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심밀경(解深密經)

66-4-해심밀경-7

근와(槿瓦) 2015. 11. 14. 20:06

66-4-해심밀경-7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57 / 86] 쪽

해심밀경 제4권

대당 현장 한역

김달진 번역

 

7. 지바라밀다품(地波羅蜜多品)

 

그때 관자재(觀自在)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보살 10지(地)를 말씀하셨으니, 이른바 극희지(極喜地) · 이구지(離垢地) · 발광지(發光地) · 염혜지(焰慧地) · 극난승지(極難勝地) · 현전지(現前地) · 원행지(遠行地) · 부동지(不動地) · 선혜지(善慧地) · 법운지(法雲地)이며, 다시 불지(佛地)를 열한 번째라 하셨습니다. 이러한 모든 지위는 몇 가지 청정과 몇 갈피[分]에 포섭되는 것입니까?”

 

그때 세존께서 관자재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마땅히 알라. 모든 지위는 네 가지 청정과 열한 가지 갈피에 포섭된다. 무엇이 능히 모든 지위를 포섭하는 네 가지 청정인가? 이른바 가장 높은 의락의 청정[增上意樂淸淨]은 초지(初地)를 포섭하고, 가장 높은 계의 청정[增上戒淸淨]은 제2지를 포섭하고, 가장 높은 마음의 청정[增上心淸淨]은 제3지를 포섭하고, 가장 높은 지혜의 청정[增上慧淸淨]은 그 다음 다음 지위로 갈수록 더욱 수승하고 묘한 까닭에 마땅히 알라. 제4지부터 나아가 불지까지를 포섭한다. 선남자여, 마땅히 알라. 이와 같은 네 가지의 청정이 널리 모든 지위를 포섭한다.

 

