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가경(楞伽經)

150-5-입능가경-15

근와(槿瓦) 2015. 11. 4. 18:58

150-5-입능가경-15

[141 / 415] 쪽

여러 부처님 · 여래가 여러 가지 몸을 나타낸 것이니, 대혜여, 이를 여러 부처님의 신의 평등이라 이름한다.

대혜여, 어떤 것이 여러 부처님의 법(法)의 평등함인가? 저 부처님과 또한 나도 37보리분(菩提分) 법과 10력(力), 4무외(無畏) 등을 얻었으니, 대혜여, 이를 여러 부처님의 법의 평등함이라 이름한다.

 

대혜여, 이 네 가지 평등한 법에 의하므로 여래는 대중에게 말하기를, '나는 이 과거에 정생왕(頂生王) 등이었다'라고 하였다."

 

그 때 세존께서는 거듭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가섭불(迦葉佛)과 포류손불(抱留孫佛)과

포나함불(抱那含佛)이 나라고

여러 불자에게 말함은

네 가지 평등함에 의한 것이었네.

 

대혜보살이 부처님께 다시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어느 밤에는 큰 보리를 증득하였으며, 어느 밤에는 반열반(般涅槃)에 들겠으며, 나는 그 중간에 한 자(字)도 말하지 아니했으며, 부처님의 말씀은 말씀이 아니다'라고 하셨으니, 세존이시여, 어떠한 뜻에 의하여 '부처님의 말씀은 말씀이 아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부처님께서 대혜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대혜여, 여래는 두 가지 법에 의하여 이와 같은 말을 하였으니, 무엇이 두 가지인가? 첫째는 자신이 안으로 증득한 법에 의함이요, 둘째는 본래 머무는 법에 의함이니, 나는 이 두 법에 의하여 이와 같은 말을 하였다.

대혜여, 어떤 것이 자신이 안으로 증득하는 법에 의함인가? 저 과거의 여러 부처님·여래께서 증득하신 법이니, 나도 또한 이와 같이 '더하지도 줄지도 않는 자신이 안으로 증득하는 모든 경계'를 증득하여 언어(言語)로 분별하는 상을 떠나고, 두 가지 명자(名字)를 떠났노라.

 

대혜여, 어떤 것이 본래 머무는 법인가? 대혜여, 말하자면 본래 다니던 길

 

                                                                                                                          [142 / 415] 쪽

이 평탄한 것이니, 비유컨대 금 · 은 · 진주 등의 보물이 그곳에 있는 것과 같다.

 

대혜여, 이를 법성(法性)의 본래 머무는 곳이라 이름함이니, 대혜여, 여러 부처님 · 여래께서 세상에 출현하시거나, 세상에 출현하시지 아니 하거나 간에 법성(法性), 법계(法界)의 법은 법의 제자리에 머물러서 법의 증득함이 상주(常住)함은 성(城)의 본 길과 같다.

 

대혜여, 비유컨대 어떤 사람이 벌판인 들 가운데를 가다가 본 성의 평탄하고 바른 길을 보고 향하여 곧 성을 따라 들어가며, 성에 들어가서는 여러 가지 쾌락을 누리고 여러 가지 일을 하는 것과 같다.

대혜여, 그대의 뜻에는 어떠한가? 저 사람이 이 길을 처음 만들고서 성을 따라 들어간 것인가? 또한 여러 가지 모든 장엄을 처음으로 만든 것인가?"

대혜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아니옵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대혜여, 나와 과거의 일체 여러 부처님의 법성 · 법계의 법은 제자리에 머물러서 법을 증득함과 상주(常住)함도 또한 다시 이와 같다.

 

대혜여, 나는 이 뜻에 의하여 대중에게 말하기를, '나는 어느 밤에는 큰 보리를 증득하였으며, 어느 밤에는 반열반(般涅槃)에 들겠으며, 이것의 중간에 한 자(字)도 말하지 아니 하였으며, 또한 이미 말했고 앞으로 말하며, 현재 말함도 아니다'라고 하였다."

 

그 때 세존께서 거듭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나는 어느 밤엔 도(道)를 이루었고

어느 밤엔 열반하리며,

이것의 중간에도

나는 전혀 말한 바가 없노라.

