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방등대집경

대집경(17)-170

근와(槿瓦) 2015. 10. 27. 23:51

대집경(17)-170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161 / 1773] 쪽

베푸나니, 지혜의 광명을 베풂으로써 보리를 얻을 적에 제9력을 성취한다. 다시 보녀야, 보살이 보리도를 수행할 적에 여러 중생을 가르쳐 번뇌법을 멀리 떠나서 더 자라나지 않게 하고 해탈을 찬찬하여 누(漏) 없는 도를 닦게 하고 또 중생을 위해 수 없는 도를 말하나니, 누(漏) 없음을 닦음으로써 보리를 얻을 적에 제10력을 성취한다. 보녀야, 보살이 이러한 10력을 닦아서 능히 여래의 10력을 갖추느니라.”

 

보녀가 다시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은 어떤 법을 수행하였기에 4무외(無畏)와 열여덟 가지 법[十八法]을 얻었나이까?”

 

부처님께서 보녀에게 말씀하셨다.

“보살마하살은 보리도를 수행할 적에 얻는 묘한 법을 탐내거나 인색하지 않고, ‘만일 내가 저 사람을 가르친다면, 저 사람은 나보다 훌륭하리라’는 생각을 내지 않는다. 여러 중생에게 그 마음을 평등이 하여 능히 안팎을 버리고 일체를 베풀어 법계에 갖가지의 모양 없음을 관찰하나니, 이 인연으로써 보리를 얻을 적에 처음 두려움 없음을 이룩한다. 다시 보녀야, 보살은 보리도를 수행할 적에 여러 가지의 도를 막는[遮道] 법을 분명히 안다. 분명히 알기 때문에 이러한 막는 법을 행하지 않고 따르지 않고 또 칭찬하지도 않고 사람을 가르치지도 않으며, 막는 법을 알고 나서는 멀리 여의나니, 이 인연으로써 보리를 얻을 적에 두 가지 두려움을 없음을 이룩한다. 다시 보녀야, 보살은 보리도를 수행할 적에 항상 깨끗한 도를 닦고 깨끗한 법을 말하고 장엄을 닦아 다스리어 깨끗한 법을 얻는 까닭에 이러한 장엄을 스스로 닦아 다스리고 또 중생을 가르치나니, 이 인연으로써 보리를 얻을 적에 세 가지 두려움 없음을 이룩한다. 다시 보녀야, 보살은 보리도를 수행할 적에 마침내 교만한 마음을 일으키지 않고 자기의 알음과 자기의 소견을 말하여 공덕을 덮어 없애거나 죄과를 드러내지 않는다. 이 인연으로써 보리를 얻을 적에 4무소외를 이룩한다.

 

다시 보녀야, 보살은 보리도를 수행할 적에 길을 잃은 중생에게는 바른 길을 보여주고 도로에 기와·돌·거센 가시를 제거하고 나루길이나 험하고 끊어진 곳에는 다리를 시설하고, 어두운 곳에는 밝은 등불을 켜고, 죄 지은 자

 

                                                                                 [162 / 1773] 쪽

를 보면 조복케 하고, 중생들의 여러 가지 의심과 후회를 없애 주고, 죄 짓지 않은 자에게는 범했다고 말하지 않고 ,중생들의 법을 의심하는 마음을 무너뜨리고, 법의 광명을 베풀어 설법을 청하게 하고, 설법하는 사람을 보고는 착하다고 칭찬하고 공경하고 존중하여서 경멸한 마음을 내지 않으며, 일체 중생의 말소리를 알려고 바르지 않은 말에도 마음으로 경멸하지 아니하나니, 이 인연으로써 보리를 얻을 적에 처음 허물없음을 이룩한다.