무엇이 능히 모든 지위를 포섭하는 열한 가지 갈피인가? 이른바 모든 보살은 먼저 승해행지(勝解行地)에서 열 가지 법행(法行)에 의지해 승해인(勝解忍)을 매우 잘 닦는 까닭에 그 지위를 뛰어넘어 보살의 바른 성품[正性]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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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을 벗어남[離生]에 깨달아 들어간다. 그 모든 보살이 이러한 인연을 말미암아 이 갈피를 원만히 한다. 그러나 아직 미세한 헐뜯음과 잘못이 현행하는 가운데서 바르게 알아 행하지는 못한다. 이러한 인연을 말미암아 이 갈피 가운데 아직 원만치 못하니, 이 갈피를 원만하게 하려는 까닭에 부지런히 닦고 익혀 능히 증득한다. 그 모든 보살이 이 인연을 말미암아 이 갈피를 원만히 한다. 그러나 아직 세간의 원만한 등지(等持)와 등지가 원만한 문지다라니(聞持陀羅尼)를 얻지는 못한다. 이 인연을 말미암아 이 갈피 가운데 아직 원만치 못하니, 이 갈피를 원만하게 하려는 까닭에 부지런히 닦고 익혀 능히 증득한다. 그 모든 보살이 이러한 인연을 말미암아 이 갈피를 원만하게 한다. 그러나 아직 얻은 보리분법(菩提分法)에 따라 많이 닦고 익혀 머무르지 못하며, 마음이 아직 모든 등지에 대한 애착[等持愛]과 법에 대한 애착[法愛]를 버리지는 못한다. 이 인연을 말미암아 이 갈피 가운데 아직 원만치 못하니, 이 갈피를 원만하게 하려는 까닭에 부지런히 닦고 익혀 능히 증득한다. 그 모든 보살이 이 인연을 말미암아 이 갈피를 원만케 한다. 그러나 아직 모든 제(諦)의 도리를 여실히 관찰하지는 못하며, 또 생사와 열반에 대해 한결같이 등지거나 나아가는 작의(作意)를 버리지는 못하며, 또 방편으로 포섭할 보리분법을 닦지는 못한다. 이 인연을 말미암아 이 갈피 가운데 아직 원만치 못하니, 이 갈피를 원만하게 하려는 까닭에 부지런히 닦고 익혀 능히 증득한다. 그 모든 보살이 이 인연을 말미암아 이 갈피를 원만케 한다. 그러나 아직 나고 죽는 유전(流轉)을 여실히 관찰하지는 못하며, 또 그것에 대해 싫어함을 많이 내었으므로 아직은 무상작의(無相作意)가 많질 못하다. 이 인연을 말미암아 이 갈피 가운데서 아직 원만치 못하니, 이 갈피를 원만하게 하려는 까닭에 부지런히 닦고 익혀 능히 증득한다. 그 모든 보살이 이 인연을 말미암아 이 갈피를 원만히 한다. 그러나 아직 무상작의로 하여금 반연이 없고 틈이 없게 많이 닦고 익혀 머물게 하지는 못한다. 이 인연을 말미암아 이 갈피 가운데 아직 원만치 못하니, 이 갈피를 원만하게 하려는 까닭에 부지런히 닦고 익혀 능히 증득한다. 그 모든 보살이 이 인연을 말미암아 이 갈피를 원만케 한다. 그러나 아직 무상주(無相住) 가운데 능히 공용(功用)을 버리지는 못하며, 또 모습에 대하여 아직 자재함을 얻지는 못한다. 이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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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말미암아 이 갈피 가운데서 아직 원만치 못하니, 이 갈피를 원만하게 하려는 까닭에 부지런히 닦고 익혀 능히 증득한다. 그 모든 보살이 이 인연을 말미암아 이 갈피를 원만히 한다. 그러나 아직 다른 이름[異名]과 뭇 모습[衆相]과 훈계하고 꾸짖음[訓訶]과 일체 품류의 설법 가운데서 큰 자재를 얻지는 못한다. 이 인연을 말미암아 이 갈피 가운데 아직 원만치 못하니, 이 갈피를 원만하게 하려는 까닭에 부지런히 닦고 익혀 능히 증득한다. 그 모든 보살이 이 인연을 말미암아 이 갈피를 원만히 한다. 그러나 아직 원만한 법신을 현전에 증득하고 받음을 얻지는 못한다. 이 인연을 말미암아 이 갈피 가운데 아직 원만치 못하니, 이 갈피를 원만하게 하려는 까닭에 부지런히 닦고 익혀 능히 증득한다. 그 모든 보살이 이 인연을 말미암아 이 갈피를 원만케 한다. 그러나 아직 두루 일체 알아야 할 경계에 대하여 집착 없고 걸림 없는 묘한 지혜와 묘한 소견을 얻지는 못한다. 이 인연을 말미암아 이 갈피 가운데 아직 원만치 못하니, 이 갈피를 원만하게 하려는 까닭에 부지런히 닦고 익혀 능히 증득한다. 이 인연을 말미암아 이 갈피를 원만하게 한다. 이 갈피가 원만한 까닭에 일체 갈피가 원만함을 얻는다. 선남자여, 마땅히 알라. 이와 같은 열한 가지 갈피가 널리 모든 지위를 포섭한다.”

 

관자재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떤 인연으로 최초를 극희지(極喜地)라 하며, 나아가 어떤 인연으로 불지(佛地)라 말씀하십니까?”

 

부처님께서 관자재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큰 뜻[義]을 성취하여 일찍이 얻은 적이 없는, 세간을 벗어난 마음을 얻어 큰 환희(歡喜)를 일으키니, 그러므로 최초를 극희지라 한다.

 

일체의 미세한 파계도 멀리 벗어나니, 그러므로 두 번째를 이구지(離垢地)라 한다.

 

그가 얻는 삼마지와 문지다라니가 능히 무량한 지혜의 빛으로 의지를 삼으니, 그러므로 세 번째를 발광지(發光地)라 한다.

 

그가 얻는 보리분법을 말미암아 모든 번뇌를 태우되 지혜가 불길과 같으니, 그러므로 네 번째를 염혜지(焰慧地)라 한다.

 

그 보리분법을 방편으로 닦고 익혀 아무리 큰 어려움이라도 바야흐로 자재를 얻으니, 그러므로 다섯 번째를 극난승지(極難勝地)라 한다.

