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5-해심밀경-9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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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심밀경 제5권
대당 현장 한역
김달진 번역
8. 여래성소작사품(如來成所作事品)
그때 만수실리(曼殊室利)보살마하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여래의 법신은 어떤 모습입니까?”
부처님께서 만수실리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만일 모든 지위의 바라밀다에서 벗어남[出離]을 잘 닦고 전의(轉依)를 원만히 이루면 이를 여래 법신의 모습이라 한다. 마땅히 알라. 이 모습은 두 가지 까닭으로 생기거나 의논할 수 없으니 희론(戲論)이 없는 까닭이며, 무위(無爲)인 까닭이다. 그러나 모든 중생은 희론에 집착하며, 하는 바가 있다고 여긴다.”
“세존이시여, 성문이나 독각이 얻는 전의도 법신이라 합니까?”
“선남자여, 법신이라 하지 못한다.”
“세존이시여, 마땅히 무슨 몸이라 합니까?”
“선남자여, 해탈신(解脫身)이라 한다. 해탈신에 의지하는 까닭에 일체 성문이나 독각과 모든 여래는 평등하고도 평등하다고 말하며, 법신을 말미암는 까닭에 차별이 있다고 말하며, 여래의 법신에 차별이 있는 까닭에 무량한 공덕과 가장 수승한 차별이 산수(算數)와 비유로도 미치지 못한다.”
만수실리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이 어떻게 하면 여래의 일어나심[生起]을 알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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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만수실리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일체 여래의 화신으로 짓는 업은 세계가 일어남과 같으며, 일체 종류는 여래의 공덕으로 장엄한 것이어서 머무름으로 모습을 삼는다. 마땅히 알라. 화신의 모습은 일어남이 있고, 법신의 모습은 일어남이 없다.”
“세존이시여, 화신을 나타내는 방편선교를 어떻게 알아야 합니까?”
“선남자여, 두루 삼천대천 불국토에서 많은 사람들이 추앙하는 가장 높은 왕가나 혹은 많은 사람들이 추앙하는 큰 복전(福田)의 집안에, 동시에 태에 들어 탄생하고 자라나 장가들고 출가하여 고행함을 나타내고, 고행을 버리고는 등정각을 이룸을 차례로 나타내는 것을 여래가 화신을 나타내는 방편선교라 한다.”
“세존이시여, 일체 여래의 몸에 있는 말소리[言音]에는 무릇 몇 가지 차별이 있어서, 이 말소리에 의지해 교화할 유정이 아직 성숙하지 않은 자이면 성숙시키고, 이미 성숙한 자면 이를 반연하고 경계로 삼아 속히 해탈을 얻게 하십니까?”
“선남자여, 여래의 말소리에는 간략히 세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계경(契經)이요, 둘째는 조복(調伏)이요, 셋째는 본모(本母)이다.”
“세존이시여, 무엇이 계경이며, 무엇이 조복이며, 무엇이 본모입니까?”
“만수실리여, 만일 이곳에서 내가 포섭하는 일[攝事]에 의지해 모든 법을 나타내면 이것을 계경이라 한다. 이른바 네 가지 일에 의지하며, 아홉 가지 일에 의지하며, 혹은 스물아홉 가지 일에 의지한다. 무엇이 네 가지 일인가? 첫째는 듣는 일[聞事]이요, 둘째는 귀의하는 일[歸趣事]이요, 셋째는 수행하는 일[修學事]이요, 넷째는 보리의 일[菩提事]이다.
무엇이 아홉 가지 일인가? 첫째는 유정을 시설하는 일[施設有情事]이요, 둘째는 그가 수용하는 일[彼受用事]이요, 셋째는 그의 일어나는 일[彼起事]이요, 넷째는 그가 생기고 머무르는 일[彼生住事]이요, 다섯째는 그의 더럽고 깨끗한 일[彼染淨事]이요, 여섯째는 그를 차별하는 일[彼差別事]이요, 일곱째는 능히 설명하는 일[能宣說事]이요, 여덟째는 널리 설명되어진 일[所宣說事]이요, 아홉째는 모든 무리가 모이는 일[衆會聚事]이다.
