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방등대집경

대집경(18)-180

근와(槿瓦) 2015. 10. 31. 18:13

대집경(18)-180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171 / 1773] 쪽

왜냐하면 다른 나머지는 이익이 없기 때문이며, 각각 부처님이 바로 자기 앞에만 있다고 보아서 우러러 대할 때 눈이 조금도 깜짝이지 않는 것을 함께하지 않는 법이라 하나니 왜냐하면 몸을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며, 부처님 말씀을 듣고 반드시 착한 움[芽]을 내는 것을 함께하지 않는 법이라 하나니 왜냐하면 한량없는 여러 공덕을 성취하기 때문이며, 보는 사람이 싫어하지 않음을 함께하지 않는 법이라 하나니 왜냐하면 일체의 법을 깨닫기 때문이며, 몸을 쳐들어 두루 돌아보기를 상왕(象王)이 보는 것처럼 하는 것을 함께하지 않는 법이라 하나니 왜냐하면 위의가 청정하기 때문이며, 큰 사자처럼 부르짖음을 함께하지 않는 법이라 하나니 왜냐하면 큰 힘을 구족하기 때문이며, 위의가 온전히 선(善)함을 함께하지 않는 법이라 하나니 왜냐하면 여러 부처님 몸의 업은 지혜대로 행하기 때문이며, 입의 업이 순선함을 함께하지 않는 법이라 하나니 왜냐하면 여러 입의 업은 지혜대로 행하기 때문이며, 일체의 안목(眼目)을 함께하지 않는 법이라 하나니 왜냐하면 여러 뜻의 업은 지혜대로 행하기 때문이며, 중생이 즐거이 듣는 것을 함께하지 않는 법이라 하나니 왜냐하면 말이 미묘하기 때문이며, 최상의 공양을 받는 것을 함께하지 않는 법이라 하나니 왜냐하면 위없는 복밭[福田]이기 때문이며, 다함이 없는 공덕을 함께하지 않는 법이라 하나니 왜냐하면 과보(果報)를 구하지 않기 때문이며, 무너뜨릴 수 없는 것을 함께하지 않는 법이라 하나니 왜냐하면 낱낱 마디[節] 안에 나라연(那羅延)의 힘이 있기 때문이며, 일을 말함이 헛되지 않은 것을 함께하지 않는 법이라 하나니 왜냐하면 여러 근기를 알기 때문이며, 일체의 스승이 되는 것을 함께하지 않는 법이라 하나니, 왜냐하면 일체를 통달하기 때문이며, 수명의 다함이 없는 것을 함께하지 않는 법이라 하나니 왜냐하면 법신(法身)을 얻기 때문이며, 친근한 사람이 큰 이익을 얻는 것을 함께하지 않는 법이라 하나니 왜냐하면 일체의 착한 법을 성취하기 때문이며, 얻은 바의 지혜가 희지 않은 것을 함께하지 않는 법이라 하나니 왜냐하면 3세를 아는 지성(智性)이 청정하기 때문이며, 몸의 피(血)를 내는 자가 5역죄(逆罪)를 얻는 것을 함께하지 않는 법이라 하나니 왜냐하면 일체의 선근(善根)을 성취하기 때문이며, 번뇌의 습기 다한 것을 함께하지 않는 법이라 하나니 왜냐하면 일체 번뇌의 원인을 분명히 알았기 때문이며, 일체 행을 아는 것을

 

                                                                                [172 / 1773] 쪽

함께하지 않는 법이라 하나니 왜냐하면, 일체 법을 깨닫기 때문이다. 보녀야, 이상 말한 것을 여래의 불공법이라 하느니라.”

 

그때 보녀가 다시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얻으신 32상(相)은 어떠한 업인(業因)으로 성취되었나이까?”

 

부처님께서 보녀에게 대답하셨다.

