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가경(楞伽經)

170-5-입능가경-17

근와(槿瓦) 2015. 11. 11. 01:46

170-5-입능가경-17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161 / 415] 쪽

누에가 고치로 자기를 얽음과 같으니,

자심의 망상이 속박하는데도

범부는 그를 능히 알지 못하네.

 

대혜보살이 부처님께 다시 아뢰었다.

"세존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아서 어떠한 분별심(分別心)들로서 어떠한 법들을 분별하는데, 저것과 저것의 법은 저것의 이와 같고 이와 같은 체상(體相)이 없고, 오직 자심의 분별뿐이라고 하셨습니다.

 

세존이시여, 만약 오직 자심의 분별 뿐이요, 저 법상이 아니라면, 세존의 말씀과 같이 일체 모든 법은 염(染)과 정(淨)이 없겠으니, 무슨 까닭인가? 여래께서 말씀하시기를, '일체 모든 법은 허망한 분별로 나타난 것이요, 실체(實體)가 없다'라고 하신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 대혜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이와 같고 이와 같아서 그대의 말한 바와 같다.

 

대혜여, 일체 어리석은 범부는 모든 법을 분별하지만, 저 모든 법은 이와 같은 상이 없는 것이요, 허망한 분별로서 '실로 있다'라고 한 것뿐이다.

 

대혜여, 그는 범부들이 허망하게 모든 법의 체상(體相)을 분별함인 허망한 각지(覺知)인 것이요, 여실한 견(見)은 아니다.

 

대혜여, 성인의 일체 모든 법의 자체와 성질과 모양을 아는 것과 같이하여 성인의 지혜에 의지하며, 성인의 견해에 의지하며, 성인의 혜안(慧眼)에 의지하여 여실히 모든 법의 자체를 알 것이다."

 

대혜보살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세존이시여, 여러 성인들과 같이 성지(聖智)에 의하고, 성견(聖見)에 의하고, 성혜안(聖慧眼)에 의하면 육안(肉眼)과 천안(天眼)이 아니며, 일체 모든 법의 체상을 깨달음도 이와 같은 상(相)이 없어서 범부의 허망한 분별과 같지 아니할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어찌하면 어리석은 범부로서 허망한 망상(妄想)을 떠나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대혜보살에게 말씀하셨다.

 

                                                                                                                       [162 / 415] 쪽

"능히 여실하게 성인의 경계를 깨달아서 허망한 식(識)을 떠나야 할 것이다."

 

대혜보살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저 어리석은 범부는 전도(顚倒)된 견(見)이 아니며, 전도되지 않은 견도 아니니, 무슨 까닭인가? 능히 성인의 경계인 여실한 법체를 보지 못하고 전변하는 유무(有無)의 상을 보기 때문입니다."

 

대혜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일체 성인도 또한 분별함이 있으나, 일체 여러 가지의 모든 일은 이와 같은 상이 없으니, 자심에서 경계상을 보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저 성인도 법체(法體)가 있음을 보고 법상(法相)을 분별하지만, 세존께서는 인(因)이 있다고 말씀하지 아니 하시며, 인이 없다고도 말씀하지 아니 하시니, 무슨 까닭인가? 법상(法相)이 있다는 데에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은 경계를 보되 이와 같이 보지 아니합니다.

 

세존이시여, 이와 같이 말하는 것은 무궁(無窮)한 허물이 있을 것이니, 무슨 까닭인가? 있는 바 법상은 자체상(自體相)이 없는 것임을 깨닫지 못한 까닭입니다.

 

세존이시여, 법의 체상이 있다고 분별함을 인하여 모든 법이 있는 것은 아니옵니다.

 

세존이시여, 그는 어찌 분별함에 저와 같이 분별하지 아니하는지, 마땅히 저와 같이 분별함에 저와 같이 분별하지 아니하는지, 마땅히 저와 같이 분별하여야 할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분별상(分別相)이 다른 모양이며, 자체상(自體相)도 다른 모양입니다.

