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가경(楞伽經)

180-6-입능가경-18

근와(槿瓦) 2015. 11. 14. 20:08

180-6-입능가경-18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171 / 415] 쪽

입능가경 제 6 권

원위 천축삼장 보리류지 한역

 

5. 로가야타품(盧迦耶陀品)

 

그 때 거룩하신 대혜보살은 또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여래 · 응공 · 정변지께서는 어느 때에 말씀하시기를, 로가야타[盧迦耶陀. 범어 loāyata의 음역으로 로가야(路伽耶) · 로가야타(路伽耶陀)라고도 하고, 순세외도(順世外道) · 순세파(順世派)라고 의역한다. 유물론의 입장에서 지 · 수 · 화 · 풍의 4대(大)와 그 활동공간인 허공의 실재만을 인정하여 쾌락론을 주장하였으며, 윤회 · 업 · 공양 · 보시 등의 의의를 인정하지 않았다. 단멸론자.]의 여러 가지 변설(辯說)을 만약 친근하거나 그 사람에게 공양하면 욕식(欲食 : 세간의 財利)을 섭수(攝受)함이요, 법식(法食 : 출세간의 法利)을 섭수함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세존이시여, 무슨 까닭으로 로가야타의 여러 가지 변설을 친근하거나 공양하면, 욕식을 섭수함이요, 법식을 섭수함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부처님께서 대혜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로가야타의 여러 가지 변재와 교묘한 말과 글귀는 세간을 미혹함이요, 진여(眞如)법에 의하여 말함이 아니며, 참다운 뜻[義]에 의하여 말함이 아니요, 다만 세간의 어리석은 범부의 정(情)에 좋아하는 바를 따라서 세속의 일만을 말함이며, 다만 공교로운 말로서, 말과 글귀가 아름답고 교묘할 뿐이요, 정의(正義)를 잃었으니 대혜여, 이를 로가야타의 여러 가지 변재로 말하기를 좋아하는 허물이라 이름한다.

 

대혜여, 로가야타의 이와 같은 변재는 다만 세간의 어리석은 범부를 포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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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이요, 여실한 법성(法性)에 들어가서 설법함은 아니다.

 

그는 일체법을 스스로 깨달아 알지 못했으므로 두 변(邊)인 사견(邪見) 더미 가운데에 떨어져, 자기도 정도(正道)를 잃고, 또한 다른 사람까지 잃게 한다. 그러므로 능히 모든 취(趣)에서 윤회(輪廻)함을 벗어나지 못하니, '오직 자심(自心)뿐임'을 보지 못하고, '바깥 법의 모양이 있다'는 것에 분별하며 집착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허망하게 분별함을 떠나지 못한다.

 

대혜여, 그러므로 나는 '로가야타가 비록 여러 가지 교묘한 변재로 모든 법을 말하기 좋아함이 있으나, 바른 이치를 잃었으므로 생(生) · 노(老) · 병(病) · 사(死)와 우(憂) · 비(悲) · 고(苦) · 뇌(惱)의 모든 고(苦)의 더미를 벗어나지 못하고, 여러 가지 명자(名字)와 글귀와 비유와 공교로운 말에 의하여 사람을 미혹하고 속인다'라고 말한다.

 

대혜여, 석제환인(釋提桓因)이 여러 논(論)을 널리 짓고, 스스로 성론(聲論)을 지었는데, 저 로가야타의 한 제자가 세간의 신통(神通)을 증득하고, 제석천궁에 올라가서 논법(論法)을 내세우면서 말하기를, '교시가(憍尸迦)여, 내가 그대와 함께 내기를 하겠으니, 그대와 논의하여 만약 이기지 못하면 굴복하기로 다짐하겠다'라고 하고, 일체 천인(天人)으로 하여금 지켜보게 하여, 곧 함께 다짐하기를, '내가 만약 그대를 이기면, 그대의 천 수레바퀴[千輻輪]를 부셔버릴 것이요, 내가 만약 이기지 못하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마디마디를 끊어서 그대에게 사과하겠다'라고 하였다. 로가야타의 제자는 용의 몸을 나타내어 석제환인과 논의하여 그의 논법으로 곧 능히 저 석제환인을 이기고, 그로 하여금 굴복하게 하고서 곧 하늘에서 천 수레바퀴를 부수기를 작은 티끌 같이하고, 즉시 인간에 내려왔다.