 

다시 보녀야, 보살은 보리도를 수행할 적에 진실한 말, 법어(法語), 옳은 말, 때에 맞는 말, 조복 받는 말, 뒤바뀌지 않은 말, 여러 악을 떠난 말, 성인의 말을 한다. 만일 법을 들으면 다른 사람을 위하여 바꾸어서 말하고 자기도 이익 되고 다른 사람을 이익케 하기 위하여 말할 때를 가벼이 아니하고 싸움을 일으키지 아니하고 불(佛)·법(法)·승(僧)을 믿고 또 중생으로 하여금 불·법·승을 믿게 하고 여러 법계의 설할 수 없음을 관찰하나니, 이 인연으로 보리를 얻을 적에 일체의 말을 알고 한량없는 문(門) 다라니[總持] 방편을 얻는다. 이러므로 그 몸의 일체 상호(相好)와 낱낱 털구멍에서 다 여래의 미묘한 음성을 내느니라.

 

다시 보녀야, 보살은 보리도를 닦을 적에 항상 6염(念)을 닦고 또 중생을 교화하여 6염을 닦게 하나니, 이 인연으로써 보리를 얻을 적에 염하는 마음을 잃지 않고 또 법증(法證) 다라니 방편을 얻어서 한량없는 중생이 한량없는 겁에 깊은 뜻을 생각하여 일시에 와서 물어도, 여래는 일부러 생각하는 힘을 빌지 않고, 일시에 각자의 물음에 따라 대답할 수 있다.

 

다시 보녀야, 보살은 보리도를 닦을 적에 항상 일체 중생의 마음을 보호하여 중생과 더불어 어지러운 마음의 원인·여러 고뇌의 원인을 짓지 않고, 여러 중생이 착한 법 행함을 볼 때에는 막지 않고 어지럽게 하지 않고 여러 법이 다 허깨비 모양[幻相] 같음을 잘 알고 여러 중생에게 그 마음을 평등이 하여 여러 법계가 한뜻임을 아나니, 이 인연으로서 보리를 얻을 적에 그 마음이 항상 정(定)하여 가없는 문[無邊門] 다라니 방편을 얻고, 이 다라니를 얻으므로 마음이 항상 정에 있어 불사를 짓느니라.

 

다시 보녀야, 보살은 보리도를 닦을 적에 생각이 뒤바뀌지[願倒] 않고 마음이 뒤바뀌지 않는다. 뒤바뀌지 않으므로 나[我] 없는 가운데 나라는 생

 

                                                                               [163 / 1773] 쪽

각·중생·수명·사람·장부·남녀·교만·번뇌·상(常)·단(斷)·유무(有無)·선악(善惡)·깨끗함과 더러움[淨垢]·누(漏) 있고 누 없는 것·세간 또는 세간에 뛰어나는 것·생사와 열반 따위의 생각을 짓지 않는다. 일체 중생은 뒤바뀜 때문에 이러한 생각이 있나니, 만일 뒤바뀜이 없다면 이런 생각이 없이 중도(中道)를 행할 것이다. 이 인연으로써 보리를 얻을 적에 한 생각을 성취하여 두 가지 생각이 없고 이 정(定)을 닦음으로써 다함없는 그릇[無盡器] 다라니 방편을 얻고, 이 다라니 힘으로 마음에 항상 생각 없는 삼매를 닦아서 중생을 가엾게 여겨 크게 슬픈 마음으로 설법하기를 쉬지 않느니라.

 

다시 보녀야, 보살은 보리도를 닦아 행할 적에 평정한 마음[捨心]을 닦아서 괴로움과 즐거움에 대해서 평정하여 괴롭지 않고 즐겁지도 않고 기쁘지 않고 근심하지도 않고 사랑하지 않고 미워하지도 않는다. 이 인연으로써 이익과 쇠함, 헐뜯음과 칭찬에 두 가지 마음이 없고 항상 덧없음·괴로움·나 없음 따위를 관찰하고 또 중생을 교화하여 이러한 버리는 마음을 닦나니, 이 인연으로써 보리 얻는 때를 큰 평정[大捨]이라 한다. 이 평정을 얻고는 큰 바다 인[大海印] 다라니 방편을 얻나니, 이 다라니 힘을 지니므로 비록 하늘·사람·아수라·건달바·가루라·긴나라·마후라가·제석천·범천의 공경과 공양을 받아도 즐거워하지 않고, 삿된 소견을 가진 악한 사람이 경멸하고 모욕하더라도 근심하지 않고, 그 마음 평등하여 땅·물·불·바람과 같이 올라가지도 않고 내려오지도 않고 흔들리지 않고 흐리지 않아서 대자비(大慈悲)를 닦느니라.

