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가경(楞伽經)

입능가경(28)-280

근와(槿瓦) 2015. 12. 14. 06:35

입능가경(28)-280                                                        (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271 / 415] 쪽

모든 인연법을 떠나며

모든 법상(法相)을 떠나서

모든 법 가운데에 머물지 않으면,

나는 '경계를 보지 않음'이라 말하리.

왕(王)과 장자(長者)들이

여러 가지 새와 짐승을

집과 들에 모아두고

여러 아들에게 보이듯이,

나도 이와 같은 모든 상(相)과

여러 가지 거울 모양인 법을

속 몸 지혜로 아들 삼아서

실제(實際) 법을 말한다.

큰 바다의 물결은

바람의 인연으로 생기어

능히 일어 날뛰고 현전(現前)하여

끊어질 사이가 없듯이

아리야식도 항상

바람인 경계에 의해 일어나며,

여러 가지 물결인 식(識)이

능히 날뛰고 생겨 끊어지질 않네.

능취(能取)와 가취(可取)의 모양을

중생은 이와 같이 보지만,

가견(可見)은 모든 상(相)이 없는데

모도(毛道)는 이와 같이 본다네.

 

                                                                                                                          [272 / 415] 쪽

아리야인 근본식[本識]과

의(意)와 의식(意識)은

가취(可取)와 능취(能取)를 떠난 것이니,

나는 '이와 같은 모양'이라 말한다.

5음(陰)엔 아(我)도 없으며

인(人)과 중생도 없다.

생(生)은 여러 식(識)이 생(生)함이요

멸(滅)은 곧 여러 식이 멸함이네.

그림 속의 높고 낮음과 같아서

보이지만 이와 같은 것이 없으니,

이와 같은 모든 물체는

보이지만 이와 같은 모양이 없다네.

건달바(乾闥婆)의 성(城)과 같으며

새와 짐승이 물을 갈애(渴愛)하듯이

이와 같은 보여지는 것을 보지만

지혜로 관찰함엔 이러한 것이 없으리라.

헤아림과 생각함을 떠났으며

인(因)도 아니며 과(果)도 아니요,

능각(能覺)과 소각(所覺)을 떠났고

능견(能見)과 가견(可見)을 떠났다네.

음(陰)과 인연에 의해 깨달을 것이니

인견(人見)과 가견(可見)이 없으리라.

만약 가견(可見)을 보지 않는다면

어떻게 저 법을 닦으랴.

 

                                                                                                                          [273 / 415] 쪽

인연과 인(因)과 비유와

뜻 세움[立意]과 인연이며,

꿈과 건달바와 털바퀴와

아지랑이와 해와 달과

빛과 불꽃과 환(幻) 등인 비유로

나는 '모든 법이 생함'을 막노라.

꿈과 환(幻)같은 미혹으로서

허망하게 중생을 분별함이니,

삼계에 의지하지도 않으며

안과 밖에도 또한 모두 없어,

'모든 유(有)가 생(生)하지 않음'을 본다면

무생인(無生忍)을 얻으리.

환과 같은 삼매[如幻三昧]와

뜻과 같은 몸[如意身]과

모든 신통과 자재함과

힘과 마음인 여러 가지 법을 얻으리라.

모든 법은 본래 생함이 아니며

공하여 법체상도 없지만,

저 사람은 미(迷)하고 깨닫지 못하여

인연에 따라 생멸(生滅)하니,

어리석은 이의 분별함 같아서

마음에서 자심(自心)을 본 것이며

바깥 여러 가지 모양을 본 것이요,

실로 보여질 법은 없는 것이다.

 

                                                                                                                          [274 / 415] 쪽

골상(骨相)과 불상(佛像)과

모든 4대(大)가 흩어짐을 보며

잘 살피는 마음으로 능히 아는 것이

세간상(世間相)을 주지(住持)함이라네.

몸과 주지함과 살림살이여,

가취(可取)인 세 가지 경계로다.

식(識)은 식(識)의 경계를 취하고

의식(意識)은 셋을 분별하니,

분별함과 가분별(可分別)이

있는 바 명자(名字)의 경계로서

능히 진실법을 보지 못함이니,

그의 각(覺)은 미(迷)하여 보지 못함이네.

모든 법의 자체가 없는 것을

지혜 있는 자는 능히 깨달으니,

수행자가 그렇게 생각을 쉬고서

상(相)이 없는 곳에 머무르리.

만약 먹으로 닭을 그리면

어리석은 이는 나의 닭이라고 하니,

어리석은 범부의 취(取)함과 같아서

3승(乘)이 모두 한 가지라네.

성문(聲聞)인 사람도 없으며

또한 벽지불(辟支佛)도 없지만,

보는 바 성문의 색(色)과

여래를 보는 것은

 

                                                                                                                         [275 / 415] 쪽

보살의 큰 자비로서

화신(化身)을 보인 것이네.

삼계(三界)가 오직 마음이요

두 가지 체상(體相)을 떠났으니,

여러 상을 전변(轉變)하면

그가 곧 진여(眞如)라네.

법과 인(人)의 행상(行相)과

해와 달의 빛나는 것이며

큰 마니의 보배로서

분별 없이 일을 지으니,

제불(諸佛)의 법은 이와 같지만

눈병에서 털 바퀴를 취함이라네.

이와 같이 법을 분별하여

어리석고 허망하게 취착하네.

생(生) · 주(住) · 멸(滅)을 떠났으며

상(常)과 무상(無常)도 떠났도다.

보여진 염정(染淨)의 법이란

공중의 털 바퀴 같으며,

이아리풀[莨菪]에 중독된 사람이

여러 모양인 대지(大地)를 보는 것과 같다.