 

세존이시여, 저 두 가지 원인은 서로 같지 아니하여 저것과 저것의 분별과 법체가 서로 다른데, 어찌하여 범부는 이와 같이 분별하는지, 이의 인(因)은 성립하지 못한 것이 저 보는 바와 같습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일체 중생의 허망한 분별심(分別心)을 끊기 위하므로 이와 같은 말을 하기를, 저 범부의 허망한 분별과 같은 이러한 법은 없다'라고 하셨습니다.

 

                                                                                                                         [163 / 415] 쪽

세존이시여, 무슨 까닭으로 모든 중생의 유(有)와 무(無)로 보는 일을 막으시면서 실법(實法)인 거룩한 지혜의 경계에 집착하게 하십니까?

 

세존이시여, 또한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무(無)의 견해에 떨어지게 합니까? 무슨 까닭인가? 모든 법은 고요하여 모양이 없고, 거룩한 지혜의 법체(法體)는 이와 같은 상(相)이 없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 대혜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일체 모든 법이 고요하여 모양이 없다고 말하지 아니 하였으며, 또한 모든 법이 모두 없다고 말하지 아니하여 그들로 하여금 무(無)의 견해에 떨어지게 아니하였으며, 또한 일체 성인의 경계가 이와 같은 데에 집착하게 아니하였으니, 무슨 까닭인가? 내가 중생을 위하여 놀래는 것과 두려워함을 떠나게 함이니, 모든 중생이 끝없는 세월로 오면서 모든 법의 체상(體相)이 실로 있다고 집착하기 때문에, 그러므로 나는 '성인만이 법의 체상이 실로 있는 것을 안다'라고 말하였으며, 또한 '모든 법이 고요하여 모양이 없다'라고 말하였다.

 

대혜여, 나는 '법체가 있다 · 없다'라고 말하지 아니하고, 나는 '자신의 여실히 증득하는 법'을 말하니, 나의 법을 듣고 모든 법이 고요하여 모양이 없는 것을 수행하면 진여(眞如)의 모양이 없는 경계를 얻어 보고, 제 마음에서 나타난 법에 들어가서 바깥 모든 법의 있다 없다고 보는 것을 멀리 떠나고 3해탈문을 얻을 것이며, 얻고는 여실한 인(印)으로 모든 법을 잘 인(印)하며, 자신이 안으로 증득하는 지혜를 관찰하여 있다 없다라고 보는 것을 떠날 것이다.

 

대혜여, 보살은 마땅히 모든 법이 생(生)하지 않는다고 내세우지 아니할 것이니, 무슨 까닭인가? 법을 내세우면 모든 법이 있는 것과 같을 것이며, 만약 그렇지 않는다면 모든 법이 없는 것과 같을 것이다.

 

대혜여, '모든 법이 있다'라고 내세움으로 인하여 일체법이란 내세우는 법 가운데서 같다고 말함이니, 무슨 까닭인가? 그는 같지 않다고 하여 일체법이 생함이 아니라고 내세운 까닭이다.

 

그러므로 일체법을 내세우며 말하는 이 말은 저절로 깨진다. 무슨 까닭인가? 내세우는 가운데 저 내세움이 없는 까닭이다.

 

                                                                                                                         [164 / 415] 쪽

만약 그렇지 않다고 해도 저 내세움은 나지 않으리니, 모든 법의 차별이 없는 모양과 같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모든 법이 생함이 아니라고 내세우는 것은 저절로 깨짐이라 이름함이니, 그는 3법과 5법이 화합하여 있는 것을 내세운 것이기 때문에 내세운 것을 떠나면 있음과 없음이 나지 않는다.

 

대혜여, 저의 내세움은 모든 법 가운데에 들어가서 있고 없는 법을 보지 않은 것이다.