 

다시 보녀야, 보살은 보리도를 닦을 적에 지극한 마음으로 보리의 깊고 깊은 법과 갖가지 선근을 구하며 성문승(聲聞乘)을 구하지 않고 큰 슬픔을 닦는다. 이러한 마음은 물러나거나 흔들림이 없나니, 이 인연으로써 보리를 얻을 적에 여래의 하고자 하는 것[欲]을 이룩하여 더함도 없고 덜함도 없어 금강 당기[金剛幢] 다라니 방편을 얻고 큰 자재를 얻어서, 어떻게 말할 줄 알고 어떤 일 말할 것을 알고 어떤 때에 말할 것을 알고 어떤 곳에서 말할 것을 알고 어떤 중생을 위하여 말할 것을 아느니라.

 

다시 보녀야, 보살은 보리도를 닦을 적에 항상 부지런히 정진하여 여러 착

 

                                                                                 [164 / 1773] 쪽

한 법을 함에 있어 만족을 모르고 덕이 높은 스님과 착한 벗을 공경하고 공양하며 또 항상 친근하여 바른 법을 즐거이 듣고 듣는 대로 가진다. 이러한 정진은 중생을 조복하기 위함이요, 한량없는 여러 부처님을 공양하려고 함이요, 한량없고 끝없는 중생으로 하여금 위없는 도를 얻게 하기 위함이요, 또 이러한 정진을 얻어 법문에 들어가게 하기 위함이다. 이 인연으로써 불법(佛法) 다라니 방편을 얻나니, 그러므로 보살은 보리를 얻을 적에 이러한 정진을 성취하여 줄어드는 것이 없고 정진을 지닌 까닭에 신통을 구족하느니라.

 

다시 보녀야, 보살은 보리도를 닦을 적에 염(念)하는 마음을 구족하여 4념처(念處)를 닦아, 안팎 몸[內外身]이 덧없음[無常]·괴로움[苦]·나 없음[無我]을 관찰하나니, 느낌[受]·마음[心]·법(法)을 염하는 것도 또한 그러하다. 공(空)·무상(無相)·무원(無願)의 삼매를 닦아서 여래의 몸이 되려고 신념처(身念處)를 관찰하여 해탈을 증(證)하지 않는다. 이 인연으로써 보리를 얻을 적에, 여래의 염하는 마음을 성취하여 알고 마음의 통함을 얻어서 여러 중생의 근계(根界)를 알고 업(業)의 번뇌, 습기의 마음과 선근·악한 뿌리로 일어나는 과보(果報)의 나고 없어짐과 여러 존재[有]의 차례와 부처님 세계의 여러 승(乘)의 대중과 여러 보살의 행을 구별할 수 있고 부모·친척·스승[師]·화상(和上)을 알아서 이러한 마음을 염하여 잃지 않느니라.

 

다시 보녀야, 보살은 보리도를 닦을 적에 항상 지혜로운 슬기·이익한 슬기·빠른 슬기·그지없는 슬기·매우 깊은 슬기·해득하는 슬기·깨끗한 슬기·움직이지 않는 슬기·걸림 없는 슬기·성문승·연각승을 분명히 아는 슬기·위없는 슬기·만족을 모르는 슬기를 닦는다. 이러한 슬기를 구족하여 슬기를 구하는 법을 구하고, 법을 가지고 법을 말하고 법을 달갑게 좋아한다. 법을 좋아함으로써 안팎 사물에 탐착하는 마음을 내지 않고, 스승인 화상에게 뭇 괴로움을 참으면서 필요한 물건을 받들어 드릴 수 있고, 한 글자·한 글귀의 뜻을 위하여 시방세계의 보배로써 법주(法主)에게 보시하고, 한 게송의 인연으로 신명(身命)을 버리고 비록 한량없는 항하의 모래같이 많은 겁에 보시를 닦아도 한번 보리의 일을 듣고 기쁜 마음을 내어서 바른 법을 즐거이 듣고 즐거이 말하며 항상 여러 부처님·여러 하늘을 위해 염하는 것만 같지 못하나니, 염하는 힘으로 세간의 여러 경전 서론(書論)에 통달하고