일체가 금빛과 같이 보이나

저것에는 일찍이 금이 있지 않았으니,

이러한 어리석은 사람은

끝없는 심법(心法)을 더럽힌 것이다.

 

                                                                                                                         [276 / 415] 쪽

환상과 아지랑이가 생기면

어리석은 이는 사실로서 본다.

한 종자와 종자가 없음이여,

큰 바다도 한 종자인 것이며

또한 한량없는 종자이니,

그대는 마음의 종자를 관찰하라.

한 종자가 청정하면

한량없는 종자를 굴리리라.

평등하여 분별이 없으나

일으키면 곧 생사(生死)로서

능히 여러 가지 종자를 내니,

그러므로 종자를 말한다.

인연은 불생(不生)의 법이며

인연은 불멸(不滅)의 법이다.

생(生)하는 법은 오직 인연인데

마음이 이와 같이 분별함이여.

삼계(三界)가 오직 거짓이름[假名]이요

실로 사법(事法)의 체(體)가 없는데

망각(妄覺)하는 이가 이를 분별하여

거짓이름을 취(取)하여 사실로 여기네.

모든 법의 실체를 관찰하면

나는 '미혹했다'라고 말하지 않으리.

실체(實體)의 불생(不生)법을

관찰하면 해탈을 얻으리라.

 

                                                                                                                        [277 / 415] 쪽

나는 '환(幻)과 없는 것'을 보지 않으며

'모든 법이 있다'고 말하지 않으니,

뒤바뀜과 신속함이 번개와 같아

그러므로 '환과 같다'라고 말한다.

본래 생김과 처음 생김도 아니요,

모든 인연에 체(體)가 없고

있는 곳과 자체도 없어서

오직 말만이 있을 뿐이네.

인연이 생멸함인 것을 막지 않으며

인연이 화합함인 것을 막지 않고,

모든 어리석은 견해로

'인연으로 생긴다'라고 분별함을 막노라.

실로 식(識)의 자체 법이 없으며

사법과 근본식도 없거늘,

어리석은 이 분별을 내니

시체(屍體)와 같은 악각(惡覺)이다.

삼계(三界)가 다만 마음임을

모든 불자(佛子)가 능히 본다면,

곧 종류인 몸[種類身]을 얻을 것이요,

지음과 유위(有爲)법을 떠날 것이다.

힘과 신통과 자재와

함께 하는 상응(相應)법을 얻고

일체 색(色)을 나타내리니,

심법(心法)은 이와 같이 생한다.

 

                                                                                                                         [278 / 415] 쪽

심(心)과 색(色)이 없는데도

끝없이 마음을 미혹했으니,

그 때엔 수행하는 이

무상(無相)을 얻어 보고,

지혜로 관찰하여

모든 중생들의

상(相)과 법과 거짓이름과

뜻으로 움직인 법의 취함을 보지 않으리.

나의 모든 제자가 이를 지나서

분별함이 없이 수행해야 하리.

건달바성과 환상과

털 바퀴와 아지랑이를

실로 없음에도 사실로 보지만

모든 법의 체(體)는 이와 같다.

마음대로 모든 법을 본 것이요,

이와 같은 체상(體相)은 없는 것이다.

일체법은 생(生)함이 아니지만

다만 미혹한 법을 본 것이니,

모도(毛道)의 미혹한 분별은

두 법에 머무르기 때문이네.

처음 식(識)이 분별을 내고서

여러 가지로 종자를 훈습하네.

식은 폭수(瀑水)가 일어남과 같으니

그를 끊으면 불생(不生)이네.

 

                                                                                                                          [279 / 415] 쪽

여러 가지 염관(念觀)인 법이

만약 심중(心中)에서 생긴다면

허공의 벽(壁)과 같으니

무슨 까닭으로 생함이 아니랴.

만약 소상(少相)의 관(觀)이 있으면

마음이 인연을 따라 나리라.

만약 인연으로부터 난다면

유심(唯心)이라 말하지 못하리라.

마음이 자심(自心)을 취하여

법도 없고 인(因)에 따라 생함도 없다.

심법(心法)의 체(體)는 청정하여

허공이라 훈습이 없네.

허망하게 자심을 취하기에

그러므로 마음이 나타나 생한다.

외법(外法)은 보여짐도 없으니

그러므로 '유심(唯心)'이라 말한다.

본식(本識)은 다만 마음이며

뜻은 능히 경계를 생각하여

능히 모든 경계를 취하니,

그러므로 나는 '유심'이라 말한다.

심(心)은 항상 무기(無記)인 법이며

의(意)는 2변(邊)으로 모양을 취하네.

현재의 법을 취함은 식(識)이니

그는 선(善)과 불선(不善)이라네.

 

                                                                                                                        [280 / 415] 쪽

두 가지 식의 모양을 떠난 것이

제일의문(第一義門)이네.

3승(乘)의 차별을 말하였으나

고요함은 이러한 모양이 없다네.

만약 마음이 고요함에 머무르고

부처님의 땅에서 행하는 것이라면

이는 과거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요,

현재와 미래도 또한 이와 같다네.

처음 7지(地)는 마음의 땅이며

고요함은 제8지(地)라네.

2지(地)는 행처(行處)요,

그밖에 지위는 아(我)의 법이라네.

스스로 안의 몸이 청정한 것은

아(我)가 자재한 자리이다.

자재하고 구경(究竟)인 곳의

아가니타(阿迦尼吒)천에서 나타난다네.

여러 불꽃들이

광명을 내는 것과 같아서

여러 가지 마음으로 좋아하기에

변화로 삼계를 지었도다.

혹 중생을 교화할 수 있으면

변화로 3유(有)를 지어내고,

그 곳에서 모든 법을 말하니

나의 자재(自在)한 자리이네.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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