“여래는 한량없는 공덕을 성취하였으므로 32상을 성취하게 되었다. 이제 이 한량없는 일 가운데서 대략 말하리라. 여래는 지심으로 깨끗한 계(戒)를 보호해 가지므로 발바닥이 판판한 모양을 얻고, 갖가지 보시하는 업을 닦으므로 손바닥에 천 폭의 수레바퀴 같은 모양을 얻고, 일체 중생을 속이지 않으므로 발뒤꿈치의 원만한 모양을 얻고, 바른 법을 보호하므로 손가락이 가늘면서 긴 모양을 얻고, 다른 중생을 무너뜨리지 않으므로 손가락과 발가락 사이에 얇을 비단결 같은 모양을 얻고, 묘한 옷을 받들어 보시하므로 손·발의 보드라운 모양을 얻고, 깨끗한 음식으로써 보시하므로 몸 일곱 군데의 원만한 모양을 얻고 부처님 법을 즐거이 들으므로 장딴지가 사슴다리 같은 모양을 얻고, 다른 사람의 허공을 덮고 감추어 주므로 남근(男根)이 오므라들어가는 모양을 얻고, 착한 법을 닦으므로 윗몸이 사자와 같은 모양을 얻고, 항상 착한 법으로써 중생을 교화하므로 가슴 앞 뼈가 판판하고 가득한 모양을 얻고, 겁내고 두려움을 구호하므로 팔꿈치의 두터운 모양을 얻고, 다른 사람의 사업을 보고는 즐거이 협조하므로 손이 무릎까지 내려온 모양을 얻고, 항상 병 든 사람에게 약을 보시하므로 먹은 음식이 목구멍에 이르러 다 진액으로 화하는 모양을 얻고, 항상 장엄을 일으켜 착한 법을 닦으므로 뺨이 사자와 같은 모양을 얻고, 여러 중생에게 마음이 평등하므로 40개의 이[齒]를 얻고, 싸움을 화해시키므로 이의 치밀한 모양을 얻고, 보배를 보시하므로 이의 가지런한 모양을 얻고, 몸·입·뜻이 깨끗하므로 두 어금니의 흰 모양을 얻고, 입의 네 가지 허물을 보호하므로 넓고 긴 현의 모양을 얻고, 한량없는 공덕을 성취하므로 맛[味]에 있어 가장 좋은 맛 모양을 얻고, 중생 가운데에서 항상 보드랍고 연한 말을 하므로 범(梵)의 음성 모양을 얻고, 자비한 마음을 닦으므로 청자색(靑紫色)의 눈 모양을 얻고, 지심으로 위없는 보리를 구

 

                                                                                [173 / 1773] 쪽

하므로 소[牛]의 눈썹과 같은 모양을 얻고, 다른 사람의 여러 공덕을 찬탄하므로 눈썹 사이에 흰 털의 모양을 얻고, 부모와 스승인 화상을 공경하므로 정수리에 살상투의 모양을 얻고, 깊은 법을 즐거이 연설하므로 몸의 보드랍고 연한 모양을 얻고, 깔 자리를 보시하므로 황금색의 모양을 얻고, 세간 일 말하지 않으므로 낱낱 구멍에 한 털이 나는 모양을 얻고, 착한 벗과 스승의 가르침을 즐거이 받들므로 몸의 털이 위로 쏠리는 모양을 얻고, 악한 일을 중생에게 더하지 않으므로 털 색이 미묘한 금빛 모양[金精相]을 얻고, 항상 중생에게 삼매 닦기를 권하므로 몸이 원만하여 마디 없는 모양을 얻고, 나는 곳마다 불상(佛像)을 만들므로 견고한 힘 있는 모양을 얻는다.

보녀야, 보살마하살은 이러한 한량없는 공덕을 성취하여 이 32상을 얻느니라.”

 

보녀가 다시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은 상상할 수 없사온데 상쾌하게도 여래께서 잘 부처님 법을 말씀하셨나이다.”

 

그때 세존께서 보녀를 칭찬하여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네가 말한 바와 같이 일체 중생이 이 이치를 들으면 곧 한량없는 공덕을 구족할 수 있고 듣고 나서 믿으면 또 한량없는 공덕을 성취할 수 있으리라.”

 

이 법을 연설하실 때 시방에 한량없고 그지없는 세계가 여섯 가지로 진동하고 한량없는 중생은 보리심을 내고 5천의 보살은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었다.

 

허공의 여러 하늘은 갖가지 꽃을 뿌리고 뭇 기악을 연주하여 부처님을 공양하면서‘만일 어떤 중생이 이미 한량없고 그지없는 부처님 계신 곳에 여러 덕 뿌리(德本)를 심었다면 곧 여래의 10력, 4무소외, 함께하지 않는 법, 서른두 가지 상을 듣게 되고, 이 사람이 듣고 나서는 능히 깊은 믿음을 내고, 믿고 나서는 능히 대중 가운데에서 사자후를 하여 이러한 법을 말 할 수 있으리라. 왜냐하면 하등의 사람은 이러한 바른 법을 들을 수 없고, 가령 듣게 되어도 반드시 신심을 얻는다고 할 수 없으며, 상등 사람은 계(戒)를 가져 지혜가 구족하므로 곧 들을 수 있고, 듣고 나서는 공경하여 믿고, 믿고 나서는 오래지

 

                                                                                [174 / 1773] 쪽

않아 마땅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것입니다’고 말하였다.