안으로 몸소 증득한 법으로서

나는 이와 같이 말했으니,

 

                                                                                                                        [143 / 415] 쪽

시방(十方) 부처님과 나의

모든 법은 차별이 없도다.

 

그 때 거룩하신 대혜보살마하살이 부처님께 다시 청하여 말하였다.

"원하오니 세존께서는 일체법의 있고 없는 모양을 말씀하시어 저희와 다른 보살 대중으로 하여금 이를 듣고 있고 없는 상을 떠나서 빨리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를 얻게 해 주십시오."

 

부처님께서 거룩한 대혜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착하다. 착하다. 착한 대혜여, 자세히 듣고 자세히 들어라. 마땅히 그대를 위하여 말하리라."

 

 

대혜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어지신 세존이시여, 가르치심을 잘 받겠습니다."

부처님께서 대혜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세상 사람이 많이 두 견해에 떨어지니, 무엇이 두 견해인가? 첫째는 유(有)를 보는 것이요, 둘째는 무(無)를 보는 것이니, 모든 법이 있음을 보며, 모든 법이 없음을 보기 때문에 구경(究竟)법이 아닌데서 구경인 생각을 낸다.

 

대혜여, 어떤 것이 세상 사람의 유(有)의 견해에 떨어진 것인가? 말하자면 '실로 인연이 있어서 모든 법을 내었기에 실유(實有)가 아닌 것이 아니요, 실로 법이 생(生)함이 있기에 법이 생(生)함이 없는 것이 아니다'라고 함이다.

 

대혜여, 세상 사람이 이와 같이 말한 것은 이 '인(因)도 없고 연(緣)도 없다'라고 말함이며, '세간에 인도 없고 연도 없이 모든 법을 생(生)한다'라고 비방함이라 이름한다.

 

대혜여, 어떤 것이 세간 사람의 무(無)의 견해에 떨어진 것인가? 말하자면 탐욕[貪]과 성냄[嗔]과 어리석음[痴]을 말하기를, '실로 탐 · 진 · 치가 있다'라고 하며, 또한 말하기를, '탐 · 진 · 치 가 없다'라고 하여 있고 없음을 분별함이다.

 

대혜여, 만약 어떠한 사람이 있어 말을 하기를, '모든 법은 없으니, 모든 물상(物相)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라고 하며, 대혜여, 만약 또한 어떤 사람

 

                                                                                                                         [144 / 415] 쪽

이 있어서 말을 하기를, '성문과 벽지불은 탐욕도 없고 성냄도 없고 어리석음도 없다'라고 하며, 다시 말하기를, '먼저는 있었다'라고 한다면, 이 두 사람은 어떤 사람이 수승하고 어떤 사람은 같지 못한가?"

 

대혜보살은 말하였다.

"만약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먼저는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있었는데, 나중에는 없다' 하는 이 사람이 같지 못합니다."

 

부처님께서 대혜보살에게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훌륭한 대혜여, 그대는 나의 물음을 잘 아는구나. 대혜여, 먼저는 실로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있다고 말하고, 나중에는 없다고 말함은 위세사(衛世師)들과도 같지 않을 뿐이니, 그러므로 같지 못한다.

 

대혜여, 일체 성문 · 벽지불의 법을 없애는 것과도 같지 않을 뿐이니, 무슨 까닭인가? 대혜여, 실로 안과 바깥의 모든 법이 없기 때문이며, 동일함도 다름도 아니기 때문이며, 모든 번뇌가 동일함도 다름도 아니기 때문이다.

 

대혜여,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의 법은 안 몸[內身]에서도 가히 얻을 수 없으며, 바깥 법에서도 또한 가히 얻을 수 없으니, 실체(實體)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그를 불허(不許)한다.

 

대혜여, 내가 불허한 것은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있다'는 것을 불허함이니, 그러므로 저 사람은 성문 ·벽지불의 법을 없앤다. 무슨 까닭인가? 여러 부처님 · 여래는 고요한 법을 아시고 성문과 연각은 법을 보지 않기 때문이며, 능박(能縛)과 소박(所縛)의 인(因)이 없기 때문이다.