무엇이 스물아홉 가지 일인가? 잡염품(雜染品)에 의지해 모든 행을 포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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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일이요, 그가 차례차례 따라서 움직이는 일이요, 이에 대하여 보특가라(補特迦羅)라는 생각을 짓고는 미래 세상에 윤전할 원인이 되는 일이요, 이러한 생각을 짓고는 미래 세상에 윤전할 원인이 되는 일이요, 청정한 품류에 의지해 생각[念]을 소연에 매어 두는 일이요, 이 가운데서 부지런히 정진하는 일이요, 마음이 편안히 머무는 일이요, 현전의 법에 즐겁게 머무는 일이요, 일체 괴로운 반연을 초월하는 방편의 일이요, 그가 두루 아는 일이다. 이에 다시 세 가지가 있으니 전도(顚倒)를 두루 아는 것의 의지할 처소가 되는 까닭이며, 유정의 망상에 의지하되 밖으로 유정들의 삿된 행을 두루 아는 것의 의지할 처소가 되는 까닭이며, 안으로 증상만(增上慢)을 여의는 것을 두루 아는 것의 의지할 처소가 되는 까닭이다. 또한 수행이 의지하는 곳의 일이요, 증득함을 짓는 일이요, 닦고 익히는 일이요, 그를 견고히 하는 일이요, 그의 행상이 되는 일이요, 그의 반연이 되는 일이요, 이미 끊은 것과 아직 끊지 못한 것을 관찰하되 공교로운 일이요, 그가 산란하는 일이요, 그가 산란치 않은 일이요, 고생스럽게 가행을 닦고 익히는 일이요, 수승한 이익을 닦고 익히는 일이요, 그가 견고한 일이요, 성스러운 행을 포섭하는 일이요, 성스러운 권속을 포섭하는 일이요, 진실을 통달하는 일이요, 열반을 증득하는 일이요, 좋은 설법인 비나야(毘奈耶) 가운데서 세간의 바른 소견뿐 아니라 일체 외도가 얻는 바른 소견의 정수리까지 초월하는 일이다. 또한 이것들에서 닦지 않고 물러나는 일이 있는데, 잘 설해진 비나야 가운데서 닦고 익히지 않기 때문에 물러난다고 말한 것이지, 소견에 허물이 있어서 물러난다고 한 것은 아니다.
만수실리여, 만일 이곳에서 내가 성문이나 모든 보살들을 의지해 별해탈(別解脫)과 별해탈에 상응하는 법을 나타내면 이를 조복(調伏)이라 한다.”
“세존이시여, 보살의 별해탈은 몇 가지 모습에 포섭되는 것입니까?”
“선남자여, 마땅히 알라. 일곱 가지 모습이 있다. 첫째는 받는 궤칙(軌則)을 말하는 까닭이요, 둘째는 바라이[他勝]에 수순함을 설명하는 까닭이요, 셋째는 헐고 범함에 수순함을 설명하는 까닭이요, 넷째는 범함이 있는 자성을 말하는 까닭이요, 다섯째는 범함이 없는 자성을 말하는 까닭이요, 여섯째는 범한 것에서 벗어남을 말하는 까닭이요, 일곱째는 계율을 버리는 것을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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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까닭이다.
만수실리여, 만일 이곳에서 내가 열한 가지 모습으로써 결단하고 분별하여 모든 법을 나타내면 이를 본모(本母)라 한다. 무엇이 열한 가지 모습인가? 첫째는 세속의 모습이요, 둘째는 승의(勝義)의 모습이요, 셋째는 보리분법의 소연의 모습이요, 넷째는 그 행의 모습이요, 다섯째는 자성의 모습이요, 여섯째는 그 결과의 모습이요, 일곱째는 그것을 받아들이고 열어 보이는 모습이요, 여덟째는 그것을 장애하는 법의 모습이요, 아홉째는 그것에 수순하는 법의 모습이요, 열째는 그것의 허물되는 모습이요, 열한째는 그것의 수승하고 이로운 모습이다.
세속의 모습이란, 마땅히 알라. 세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보특가라를 말하는 까닭이요, 둘째는 변계소집의 자성을 말하는 까닭이요, 셋째는 모든 법의 작용과 사업을 말하는 까닭이다.
승의의 모습이란, 마땅히 알라. 일곱 가지의 진여를 말하는 까닭이다.
보리분법의 소연의 모습이란, 마땅히 알라. 두루 일체 종류의 아는 바 일을 말하는 까닭이다.
