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4-23-화엄-80 (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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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은 어떤 곳에 있지도 않고
법에도 머물지 않나니.
부처님 부처님마다
신력으로 나타내는 몸
부사의한 세월에
세어서 끝낼 수 없어
삼세의 모든 중생들
그 수효 알 수 있지만
여래의 나타내는 몸
그 수효 다할 수 없네.
어떤 때는 하나거나 둘
혹은 한량이 없는 몸
시방세계에 두루 나타내지만
실제로는 두 가지 아닌 것,
마치 깨끗한 보름달
모든 물 속에 비치어
그림자 한량없지만
달의 자체는 둘이 아니듯이,
걸림없는 지혜로
등정각(等正覺)을 이루어
온갖 세계에 나타나지만
부처님 자체는 둘이 없네.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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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량없는 것도 아닌데
교화할 중생을 따르노라고
한량없는 몸 보이시나니,
부처님 몸 과거도 아니고
또 미래도 아니지만
잠깐 동안에 태어나고
성도하고 열반함을 보이네.
요술로 만드는 형상
나지도 일어나지도 않는 듯
부처님 몸도 그와 같아
나타내지만 나는 일 없어.
그 때 보당(寶幢)보살이 부처님의 신력을 받들어 시방을 두루 관찰하고 게송으로 말하였다.
부처님 몸 한량없지만
한량 있음을 보이시니
보는 중생을 따르므로
도사께서 그렇게 나타내고
부처님 몸 처소가 없지만
모든 곳에 가득 차시니
허공이 끝이 없듯이
이런 일 헤아릴 수 없어,
마음으로 요량할 것도 아니며
거기서 마음 일어난 것도 아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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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경계에는
끝까지 생멸이 없네.
마치 병난 눈으로 보는 것
안도 아니고 바깥도 아니듯
세상에서 부처님 뵈옵되
역시 그러한 줄 알 것이,
중생을 이익케 하려고
여래께서 세간에 나시매
중생들은 출현한 걸 보지만
실상은 출현한 일 없네.
국토나 밤이나 낮으로
부처님을 볼 수 없나니
몇 해라 잠깐이라 하는 말
모두 그런 것이다.
중생들은 말하기를
어느날 부처님 성도하셨다 하나
부처님께서 보리 얻음은
날짜에 얽매이지 않나니.
여래는 분별을 떠나서
시간도 수량도 초월한 것
삼세의 여러 부처님
출현하심도 그러하니라.
마치 찬란한 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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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밤과 합하지 않지만
사람들은 어느날 밤이라 하나니
부처님의 법도 그러하여,
삼세의 모든 겁이
여래와 합하지 않지만
삼세 제불이라 말하나니
부처님의 법이 그러하니라.
그 때 정진당(精進幢)보살이 부처님의 신력을 받들어 시방을 두루 관찰하고 게송으로 말하였다.
모든 부처님들
몸도 같고 이치도 그런 것이니
시방세계에 두루하여
마땅한 대로 가지가지 나타나네.
그대는 모니세존을 보라.
하시는 일 매우 기이하시어
법계에 가득하시니
온갖 곳에 남은 데 없네.
부처님 몸 안에도 있지 않고
밖에도 있는 것 아니나
신력으로 나타내나니
도사의 법이 그러하니라.
중생들의 종류에 따르며
전세에 지은 업대로 하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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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가지가지 몸
나타내심이 각각 다르다.
부처님들의 몸 이와 같아서
한량없고 셀 수 없나니
대각 세존을 제외하고는
말하고 생각할 이 없네.
마치 나를 생각할 수 없어
마음 작용으로 취할 수 없듯이
부처님 생각할 수 없음도 그와 같아서
마음의 작용으로 나타낼 것 아니며
세계를 생각할 수 없으나
청정하게 장엄한 것 보듯이
부처님 생각할 수 없음도 그와 같아서
미묘한 모습 모두 나타내네.
마치 모든 법들이
여러 인연으로 생기듯이
부처님들도 그와 같아서
여러 가지 선한 업 빌려야 하네.
마치 여의주가
중생의 마음 만족케 하듯이
부처님 법도 그와 같아서
온갖 소원을 만족케 하도다.
