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가경(楞伽經)

200-6-입능가경-20

근와(槿瓦) 2015. 11. 18. 13:35

200-6-입능가경-20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191 / 415] 쪽

있으며, 달(月)을 아는 자도 있으며, 태양을 아는 자도 있으며, 바루나(婆樓那)를 아는 자도 있으며, 비야사(毘耶娑)를 아는 자도 있으며, 제석(帝釋)을 아는 자도 있으며, 힘(力)을 아는 자도 있으며, 바다를 아는 자도 있으며, 불생(不生)을 아는 자도 있으며, 불멸(不滅)을 아는 자도 있으며, 공(空)을 아는 자도 있으며, 진여(眞如)를 아는 자도 있으며, 실제(實際)를 아는 자도 있으며, 열반을 아는 자도 있으며, 법계(法界)를 아는 자도 있으며, 법성(法性)을 아는 자도 있으며, 상(常)을 아는 자도 있으며, 평등을 아는 자도 있으며, 불이(不二)를 아는 자도 있으며, 무상(無相)을 아는 자도 있으며, 연(緣)을 아는 자도 있으며, 불체(佛體)를 아는 자도 있으며, 인(因)을 아는 자도 있으며, 해탈을 아는 자도 있으며, 도(道)를 아는 자도 있으며, 실체(實諦)를 아는 자도 있으며, 일체지(一切智)를 아는 자도 있으며, 의생신(意生身)을 아는 자도 있다.

 

대혜여, 이와 같은 여러 가지 여래 · 응공 · 정변지의 사바세계와 다른 세계에서 3아승기인 백천의 명호들은 더하지도 줄지도 아니하는데, 중생은 모두 '물 속의 달과 같이 들어가지도 나가지도 않은 것'으로 안다.

 

그러나 범부는 깨닫지도 알지도 못하므로 2변(邊)이 상속(相續)하는 법에 떨어진다. 그러나 모두 나를 공경하며 공양한다.

 

그리고 명자(名字)와 구의(句義)를 잘 알지 못하므로 차별상을 취하여 능히 스스로 알지 못하고, 명자에 집착하므로 허망하게 불생불멸을 분별하여 '없는 법이다'라고 이름하고, 여래의 명호가 차별한 모양이 인타라(因陀羅)와 제석과 왕과 부란타라(不蘭陀羅) 등과 같음을 알지 못하니, 능히 이름과 진실을 결정하지 못하고 명자와 음성을 따라 법을 취함도 또한 다시 이와 같다.

 

                                                                                                                          [192 / 415] 쪽

대혜여, 미래 세상에 어리석은 범부가 말하기를, '이름과 같아서 뜻도 또한 이와 같다. 그런데도 다른 이름에 뜻이 있음을 능히 알지 못하니, 무슨 까닭인가? 뜻은 체상(體相)이 없기 때문이다'라고 하며, 또한 말하기를, '명자와 음성에 다르지 않고 뜻이 있으니 명자와 음성이 곧 뜻이다. 무슨 까닭인가? 명자의 체상을 알지 못한 까닭이다'라고 한다.

 

대혜여, 저 어리석은 사람은 '음성이 곧 생이며 곧 멸이요, 뜻은 생멸이 아님'을 알지 못한다.

 

대혜여, 음성의 성질은 명자에 떨어짐이나 뜻은 한가지로 명자에 떨어지지 않으니, 유(有) · 무(無)를 떠났기 때문이며, 생함이 없고 체(體)가 없기 때문이다.

 

대혜여, 여래의 설법은 자기 음성에 의하여 말함이요, 모든 명자가 이 유(有) · 무(無)임을 보지 않으므로 명자에 집착하지 않는다.

 

대혜여, 만약 사람이 명자에 집착하여 말하는 자는 그 사람은 잘 설법한다고 하지 못할 것이니, 무슨 까닭인가? 법은 명자가 없기 때문이다.

 

대혜여, 그러므로 나의 경(經) 가운데서 말하기를, '불(佛) · 여래는 끝까지 한 자도 말하지 아니하였으며, 한 이름도 보이지 아니하였다'라고 하니, 무슨 까닭인가? 모든 법은 명자가 없으니 뜻에 의함이요, 말이 없으니 분별에 의하여 말함이다.