 

                                                                                [165 / 1773] 쪽

이 인연으로써 보리를 얻을 적에 부처님 지혜를 이루어 더함도 없고 덜함도 없다. 이러한 지혜를 걸림 없음이라 하여 중생심의 선하고 선하지 않은 것과 선도 아니고 선 아닌 것도 아닌 것과 누(漏) 있고 누 없는 것, 세간 및 세간에 뛰어남, 더러운 법과 깨끗한 법, 생사와 열반, 일체의 법문과 일체 보리의 일, 일체 세계와 일체의 겁(劫), 일체 미진(微塵)의 과거·미래·현재를 안다. 이러한 일을 걸림 없이 통달하여 말할 때 그침이 없나니, 이 인연으로써 여래는 능히 한 가지 법 안에서 한량없는 법을 연설하느니라.

 

다시 보녀야, 보살은 보리도를 닦을 적에 집에서 5욕(欲) 구하기를 즐겨하지 않고, 한가한 곳에서 출가 법 닦기를 즐겨하며, 깊은 이치와 3해탈문 닦기를 즐겨한다. 이 닦는 힘으로 걸림 없는 법문·걸림 없는 지혜를 얻고 악마의 경계를 지나서 장엄을 구족하고, 번뇌와 여러 악한 소견을 멀리 떠나고, 매우 깊은 이치를 말하여 대중의 의심을 깨뜨리고, 일체의 모든 악(惡)과 각(覺)·관(觀)을 제거하고 욕계(欲界)·색계(色界)·무색계(無色界)를 깨뜨리고 탐내는 중생을 위해 바른 법을 연설하여 탐심을 떠나게 하고, 기뻐하거나 성내기 좋아하는 자를 위해 자심(慈心)을 말하여 성냄을 떠나게 하고, 어리석은 자를 위해 12인연을 연설하여 무명을 떠나게 하고, 인색하고 탐내는 자를 위해 단(檀)바라밀을 말하고, 파계하는 자를 위해 시(尸)바라밀을 말하고, 성내고 미워하는 자를 위해 찬제(羼提)바라밀을 말하고, 게으른 자를 위해 비리야(毘梨耶)바라밀을 말하고, 마음이 어지러운 자를 위해 선(禪)바라밀을 말하고, 지혜 없는 자를 위해 반야(般若)바라밀을 말하고, 범부들을 위해 4진제(眞諦)를 말하고, 뒤바뀐[顚倒] 자를 위해 무상(無常)·무정(無淨)·무락(無樂)·무아(無我)를 말하고, 얽매인 자를 위해 37조보리법(助菩提法)을 말한다. 보살은 이러한 법을 구족하나니, 이 인연으로써 보리를 얻을 적에 해탈을 성취하여 더함도 없고 덜함도 없다. 이러한 해탈을 움직일 수 없는 것이어서 필경 청정하고 필경 해탈하여 일체의 성문승·벽지불승을 잘 알고 잘 보며, 또 청정한 다라니 방편을 얻고 다라니 힘으로 능히 해탈을 말하고 일체 법에서 크게 자재로움을 얻느니라.