 

대혜여, 만약 그가 '모든 법이 생함이 아니라'라고 내세워서 말하기를, '일체법은 생함이 아니라'라고 한다면, 대혜여, 이와 같이 말하는 이는 내세우는 것이 곧 깨지리니, 무슨 까닭인가? 내세우는 것을 떠나면 있고 없는 모양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대혜여, 그러므로 마땅히 모든 법이 생함이 아니라고 내세우지 말 것이니, 대혜여, 그의 내세움은 '저 일체가 생하지 않는 법체이다'라고 하는 것과 같은 까닭이다.

 

그러므로 마땅히 '모든 법이 생함이 아니다'라고 내세우지 말 것이니, 많은 허물이 있기 때문이다.

 

대혜여, 또한 마땅히 '모든 법이 생함이 아니라'라고 내세우지 말 것이니, 무슨 까닭인가? 3법과 5법의 저것과 저것의 인(因)이 같지 아니하기 때문이다.

 

대혜여, 또한 마땅히 '모든 법이 생함이 아니다'라고 내세우지 말 것이니, 무슨 까닭인가? 저 3법과 5법이 함이 있는 무상(無常)을 짓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마땅히 '모든 법이 생함이 아니다'라고 내세우지 말 것이다.

 

대혜여, 이와 같이 마땅히 '일체법이 공(空)하며 일체 모든 법이 환과 같고 꿈과 같다'라고 말하니, 보지 못한 모양을 보았기 때문이며, 모든 법의 모양이란 미혹한 견(見)과 지혜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마땅히 환과 같고 꿈과 같다고 말하는 것이며, 오직 일체 어리석은 범부들로 하여금 놀래고 두려워함을 떠나게 함이다.

 

대혜여, 모든 범부는 있다 없다고 하는 사견(邪見)에 떨어져 있으므로 범부들은 환과 같고 꿈과 같다고 하는 것을 들으면, 놀래고 두려워한다.

 

                                                                                                                          [165 / 415] 쪽

모든 범부는 듣고 놀래며 두려워하고는, 대승법을 멀리 떠날 것이다."

 

그 때 세존께서 거듭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자체(自體)도 없고 식(識)도 없으며

아리야식(阿梨耶識)도 없는데,

어리석은 이 허망하게 분별하니,

사견(邪見)은 더러운 시체와 같네.

일체법이란 생함이 아니니

딴 견해로 말이 될 수 없네.

모든 법은 모두 생함이 아니기에

인연으로 이루워짐도 아니네.

일체법은 생함이 아니니,

이와 같은 법을 세우지 말라.

같음과 같음 아님이 이루지 못하니

그러므로 세움이 무너지네.

비유컨대 눈에 병이 있으면

허망하게 털 바퀴를 보는 것과 같아,

있다 없다 분별함은

범부의 허망한 견해라네.

3유(有)란 거짓 이름이며,

진실한 법체가 아니거늘

거짓 이름을 진실인양 고집하여

범부들이 분별을 일으키네.

일과 모양과 거짓 이름이여

 

                                                                                                                         [166 / 415] 쪽

마음과 뜻으로 수용하니,

불자는 그를 멀리 떠나서

고요한 경계에 머물러야 하네.

물이 없는데서 물이라고 여김은

짐승들의 허망한 생각이니,

범부의 법을 보는 것이 그러하지만

성인은 그렇지 않다네.

성인은 보는 것이 청정하여

3해탈과 삼매에 나서

생멸(生滅)을 멀리 떠나고

걸림 없는 고요함을 얻었다네.

수행함도 있는 바 없으며,

또한 없는 것도 보지 않아

있고 없는 법 평등하기에

그러므로 성과(聖果)가 난 것이라네.

있고 없는 법은 어떠한데

어찌하여 평등을 이루는가?

그는 마음에서 보지 않음이다.

안과 바깥 법은 무상(無常)하니,

만약 저 법을 능히 없애면

마음을 보고 평등을 이루리라.