 

보녀가 다시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은 상상할 수 없고 법·승도 그러하여 상상할 수 없으며 이 경(經)을 듣고 믿는 것도 상상할 수 없나이다. 만일 믿는 사람이 있다면 꼭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겠습니까? 세존이시여, 어떤 것을 보살이 법행(法行)을 닦는다고 합니까?”

 

“보녀야, 보살마하살은 벗을 내버리지 않고 은혜를 알아 은혜를 갚고 일체를 가엾고 불쌍히 여긴다. 귀의할 사람이 있으면 끝까지 버리지 않고 지극한 마음으로 보리의 도를 생각하며, 인욕을 닦아서 어려운 보시를 능히 보시하고, 중생을 섭취하여 자비한 마음으로 계(戒)를 보호하고, 착한 이치를 생각하여 바른 법을 보호해 가지고, 법을 즐기고 법을 생각하고 법을 가지며, 고요함을 좋아하여 홀로 빈 한가한 곳에 처하여서 마음으로 후회하거나 물러남이 없고, 잘 중생의 깨끗한 몸·입·뜻을 보호하고, 4무량심으로써 큰 장엄을 일으키고 항상 중생들에게 보리의 도를 권한다. 무릇 강론함에는 대승을 먼저 찬탄하고 남을 먼저 허한 뒤에 뉘우치는 마음을 내지 않으며, 그 행(行)을 청정하게 하여 만족함을 알고 욕심을 적게 하며, 인색하지 않고 질투하지 않아서 성인의 종자를 끊지 않으며, 싸우고 다투는 마음이 없어 인과를 분명히 알며, 믿음[信]·들음[聞]·계(戒)·보시[施]·남부끄러움[慚]·제부끄러움[愧]·지혜(智慧)가 있어 착한 벗을 친근하고 스승의 가르침을 따르며, 교만한 마음이 없어 장로와 덕 있는 이를 공경하고 예배하며, 탐내고 성내고 어리석음과 나 및 내 것을 떠나서 항상 불(佛)·법(法)·승(僧)·보시[施]․·계(戒)·천(天)을 생각하며, 공양을 얻을 때 그 마음이 거만하지 않아서 항상 부지런히 6바라밀(波羅蜜)·공(空)·무상(無相)·무원(無願)의 여러 방편을 닦으며, 나의 상(相)·중생의 수명·장부의 상(相)을 보지 않으며, 4념처(念處)·8정도를 닦나니, 이것을 보살이 범행을 닦는 것이라 하느니라.

 

또 법행이란, 눈 없고, 색 없고, 색의 생각도 없는 행이며, 귀 없으면 소리 없고 생각의 행이 없으며, 코 없으면 향기 없고 향기 생각의 행이 없으며, 혀 없으면 맛없고 맛 생각의 행이 없으며, 몸 없으면 촉감 없고 촉감 생각의 행

 

                                                                               [175 / 1773] 쪽

이 없으며, 뜻 없으면 법 없고 법 생각의 행이 없는 것이다. 다시 법행이란 색 아닌 행·색 아니고 색 아님도 아닌 행이며, 색 아닌 괴로움[苦]의 행·색 아니고 색 아님도 아닌 괴로움의 행이며, 색 아닌 나[我]의 행·색 아님도 아닌 나의 행이며, 색 아닌 공(空)의 행·색 아닌 것도 아닌 공의 행이며, 색 아닌 상(相) 없는 행·색 아닌 원(願) 없는 행·색 아닌 행(行) 없는 행·색 아닌 성(性) 행·색 아닌 실(實) 행·색 아닌 적(寂) 행·색 아닌 생(生) 행·색 아닌 출(出) 행·색 아닌 인연(因緣) 행·색 아닌 취(聚) 행이니, 이것을 법행이라 한다. 수(受)·상(想)·행(行)·식(識) 또한 그러하니라.