 

다시 보녀야, 보살이 보리도를 닦을 적에 지혜를 공경하여 지혜의 세력을 얻고 지혜의 광명을 얻고 권속의 지혜를 얻고, 탐냄이 없는 마음을 알고 성

 

                                                                                [166 / 1773] 쪽

냄이 없는 마음을 알고 어리석음이 없는 마음을 알고, 애욕이 없는 마음을 알고, 때 낌이 없는 마음을 알고, 다툼이 없는 마음을 알고, 음식을 바라지 않는 마음을 알고, 탐내지 않는 마음을 알고, 위없는 마음을 알고, 장애 없는 마음을 알고, 혼침[無記]한 마음을 알고, 착한 마음을 알고 착하지 않은 마음을 알고, 악한 마음을 알고, 깨끗한 마음을 알고, 깨끗하지 않은 마음을 알고, 큰마음·작은 마음·좁은 마음·넓은 마음·두루 아는 마음·두루 알지 못하는 마음·탐내는 마음·버리는 마음·계(戒)를 가지는 마음·계를 깨뜨리는 마음·참는 마음․·참지 못하는 마음·게으른 마음·정진하는 마음·정한 마음·어지러운 마음·어리석은 마음·지혜로운 마음·법부의 마음·성인의 마음·정정취(正定聚) 마음·사정취(邪定聚) 마음·부정취(不定聚) 마음·성문의 마음·연각의 마음·보살의 마음·괴로움이라는 진리[苦諦]의 마음·괴로움의 원인이라는 진리[集諦]의 마음·괴로움의 멸함이라는 진리[滅諦]의 마음·괴로움의 멸함에 이르는 길[道諦]이라는 진리의 마음을 안다. 비록 이러한 것을 알면서도 여기에 빠지지 않고 중생을 조복하기 위하여 항상 바른 법을 말하나니, 이른바 4제(諦)·12인연(因緣)으로서 단견(斷見)과 아견(我見)을 멀리 떠나고 인연의 과(果)는 연(緣)을 따라 생기므로 나[我]·중생(衆生)·명(命)을 말미암지 않음을 알고, 무명(無明)은 지어감[行]을 인연하고 지어감은 식(識)을 인연하고 분별은 이름과 색[名色]을 인연하고 이름과 색은 6입(入)을 인연하고 6입은 닿임[觸]을 인연하고 닿임은 느낌[受]을 인연하고 느낌은 애욕[愛]을 인연하고 애욕은 취함[取]을 인연하고 취함은 존재[有]를 인연하고 존재는 태어남[生]을 인연하고 태어남은 늙어 죽고 근심하고 괴로운 덩어리를 인연한다. 무명이 멸(滅)하므로 지어감이 멸하고 지어감이 멸하므로 식이 멸하고 식이 멸하므로 이름과 색이 멸하고 이름과 색이 멸하므로 6입이 멸하고 6입이 멸하므로 닿임이 멸하고 닿임이 멸하므로 느낌이 멸하고 느낌이 멸하므로 취함이 멸하고 취함이 멸하므로 애욕이 멸하고 애욕이 멸하므로 존재가 멸하고 존재가 멸하므로 태어나고 죽고 근심하고 고뇌함이 멸하여 큰 고통의 덩어리가 멸한다. 이러한 관(觀)을 일으키고는 다시 이러한 생각을 일으키나니, 이와 같은 법은 실로 나의 조작이 아니고 중생(衆生)·명(命)·장부(士夫)의 조작도 아니요, 상(常)도 아니고 단

 