 

그 때에 거룩한 대혜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다면, 지혜로 관찰함은 능히 눈앞

 

                                                                                                                          [167 / 415] 쪽

의 경계인 모든 법을 보지 못하고, 그 때엔 오직 내심(內心)임을 잘 알며, 심(心) · 의(意) · 의식(意識)을 여실히 깨달아서 법을 가히 취함이 없으며, 또한 능히 취함이 없으니, 그러므로 지혜는 또한 능히 분별하여 취할 것이 아니옵니다.

 

세존이시여, 만약 '지혜를 능히 취할 것이 아니다'라고 말한다면, 모든 법의 자기 모양과 같은 모양과 다르고, 다른 법의 모양과 여러 가지 다른 법체가 같지 아니함을 보기 때문에 지혜로 능히 알지 못한 것입니까?

 

모든 법의 여러 가지 체상(體相)이 다르지 아니함을 보기 때문에 지혜로 능히 알지 못한 것입니까?

 

산과 바위와 석벽과 담과 장막과 나무숲과 풀과 나무와 땅과 물과 불과 바람의 장애한 바이기 때문에, 지혜로 능히 알지 못한 것입니까?

 

아주 멀고 아주 가까운 곳이기 때문에 지혜로 능히 알지 못한 것입니까?

 

늙은이와 젊은이가 눈멀고 어두워서 모든 근(根)을 갖추지 못하였기 때문에, 지혜로 능히 알지 못한 것입니까?

 

세존이시여, 만약 일체법의 다르고 다른 법상(法相)과 다르고 다른 법체(法體)와 자기 모양과 같은 모양이 같지 않음으로 지혜로 능히 알지 못한 것이라면, 세존이시여, 만약 그렇다면 저 지혜는 지혜가 아니오니, 무슨 까닭인가? 눈앞의 사실인 경계를 능히 알지 못한 까닭입니다.

 

세존이시여, 만약 일체법의 여러 가지 체상(體相)과 자기 모양과 같은 모양에 다름을 보지 아니하기 때문에 지혜로 능히 알지 못한 것이어서, 만약 그렇다면 저 지혜는 지혜라 말하지 못하리니, 무슨 까닭인가? 사실로 있는 경계를 능히 알지 못한 까닭입니다.

 

세존이시여, 눈앞의 경계가 있는데, 여실히 보는 것을 지혜가 된다고 이름하며, 만약 산과 바위와 석벽과 담과 장막과 나무숲과 풀과 나무와 땅과 물과 불과 바람으로서 아주 멀고 아주 가까우며, 늙은이와 젊은이가 눈멀고 어두워서 모든 근(根)을 갖추지 못함으로서 능히 알고 보지 못한다면, 저 지혜는 지혜가 아니니, 사실인 경계가 있는데도 알지 못한 까닭입니다."

 

부처님께서 대혜보살에게 말씀하셨다.

"그대가 말한 바와 같아서 '지혜가 없다'라고 말한 이 뜻은 옳지 않으니, 무

 

                                                                                                                          [168 / 415] 쪽

슨 까닭인가? 진실한 지혜는 있기 때문이다.

 

대혜여, 나는 그대가 이와 같이 말한 '경계는 없는 것이요, 오직 자심(自心)의 견(見)이다'라고 하는 것에 의하지 아니하고, 나는 '오직 자심의 견임을 깨닫지 못하고 모든 외물(外物)을 보고 있다 없다고 한다'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지혜는 경계를 보지 아니한다.

 

지혜로서 경계를 보지 아니한 이는 마음에도 행하지 않으니, 그러므로 나는 '3해탈문에 들어가는 지혜로 또한 볼 수 없다'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모든 범부는 끝없는 세월로 오면서 허망하게 분별하여 희론(戱論)으로 훈습함에 의하여 그 마음을 훈습함으로 이와 같이 분별하여 바깥 경계의 형상과 있음과 없음을 보니, 이와 같은 허망한 마음을 떠나게 하기 위하므로, '일체법이 오직 자심의 견이다'라고 말하였다.