행의 모습이란, 마땅히 알라. 여덟 가지 관행을 말하는 까닭이다. 무엇이 여덟 가지인가? 첫째는 자세하고 진실한 까닭이요, 둘째는 편안히 머무는 까닭이요, 셋째는 허물이 되는 까닭이요, 넷째는 공덕이 되는 까닭이요, 다섯째는 이취(理趣)인 까닭이요, 여섯째는 윤전하는 까닭이요, 일곱째는 도리(道理)인 까닭이요, 여덟째는 총(總)과 별(別)인 까닭이다. 자세하고 진실함이란, 이른바 모든 법의 진여이다. 편안히 머무른다는 것은 보특가라를 세우거나 혹은 모든 법의 변계소집의 자성을 세우거나 혹은 한결같이 분별하고 반문(反問)하고 기억하여 둠을 세우거나 혹은 숨었거나 드러난 기별(記別)의 차별을 세우는 것이다. 과실(過失)이란, 이른바 내가 말한 모든 잡염법(雜染法)에는 무량한 부분으로 차별된 허물이 있다는 것이다. 공덕이란, 이른바 내가 말한 모든 청정한 법에는 무량한 부문으로 차별된 승리(勝利)가 있다는 것이다. 이취란 마땅히 알라. 여섯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참뜻[眞義]의 이취요, 둘째는 증득(證得)의 이취요, 셋째는 가르치고 인도[敎導]하는 이취요, 넷째는 양극단을 떠나는 이취요, 다섯째는 불가사의한 이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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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여섯째는 의취(意趣)의 이취다. 윤전(流轉)이란, 3세(世)와 3유위(有爲)의 모습과 4연(緣)이다. 도리란 마땅히 알라. 네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관하여 상대하는 도리[觀對道理]요, 둘째는 작용하는 도리[作用道理]요, 셋째는 깨침을 이루는 도리[證成道理]요, 넷째는 법이 그러한 도리[法爾道理]이다. 관하여 상대하는 도리란, 이른바 인(因)이나 혹은 연(緣)이 능히 모든 행을 내며 또 따르는 말[隨說]을 일으키니, 이것이 관하여 상대하는 도리이다. 작용의 도리란 이른바 인이나 혹은 연이 능히 모든 법을 얻거나 혹은 능히 이루거나 혹은 다시 내고, 모든 업의 작용을 지으니 이것이 작용의 도리이다. 깨달음을 이루는 도리란 이른바 인이나 혹은 연이 능히 세우고 말하고 표시한 뜻을 성립시키며 바르게 깨닫게 하니, 이것이 깨침을 이루는 도리이다. 또 이 도리에 대략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청정함이요, 둘째는 청정치 못함이다. 다섯 가지 모양을 말미암아 청정이라 부르고, 일곱 가지 모양을 말미암아 청정치 못함을 말한다.
무엇이 다섯 가지 모습에 의지해 청정이라 하는 것인가? 첫째는 현전에 보고 얻는 모습이요, 둘째는 현전에 보고 얻는 것이 의지하는 모습이요, 셋째는 같은 부류로 비유해 끌어들인 모습이요, 넷째는 원성실의 모습이요, 다섯째는 청정한 가르침의 모습이다. 현전에 보고 얻는 모습이란, 일체 행은 모두 무상(無常)의 성품이며, 일체 행은 모두 괴로운 성품이며, 일체 법은 모두 무아(無我)의 성품이니, 이는 세간에서 현량으로 얻는 것이다. 이런 것들을 현전에 보고 얻는 모습이라 한다. 현전에 보고 얻는 것이 의지하는 모습이란, 일체 행은 모두 찰나의 성품이며, 다른 세상의 유(有)의 성품이며, 맑거나 맑지 못한 업이 없어지거나 망가지지 않는 성품이다. 그 의지하는 거칠고 무거운 성품은 현전에서 얻을 수 있기 때문이며, 모든 유정들의 갖가지 차별은 갖가지 업에 의지해 현전에서 얻을 수 있기 때문이며, 모든 유정들이 맑거나 맑지 못한 업으로써 의지를 삼는 것을 현전에서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인연으로 현전에 보이지 않는 것도 헤아릴 수 있으니, 이런 것을 현전에 보고 얻는 것이 의지하는 모습이라 한다. 같은 부류로 비유해 끌어들인 모습이란, 이른바 안팎의 모든 행의 모임 가운데서 모든 세간이 함께 아는 것을 끌어들여 파악해야 할 나고 죽음을 비유하며, 모든 세간이 함께 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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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을 끌어들여 파악해야 할 생(生) 따위의 갖가지 괴로운 모습을 비유하며, 모든 세간이 함께 아는 것을 끌어들여 파악해야 할 자유롭지 못한 모습을 비유하며, 또 밖에서 모든 세간이 함께 아는 것을 끌어들여 파악해야 할 성하고 쇠퇴함을 비유한다. 