 

대혜여, 만약 능박이 있으면 반드시 소박이 있을 것이요, 만약 소박이 있으면 반드시 능박의 인이 있을 것이다.

 

대혜여, 이와 같이 말하는 자는 모든 법을 없애는 것이라 이름할 것이니, 대혜여, 이를 법상(法相)이 없는 것이라 이름한다.

 

대혜여, 나는 이러한 뜻에 의하여 다른 경(經)에서 말하기를, '차라리 아견(我見)을 일으키기를 수미산(須彌山)의 크기와 같이 하여 교만을 일으킬지언정 모든 법은 공(空)하여 없는 것이라고 말하지 말라'라고 한다.

 

대혜여, 증상만(增上慢)인 사람으로서 '모든 법이 없다'라고 말하는 것은 이는 모든 법을 없애고, 자기 모양과 같은 모양인 견해에 떨어진 것이며, 제

 

                                                                                                                          [145 / 415] 쪽

마음에서 나타난 법을 본 것이고, 외물(外物)은 무상(無常)하므로 모든 모양을 되풀이하여 저것과 저것이 차별이 있음을 본 것이며, 음(陰) · 계(界) · 입(入)의 상속하는 자체와 저것과 저것의 인(因)이 되풀이함으로 생기는 것을 본 것이니, 자심이 허망하게 분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대혜여, 이와 같은 사람은 부처님의 법을 없애는 것이다."

 

그 때 세존께서 거듭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유(有)와 무(無)는 이변(二邊)인데

그를 마음의 경계로 삼으니,

모든 경계의 법을 떠나야만

평등하여 마음이 고요하리.

경계의 법을 취함이 없고

비유비무(非有非無)도 없애고서,

진여(眞如)와 같이 본래 있는 것으로

그것이 성인의 경계라네.

본래 없는데 생(生)함이 있고

생겼다가 도로 없어지며,

유(有)도 아니요 무생(無生)도 아닌 것으로,

그는 나의 가르침에 머물지 못하리.

외도도 아니요 부처도 아니며

나도 아니고 또 다른 이도 아니고

인연으로부터 이룬 것 아니니,

어찌 있다고들 말하랴.

만약 인연으로 생긴 것이 아니라면

어찌 없다고들 말하랴.

 

                                                                                                                        [146 / 415] 쪽

사견(邪見)으로 생법(生法)을 논함이요

망상으로 유무(有無)를 계탁(計度)함이다.

만약 생한 바가 없는 것을 안다면

또한 멸한 바가 없는 것도 알리.

세상이 모두 공적(空寂)함을 관(觀)한다면

그는 유무(有無)에 떨어지지 않으리.

 

그 때 거룩한 대혜보살은 부처님께 다시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원하오니 여래 · 응공 · 정변지 · 천인사(天人師)께서는 저희와 일체 보살을 위하여 정법(正法)을 수행하는 모양을 건립하십시오. 저희와 일체 보살마하살이 정법을 수행하는 모양을 잘 알면 빨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성취함을 얻을 것이며, 일체 허망한 각(覺), 관(觀)과 마(魔)의 일을 따르지 아니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대혜보살에게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훌륭한 대혜여, 자세히 듣고 자세히 들어라. 내 그대를 위하여 말하리라."

 

대혜보살이 말하였다.

"어지신 세존이시여, 가르치심을 잘 받겠습니다."

 

부처님께서 대혜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대혜여, 두 가지 법이 있어서 여러 부처님 · 여래 · 보살 · 성문 · 벽지불이 정법(正法)을 수행하는 모양을 건립하니, 무엇이 두 가지인가? 첫째는 정법을 건립하는 모양[宗通]이요, 둘째는 정법을 건립함을 말하는 모양[說通]이다.

 

대혜여, 어떤 것이 정법을 건립하는 모양인가? 자신이 안으로 증득하는 수승한 법의 모양이니, 문자(文字)와 어언(語言)과 장구(章句)를 떠나고, 능히 무루(無漏)인 정계(正戒)와 여러 가지 증득하는 지위에 나아가서 상법(相法)을 수행하고 모든 외도의 허망한 각(覺), 관(觀)과 모든 마(魔)의 경계를 떠나며, 일체 외도와 모든 마군(魔)을 항복 받고, 자신의 안으로 증득하는 법

 

                                                                                                                         [147 / 415] 쪽

을 나타내 보이며 여실히 수행함이니, 대혜여, 이를 정법을 건립하는 모양이라 이름한다.

