이 마음도 또한 그러하여
훈습에 의하여 나타나지 않으니,
물건과 같고 물건 없는 것이 아니기에
나는 '허공과 같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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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야(阿梨耶)의 몸에는
물건이 있고 없음을 떠났으니,
의식(意識)이 전멸(轉滅)하면
마음이 혼탁한 법을 떠날 것이다.
일체법을 깨달았기에
나는 심불(心佛)이라 말한다.
3세(世)를 끊었으며
유무(有無)법을 떠났네.
세상 법은 넷이 상응(相應)하며
모든 유(有)는 모두 환(幻)과 같으니,
이 두 법의 체상(體相)이요,
7지(地)는 마음에서 난다네.
다른 지위도 또한 성취(成就)이고
2지(地)와 부처님의 지위와
색계(色界)와 무색계(無色界)와
욕계(欲界)와 열반이여,
일체가 마음의 경계요
몸 가운데를 떠나지 않았다.
만약 모든 법의 생김을 본다면
이는 미혹인 법을 낸 것이리.
자심(自心)에 미혹임을 깨달으면
이는 모든 법의 생(生)함이 아니다.
무생(無生)은 법의 체상이요
생(生)은 곧 세간에 집착함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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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상을 환(幻)과 같이 볼 것이니,
법의 체상은 이와 같다.
자심(自心)에서 허망하게 취함이니
모든 법을 분별하지 말지어다.
어리석고 지혜가 없는 이를 위하여
3승(乘)과 일승을 말했으며,
또한 무승(無乘)을 말했으니,
모든 성인이란 고요함이라네.
나의 법엔 두 가지 있으니
상법(相法)과 증득함이다
네 가지의 침량(斟量)하는 상(相)으로서
양(量)과 상응(相應)법을 세웠노라.
형체와 모양과 수승함과 종자로서
미혹함을 보게 되어
명자(名字)와 행처(行處)를 분별하지만
성행(聖行)은 실로 청정하다네.
분별과 분별에 의하여
그러므로 분별상이 있으니,
분별과 분별을 떠나면
실체이고, 성인의 경계라네.
떳떳하고 진실하고 변함이 아니어서
자성(自性)의 사법(事法)이며 실체(實體)이다.
진여(眞如)는 심법(心法)을 떠났으며
분별을 멀리 떠났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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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청정한 법이 없으면
또한 더러움도 없으리니,
청정한 마음이 있으므로
더러운 법이 있음을 본다.
청정함은 성인의 경계이기에
그러므로 진실인 사법도 없으니,
이 모든 법의 체상(體相)이
성인의 경계라네.
인연으로부터 세간이 생겼으니
모든 분별을 떠나서
환과 꿈과 같다고 하면
법을 보고 해탈을 얻으리라.
번뇌의 훈습 여러 가지가
마음과 함께 상응하여 나기에,
중생은 바깥 경계만을 보고
심법(心法)의 체성을 보지 못한다.
심법은 항상 청정하여
미혹으로 생김이 아니다.
미혹은 번뇌로부터 일어나니
그러므로 마음을 보지 못하네.
미혹이 곧 진실이니
다른 곳이란 얻을 수도 없다.
음(陰)도 아니요 다른 곳도 아니니,
음과 행(行)을 여실(如實)로서 관찰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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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見)과 능견상(能見相)을 떠나서
만약 유위(有爲)법을 보고
자심(自心)과 세간을 본다면,
저 사람은 능히 상(相)을 떠날 것이다.
유심(唯心)법을 보지 말며
외의(外義)를 분별하지 말고
진여관(眞如觀)에 머물러서
마음의 경계를 벗어나야 하리.
마음의 경계를 벗어나고는
모든 고요함도 멀리 떠나서
수행하여 고요함에 머무르면
수행자의 고요함에 머무름이리라.
마하연(摩訶衍; 大乘)을 보지 아니해도
저절로 고요하리니
모든 원(願)이 청정함에 의하여
지(智)와 무아(無我)도 고요하리라.
마땅히 마음의 경계를 관찰하며
또한 지혜의 경계도 관찰하고
지혜로서 경계를 관찰하여
상(相)에 미(迷)하지 아니하리.