이러한 것들을 같은 부류로 비유해 끌어들인 모습이라 한다. 원성실의 모습이란, 이른바 이와 같이 현전에 보고 얻는 모습과 현전에 보고 얻는 것이 의지한 모습과 혹은 같은 부류로 비유해 끌어들인 모습이 이루어 놓은 것에서 단정코 잘 이루니, 마땅히 알라. 이를 원성실의 모습이라 한다. 청정한 가르침의 모습이란, 일체지(一切智)를 가진 자가 말한 열반(涅槃)ㆍ구경(究竟)ㆍ적정(寂靜) 등과 같은 것이다. 이와 같은 것을, 마땅히 알라. 청정한 가르침의 모습이라 한다. 선남자여, 이 다섯 가지 모습을 말미암는 까닭에 청정의 도리를 잘 관찰한다고 하니, 청정을 말미암아 닦고 익혀야 한다.”
만수실리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일체지(一切智)의 모습은 몇 가지라고 알아야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대략 다섯 가지가 있다. 첫째 만일 세간에 출현하게 되면 일체지를 가졌다는 소문이 두루 들리지 않는 곳이 없게 된다. 둘째 서른두 가지 대장부의 모습을 성취한다. 셋째 10력(力)을 구족하여 일체 의혹을 끊는다. 넷째 네 가지 두려움 없음[無畏]을 구족해 바른 법을 설하고, 일체 다른 말에 굴복되지 않으며, 능히 일체 삿된 희론을 항복받는다. 다섯째 좋은 설법인 비나야에서 8지성도(支聖道)와 네 가지 사문의 과[沙門果] 따위를 모두 현전에 얻을 수 있다. 이와 같아서 생(生)인 까닭이며, 모습인 까닭이며, 의혹을 끊는 까닭이며, 남에게 꺾이지 않고 능히 남을 항복시키는 까닭이니, 이러한 다섯 가지를, 마땅히 알라. 일체 지혜의 모습이라 한다. 선남자여, 이와 같아서 깨침을 이루는 도리는 현량(現量)에 말미암는 까닭에, 비량(比量)에 말미암는 까닭에, 성교량(聖敎量)에 말미암는 까닭에 다섯 가지 모습을 말미암아 청정하다고 말한다.
무엇이 일곱 가지 모습에 의지해 청정하지 못하다고 하는 것인가? 첫째는 이 밖의 같은 무리로 가히 얻는 모습[此餘同類可得相]이요, 둘째는 이 밖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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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무리로 가히 얻는 모습[此餘異類可得相]이요, 셋째는 일체 같은 무리로 가히 얻는 모습[一切異類可得相]이요, 다섯째는 다른 무리의 비유로 얻는 모습[異類譬喩所得相]이요, 여섯째는 원성실의 모습[圓成實相]이요, 일곱째는 착하거나 청정치 못한 가르침의 모습[非善淸淨言敎相]이다. 만일 일체 법이 의식(意識)으로써 알 수 있는 성품이라면 이를 일체 같은 무리로 가히 얻는 모습이라 한다. 만일 일체 법이 모습과 성품, 업과 법, 원인과 결과가 다른 모습이라면 이런 하나하나의 다른 모습에 따라 각각 다른 모습으로 결정되어지고 점점 전개될 것이다. 이를 말미암아 일체 다른 무리로 가히 얻는 모습이라 한다. 선남자여, 만일 이 밖의 같은 무리로 가히 얻는 모습이나 또는 비유 가운데 일체 다른 무리가 있다면 이 인연을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것은 결정되지 못한 까닭에 이를 원성실이 아닌 모습이라 한다. 또 이 밖의 같은 무리로 가히 얻는 모습이나 비유 가운데 일체 같은 무리의 모습이 있다면 이 인연을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것은 결정되지 못한 까닭에 또한 원성실이 아닌 모습이라 한다. 원성실이 아닌 까닭에 청정한 도리를 잘 관찰하지 못하며, 청정하지 못한 까닭에 닦고 익히지 못한다. 만일 다른 무리의 비유로 이끌어진 모습이나 혹은 착하고 청정하지 않은 가르침의 모습이라면, 마땅히 알라. 체성이 모두 청정하지 않다. 법이 그러한 도리[法爾道理]란, 이른바 여래가 세상에 출현하건 세상에 출현하지 않건 법의 성품은 편안히 머물고 법은 법계에 머문다. 이를 법이 그러한 도리라 한다. 총(總)과 별(別)이란, 이른바 먼저 총합하여 한 구절로 법을 말하고, 다음다음 이어가며 모든 구절을 차별하고 분별하고 규명하고 나타내는 것이다.