 

대혜여, 만약 설법하지 아니한다면 불 · 여래의 법륜(法輪)이 단멸(斷滅)할 것이니, 법륜이 단멸하면 또한 성문과 연각과 보살이 없을 것이요, 성문과 연각과 보살이 없다면, 어떠한 사람을 위하여 어떠한 법과 어떠한 일을 말할 것인가?

 

대혜여, 그러므로 보살마하살은 마땅히 언설(言說)과 명자에 집착하지 아니할 것이다.

 

대혜여, 명자와 장구(章句)는 정해진 법[定法]이 아니요, 중생의 마음에 의하여 말함이니, 불 · 여래는 중생의 믿음을 따라서 모든 법을 말함은 그들로 하여금 심(心) · 의(意) · 의식(意識)을 멀리 떠나게 함이요, 자신이 안으로 증득하는 거룩한 지혜를 말하여 모든 법을 건립함은 아니다.

 

여실히 일체 모든 법의 고요한 모양을 능히 아는 까닭이며, 다만 자심(自心)을 보고 알 바인 법을 깨달아서 두 가지 마음으로 분별하는 상을 떠났기에

 

                                                                                                                         [193 / 415] 쪽

이와 같이 말하지 아니한다.

 

대혜여, 보살마하살은 뜻에 의지하고 말에 의지하지 아니할 것이다.

 

만약 선남자(善男子), 선여인(善女人)이 문자와 말만을 따르는 자는 사견(邪見)에 떨어져서, 자신도 제일의제(第一義諦)를 잃고 또한 다른 사람까지 망가뜨려서 깨닫지 못하게 한다.

 

대혜여, 모든 외도들은 각각 자기 이론에 의지하여 다른 견해로 말한다.

 

대혜여, 그대는 마땅히 일체 지위의 모양을 잘 알고, 말하기 좋아하고 변론에 재주가 있는 문사(文辭)와 장구(章句)를 잘 알며, 일체 모든 지위의 모양을 잘 알고서 명구(名句)와 말하기 좋아하고 변론에 재주가 있음에 나아가 취하여 모든 법의 뜻과 상응(相應)하는 모양을 잘 알아야 할 것이다. 그 때엔 자신이 무상(無相)의 법락(法樂)에서 낙수(樂受)를 받을 것이며, 대승에 머물러 중생으로 하여금 알게 할 것이다.

 

대혜여, 대승을 취하는 자는 바로 부처님과 성문과 연각과 보살을 섭수(攝受)함이며, 부처님과 성문과 연각과 보살을 섭수함은 바로 수승하고 묘한 법장(法藏)을 섭수함이며, 법장을 섭수함은 바로 불종(佛種)이 끊어지지 않게 함이며, 불종이 끊어지지 않게 함은 일체 수승하고 묘한 나는 곳[生處]을 끊어지지 않게 함이니, 저 수승한 곳의 여러 보살들이 저 곳에 나기를 원하는 까닭이며, 모든 중생을 대승법에 두어서 10자재력(自在力)으로 모든 중생의 형색과 모든 번뇌[諸使]를 따라 능히 나타내어 여실법을 말한다.

 

대혜여, 어떤 것이 여실법인가? 여실법이란 다름이 아니요[無異], 차별이 아니며, 취(取)함이 아니고, 버림[捨]이 아니며, 모든 희론을 떠났기 때문에 여실법(如實法)이라 이름한다.

 

대혜여, 선남자 · 선여인은 문자와 음성에 집착하지 말 것이니 일체법은 문자가 없기 때문이다.

 

대혜여, 비유컨대 어떤 사람이 사람들을 가리킬 때에 손가락으로 가리키지만, 저 어리석은 사람은 곧 손가락에만 집착하고, 손가락으로 인하여 가리키는 물건을 취하지 아니하는 것과 같다.

 

대혜여, 어리석은 범부도 또한 이와 같아서 음성을 듣고는 명자인 손가락

 

                                                                                                                          [194 / 415] 쪽

에 집착하고 목숨이 마칠 때까지도 마침내 능히 문자의 손가락을 버리고 제일의(第一義)를 취하지 못한다.

 

대혜여, 비유컨대 곡식은 범부의 먹는 것이지만 방아를 찧지 않고, 밥을 짓지 않으면 먹을 수 없으니, 만약 그 어떤 사람이 밥을 마련하지 못한 것을 먹는다면, 미친 짓이라 이름할 것이니, 모름지기 차례로서 밥을 짓고 익혀야만 바야흐로 먹을 수 있는 것과 같다.