 

현전에 모든 행의 유전을 관찰하고 또 무상(無相)을 많이 닦는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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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作意)가 바야흐로 현전하니, 그러므로 여섯 번째를 현전지(現前地)라 한다.

 

능히 멀리까지 결함 없고 틈이 없고 모습 없는 작의에 깨쳐 들어가 청정한 지위와 서로 가까워지니, 그러므로 일곱 번째를 원행지(遠行地)라 한다.

 

무상(無相)에서 무공용(無功用)을 얻는 까닭에 모든 모습 가운데서 현행하는 번뇌에 동요되지 않으니, 그러므로 여덟 번째를 부동지(不動地)라 한다.

 

일체 종류에 대하여 선법에 자재하며 걸림 없고 광대한 지혜를 얻으니, 그러므로 아홉 번째를 선혜지(善慧地)라 한다.

 

추중신(麤重身)의 넓이가 허공과 같고 법신의 원만함이 비유컨대 모두를 두루 덮을 수 있는 큰 구름과 같으니, 그러므로 열 번째를 법운지(法雲地)라 한다.

 

가장 지극히 미세한 번뇌와 앎의 장애를 영원히 끊고, 집착 없고 걸림없어서 일체 종류의 알아야 할 경계에 대해 현전에 정등각(正等覺)을 얻는 까닭에 열한 번째를 불지(佛地)라 한다.”

 

관자재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여쭈었다.

“이 모든 지위에서 다스려야 할 어리석음은 몇 가지나 있으며, 추중(麤重)은 몇 가지나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관자재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이 모든 지위에서 다스려야 할 어리석음은 스물두 가지이고, 추중은 열한 가지이다.

 

이른바 초지에 두 가지 어리석음이 있으니, 첫째는 보특가라(補特迦羅)와 법을 집착하는 어리석음이고, 둘째는 나쁜 세계에 섞이고 물드는 어리석음이다. 그리고 그 추중이 다스려야 할 것이다.

 

제2지에 두 가지 어리석음이 있으니, 첫째는 미세한 잘못의 어리석음이고, 둘째는 갖가지 업의 갈래의 어리석음이다. 그리고 그 추중이 다스려야 할 것이다.

 

제3지에 두 가지 어리석음이 있으니, 첫째는 욕탐(欲貪)의 어리석음이고, 둘째는 문지다라니를 원만하다고 여기는 어리석음이다. 그리고 그 추중이 다스려야 할 것이다.

 

제4지에 두 가지 어리석음이 있으니, 첫째는 등지(等持)를 애착하는 어리석음이고, 둘째는 법을 애착하는 어리석음이다. 그리고 그 추중이 다스려야 할 것이다.

 

제5지에 두 가지 어리석음이 있으니, 첫째는 한결같은 작의로 생사를 버리고 등지려는 어리석음이고, 둘째는 한결같은 작의로 열반으로 향하는 어리석음이다. 그리고 그 추중이 다스려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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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지에 두 가지 어리석음이 있으니, 첫째는 현전에 모든 행의 유전을 관찰하는 어리석음이고, 둘째는 모습이 많이 현행하는 어리석음이다. 그리고 그 추중이 다스려야 할 것이다.

 

제7지에 두 가지 어리석음이 있으니, 첫째는 미세한 모습이 현행하는 어리석음이고, 둘째는 한결같이 무상작의(無相作意)만 방편으로 삼는 어리석음이다. 그리고 그 추중이 다스려야 할 것이다.

 

제8지에 두 가지 어리석음이 있으니, 첫째는 무상(無相)에 공용(功用)을 짓는 어리석음이고, 둘째는 모습에 대하여 자재하다는 어리석음이다. 그리고 그 추중이 다스려야 할 것이다.

 

제9지에 두 가지 어리석음이 있으니, 첫째는 무량한 설법과 무량한 법과 글귀와 문자와 그 다음 다음의 지혜로운 변재에 대하여 다라니로 자재하다는 어리석음이고, 둘째는 말재주가 자재하다는 어리석음이다. 그리고 그 추중이 다스려야 할 것이다.