 

대혜여, 어떤 것이 설법을 건립하는 모양인가? 구부(九部)인 여러 가지 교법을 설하여 '동일함 · 다름 · 있음·없음'이라고 하여 상(相)을 취하는 것으로부터 떠나게 하기를, 먼저 선하고 교묘(善巧)한 방편을 말하여 중생으로 하여금 좋아하는 곳에 들게 한다. 중생이 믿는 저와 저의 법을 따라서 저와 저의 법을 말함이니, 대혜여, 이를 설법을 건립하는 모양이라 이름한다.

대혜여, 그대와 여러 보살은 마땅히 이와 같은 정법을 닦고 배울 것이다."

 

그 때 세존께서 거듭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안으로 증득함을 건립함과

설법하는 모양과 이름을

만약 능히 잘 분별한다면

다른 교를 따르지 아니하리.

바깥 모든 법은 실로 없으니,

범부의 분별함이듯이

만약 모든 법이 허망하다면

어찌하여 해탈을 취하랴.

모든 함이 있는 생멸(生滅) 등의

상속함을 관찰한다면

두 견해만 증장(增長)함이요,

인연을 능히 알지 못하리.

열반은 식(識)을 떠난 것이라

오직 이 한 법만이 진실함이니,

세간은 허망하기가 환과 꿈과 같고

파초(芭蕉)와 같은 것으로 관찰함이여.

 

                                                                                                                       [148 / 415] 쪽

비록 탐 · 진 · 치가 있은들

짓는 자가 있지 않으리.

애욕으로부터 모든 음(陰)이 생겼으니,

있는 것은 모두 환과 꿈이라네.

 

그 때 거룩한 대혜보살이 부처님께 또다시 청하여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원하오니 여래 · 응공 · 정변지께서는 여러 보살을 위하시어 진실 아닌 망상(妄想)을 말씀해 주십시오. 어떤 법이 진실 아닌 망상입니까?"

 

부처님께서 대혜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착하다, 착하다. 훌륭한 대혜여, 그대는 일체 중생을 편안하게 하며, 일체 중생을 이익 되게 하며, 일체 중생을 안락하게 하며, 일체 세간의 천인(天人)을 애민(哀愍)히 여겨 나에게 이러한 일을 묻는구나.

대혜여, 자세히 듣고 자세히 들어라. 마땅히 그대를 위하여 말하리라."

 

대혜보살이 말하였다.

"어지신 세존이시여, 가르치심을 잘 받겠습니다."

 

부처님께서 대혜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대혜여, 일체 중생이 진실 아닌 허망한 생각에 집착한 것은 여러 가지 허망한 법을 봄으로부터 나온 것이니, 허망한 능취(能取)와 가취(可取)인 모든 경계에 집착한 탓이며, 자심(自心)의 견(見)에 들어가서 허망한 생각을 내는 탓이며, 유(有)와 무(無)의 두 견해와 붕당(朋黨)의 비법(非法) 더미 가운데 떨어져서 외도의 허망한 이견(異見)으로 훈습함을 증장하고 성취한 탓이다.

 

대혜여, 바깥 모든 희론의 뜻[義]을 취하므로 허망한 심(心)과 심수법(心數法)을 일으킴이 풀 묶음과 같아서 나와 내 것이라 하는 법을 분별한다.

 

대혜여, 이러한 뜻으로 진실 아닌 망상을 내는 것이다."

 

대혜보살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모든 중생이 진실 아닌 허망한 생각에 집착하는 것은 여러 가지 허망한 법을 봄으로 나온 것입니다. 허망한 능취와 가취인 일체 경계에 집착하여 자심의 견에 들어가서 허망한 생각을 내며, 유 · 무의 두 견과 붕당

 

                                                                                                                        [149 / 415] 쪽

인 분별 더미 가운데 떨어져서 외도의 허망한 이견으로 훈습함을 증장(增長)하고 성취하며, 바깥 모든 희론 의를 취하므로 진실 아닌 망상이 허망한 심과 심수법을 일으키는 것이 풀 묶음과 같아서, 나와 내 것이라 함을 취한 것이라 합니다.