자성의 모습이란, 이른바 내가 말한 유의 행[有行]과 유의 반연[有緣]에 있는 능취(能取)의 보리분법(菩提分法)이다. 이른바 염주(念住) 따위이니, 이를 자성의 모습이라 한다.
그 결과의 모습이란, 이른바 세간 밖의 모든 번뇌가 끊어짐과 그리고 이끌어낸 바 세간과 세간 밖의 모든 과보의 공덕이니, 이를 그 결과의 모습이라 한다.
그것을 받아들이고 열어 보이는 모습이란, 이른바 그것에 대하여 해탈지(解脫智)로써 받아들이고 널리 남에게 말하여 열어 보이는 것이니, 이를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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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을 받아들이고 열어 보이는 모습이라 한다.
그것을 장애하는 법의 모습이란, 이른바 보리분법 닦는 것을 장애하는 모든 더럽고 오염된 법이니, 이를 그것을 장애하는 법의 모습이라 한다.
그것에 수순하는 법의 모습이란, 이른바 그것을 많이 짓는 법이니, 이를 그것에 수순하는 법의 모습이라 한다.
그것의 허물되는 모습이란, 마땅히 알라. 곧 저 모든 장애하는 법에 있는 허물이니, 이를 그것의 허물되는 모습이라 한다.
그것의 수승하고 이로운 모습이란, 마땅히 알라. 모든 수순하는 법에 있는 공덕이니, 이를 그것의 수승하고 이로운 모습이라 한다.”
“세존이시여, 바라건대 모든 보살을 위해 계경과 조복과 본모와 외도와는 다른 다라니의 뜻을 설해 주십시오. 외도와는 다른 이 다라니의 뜻에 의지해 모든 보살이 여래께서 말씀하신 모든 법의 매우 깊고 비밀한 뜻에 들어가게 하소서.”
“선남자여, 그대는 자세히 들어라. 내가 지금 그대를 위해 외도와는 같지 않은 다라니의 뜻을 말해, 모든 보살들이 내가 말한 비밀한 뜻과 말에 깨달아 들어가게 하리라. 선남자여, 잡염법이건 청정한 법이건 나는 일체가 모두 작용이 없고, 또한 모두 보특가라가 없다고 말한다. 일체 종류는 모두 행위를 떠난 까닭에 더러운 법이 먼저는 물들었다가 뒤에 맑아지는 것이 아니며, 청정한 법이 뒤에는 청정하고 먼저는 물든 것이 아니다. 범부와 중생은 추중신(麤重身)에서 모든 법과 보특가라의 자성과 차별을 집착하고, 수면(隨眠)과 망견(望見)으로 반연을 삼는 까닭에 나[我]와 내 것[我所]을 계교한다. 이 망견에 의지해 내가 보고, 내가 듣고, 내가 냄새 맡고, 내가 먹고, 내가 물들고, 내가 맑아진다고 한다. 이와 같은 부류는 삿된 가행을 굴리는 것이다. 만일 여실히 아는 자라면 곧 추중신을 영원히 끊고, 일체 번뇌가 머물지 않는 최고의 청정함을 얻어 모든 희론을 벗어나 의지함이 없고 가행(加行)이 없으리라. 선남자여, 마땅히 알라. 이것이 외도와 같지 않은 다라니의 뜻을 대략 말한 것이다.”