 

제10지에 두 가지 어리석음이 있으니, 첫째는 큰 신통이 있다는 어리석음이고, 둘째는 미세한 비밀에 깨달아 들어갔다는 어리석음이다. 그리고 그 추중이 다스려야 할 것이다.

 

여래지(如來地)에 두 가지 어리석음이 있으니, 첫째는 일체 알아야 할 경계에 대하여 극히 미세하게 집착하는 어리석음이고, 둘째는 극히 미세함에 걸리는 어리석음이다. 그리고 그 추중이 다스려야 할 것이다.

 

선남자여, 이 스물두 가지 추중을 말미암은 까닭에 모든 지위를 벌려 세운 것이다. 그러나 아뇩다라삼먁삼보리는 그 얽매임을 벗어났다.”

 

관자재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는 매우 기특하고 매우 희유하며, 나아가 큰 이익과 큰 결과를 성취하여 모든 보살들로 하여금 능히 이와 같은 큰 어리석음의 그물을 깨뜨리고, 능히 이와 같은 큰 추중의 숲을 넘어 현전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하게 합니다.

세존이시여, 이와 같은 모든 지위는 몇 가지 수승함이 벌려 세운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관자재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대략 여덟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가장 높은 의락(意樂)의 청정이요, 둘째는 마음의 청정이요, 셋째는 자비의 청정이요, 넷째는 저 언덕에 다다른 청정이요, 다섯째는 부처님을 뵙고 공양하며 받들어 섬기는 청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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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요, 여섯째는 유정을 성숙시키는 청정이요, 일곱째는 생(生)의 청정이요, 여덟째는 위덕(威德)의 청정이다.

 

선남자여, 초지에도 가장 높은 의락의 청정과 나아가 위덕의 청정이 있고, 그 다음 다음의 모든 지위 나아가 불지에도 가장 높은 의락의 청정과 나아가 위덕의 청정이 있다. 마땅히 알라. 저 모든 청정은 점점 더 수승해진다. 그러나 불지에서만큼은 생의 청정은 제외된다. 또 초지에 있는 공덕은 그 위의 모든 지위에도 평등하게 모두 있지만, 마땅히 알라. 자기 지위에서 그 공덕이 수승한 것이다. 일체 보살의 10지의 공덕은 모두 그보다 나은 것이 있지만 불지의 공덕은, 마땅히 알라. 그보다 나은 것이 없다.”

 

관자재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무슨 인연으로 보살의 생(生)이 모든 유(有)의 생 중에서 가장 뛰어나다고 말씀하십니까?”

 

부처님께서 관자재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네 가지 인연이 있기 때문이다. 첫째는 극히 청정한 선근이 모여 일어난 것이기 때문이요, 둘째는 고의로 생각하여 간택하는 힘으로 취했기 때문이요, 셋째는 모든 중생을 불쌍히 여겨 제도하기 때문이요, 넷째는 자신도 물듦이 없고 남의 물듦도 없애 주기 때문이다.”

 

“세존이시여, 무슨 인연으로 모든 보살은 광대한 원[廣大願]과 묘한 원[妙願]과 수승한 원[勝願]을 행한다고 말씀하십니까?”

“선남자여, 네 가지 인연 때문이다. 이른바 모든 보살은 열반의 즐거운 머무름[樂住]을 잘 알 수 있고 속히 증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속히 증득할 수 있는 열반의 즐거움을 버리고는 반연하는 것도 없고[無緣] 기다리는 것도 없이[無待] 큰 원력을 일으킨다. 모든 유정에게 이익을 주려는 까닭에 긴 세월 온갖 고통 속에 처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저 모든 보살은 광대한 원력과 미묘한 원력과 수승한 원력을 행한다고 말한다.”

 

“세존이시여, 이 모든 보살이 배워야 할 일은 몇 가지나 있습니까?”