                                                                                [167 / 1773] 쪽

(斷)도 아니다. 만일 중생·장부 따위의 조작이 아니라면 이것을 공(空)하다 하고, 만일 공한 것이라면 곧 나·중생·수명·장부도 없고 상도 없고 단도 없으며, 만일 상과 단이 없다면 생 없고 멸이 없으며, 만일 생과 멸이 없는 것이라면 3세(世)가 거두지 않음이며, 3세가 거두지 않음은 곧 없음이라 하며, 없음이란 헤아릴 수 없음이니 헤아릴 수 없기 때문에 으뜸가는 이치며, 으뜸가는 이치란 곧 여래의 말씀이며, 여래의 말씀이란 곧 다툼[鬪諍]이 없음이며, 다툼이 없음이란 사문(沙門)의 법이라 하며, 사문의 법이란 곧 허공이니, 만일 이러한 법을 분명히 안다면 진실한 알음이라 한다. 이것을 관하여 여러 악의 인연을 생각하면 무명을 일으켜서 큰 고통의 덩이에 이르나니, 악의 생각을 멸하면 무명도 멸하고 내지 큰 고통의 덩이도 멸한다. 이러한 관을 일으키고 나서 상견(常見)에 집착하지 않고 단견(斷見)에도 집착하지 않아서 일체 법은 인연을 따라 생기고 인연을 따라 없어짐을 알고 일체 법은 나·중생·수명·장부 없음을 알고 피차(彼此)와 중간을 보지 않는다. 왜냐하면 피차가 없다면 무엇으로 중간이 있다 하겠는가. 그러므로 보살이 이렇게 설법한다. 이 인연으로써 보리를 얻을 적에 해탈 지혜를 성취하여 더함 없고 덜함 없고 또 그지없는 다라니 방편을 얻고, 다라니를 얻음으로써 법계에 따라 허공계를 관찰하고, 그럴 수 있음과 그럴 수 없음을 말하고, 누 다하는 힘[漏盡力]과 4무소외와 대자대비에 이르고, 매우 깊은 비밀의 갈무리[藏]를 펴 말하고 겸하여 이 법으로써 중생을 교화하나니, 이것을 2승(乘)과 함께하지 않는다고 한다. 몸·입·뜻의 업은 신통을 구족하느니라.

 

다시 보녀야, 보살이 보리도를 닦을 적에 일체 몸의 업은 지혜를 따라 행하고, 중생을 속여 방해와 걸림을 일으키지 않고, 탐내지 않고 인색하지 않아서 해치는 마음이 없고, 범행(梵行)이 청정하여 정진을 부지런히 닦고 조도법(助道法)을 모아서 신명을 아끼지 않고, 여러 중생을 위하여 대자비를 일으킨다. 이 인연으로써 보리를 얻을 적에 이름을 여래라 한다. 일체 몸의 업은 지혜를 따라 행하므로 일체 빛나는 다라니 방편을 얻고 이 다라니 힘으로 능히 갖가지 방편의 몸을 만드나니, 이른바 하늘의 몸·용의 몸·아수라의 몸·가루라의 몸·건달바의 몸·긴나라의 몸·마후라가의 몸·범천의 몸·제석천의 몸·사천왕의 몸·찰리의 몸·바라문의 몸·비사(毘舍)의 몸·수

 

                                                                                [168 / 1773] 쪽

타(首陀)의 몸·비구·비구니·우바새·우바이의 몸들이다. 이러한 갖가지 몸을 나타내 보이고 나서 여러 대중을 위하여 뜻대로 설법한다. 설법을 이미 마치면 곧 사라져 나타나지 않아서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있는 곳을 알지 못하게 하고 혹 몸이 멸하고 나서도 짐짓 설법한다. 일체 중생이 6정(情)으로 우러러보아 만족함이 없고 만일 보지 못할 때에는 마음으로 항상 사모하느니라.

 

다시 보녀야, 보살이 보리도를 닦을 적에 일체 입의 업은 지혜를 따라 행하고 중생을 속여서 망령된 말·두 가지 말·악한 말·옳지 않은 말을 하지 않고, 온당한 말·법어(法語)·계율의 말·과격하지 않은 말·부처님 말·옳은 말·즐거이 듣는 말·즐거이 보는 말을 한다. 이 인연으로써 보리를 얻을 적에 이름을 여래라 한다. 일체 입의 업은 지혜를 따라 행하므로 삼분(三分:慧·智·德)의 다라니 방편을 얻고 이 다라니 힘으로 일체 중생의 말을 잘 알고 중생의 여러 업을 말한다. 부처님이 하신 말씀은 진실한 말·12인연의 말·해탈을 따르는 말·탐내지 않는 말․·고요한 말·인연의 말이다.