 

대혜여, 로가야타의 바라문은 이와 같이 여러 가지 비유에 맞게 축생(畜生)의 몸까지 나타내고 여러 가지 명자에 의하여 세간의 천인(天人)과 아수라(阿修羅)를 미혹시키며, 세간의 일체 중생들로 하여금 생멸(生滅)법에 집착하게 하는데, 어찌 사람뿐이겠는가?

 

대혜여, 이러한 뜻으로 마땅히 로가아타의 바라문을 멀리할 것이니, 저 말을 따르면 능히 고(苦)의 더미가 생기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마땅히 로가아타의 바라문을 친근하며 공양하여 물으며 청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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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것이다.

 

대혜여, 로가아타의 바라문이 말한 바 법은 다만 현전(現前)하는 몸의 지혜[身智]의 경계만을 보고서 세속의 명자에 의하여 삿된 법을 말함이다.

 

대혜여, 로가야타의 바라문이 지은 바 논(論)은 백천 게송이 있는데, 후세 말세에 나누어져서 많은 부(部)가 되어 각각 이름은 다르지만, 그는 자심의 견인(見因)에 의하여 지은 것이다.

 

대혜여, 로가야타의 바라문에게는 제자로서 그의 논법을 받을 리가 없기 때문에, 후세에 나누어져서 많은 부의 여러 가지 다른 이름이 된 것이다.

 

대혜여, 외도들의 속마음은 여실한 알음이 있지 않기 때문에 여러 가지 인(因)과 여러 가지 다른 알음에 의하여 제 마음대로 만들어내어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며, 자재(自在)와 인(因) 등에 집착한다.

 

대혜여, 일체 외도의 지은 논 가운데는 이러한 법은 없고, 오직 이 모든 로가야타의 여러 가지 인문(因門)에서 백천만 법을 말한 것이지만, 그러나 그는 이 로가야타임을 알지 못한다."

 

대혜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만약 일체 외도가 오직 로가야타만을 말하여, 세간의 여러 가지 명자와 글귀와 비유에 의하여 모든 인(因)에 집착한다면 세존이시여, 시방(十方) 일체 국토의 중생과 천인과 아수라들이 부처님 계신 곳에 모이면, 여래께서 또한 세간의 여러 가지 명자와 글귀와 비유로서 설법하시고, 자신이 안으로 증득하신 법을 말씀하지 아니하신다면, 또한 일체 외도의 말한 바와 같아서 다르지 않겠습니다."

 

부처님께서 대혜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로가야타를 말하지 아니하며, 또한 모든 법이 오지 않고 가지 아니함도 말하지 아니한다.

 

대혜여, 내가 말한 모든 법이 오지 않고 가지 않는다[不來不去]고 하는 것은 대혜여, 어떤 것을 오는 것이라 이름함인가? 대혜여, 이른바 오는 것이란 생취(生聚)이니, 화합하여 생긴 것이다.

 

대혜여, 어떤 것을 가는 것이라 이름함인가? 대혜여, 이른바 가는 것이란 이름하여 멸(滅)함이라 한다.

 

                                                                                                                         [174 / 415] 쪽

대혜여, 내가 말한 '가지 않고 오지 않는 것'이란 불생불멸(不生不滅)이라고 이름한다.

 

대혜여, 나의 말함은 저 외도의 법과 같지 않으니, 무슨 까닭인가? 외물(外物)이 있고 없는 것에 집착하지 아니한 까닭이며, 자심의 견(見)임을 내세워 말한 까닭이며, 두 곳[處]에 머무르지 않고, 모든 상(相)과 경계를 분별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능히 공(空) · 무상(無常) · 무원(無願)의 3해탈문에 들어가니, 이를 '해탈이 된다'고 이름한다.

 

대혜여, 나는 기억하고 있다. 과거 어느 곳에 있을 적에, 그 때 어느 로가야타의 큰 바라문이 있어 나의 처소에 와서 나에게 청하여 말하였다.

 

'구담(瞿曇)이여, 모든 것은 짓는 것인가?'

 

대혜여, 나는 그 때 대답하여 말하였다.

'바라문이여, 모든 것은 짓는 것이라 함은 첫 번째의 로가야타이다.'

 

바라문은 말하였다.

'구담이여, 모든 것은 짓는 것이 아닌가?'

 

나는 그 때 대답하여 말하였다.

'모든 것은 짓는 것이 아니라 함은 두 번째의 로가야타이다.'

 

그는 이와 같이 말하였다.

'모든 것은 항상됨[常]인가? 일체 무상(無常)함인가? 일체 생(生)함인가? 일체 불생(不生)인가?'

 

나는 그 때 대답하여 말하였다.