“선남자여, 보살이 배워야 할 일은 대략 여섯 가지가 있으니, 이른바 보시(布施) · 지계(持戒) · 인욕(忍辱) · 정진(精進) · 정려(靜慮) · 혜(慧) 도피안(到彼岸:바라밀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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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이시여, 이와 같은 여섯 가지 배워야 할 일 중에서 몇 가지가 가장 높은 계학(戒學)에 포섭되는 것이며, 몇 가지가 가장 높은 심학(心學)에 포섭되는 것이며, 몇 가지가 가장 높은 혜학(慧學)에 포섭되는 것입니까?”

“선남자여, 마땅히 알라. 앞의 세 가지는 가장 높은 계학에 포섭되는 것이며, 정려 한 가지는 가장 높은 심학에 포섭되는 것이며, 혜는 가장 높은 혜학에 포섭되는 것이다. 그리고 정진은 일체에 두루 적용된다고 나는 말한다.”

 

“세존이시여, 이와 같은 여섯 가지 배워야 할 일 중에서 몇 가지가 복덕의 자량(資量)에 포섭되는 것이며, 몇 가지가 지혜의 자량에 포섭되는 것입니까?”

“선남자여, 만일 가장 높은 계학에 포섭되는 것이면 이를 복덕의 자량에 포섭되는 것이라 하고, 만일 가장 높은 혜학에 포섭되는 것이면 이를 지혜의 자량에 포섭되는 것이라 한다. 그리고 정진과 정려 두 가지는 일체에 두루 적용된다고 나는 말한다.”

 

“세존이시여, 여섯 가지 배워야 할 일 가운데서 보살은 어떻게 닦고 배워야 합니까?”

“선남자여, 다섯 가지 모습을 말미암아 닦고 배워야 한다. 첫째는 최초에 보살장(菩薩藏)의 바라밀다와 상응하는 미묘한 바른 가르침 가운데서 열심히 믿고 아는 것이요, 둘째는 다음에 열 가지 법의 행을 듣고 생각하고 닦아서 이룬 지혜로써 부지런히 정진하는 것이요, 셋째는 보리의 마음을 따라서 보호함이요, 넷째는 참된 선지식(善知識)을 가까이함이요, 다섯째는 틈이 없이 착한 품류를 부지런히 닦는 것이다.”

 

“세존이시여, 어떤 인연으로 이와 같이 배워야 할 일을 여섯 가지만 시설하셨습니까?”

“두 가지 인연 때문이다. 첫째는 모든 유정을 넉넉하고 이롭게 하는 까닭이요, 둘째는 모든 번뇌를 물리치는 까닭이다. 마땅히 알라. 앞의 세 가지는 유정을 넉넉하고 이롭게 하며, 뒤의 세 가지는 일체 번뇌를 물리친다. 앞의 세 가지가 모든 유정을 넉넉하고 이롭게 한다는 것은, 이른바 모든 보살이 보시하는 까닭에 살림살이[資具]를 받아들여 유정을 넉넉하고 이롭게 하며, 계행을 지니는 까닭에 손해와 핍박과 어지럽힘을 행하지 않고 유정을 넉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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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이롭게 하며, 인욕하는 까닭에 저들이 해를 끼치고 핍박하고 어지럽히더라도 능히 견디고 참고 받아들여 유정을 넉넉하고 이롭게 한다. 뒤의 세 가지가 모든 번뇌를 물리친다는 것은, 이른바 모든 보살은 정진하는 까닭에 아직 일체 번뇌를 영원히 항복하지 못했고 아직 일체 수면을 없애지 못하였을지라도 능히 용맹하게 모든 착한 품류를 닦아서 저 모든 번뇌가 착한 품류의 가행(加行)을 흔들거나 움직이지 못하게 하며, 정려인 까닭에 번뇌를 영원히 항복 받고, 반야인 까닭에 수면을 영원히 없앤다.”

 

“세존이시여, 어떤 인연으로 나머지 네 가지 바라밀다를 시설하셨습니까?”