 

다시 보녀야, 보살은 보리를 닦을 적에 일체 뜻의 업은 지혜를 따라 행하고 중생을 기만하지 않고 투기하고 해치지 않고, 삿된 소견을 일으키지 않아서 바른 소견을 닦고, 크게 슬픈 마음을 일으켜서 여러 중생에게 그 마음을 평등하게 하고, 끝까지 보리의 마음을 잊거나 잃어버리지 않고 지혜를 구족하여 교만을 없애나니, 이 인연으로써 보리를 얻을 적에 이름을 여래라 한다. 일체 뜻의 업은 지혜를 따라 행하므로 때 끼지 않은[無垢] 다라니 방편을 얻고, 이 다라니 힘으로 한마음 가운데 머물러 일체 중생의 마음을 알 수 있고, 중생의 마음은 다 똑같이 요술 변화하는 모양 같아도 본성품의 청정함을 관하고, 여러 중생 몸의 업은 다 물에 비친 달그림자 같음을 관하고, 여러 중생은 다 자기 몸에 있고 자기 몸도 중생의 몸 가운데 있는 것이 마치 그림자처럼 나타나는 것을 알아서 중생으로 하여금 다 부처님 몸을 지을 수 있게 하고, 또 자기 몸으로 하여금 중생의 몸을 짓게 하는 것으로 일체 움직이거나 바꿀 수가 없느니라.

 

다시 보녀야, 보살은 보리도를 닦을 적에 과거세상 여러 부처님의 지혜를 믿어서 몸·입·뜻의 업에 의심스럽거나 부자유함이 없고, 만일 부처님 일

 

                                                                                [169 / 1773] 쪽

[佛事]의 불가사의함을 들어도 놀라거나 겁내지 않으며, 과거 부처님 세계의 중생이 이미 조복한 것을 믿고, 여래 몸이 시방세계에 노시어 가고 오는 데 걸림 없음을 믿고, 능히 일체 중생의 말을 알아서 그 갖가지에 따라 설법한다. 일체 3세의 지혜가 걸림이 없어서, 과거의 일체 법계와 일체 승(乘)을 분명히 알고 여러 중생의 업과·신통을 알고 다른 사람의 마음 지혜를 알며, 이러한 것들을 마음으로 믿어 의심이 없고 또 중생을 교화하여 자기와 같이 믿게 하나니, 이 인연으로써 보리를 얻을 적에 이름을 여래라 하며 과거세상을 알아서 지혜에 걸림이 없다. 지나간 용건(勇健)삼매를 닦으므로 인하여 건행(健行)다라니 방편을 얻고 이 다라니 힘으로 과거 여러 부처님 세존의 수명·종성(種姓)을 알고 또 과거의 보살·성문·벽지불 등, 일체 중생의 업과(業果)·신통을 알고 또 과거 여러 겁에 부처님 나옴이 있는 것과 부처님 나심이 없는 것과 그 명자(名字)의 깨끗하고 깨끗하지 않은 것과 넓고 좁고 거칠고 가늘고 작은 티끌 따위와 뒤바뀜과 순한 것을 안다. 이러한 따위를 다 분명히 아는 것은 손바닥 안에 암마라과(菴摩羅果)를 보는 것과 같으니라.

 