마음의 경계는 고제(苦諦)이고
지혜의 경계는 집(集)이며
2제(諦)와 불지(佛地)는
반야(般若)의 경계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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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果)의 얻음과 열반과
또한 8성도(聖道 : 8正道)로
일체법을 깨달아서
청정한 불지(佛智)를 얻으리.
눈(眼)과 색(色)과 밝음과
허공과 심(心)과 의(意)와
같은 것들이 화합하여
식(識)이 아리야(阿梨耶)로부터 난다네.
능취(能取)와 가취(可取)와 수(受)는
이름도 사법(事法)도 없는 것이니,
인(因)이 없이 분별하는 자여,
비각(非覺)을 취하는 것과 같다.
뜻[義]에도 이름[名]이 없으며
이름 속에 뜻도 그러하여
인(因)과 무인(無因)이 생기니,
분별하고 분별하지 말지어다.
일체법은 진실함이 없고
언어도 또한 그러하며
공(空)과 불공(不空)의 뜻도 그러한데
어리석은 이 법을 보고 옳게 여겨
'진실에 머무른다'고 허망하게 생각하여
사견(邪見)으로 거짓이름을 말하네.
한 법이 다섯 가지로 되니
여실히 멀리 떠나야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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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가지는 마(魔)의 법이니
초월하여 유무(有無)를 벗어나야 하네.
이는 수행의 경계가 아니요
외도의 법이다.
유(有)와 삿된 법을 구하지 않으며
또한 상(相) · 견(見) · 아(我)도 없어야 하리.
짓는 것 스스로 떳떳한 법이라 함은
오직 말로서만 난 것이네.
실제(實諦)는 말할 수도 없는데
적멸(寂滅)로서 법을 나타내니,
아리야식(識)에 의지하여
의식(意識)이 능히 굴러나네.
의지함이란 심의(心意)에 의지함이니
능히 전식(轉識)을 낸다.
의지하는 곳은 허망하게 이루어졌으나
진여(眞如)는 심법(心法)이라네.
이와 같이 수행하는 자는
능히 심성(心性)의 자체를 알리라.
항상됨과 무상(無常)함과
의상(意相)과 사법이며
생(生)과 불생(不生)을 분별함을
행자(行者)는 마땅히 취하지 않으리.
두 법을 분별하지 말 것이니
식(識)은 아리야(阿梨耶)로부터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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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뜻[一義]에서 두 마음[二心]이 생함은
이와 같이 생함을 알지 못하고
하나 · 둘의 법을 취하니,
이는 범부의 경계라네.
말하는 이와 말함이 없고
불공(不空)으로 마음을 보지만,
자심(自心)에서 보지 못하였기에
그러므로 견(見)의 그물이 생한다.
모든 인연은 불생(不生)이며
모든 감관(根)도 이와 같으니,
계(界)와 5음(陰)도 없으며
탐(貪)도 유위(有爲)도 없다네.
본래 업을 짓는 것도 없고
지음도 유위(有爲)도 아니며,
제(除)함도 없고 속박도 없고
속박도 해탈도 없다네.
무기(無記)도 물건도 없고
법도 비법(非法)도 없으며
시간도 열반도 없고
법체도 또한 없다네.
부처도 실제(實諦)도 없으며
인(因)도 과(果) 또한 없고
전도(顚倒)와 멸(滅)도 없으며
멸(滅)도 생(生) 또한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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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지(支)도 또한 없고
변(邊)과 무변(無邊)도 또한 그러하여
모든 사견(邪見)을 떠났으니,
그러므로 유심(唯心)이라 말한다.
번뇌와 업과 몸이며
짓는 자와 과보(果報)여
꿈과 아지랑이와
건달바 성(城)들과 같다네.
심법(心法)에 머물러
그리하여 모든 법상(法相)을 내고,
심법에 머무르므로
단(斷)과 상(常)을 본다.
열반에는 음(陰)도 없고
아(我)도 상(相)도 또한 없으며
능히 유심(唯心)에 들어가서
해탈하여 상을 취하질 않는다네.
자리[地]를 보임이 무슨 허물이겠는가.
중생은 바깥을 보기 때문이다.
마음은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니지만
훈습 때문에 나타나질 아니하네.
때[垢]에는 흰 것이 보이지 않고
흰 것엔 때가 보이지 않으니,
구름이 허공을 덮은 것 같아서
그러므로 마음이 나타나질 않네.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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