“선남자여, 앞의 여섯 가지 바라밀다와 함께 돕는 짝[助伴]이 되는 까닭이다. 이른바 모든 보살은 앞의 세 가지 바라밀다에 포섭되는 유정에 대하여 모든 일로 포섭하는 방편선교(方便善巧)로 그들을 받아들여 착한 품류에 안치(安置)한다. 그러므로 나는 방편선교(方便善巧)바라밀다는 앞의 세 가지와 함께 돕는 짝이 된다고 말한다. 만일 모든 보살이 현전의 법에 대하여 번뇌가 많은 까닭에 틈이 없는 수행을 견딜 능력이 없고, 약하고 힘없는 의락인 까닭에 또 낮은 세계의 승해인 까닭에 안으로 마음의 머무름[心住]을 견딜 능력이 없으며, 보살장을 듣지도 이를 반연해 잘 닦고 익히지도 못하는 까닭에 그 정려(靜慮)가 능히 세간을 벗어나는 지혜를 이끌어 내지 못한다면, 그는 곧 적은 부분의 좁고 못난 복덕 자량이라도 받아들이고 오는 세상의 번뇌를 가볍고 적어지게 하기 위해 마음으로 바른 원[正願]을 세워야 한다. 이런 것을 원(願)바라밀다라 한다.

 

이 원을 말미암는 까닭에 번뇌가 적어지고 엷어져 정진을 닦을 수 있다. 그러므로 원바라밀다는 정진(精進)바라밀다와 더불어 돕는 짝이 된다고 나는 말한다. 만일 모든 보살이 선사(善士)를 가까이하여 바른 법을 듣고 이치와 같게 뜻을 짓는다면, 이 인연으로 힘없는 의락을 굴려 수승한 의락을 이루며 또한 높은 세계의 승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니, 이와 같은 것을 역(力)바라밀이라 한다.

 

이 힘을 말미암는 까닭에 안으로 마음의 머무름[心住]을 견디는 능력이 있게 된다. 그러므로 역바라밀다는 정려(靜慮)바라밀다와 더불어 돕는 짝이 된다고 나는 말한다. 만일 모든 보살이 보살장을 이미 듣고 이에 반연해 잘 닦고 익히는 까닭에 능히 정려를 일으킨다면, 이러한 것을 지(智)바라밀다라 한다. 이 지혜에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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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는 까닭에 세간을 벗어나는 지혜를 충분히 이끌어 낼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지바라밀다는 혜(慧)바라밀다와 더불어 돕는 짝이 된다고 나는 말한다.”

 

“세존이시여, 어떤 인연으로 여섯 가지 바라밀다를 말씀하시면서 이런 차례를 두셨습니까?”

“선남자여, 능히 다음 다음으로 이끌어 냄의 의지가 되는 까닭이다. 이른바 모든 보살이 만일 몸과 재물에 대하여 돌아보거나 인색함이 없다면 곧 청정한 금계(禁戒)를 받아 지닐 수 있고, 금계를 보호하기 위해 곧 인욕(忍辱)을 닦고, 인욕을 닦고는 능히 정진을 내고, 정진을 일으키고는 능히 정려를 성취하고, 정려를 갖추고는 곧 세간을 벗어나는 지혜를 얻을 수 있다. 그러므로 나는 바라밀다를 이와 같은 차례로 말한 것이다.”

 

“세존이시여, 이와 같은 여섯 가지 바라밀다에는 각각 몇 가지 품류의 차별이 있습니까?”

“선남자여, 각각 세 가지가 있다. 보시의 세 가지란, 첫째는 법의 보시요, 둘째는 재물의 보시요, 셋째는 두려움 없는 보시이다.

 

계의 세 가지란, 첫째는 더욱 착하지 못함을 버리는 계[轉捨不善戒]요, 둘째는 더욱 착함을 내는 계[轉生善戒]요, 셋째는 더욱 유정을 넉넉하고 이롭게 하는 계[轉生饒益有情戒]이다.

 

인욕의 세 가지란, 첫째는 원수와 해침을 참는 인욕[耐怨害忍]이요, 둘째는 고통을 편안히 받아들이는 인욕[安受苦忍]이요, 셋째는 법을 자세히 살피는 인욕[諦察法忍]이다.