다시 보녀야, 보살은 보리도를 닦을 적에, 미래세상 여러 부처님의 지혜를 믿어서 몸·입·뜻의 업에 의심스럽고 부자유함이 없다. 만일 부처님 일[佛事]의 불가사의함을 들어도 놀라거나 겁내지 않는다. 미래세계의 중생을 다 조복해야 할 것을 믿고 여래가 시방세계에 노니시어 가고 오는데 걸림 없음을 믿고 능히 일체 중생의 말을 알아서 그 갖가지에 따라 설법한다. 일체 삼매의 지혜에 걸림이 없어서 미래의 일체 법계와 일체 승(乘)을 분명히 알고 여러 중생의 업과 신통을 알고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아는 지혜로써 이러한 것들의 마음을 믿어 의심이 없고 또 중생을 교화하여 자기와 같이 믿게 하나니, 이 인연으로써 보리를 얻을 적에 이름을 여래라 하며, 미래세상을 알아서 지혜가 걸림이 없다. 자비와 정(定)을 닦음으로써 능히 미래의 여러 부처님 세존의 수명·종성을 알고 또 미래의 보살·성문·벽지불 등, 일체 중생의 업과·신통을 알고, 또 미래 여러 겁에 부처님 나심이 있는 것과 부처님 나심이 없는 것과 그 명자의 깨끗하지 않는 것과 넓고 좁고 거칠고 가늘고 작은 티끌 등 뒤바뀜과 순한 것을 안다. 이러한 따위를 모두 분명히 아는 것은 손바닥 안에 암마라과를 보는 것과 같으니라.

 

                                                                                [170 / 1773] 쪽

다시 보녀야, 보살이 보리도를 닦을 적에 현재세상 여러 부처님의 지혜를 믿어서 몸·입·뜻의 업에 의심스럽고 부자유함이 없다. 만일 부처님 일[佛事]의 불가사의함을 들어도 놀라거나 겁내지 않는다. 현재 부처님 세계의 중생이 다 조복한 것을 믿고 여래의 몸이 시방세계에 노니시어 가고 오는데 걸림 없음을 믿고, 능히 일체 중생의 말을 알아서 그 갖가지에 따라 설법한다. 일체 3세의 지혜가 걸림이 없어서 현재의 일체 법계와 일체 승을 분명히 알고 여러 중생의 업과 신통을 알고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아는 지혜로 이러한 것들을 마음으로 믿어 의심이 없고 또 중생을 교화하여 자기와 같이 믿게 하나니, 이 인연으로써 보리를 얻을 적에 이름을 여래라 하여 현재세상을 알아 지혜가 걸림 없다. 깨끗한 정(定)을 닦음으로써 금강 다라니 방편을 얻고 이 다라니 힘으로서 능히 현재 여러 부처님 세존의 수명·종성을 알고 또 현재의 보살·성문·벽지불 등, 일체 중생의 업과 신통을 알고 또 현재의 여러 겁에 부처님 나심이 있는 것과 부처님 나심이 없는 것과 그 명자의 깨끗하고 깨끗하지 못한 것과 넓고 좁고 거칠고 가늘고 작은 티끌 따위와 뒤바뀜과 순한 것을 안다. 이러한 따위를 다 분명히 아는 것은 손바닥 안에 암마라과를 보는 것과 같다.

 

보녀야, 이것을 열여덟 가지 함께하지 않는 법[十八不共法]이라 하느니라.

여래에게 다시 함께하지 않는 법이 있다. 이른바 정수리를 볼 수 없음이니 왜냐하면 끝없는 몸이기 때문이며, 더 뛰어날 수 없는 것을 함께하지 않는 법이라 하나니 왜냐하면 일체의 일을 갖추기 때문이며, 보는 자의 번뇌를 제거함을 함께하지 않는 법이라 하나니 왜냐하면 몸이 약(藥)나무와 같기 때문이며, 대중 가운데서 겁내지 않음을 함께하지 않는 법이라 하나니 왜냐하면 일체가 청정하기 때문이며, 중생의 마음을 아는 것을 함께하지 않는 법이라 하나니 왜냐하면 뜻에 따라 설법하기 때문이며, 도중(徒衆)들의 고요함을 함께하지 않는 법이라 하나니 왜냐하면 스승의 가르침을 따르기 때문이며, 말하는 것이 청정함을 함께하지 않는 법이라 하나니 왜냐하면 이치 없는 말을 말하지 않기 때문이며, 무릇 펴 말하는 것을 듣는 사람이 기뻐함을 함께하지 않는 법이라 하나니 왜냐하면 원수란 것과 친하다는 생각을 떠나기 때문이며, 설법하는 음성을 대중에게 고루 듣게 함을 함께하지 않는 법이라 하나니 .....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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