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성(惺惺)과 적적(寂寂)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백장 화상(百丈和尙)은 말하였다.
'비록 복과 지혜가 있고 아는 것이 많다 할지라도 도저히 구원하지 못한다. 마음의 눈이 열리지 못했기 때문에 생각하는 여러가지에 얽히어 돌이켜 볼 줄을 모른다. 불도를 보지 못해 평상에 지은 악업이 모두 눈 앞에 나타나지만 두려워하고 즐거워하며, 육도(六道)와 오온(五蘊)이 앞에 나타나도 모두 호화로운 저택이나 배와 수레 혹은 눈부신 광명으로 보인다. 그래서 자기 마음을 방종하게 하여 탐욕의 소견으로 모든 것이 좋은 것으로만 변하면, 보이는 것을 따라 업이 무거운 곳에 태어나므로 전혀 자유가 없다. 그러므로 용이나 축생 양민이나 천민으로 태어나는 것도 결정할 수 없다.'
그러기 때문에 높은 식견과 원대한 뜻을 지닌 사람은 먼저 삼세(三世)의 업보가 털끝만큼도 어김이 없어 도망할 곳이 없음을 깊이 살피라. 만약 지금 인연이 빗나가 닦지 못하면, 이 다음에 반드시 고통을 받게 될 것이니 참으로 마음 아픈 일이 아니겠는가.
곰곰히 살피어 초저녁이나 밤중이나 새벽에 온갖 인연을 잊고 고요히 우뚝 단정하게 앉아 외부의 현상에 팔리지 말고 마음을 거두어 안으로 비추어 보라. 먼저 고요함(寂寂)으로써 얽힌 생각을 다스리고, 다음으로 또렷또렷함(惺惺)으로써 흐리멍덩함을 다스려, 흐리고 어지러운 생각을 함께 조절하라. 그래서 취하고 버린다는 생각이 없어 마음이 역력하고 확 트여 어둡지 않게 하여 생각없이 알고, 들어서 아는 것이 아니므로 어떤 환경도 취하지 않는다. 세상의 인연을 따라 어떤 일을 하더라도 할 일과 해서는 안될 일을 살피어 만 가지 행(萬行)을 버리지 않으며, 하는 일이 있더라도 허명(虛明)을 잃지 않고 항상 맑고 고요히 안정해야 한다.
일숙각(一宿覺) 영가스님이 말하였다.
'적적(寂寂)이란 외부의 좋고 나쁨을 생각하지 않음이고, 성성(惺惺)이란 흐리멍덩하거나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닌 무기(無記)의 상(相)을 내지 않음이다. 만약 적적하기만 하고 성성하지 못하면 그것은 흐리멍덩한 상태이고, 성성하기만 하고 적적하지 않으면 그것은 무엇엔가 얽힌 생각이다. 적적하지도 않고 성성하지도 않으면 그것은 얽힌 생각일 뿐 아니라 또한 흐리멍덩함에 빠져 있는 것이다. 적적하기도 하고 성성하기도 하면 그것은 곧 성성하고 적적함이니, 이것이야말로 근원으로 돌아가는 오묘한 길(妙性)이다.'
<십의론주(十疑論註)>에는 이와 같이 말하였다.
'잡념이 없음(無念)이란 곧 진여삼매(眞如三昧)다. 부디 성성하고 적적하여, 얽힌 인연을 일으키지 않고 실상에 맞추라.'
또 옛 어른은 이렇게 말씀했다.
'범부는 생각도 있고 앎도 있으며, 이승(二乘)은 생각도 없고 앎도 없으며, 부처님은 생각이 없이 안다.'
이와 같은 가르침은 마음을 닦는 사람의 선정과 지혜를 고루 가져 불성(佛性)을 밝게 보는 뛰어난 문이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사람은 자세히 살펴야 할 것이니, 어찌 큰 뜻만 내세워 수행을 버려서야 되겠는가. (선정과 지혜를 고루 가지는 데에는 五種起心과 六種料簡이 있다. 큰 뜻은 여기에 있으니 잘 생각해 보라).
출전 : 밖에서 찾지 말라(지은이 : 보조선사, 옮긴이 : 법정스님)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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