 

대혜여, 불생불멸도 또한 이와 같아서, 공교로운 지혜와 방편의 행을 닦지 않는다면 법신(法身)을 구족(具足)하여 장엄할 수 없을 것이다.

 

대혜여, 명자에 집착하고서 뜻을 얻었다고 말하는 자는 저 어리석은 사람이 방아찧음과 밥 지을 줄을 알지 못하고 문자인 곡식을 먹으며, 뜻인 먹음을 얻지 못함과 같으니, 이러한 뜻으로 마땅히 뜻을 배우고 문자에 집착하지 말 것이다.

 

대혜여, 말한 바 뜻이란 열반을 이름함이다. 명자를 말함은 분별하는 상에 묶이어 세간의 알음을 내는 것이다.

 

대혜여, 뜻이란 많이 들은[多聞] 사람을 따라서 얻어지는 것이다.

 

대혜여, 많이 들은 이라고 함은 뜻의 공교한 방편을 말함이요, 음성의 공교한 방편이 아니다.

 

대혜여, 뜻[義]의 방편이란 일체 외도의 삿된 말을 떠난 것이며, 또한 화합하고 섞임도 아닌 것이니, 이와 같이 말하는 자는 자신이 외도의 삿된 법에 떨어지지 않으며, 또한 다른 이로 하여금 외도의 법에 떨어지지 않게 한다.

 

대혜여, 이를 많이 들어서 뜻의 방편이 있는 것이라 이름한다.

 

대혜여, 뜻을 얻고자 하는 자는 마땅히 다문지자(多聞智者)를 친근하여 공양하고 공경할 것이요, 명자에 집착하는 자를 마땅히 멀리 떠나며, 마땅히 친근하지 아니할 것이다."

 

그 때 대혜보살은 부처님의 힘을 입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여래 · 세존께서 말씀하신 '일체법이 불생불멸(不生不滅)이다'라고 함은 기특(奇特)한 것이 아니니, 무슨 까닭인가? 일체 외도도 또한 모든 인(因)이 불생불멸이라 말하며, 여래께서도 또한 허공과 수(數)가 아닌 연멸(緣滅)과 열반계(涅槃界)가 불생불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95 / 415] 쪽

세존이시여, 외도들도 또한 '모든 인연에 의하여 모든 중생이 생겼다'라고 말하며, 여래도 또한 '무명(無明)과 애착과 업과 분별하는 인연으로 모든 세간이 생겼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그러하다면 여래께서는 또한 '인연과 명자가 서로 다르고, 바깥 인연에 의하여 능히 모든 법을 낸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며, 외도도 또한 '바깥 인연에 의하여 모든 법을 낸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여래는 외도의 말과 더불어 차별이 있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외도는 '인(因)과 작은 티끌(微塵)과 수승함(勝)과 자재천(自在天)과 범천(梵天) 등인 그 아홉 가지 인연으로서 모든 법이 불생불멸한다'라고 말하며, 여래께서는 또한 '일체 모든 법이 생하지 않으며, 멸하지 않은 것으로, 유무(有無)를 가히 얻을 수 없으며, 모든 4대(大)가 멸하지 않아 자기 모양[自相]이 불생불멸이다'라고 말씀하시니, 불 · 여래의 여러 가지 말씀을 따른다면 외도의 말한 바를 떠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모든 외도들도 또한 '모든 대(大)가 대(大)의 체(體)를 떠난 것이 아니다'라고 말합니다.

 

세존이시여, 외도들은 모든 대(大)를 분별하며, 여래도 또한 그리하여 모든 대를 분별하셨습니다.

 

세존이시여, 이러한 뜻으로 여래께서 말씀하신 바가 외도와 다르지 않습니다.

 

만약 같지 않다면 여래께서는 마땅히 있는 바 다른 모양을 말씀하실 것이며, 만약 다른 모양이 있다면, 마땅히 외도의 말한 바와 같지 않음을 알겠습니다.

 

세존이시여, 만약 불 · 여래께서 자기 법에서 수승한 모양을 말씀하지 아니하신다면 모든 외도에도 또한 마땅히 부처님께서 계시리니, '모든 법이 불생불멸이다'라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여래께서 항상 말씀하신 것처럼 한 세계에 많은 부처님께서 계셔서 함께 출세한다는 것은 옳지 못하며, 아까 말한 바와 같이 한 세계에서도 마땅히 많은 부처님께서 계시겠습니다.