'바라문이여, 이는 여섯 번째의 로가야타이다.'

 

대혜여, 그 로가야타는 또한 나에게 말하였다.

'고타마여, 모든 것은 같음인가? 다름인가? 모든 것은 갖추어져 있는가? 모든 것은 갖추어지지 않았는가? 모든 것은 여러 법이 인(因)에 의하여 생기고, 여러 가지 인(因)으로 생김을 보는가?'

 

대혜여, 나는 그 때 대답하여 말하였다.

'바라문이여, 이는 열 한 번째의 로가야타이다.'

 

대혜여, 그는 또한 나에게 물었다.

'구담이여, 모든 것은 무기(無記)인가? 모든 것은 유기(有記)인가? 내

 

                                                                                                                           [175 / 415] 쪽

[我]가 있는가? 내가 없는가? 이 세상이 있는가? 이 세상이 없는가? 후세가 있는가? 후세가 없는가? 해탈이 있는가? 해탈이 없는가? 모든 것은 공(空)인가? 모든 것은 공이 아닌가? 모든 것은 허공인가? 모든 것은 연멸(緣滅)이 아닌가? 열반인가? 구담이여, 짓는 것인가? 짓는 것이 아닌가? 중음(中陰)이 있는 것인가? 중음이 없는 것인가?'

 

대혜여, 나는 그 때 대답하여 말하였다.

'바라문이여, 이와 같이 말한 것은 모두 로가야타이며, 내가 말한 바가 아니요, 바로 그대의 설법이다.

 

바라문이여, 나는 말하기를 끝없는 희론과 허망한 분별과 번뇌로 훈습함을 따르기에 저 3유(有)를 말함이니, 오직 이 자심의 분별로 나타나있는 것임을 깨지 못한 것이다. 바깥 법이 있는 것을 보는 것이 외도법과 같은 것은 아니다.'

 

대혜여, 외도는 말하기를, 아(我)와 근(根)과 의의(意義)인 세 가지가 화합하여 능히 알음을 낸다고 하였으나 나는 이와 같지 아니하며, 나는 인(因)을 말하지도 않으며, 또한 인(因)이 없다고 말하지도 아니하고, 오직 자심의 분별로서 가히 취함[可取]과 능히 취하는[能取] 경계의 상(相)이 있는 것을 본 것이라고 말하였으며, 또한 '거짓 이름인 인연의 모임으로 모든 법이 생긴다'라고 말하였다.

 

그는 그 때 바라문 및 다른 경계도 아니니, 아견(我見)에 떨어졌기 때문이다.

 

대혜여, 열반과 허공과 연멸(緣滅)이 3수(數)를 이룬 것이 아니거늘, 하물며 짓는 것과 지음과 지음 아닌 것이 있다고 말하겠는가.

 

대혜여, 또한 로가야타의 바라문이 있어 나에게 와서 물어 말하였다.

'고타마여, 세간의 무명(無明)과 애착(愛)과 업(業)의 인(因)으로 3유(有)가 생겼는가? 인(因)이 없는 것인가?'

 

나는 그 때 대답하여 말하였다.

'바라문이여, 이는 두 법인 로가야타요, 나의 법이 아니다.'

 

바라문이 다시 나에게 물어 말하였다.

 

                                                                                                                           [176 / 415] 쪽

'고타마여, 일체법이 자기 모양과 같은 모양에 떨어진 것인가?'

 

나는 그 때 대답하여 말하였다.

'바라문이여, 이는 로가야타요, 나의 법이 아니다. 바라문이여, 다만 심(心)과 의(意)와 의식(意識)이 외물(外物)에 집착함이 있으면 모두 이 로가야타요, 나의 법이 아니다.'

 

대혜여, 로가야타인 바라문은 또한 나에게 물어 말하였다.

'고타마여, 혹 어떤 법이 로가야타 아닌 것이 있는가? 고타마여, 일체 외도가 여러 가지 명자와 글귀와 인(因)과 비유를 건립하여 말한 것은 모두 우리의 법이다.'

 

나는 그 때 대답하여 말하였다.

"바라문이여, 법이 그대의 법 아님이 있으며, 건립하지 않은 것도 아니며, 또한 여러 가지 명자와 글귀를 말하지 않은 것도 아니며, 또한 뜻에 의하고 뜻에 의하여 말하지 아니함도 아니지만, 로가야타가 건립한 법은 아니다. 바라문이여, 법에는 로가야타가 아님이 있다.

 

저 법은 모든 외도나 그대도 요달하여 알지 못할 것이니, 허망하게 바깥 진실 아닌 법과 분별과 희론에 집착하였기 때문이다.