그때 세존께서 거듭 이 뜻을 펴시고자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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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럽고 청정한 일체의 법은
모두 작용도 삭취취(數取趣:보특가라)도 없나니
그 까닭에 말하노라, 해야 할 바 떠나라고.
더러움과 청정함은 앞뒤가 없다.
추중신에서 수면과 망견으로
반연해 나와 내 것 계교하고는
그 까닭에 함부로 말하네, 내가 본다고.
내가 먹고 내가 하고 내가 더럽고 깨끗하다고.
이와 같음을 여실히 깨닫는 자는
이에 추중신을 영원히 끊을 수 있으리니
더러움도 깨끗함도 희론도 없어
의지하지 않고 가행(加行)도 없으리라.
그때 만수실리보살마하살이 다시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모든 여래의 마음이 일어나는 모습은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여래는 심ㆍ의ㆍ식을 일으켜 나타내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모든 여래는 가행(加行)이 없는 마음의 법은 일으킴이 있으니, 마땅히 알라. 이 일은 변화(變化)와 같다.”
“세존이시여, 만일 모든 여래의 법신이 일체 가행을 멀리 벗어났다면, 이미 가행이 없는데 어떻게 마음과 법을 일으킵니까?”
“선남자여, 이전에 닦은 방편(方便)ㆍ반야(般若)의 가행의 힘 때문에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선남자여, 비유컨대 바야흐로 무심히 잠든 이가 깨어날 때 가행을 짓지 않아도 이전에 지은 가행의 세력으로 말미암아 깨어나는 것과 같으며, 또 바야흐로 멸진정(滅盡定)에 들었다가 선정에서 깨어날 때 가행을 짓지 않아도 이전에 지은 가행의 세력으로 말미암아 저절로 선정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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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깨어나는 것과 같다. 수면과 멸진정에서 마음이 다시 일어남과 같이 여래는 이전에 닦은 방편과 반야의 가행의 힘을 말미암는 까닭에 다시 심법(心法)을 일으킴이 있는 것이다.”
“세존이시여, 여래의 화신은 마음이 있습니까, 마음이 없습니까?”
“선남자여, 마음이 있는 것도 아니고 마음이 없는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스스로 의지하는 마음[自依心]이 없는 까닭이며, 남을 의지하는 마음[依他心]이 있는 때문이다.”
“세존이시여, 여래의 소행(所行)과 여래의 경계(境界), 이 두 가지는 어떤 차별이 있습니까?”
“선남자여, 여래의 소행은 일체 종류의 여래가 함께 가지는 불가사의한 공덕으로 장엄한 청정불토이다. 여래의 경계란 일체 종류에 다섯 가지 세계의 차별이 있다. 무엇이 다섯 가지인가? 첫째는 유정세계(有情世界)요, 둘째는 세계(世界)요, 셋째는 법계(法界)요, 넷째는 조복계(調伏界)요, 다섯째는 조복하는 방편의 세계[調伏方便界]이다. 이것을 두 가지 차별이라 한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등정각(等正覺)을 이루심, 바른 법륜(法輪)을 굴리심, 큰 열반에 드심, 이 세 가지를 어떤 모습으로 알아야 합니까?”
“선남자여, 마땅히 알라. 이 세 가지는 모두 다른 모습이 없다. 이른바 등정각을 이룬 것이 아니며, 등정각을 이루지 않은 것도 아니며, 바른 법륜을 굴린 것이 아니며, 바른 법륜을 굴리지 않은 것도 아니며, 큰 열반에 드는 것이 아니며, 큰 열반에 들지 않는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여래의 법신은 끝끝내 청정한 까닭이며, 여래의 화신은 항상 나타나는 까닭이다.”
“세존이시여, 모든 유정은 화신만 보고 듣고 받들어 섬겨 모든 공덕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여래께서는 그들에게 어떤 인연이 됩니까?”
“선남자여, 여래는 그들에게 가장 높은 소연(所緣)의 인연이 되기 때문이며, 그 화신에 여래의 힘이 머무르기 때문이다.”
“세존이시여, 평등하여 가행이 없다면 왜 여래의 법신은 모든 유정을 위해 큰 지혜의 광명을 놓으며 무량한 화신의 그림자를 나타내는 것입니까? 성문과 독각의 해탈신(解脫身)에는 이런 일이 없습니다.”
“선남자여, 비유컨대 평등하여 가행이 없지만 해와 달의 수파지가(水頗胝......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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