 

정진의 세 가지란, 첫째는 갑옷을 입는 정진[被甲精進]이요, 둘째는 더욱 선법의 가행을 내는 정진[轉生善法加行精進]이요, 셋째는 유정을 넉넉하고 이롭게 하는 가행의 정진[饒益有情加行精進]이다.

 

정려의 세 가지란, 첫째는 분별없는 적정과 지극한 적정으로 허물이 없는 까닭에 번뇌의 괴로움을 다스리고 즐거움에 머무르는 정려[樂住靜慮]요, 둘째는 공덕을 이끌어 내는 적정[引發饒益有情精慮]이요, 셋째는 유정을 넉넉하고 이롭게 함을 이끌어 내는 정려[引發饒益有情精慮]이다.

 

지혜의 세 가지란, 첫째는 세속제를 반연하는 지혜요, 둘째는 승의제를 반연하는 지혜요, 셋째는 유정을 넉넉하고 이롭게 함을 반연하는 지혜이다.”

 

“세존이시여, 무슨 인연으로 바라밀다를 바라밀다라 부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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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남자여, 다섯 가지 인연 때문이다. 첫째는 물들고 집착함이 없는 까닭이요, 둘째는 돌아보고 생각함이 없는 까닭이요, 셋째는 죄와 허물이 없는 까닭이요, 넷째는 분별이 없는 까닭이요, 다섯째는 바르게 회향하는 까닭이다.

 

물들고 집착함이 없는 까닭이란, 이른바 바라밀다와 어긋나는 모든 일에 물들고 집착하지 않는 것이다.

 

돌아보고 생각함이 없다는 것은 이른바 일체 바라밀다의 모든 과보와 이숙(異熟), 그리고 은혜를 갚는 가운데 마음에 얽매임이 없는 것이다.

 

죄와 허물이 없다는 것은 이른바 이러한 바라밀다에서 빈틈없이 잡되고 물든 법과 그릇된 방편을 벗어나는 것이다.

 

분별이 없다는 것은 이른바 이와 같은 바라밀다에서 말과 같이 자상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다.

 

바르게 회향한다는 것은 이른바 이와 같이 지은 바와 모든 바라밀다로써 위없는 큰 보리의 과보를 돌이켜 구하는 것이다.”

 

“세존이시여, 무엇이 바라밀다와 어긋나는 모든 것입니까?”

“선남자여, 마땅히 알라. 이 일에 대략 여섯 가지가 있다.

 

첫째는 기뻐하고 좋아하면서 재물과 부귀에 자재하길 원하고 모든 욕락(欲樂) 가운데서 깊이 공덕이라거나 또는 수승한 이익이라고 보는 것이요,

 

둘째는 좋아하는 것에 따라 몸과 말과 뜻을 마음대로 하고 현행하는 가운데서 깊이 공덕이라거나 수승한 이익이라고 보는 것이요,

 

셋째는 다른 이가 가벼이 여기고 업신여김을 견디지 못하는 가운데 깊이 공덕이라거나 수승한 이익이라고 보는 것이요,

 

넷째는 부지런히 닦지 않고 욕망에 집착하는 가운데서 깊이 공덕이라거나 수승한 이익이라고 보는 것이요,

 

다섯째는 세간의 잡되고 어지러운 행으로 떠들썩한 곳에서 깊이 공덕이라거나 수승한 이익이라고 보는 것이요,

 

여섯째는 보고 듣고 깨닫고 알고 말하고 희론하는 것을 깊이 공덕이라거나 수승한 이익이라고 보는 것이다.”

 

“세존이시여, 이와 같은 일체 바라밀다에는 어떤 과보와 이숙(異熟)이 있습니까?”

“선남자여, 마땅히 알라. 여기에도 또한 여섯 가지가 있다. 첫째는 큰 재물과 부귀를 얻음이요, 둘째는 좋은 세계에 태어남이요, 셋째는 원수가 없어지고 망가지는 일이 없어지며 모든 기쁨과 즐거움이 많아짐이요, 넷째는 중생의 주인이 됨이요, 다섯째는 몸에 번뇌와 해로움이 없음이요, 여섯째는 가.......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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