 

어떤 것을 분별하는 마음을 멀리 떠난 것이라 하는가? 있음과 없음이란 자심에서 나타난 모양임을 관찰하여 여실히 깨달음이니, 그러므로 일체 분별을 내지 아니하며, 바깥 모든 경계인 법을 취하지 아니하여 분별하는 마음이 쉬고, 스스로 머무를 곳인 고요한 경계에 머무르니, 이를 로가아탸가 아니라고 이름한다. 이는 나의 말하는 법이요, 그대의 말함은 아니다.

 

바라문이여, 스스로 머무를 곳에 머무르는 것이란 불생불멸(不生不滅)이니, 불생불멸이란 것은 분별하는 마음을 내지 않는 것이다. 바라문이여, 이를 로가야타가 아니라고 이름한다.

 

바라문이여, 간략하게 말하건대 어떠한 곳이 식(識)이 행하지 아니하며, 취하지 아니하며, 물러가지 아니하며, 구하지 아니하고 생하지 아니하며, 집착하지 아니하며, 좋아하지 아니하며, 보이지 아니하며, 보지 아니하며, 머무르지 아니하며, 부딪히지 아니함이 머무름이 된다고 함이니, 이름은 다르나 뜻은 같다.

 

                                                                                                                         [177 / 415] 쪽

바라문이여, 여러 가지 모양에 집착함, 자아(自我)가 애착인 모든 인(因)에 화합한 것은 이 바라문인 로가야타의 법이요, 나의 법이 아니다.'

 

대혜여, 로가야타의 바라문이 나의 처소에 와서 이러한 법을 묻기에, 나는 그 때 그에게 대답하였다.

'바라문이여, 아까 말한 바와 같다.'

 

그 때 바라문은 말 없이 가면서, 나에게 참다운 법[眞法]을 건립함을 묻지 아니하였다.

 

그 때 바라문은 마음속으로 이러한 생각을 하기를, '이는 사문(沙門)이며 석자(釋子)는 우리 법엔 등졌으니 이는 참으로 불쌍하다. 그는 일체법에 인(因)이 없고, 연(緣)이 없고, 생(生)하는 모양이 없다고 말하면서, 자심의 분별로 나타난 법으로, 만약 능히 자심의 나타난 모양임을 깨달으면, 분별하는 마음이 없어진다'라고 하였다.

 

대혜여, 그대는 지금 나에게 '무슨 까닭으로 로가야타의 여러 가지 변설을 친근 · 공양 · 공경하면 그 사람은 다만 욕미(欲味)만을 섭수하고 법미(法味)를 섭수함이 아니라고 합니까'라고 묻는가?

 

대혜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어떤 것을 식구(食句)라 이름하며, 어떤 것을 법구(法句)라 이름합니까?"

 

부처님께서 대혜보살에게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훌륭한 대혜여, 그대는 능히 미래 중생을 위하여 여래에게 이와 같은 두 뜻을 묻는구나.

착하다. 대혜여, 자세히 듣고 자세히 들어라. 내 그대를 위하여 말할 것이다."

 

대혜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어지신 세존이시여, 가르치심을 잘 받겠습니다."

 

부처님께서 대혜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어떤 것이 식(食)이 되는가? 식미(食味)와 촉미(觸味)이니, 구할 방편을 좋아하여 공교로움과 아첨으로 맛을 붙여 바깥 경계에 집착함이니, 이와 같은 법들은 이름은 다르나 뜻은 같으니, 능히 둘이 없는 경계인 법문의 뜻[義]

 

                                                                                                                          [178 / 415] 쪽

에 들어가지 못한 까닭이다.

 

대혜여, 또한 식(食)이라고 이름한 것은 사견(邪見)에 의하여 음(陰) · 유(有)의 갈래가 생겨 생(生) · 노(老) ·병(病) · 사(死)와 우(憂) · 비(悲) · 고(苦) · 뇌(惱)를 떠나지 못하여 애착이 유(有)에서 나니, 이러한 법들을 식(食)이 된다고 이름한다.

 

그러므로 나와 일체 부처님께서는 저 로가야타의 바라문을 친근 · 공양하는 것은 식미만을 얻고, 법미는 얻지 못한다고 말한다.