한량없이 많은 세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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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사께서 출현하심은
본래의 원력을 따름이라
시방에 두루 응하네.
그 때 이구당(離垢幢)보살이 부처님의 신력을 받들어 시방을 두루 관찰하고 게송으로 말하였다.
여래의 큰 지혜 광명
모든 세간 두루 깨끗하게
세간이 깨끗해지면
부처님 법을 열어 보이네.
가령 어떤 사람이
중생 수효와 같은 부처님 보려면
그들의 마음에 모두 응하지만
실제로는 오는 곳 없어,
부처님을 경계로 하고
오로지 생각해 쉬지 않으면
이 사람 부처님 보되
그 수효 마음과 같으리.
희고 깨끗한 법 이루어
모든 공덕 갖추고
온갖 지혜에 대하여
전심으로 생각하고 버리지 않나니,
도사께서 중생 위하여
근기에 맞춰 법문을 연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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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화할 곳에 따라
가장 훌륭한 몸 나타내며,
부처님 몸이나 세간이나
모두 나[我]랄 것 없나니
이것 깨달아 정각 이루고
다시 중생에게 말하네.
모든 사람 가운데 사자
한량없이 자재한 힘으로
생각과 평등한 몸 보이니
그 몸이 제각기 같지 않고,
세간의 이와 같은 몸
부처님 몸도 그러하니
그 성품 분명히 알면
그 이름 부처라 하리.
여래는 널리 알고 보시어
온갖 법 환히 아시니
부처님 법과 보리를
둘 다 얻을 수 없어,
도사는 오고 가는 일 없고
머무는 곳도 없나니
전도(顚倒)를 영원히 여의면
등정각이라 이름하네.
그 때 성수당(星宿幢)보살이 부처님의 신력을 받들어 시방을 두루 관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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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게송으로 말하였다.
여래는 머무는 데 없으면서
모든 세계에 두루 머물매
온갖 국토에 모두 가고
온갖 곳에서 모두 보도다.
부처님 중생의 마음 따라
온갖 몸 나타내시니
도를 이루고 법을 연설하고
그리고 열반에 드시나니,
부처님을 헤아릴 수 없나니
누가 능히 부처님 생각하고
누가 능히 정각을 보고
누가 능히 승한 몸 나타내리.
온갖 법 모두 진여(眞如)요
부처님 경계도 그런 것
단 한 가지 법이라도
진여 속에 생멸이 있는 것 아니니,
중생들이 허망하게
부처라 세계라 분별하지만
법의 성품 아는 이에겐
부처도 세계도 없네.
여래가 앞에 나타나
중생들이 믿고 기쁘게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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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자체 찾을 수 없고
저들도 보는 것 없어라.
누구나 만일
온갖 집착 멀리 여의면
걸림없어 마음이 환희하고
법을 깨닫게 되리.
신력으로 나타내는 것을
곧 부처라 이름하나
삼세의 모든 때에
구하여도 있지 아니해,
만일 능히 이렇게
맘과 뜻과 법을 안다면
온갖 것 모두 알고 보고
여래를 빨리 이루게 되리.
말로써 부처님들의
자재하심 보이거니와
정각은 말도 초월했으나
말을 빌어서 말할 뿐.
그 때 법당(法幢)보살이 부처님의 신력을 받들어 시방을 두루 관찰하고 게송으로 말하였다.
모든 세간의 고통을
항상 달게 받을지라도
마침내 여래를 떠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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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재한 힘 보지 않을 수 없어.
만일 모든 중생들
보리심 내지 못하였어도
부처님 이름 한번 들으면
결정코 보리 이루리.
지혜 있는 사람 누구나
한 순간 도에 대한 마음 내면
반드시 위없는 세존 이루리니
의혹을 내지 말아라.
여래의 자재하신 힘
무량겁에 만나기 어려워
잠깐만 신심 내어도
위없는 도를 빨리 이루리.
설사 생각생각마다
무량한 부처님께 공양한대도
진실한 법 알지 못하면
공양이라 말할 수 없어,
이런 법 듣기만 해도
부처님 여기서 나시나니
한량없는 고통 겪더라도
보리의 행 버리지 말라.
부처님들이 들어가셨던
큰 지혜 한 번 들으면.........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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