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조국사(普照國師,지눌,僧)

문자법사는 되지 말라(권수정혜결사문)

근와(槿瓦) 2015. 11. 21. 00:19

문자법사는 되지 말라(권수정혜결사문)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질문) 마음을 닦는 사람이 널리 배우고 많이 듣고 법을 설해 사람들을 교화한다면 곧 안으로 살피어 마음 닦는 데는 손실이 될 것입니다. 또 남을 이롭게 하는 행이 없다면 고요한 데로만 빠지는 무리들과 다를 게 어디 있습니까.

 

(대답) 그것은 저마다 그 당사자에게 달렸으므로 한 데 묶어 말할 것은 못된다. 말로 인해 도를 깨닫고 교(敎)에 의해 종지(宗旨)를 밝히며 법을 가릴 줄 아는 안목을 갖춘 이는, 많이 들을지라도 이름이나 모양에 집착하지 않는다. 또 남을 이롭게 하더라도 나니 남이니 하여 싫어하거나 좋아하는 생각이 없고 자비와 지혜가 점점 원만해져 텅빈 법계(法界)에 합하면 그는 진실을 행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말에 따라 소견을 내고, 글을 보고 아는 척 하며, 교(敎)를 쫓느라고 마음이 거기 걸리어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과 달 자체를 가릴 줄 모르며, 명예와 이양(利養)에 연연하면서 법을 설해 사람을 제도하려는 이는, 더러운 달팽이가 자신도 더럽히고 남도 더럽히는 것과 같다. 이것이 바로 세간의 문자법사(文字法師)다. 어찌 그를 선정과 지혜에 전념하여 명예를 구하지 않는 사람이라 할 수 있겠는가.

 

또 <화엄론>에는 이와 같이 말했다.

'자신이 결박되어 있으면서 남의 결박을 풀어 준다는 것은 당치 않은 소리다.'

 

지공법사(誌公法師)의 <대승찬(大乘讚)>에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 어리석은 사람들이 도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다시 도를 구하려고 하는고. 여러가지 뜻을 이리저리 찾으니 자기 몸도 하나 구제하지 못하는구나. 자나깨나 남의 글과 어지러운 말만을 들추며 자칭 지극한 이치가 오묘하다고 하니, 일생을 헛되이 보내면서 영원히 생사윤회에 빠져 있다.

혼탁한 애욕이 마음에 얽히어도 버릴 줄 모르니 청정한 지혜의 마음이 스스로 괴로와한다. 진여법계의 숲이 도리어 가시덤불 거친 풀이 되었는가. 누런 나무잎을 보고 금이라 고집하며 금을 버리고 보배를 구할 줄 모르니, 입으로는 경론을 외울지라도 마음 속은 항상 메마르다. 하루 아침에 본심이 공한 줄 깨달으면 갖추어진 진여가 적지 않으리라.'

 

아난존자(阿難尊者)는 말하였다.

'한결같이 많이 듣기만 하면 도력이 제대로 자라지 못한다.'

예전 성인들의 가르침이 해와 달보다 더 분명한데, 어찌 잡다한 뜻만 찾으면서 자신을 탐구하지 않은 채 영겁을 두고 헤매는가. 때때로 관행(觀行)하는 여가에 성인의 가르침과 옛 어른들의 도에 들어간 인연을 자세히 살피어, 삿됨과 바름을 분명히 가리어 남도 이롭게 하고 자신도 이로워야 한다. 한결같이 밖으로만 이름과 모양을 찾아 분별하기를, 바다에 들어가 모래를 세듯 하여 헛되이 세월만 보내서야 되겠는가.

 

옛 어른이 말씀하기를,

'보살은 본래 남을 제도하려고 하기 때문에 먼저 선정과 지혜를 닦는다. 한가하고 고요한 곳이라야 선관(禪觀)을 이루기 쉽고, 욕심이 적은 두타(頭陀 : 아주 검소한 수행자)라야 성인의 도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하였으니 이것이 그 증거다.

 

이미 남을 제도할 원을 세웠으면 먼저 선정과 지혜를 닦으라. 도력이 있으면 자비를 구름처럼 펴고, 행의 바다에 물결이 출렁거려 미래세가 다하도록 중생의 온갖 괴로움을 구제하고 삼보에 공양하여 불가(佛家)의 업을 이을 것이니, 어찌 고요함에만 탐착하는 무리들과 같겠는가.

 

 

출전 : 밖에서 찾지 말라(지은이 : 보조선사, 옮긴이 : 법정스님)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