 

나와 내 것이라 함에 집착하므로 오직 자심임을 능히 깨닫지 못하고, '이는 지혜이며, 이는 경계이다'라고 허망하게 분별한다. '이는 지혜이며, 이는 경계이다'라고 허망하게 분별하므로 바깥의 법을 관찰하기를, 있음과 없음은 보지 못하고 단견(斷見)에 떨어진다."

 

그 때 세존께서 거듭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모든 경계와 일이 있는데도

지혜로 능히 보지 못하니,

그는 지혜가 없어 지혜가 아니요.

허망하게 보는 이의 말이다.

모든 법 한량없다 말함도

이 지혜로 능히 알지 못함이요,

장애와 멀고 가까움이라 함도

이는 허망한 지혜며 참 지혜가 아니네.

늙은이와 젊은이, 모든 근(根)이 어두워

능히 지혜를 내지 못하네.

 

                                                                                                                           [169 / 415] 쪽

그러나 실로 경계가 있어

그 지혜는 진실한 지혜가 아니네.

 

대혜여, 어리석은 범부는 끝없는 몸과 희론인 번뇌와 분별인 번뇌와 환상인 몸에 의하여 '자체법[自法]이다'라고 세우고, 자심이 바깥 경계를 나타내는 것에 집착하며, 명자(名字)와 글귀와 말에 집착하여 능히 정법(正法)을 건립할 줄 알지 못하며, 바른 행[正行]을 닦지 아니하고 네 가지 구(句)인 청정한 법을 떠난다."

 

대혜보살이 말하였다.

"이와 같습니다. 이와 같습니다. 이와 같습니다. 세존이시여, 세존의 말씀과 같습니다.

 

세존이시여, 저희를 위하여 설법하실 바 법상(法相)을 건립함을 말씀해 주십시오.

 

저희와 일체 보살들이 미래 세상에 설법을 건립하는 모양을 잘 알면, 외도의 사견(邪見)과 성문과 벽지불의 바르지 못하게 보는 법에 미혹하지 않겠습니다."

 

부처님께서 대혜보살에게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훌륭한 대혜여, 자세히 듣고 자세히 들어라. 내가 그대를 위하여 말할 것이다."

 

대혜보살이 말하였다.

"어지신 세존이시여, 가르치심을 잘 받겠습니다."

 

부처님께서 대혜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두 가지 과거와 현재의 여래 · 응공 · 정변지의 설법이 있으니, 무엇이 두 가지인가? 첫째는 설법을 건립하는 모양이요, 둘째는 여실한 법을 건립하는 모양이다.

 

대혜여, 어떤 것이 설법을 건립하는 모양인가? 여러 가지 공덕과 수다라(修多羅)와 우바제사(優波提舍)로 중생의 신심(信心)을 따라서 설법하

 

                                                                                                                           [170 / 415] 쪽

니, 대혜여, 이를 설법을 건립하는 모양이라 한다.

 

대혜여, 어떤 것이 여실한 법을 건립하는 모양인가? 어떠한 법에 의지하여 바른 행을 닦고, 자심(自心)이 모든 법을 허망하게 분별함을 멀리 떠나므로 같음과 다름, 갖춤과 갖추지 못함인 붕당(朋黨) 더미에 떨어지지 아니하고, 심(心) · 의(意) · 의식(意識)을 떠나서 안으로 거룩한 지혜로 행할 바인 경계를 증득하고, 인연이 서로 합하는 견해도 떠나며, 일체 외도의 삿된 견해를 떠나고, 일체 성문과 벽지불의 견해를 떠나며, 있다 없다고 하는 붕당의 견해를 떠남이니, 대혜여, 이를 여실한 법을 건립하는 모양이라 이름한다.

 

대혜여, 그대와 여러 보살마하살은 마땅히 닦고 배울 것이다."

 

그 때 세존께서 거듭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내가 두 가지 법인

설법과 여실한 법을 건립하였으니,

명자(名字)에 의하여 설법함이며

여실한 수행자를 위함이었네.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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