 

무슨 까닭인가? 말한 바 유무(有無)의 인(因)이 차별이 없는 까닭입니다.

 

                                                                                                                          [196 / 415] 쪽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아서 그의 말이 헛되고 그름이 없는데, 어찌하여 세존께서는 당신의 법에서 수승한 모양을 말씀하시지 아니하십니까?"

 

부처님께서 대혜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대혜여, 내가 설법한 바 '불생불멸이다'라고 하는 것은 외도의 불생불멸과 같지 않으며, 또한 저 '불생(不生)하는 무상(無常)한 법이다'라고 함과 같지 않으니, 무슨 까닭인가?

 

대혜여, 모든 외도는 '실로 체성(體性)이 있어서 불생불멸인 모양이 있다'라고 말하지만 나는 이와 같이 '있다', '없다'고 하는 붕당(朋黨)더미에 떨어지지 않는다.

 

대혜여, 내가 말한 '유무법을 떠났다'는 것은 생(生) · 주(住) · 멸(滅)의 모양을 떠나서 있는 것도 아니며, 없는 것도 아니어서 일체 여러 가지 색상이 환과 같으며 꿈과 같이 보니, 그러므로 그 '있다', '없다'고 말하지 못할 것이다.

 

대혜여, 어찌하여 그 '없다'고 말하지 못하는가? 형색와 체상은 보고 보지 못함과 취하고 취하지 못함이 있는 까닭이다.

 

대혜여, 그러므로 나는 '일체 모든 법이 있는 것도 아니며 없는 것도 아니다' 라고 말한다.

 

대혜여, 오직 자심의 분별로 봄을 내는 것임을 깨닫지 못한 것이다. 일체 세간의 모든 법은 본래 생함이 아니며 멸함이 아닌데, 그럼에도 모든 범부는 분별을 내니, 성인(聖人)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혜여, 어리석은 마음으로 진실 아닌 의(義)를 분별함은, 비유컨대 범부가 건달바성을 보며 환사(幻師)가 짓는 여러 가지 환상인 사람과 여러 가지 코끼리와 말을 보되, 그것들이 들어가며 나가는 것을 보고 허망하게 분별하여 말하기를, '이들이 이와 같이 들어가며, 이와 같이 나간다'라고 하는 것과 같다.

 

대혜여, 그러나 그 곳에는 참으로 사람이 출입함도 없고, 오직 자심의 견(見)의 미혹으로 분별함이니, 생(生)과 불생(不生)의 법도 또한 이와 같다.

 

대혜여, 그러나 그 곳에는 참으로 유위(有爲)와 무위(無爲)인 모든 법이 없는 것이 저 환사가 짓는 환상의 일들과 같다.

 

                                                                                                                          [197 / 415] 쪽

그러나 저 환사는 생함도 아니며, 멸함도 아니다.

 

대혜여, 모든 법의 유무(有無)도 또한 하는 바가 있지 않으니, 생멸(生滅)을 떠났기 때문이다.

 

오직 모든 범부가 전도(顚倒)된 마음에 떨어져서 생멸(生滅)을 분별함이니, 성인이라 할 수 없는 것이다.

 

대혜여, 전도(顚倒)라는 것은 마음대로 분별하기를, 이 법은 이와 같고 이와 같으며, 저 법은 이와 같고 이와 같지 않음이며, 또한 전도된 분별도 아니라고 하는 것이다.

 

전도하는 자는 모든 법이 '있다', '없다'고 함에 집착하고 고요함을 보는 것이 아니다. 고요함을 보지 못한 자는 허망한 분별을 능히 멀리 떠나지 못하니, 그러므로 대혜여, 고요함을 본 것을 수승한 모양이라 이름할 것이다.

 

모든 모양을 보지 않음을 수승한 모양이라 이름함이니, 능히 생인(生因)의 상(相)을 끊지 못한 까닭이다.

 

대혜여, 무상(無相)이라고 말함은 일체 모든 분별하는 마음을 멀리 떠남이니, 생함이 없고 상(相)이 없는 것은 나의 말한 바 열반이 된다고 이름한다.