 

대혜여, 어떤 것이 법미(法味)가 되는가? 여실히 두 가지 무아(無我)를 알아서 인무아(人無我)와 법무아(法無我)의 모양을 보았기 때문에, 그러므로 분별하는 상(相)을 내지 아니하며, 여실히 모든 지위의 상상(上上) 지혜를 능히 알기 때문에, 그 때는 능히 심(心) · 의(意) · 의식(意識)을 떠나서 여러 부처님의 지혜와 지위를 주시는 땅에 들어가서 모든 구가 다한 곳[無盡句]을 섭취하며, 여실히 일체 부처님의 자재(自在)한 곳을 능히 알 것이니, 법미가 된다고 이름한다. 그는 일체 사견(邪見)과 희론 분별인 두 변(邊)에 떨어지지도 않는다.

 

대혜여, 외도의 설법은 흔히 중생으로 하여금 두 변에 떨어지게 아니할 것이니, 무슨 까닭인가?

 

대혜여, 외도들은 흔히 단(斷)과 상(常)을 말하니, 인(因)이 없기 때문에 상견(常見)에 떨어지며 인(因)이 멸함을 봄으로 단견(斷見)에 떨어진다.

 

대혜여, 내가 말한 여실견(如實見)은 생멸(生滅)에 집착하지 않음이니, 그러므로 나는 법미가 된다고 말한다.

 

대혜여, 이것을 내가 말한 식미와 법미라고 이름함이다.

 

대혜여, 그대와 여러 보살마하살은 마땅히 이 법을 배울 것이다."

 

그 때 세존께서는 거듭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나는 중생을 섭취(攝取)하는데

계(戒)로서 모든 악을 항복 받고

지혜로 사견(邪見)을 없애니

3해탈이 증장(增長)하네.

 

                                                                                                                          [179 / 415] 쪽

외도의 허망하게 말함은

모두 세속에서 논함이니,

사견의 인과(因果)로서

정견(正見)없이 세운 말이었네.

내가 건립한 법이란

허망한 인연의 견해를 떠나서

제자를 위해 말함이며

세속 법을 떠난 것이네.

마음 뿐이요, 바깥 법이 없으니

2변(邊)의 마음인

능취(能取)와 가취(可取)가 없는 법으로

단상(斷常)의 견해 떠났다네.

마음이 행하는 곳이란

모두 세속에서 논함이니,

만약 자심(自心)을 관찰하면

모든 허망함을 보지 않으리.

오는 것은 인(因)의 생함을 본 것이며

가는 것은 과(果)의 멸함을 본 것이니,

여실히 거래(去來)를 알아서

허망을 분별 아니하리.

상(常)과 무상(無常)과 짓는 것을

피차(彼此)의 물건으로 여기지 말 것이니,

이와 같은 모든 법은

모두 세속론이라네.

 

                                                                                                                           [180 / 415] 쪽

6. 열반품(涅槃品)

 

그 때 거룩한 대혜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열반을 말씀하신 바와 같이 열반이란 것은 어떠한 법들로서 열반이라 이름합니까? 외도들도 각각 열반을 허망하게 분별하였습니다."

 

부처님께서 대혜보살에게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대혜여, 자세히 듣고 자세히 들어라. 마땅히 그대를 위하여 말하리라. 모든 외도들은 허망하게 열반의 모양을 분별하니, 저와 같은 외도의 분별하는 바는 이 열반이 아니다."

 

대혜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어지신 세존이시여, 가르치심을 잘 받겠습니다."

 

부처님께서 대혜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어떤 외도는 모든 경계를 싫어하며, 음(陰) · 계(界) · 입(入)을 보고 모든 법의 무상(無常)한 것을 없애고, 심(心)과 심수(心數)법이 나지 않으며, 현전(現前)에 과거와 미래와 현재의 즐거운 경계도 생각하지 아니하여 모든 음(陰)이 없어진 곳은 등불이 꺼지고, 여러 가지 바람도 그침과 같아서 모든 상(相)을 취하여 망상(妄想)으로 분별하지 않는 것을 열반이 된다고 이름한다.

 

대혜여, 저 외도는 이와 같은 법을 보고 열반이라는 생각을 낸 것이요, 견(見)이 없어지므로 열반이 된다고 이름하는 것은 아니다.

 

대혜여, 혹 어떤 외도는 방(方)으로부터 방(方)에 이르는 것을 열반이 된다고 이름한다.

 

대혜여, 또한 어떤 외도는 모든 경계가 바람과 같다고 분별하니, 그러므로 분별이 열반이 된다고 이름한다.

 

대혜여, 또한 어떤 외도는 말하기를, 능견(能見)과 소견(所見)인 경계를 보지 아니하여 없어지지 않음[不滅]이 열반이 된다고 이름한다.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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