 

세존이시여, 제일의제(第一義諦) 또한 마땅히 그와 같아서 아함(阿含)인 성인이 말씀하신 바 법을 멀리 떠났으며, 모든 근(根)을 멀리 떠났으며, 세 가지로 세우는 법과 비유와 인(因)의 모양을 멀리 떠났습니다.

세존이시여, 어찌 한 곳에는 여러 가지의 분별 집착과 여러 가지의 허망한 생각이 나는데, 무슨 까닭으로 제일의제에는 허망한 분별로서 분별을 내는 것이 붙지 아니합니까?

세존이시여, 세존이시여, 이와 같은 설법은 평등한 말이 아니오며, 까닭 없이 말한 것입니다. 무슨 까닭입니까? 한 곳은 생(生)함이고, 한 곳은 생함이 아닌 때문입니다.

만약 세존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신다면, 두 붕당에 떨어질 것이니, 허망한 분별로서 분별을 내는 데에 집착함을 보기 때문이며, 세존께서 말씀하신 '세상의 요술쟁이가 여러 가지 인연에 의하여 여러 가지 색상을 내는 것과 같다'라고 하신 때문이며, 세존께서 말씀하신 '여러 가지 허망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말할 수 없지만, 분별을 떠나게 하기 위함이다'라고 하신 때문입니다.

이와 같다면 여래께서는 세간론(世間論)에 떨어지고, 사견(邪見)인 마음 붕당인 더미 가운데에 들어간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대혜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나의 허망을 분별함은 생도 아니요[不生], 멸도 아니니[不滅], 무슨 까닭인가? 있고 없음을 분별하는 상을 내지 않는 까닭이며, 일체 바깥에 있음과 없음을 보지 아니한 까닭이다.

 

대혜여, 자심을 보기를 여실히 보기 때문에 허망한 분별이 생도 아니요, 멸도 아니다.

 

대혜여, 나의 이 말한 바는 오직 어리석은 범부를 위하여 말함이니, 자심의 분별로 여러 가지를 분별하여 먼저의 마음을 따라 나며, 여러 가지를 분별하여 상에 집착함이 있다.

 

                                                                                                                         [150 / 415] 쪽

무슨 까닭인가? 만약 내가 말하지 아니한다면 어리석은 범부는 자신의 허망한 각지(覺知)를 떠나지 못하고, 나와 내 것이라 하는 견해에 집착함을 떠나지 못하며, 인과(因果)인 모든 인연의 허물을 떠나지 못할 것이다.

여실히 두 가지 마음을 깨달아 알므로 일체 모든 지위의 행상을 잘 알며, 모든 부처님의 자신이 행하는 바 안으로 증득하는 경계를 잘 알며, 5법체(法體)를 굴리고 분별상을 보아서 여래의 지위에 들어갈 것이다.

 

대혜여, 이러한 일로 인하므로 나는 일체 중생들이 진실 아닌 허망에 집착하여 마음을 낸다고 말한다.

제 마음에서 여러 가지의 모든 의(義)를 분별하니, 이러한 뜻으로 일체 중생이 여실의(如實義)를 알면 해탈을 얻는 것이다."

 

그 때 세존께서 거듭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모든 인(因)과 연(緣)으로부터

세간이 생겼으니,

망상으로 사구(四句)에 집착하기에

그는 나의 설법 알지 못하네.

세간은 유무(有無)로 생함이 아니고

유무를 떠나서 불생(不生)인데,

어찌하여 어리석은 이들은

인연에 의하여 생긴 법을 분별하는가?

만약 능히 세간(世間)을

유무를 유무 아닌 것으로 보면,

허망한 마음을 굴려서

진실한 무아(無我)법 얻으리라.

모든 법은 본래 생함이 아니요

인연에 의하여 생겼으니,.....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능가경(楞伽經)' 카테고리의 다른 글

170-5-입능가경-17   (0) 2015.11.11
160-5-입능가경-16   (0) 2015.11.07
140-4-입능가경-14   (0) 2015.11.03
130-4-입능가경-13  (0) 2015.11.01
120-4-입능가경-12   (0) 2015.10.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