 

대혜여, 열반이라 말한 것은 모든 법의 여실히 머무는 곳을 본 것임을 말함이니, 분별하는 심(心)과 심수(心數)의 법을 멀리 떠나고, 차례로 여실히 수행함에 의하여 스스로 속 몸의 거룩한 지혜로 증득하는 것이다.

 

나는 이와 같음을 말하여 열반이 된다고 이름한다."

 

그 때 세존께서 거듭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모든 법이 생한다는 견해를 막기 위하여

무생법(無生法)을 건립하였으니,

내가 말한 '법은 인(因)이 없다'고 함을

범부는 능히 알지 못하네.

내가 말한 법은 인(因)이 없다고 함을

범부는 알지 못함이여.

일체법은 생함이 아니며

 

                                                                                                                          [198 / 415] 쪽

또한 없다고도 할 수 없으리.

건달바와 환상과 꿈과 같이

모든 법은 원인이 있지 아니하며

모든 법은 공하여 모양이 없으니

어찌 내가 말함이 될 것인가.

화합하는 인연을 떠났기에

지혜로도 능히 보지 못하며,

공(空)이란 본래 생함이 아니니,

그러므로 '자체가 없다'고 말한다.

하나하나 인연으로 화합하였기에

보이는 물건이지만 얻을 수 없으니,

외도가 볼 바도 아니요,

화합함도 얻을 수 없으리.

꿈과 환상과 털 바퀴와

건달바와 아지랑이를

원인이 없이 허망하게 보지만,

세간 일도 또한 그러하네.

무인론(無因論 : 無因無緣論)을 항복 받아

능히 무생의(無生義)를 이루니,

무생을 능히 이룬다면

나의 법이 없어지지 않으리.

무인(無因)의 모든 논(論)을 말하면

외도는 놀래며 두려워한다.

 

                                                                                                                           [199 / 415] 쪽

어찌하여 어떤 사람은

무슨 까닭으로 어떤 곳에서

모든 법 '인(因)이 없다'라고 하는가.

인도 아니요, 인이 없는 것도 아니니,

지혜 있는 자 그를 능히 보면

생멸의 견해 능히 떠나리.

법에 생(生)과 불생(不生)이 없음은

인연상(因緣相)이 없기 때문이니,

만약 법의 명자(名字)가 되면

뜻이 없음[無義]을 내가 말하네.

법이 유무(有無)로 생함이 아니며

또한 인연을 기다림도 아니요,

현전(現前)의 법이 이름 있는 것도 아니니,

또한 공(空)이 아닌 말이라 이름하네.

성문과 벽지불과

외도의 경계도 아니요

7지(地)에 머물러 있는

그 곳만이 무생(無生)인 모양이네.

모든 인연법을 떠났기에

모든 인연을 막기 위하여

'건립함이 유심(唯心)이다'라고 말하여

나는 말하기를 '무생(無生)이다'라고 이름한다.

모든 법이란 인연이 없으며

 

                                                                                                                          [200 / 415] 쪽

능소(能所)의 분별을 떠나서

유무의 붕당을 떠났기에,

나는 말하여 '무생'이라 이름하네.

마음은 보여진 법도 떠났으며

두 법체도 또한 떠났으니,

몸을 전변한 의정상(依正相)을 나는 말하여 '무생'이라 이름하네.

외물(外物)도 실(實)과 실 아님이 아니니

또한 마음의 취할 바도 아니요,

환상과 꿈과 털바퀴이며

건달바와 아지랑이라네.

모든 견해가 멀리 떠난 것을

무생의 모양이라 함이니,

이와 같은 공(空) 등의 법과

여러 문구도 마땅히 알리라.

생(生)과 공(空)도 아니며

생과 공이 없는 것이지만

모든 인연이 화합하여,

생(生)도 있고 또 멸(滅)도 있으니,

모든 인연 떠나면

생도 멸도 아니라네.

인연 떠나면 법이 없고

화합 떠나면 얻을 수 없으리.

외도는 허망하게 분별하여........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능가경(楞伽經)' 카테고리의 다른 글

220-7-입능가경-22   (0) 2015.11.23
210-6-입능가경-21  (0) 2015.11.22
190-6-입능가경-19   (0) 2015.11.17
180-6-입능가경-18   (0) 2015.11.14
170-5-입능가경-17   (0) 2015.1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