 

보녀야, 만일 이러한 쌓임·감관·경계의 행이 없다면 이것을 법행이라 한다. 욕계의 행·색계의 행·무색계의 행이 없고, 머묾이 없고 벗어남이 없음을 법행이라 하며, 가고 옴이 없고 머무는 곳이 없고 마음·뜻·식별이 없고 보고 들음이 없고 아는 것이 없고 몸·입·뜻의 업이 없고, 법도 아니고 법 아닌 것도 아니고,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니고, 과거·미래·현재가 아니고 더러움도 아니고 깨끗함도 아니고, 모임도 아니고 흩어짐도 아니고, 나·중생·수명·장부가 아니고, 상(常)도 아니고 단(斷)도 아니고, 나 아니고 내 것도 아니고, 처음도 아니고 끝도 아닌 것을 법행이라 하고 아법(我法)이라 하고 머무는 곳이라 하고 법 성품이라 하고 법처(法處)라 하고 공처(空處)·비처(非處)라 하고 필경처(畢竟處)라 한다. 움직이지 않고 머물지 않아서 모양(相貌)이 없으며, 나고 멸함이 없어서 닦는 행이 없으며, 취함이 없고 버림이 없고 받음이 없고 보시함이 없나니, 만일 이러한 법을 알아본다면 이것을 참된 알음이라 하고 진실한 알음이라 하고 법의 알음이라 한다. 그러면서도 열반에 있어서는 움직이거나 흔들림이 없나니 이것을 보살의 진실한 법행이라 하느니라.”이 법을 말씀하실 때 8천의 보살이 인(忍)을 성취하였다.

 

그때 보녀는 갖가지 보배로써 부처님을 공양하고 이렇게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만일 어떤 보살이 이러한 법행을 행한다면 이는 곧 일체의 부처님 행을 닦고 수기(授記)를 얻고 보리수 밑에 앉아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성취하겠나이다.”

 

그때 사리불이 보녀에게 말하였다.

 

                                                                                 [176 / 1773] 쪽

“그대는 보살의 물러남이 없는 인[不退印]을 아는가?”

 

그때 보녀가 곧 게송으로 말하였다.

 

여러 중생계(衆生界)와 법계(法界)가

평등하여 서로 다름없다고 관하여

낱낱이 분별을 내지 않으면

이를 보살의 물러남이 없는 인(印)이라 합니다.

과거·미래·현재의

시방세계 여러 세존은

다 평등하게 법계를 관하나니

이를 보살의 물러남이 없는 인이라 합니다.

함이 있는 세계[有爲界]는 다 덧없다고 관하나니

번뇌와 번뇌 없음도 또한 그와 같네.

일체 법의 본성이 청정함을 알면

이를 보살의 물러남이 없는 인이라 합니다.

나고 죽음의 한량없음을 관함에는

그 수 헤아려 알 수 없나니

만일 한 생각에 통달하여 안다면

이를 보살의 물러남이 없는 인이라 합니다.

일체 세간과 여러 법계

세간에 뛰어난 여러 성스러운 법[聖法]을

평등하게 다 진실함을 안다면

이를 보살의 물러남이 없는 인이라 합니다.

만일 능히 여러 부처님 세계

 

                                                                                [177 / 1773] 쪽

여러 마왕 파순 세계를 분명히 알아서

이 둘의 차별 없음을 통달한다면

이를 보살의 물러남이 없는 인이라 합니다.

탐내고 성내고 어리석은

일체 중생의 번뇌는

뒤바뀜의 인연에서 남을 아나니

이를 보살의 물러남이 없는 인이라 합니다.

생사의 법과 열반이며

위없는 바른 도와 보리

이 법이 차별 없음을 관찰한다면

보살의 물러남이 없는 인이라 합니다.

5음(陰)은 보리 같고 보리의 성품 같고

입(入)과 계(界)도 그러하며

이 여러 법이 둘 없음을 관한다면

이를 보살의 물러남이 없는 인이라 합니다.

지수화풍(地水火風)과 조색(造色)

그것을 마치 허공처럼 관하고

이렇게 하면 곧 진실한 인(印)을 얻고

또 시방 모든 부처님의 인과 같으리라.

안계(眼界) 등과 같이 보리도 그러하여

이 두 가지는 평등하여 차별 없고

 

                                                                                [178 / 1773] 쪽

스스로 받아 지녀 다른 이 위해 설법한다면

이를 보살의 물러남이 없는 인이라 합니다.

여러 중생이 지닌 마음을 알아

일체 마음의 인연이 되고

이러한 인연의 걸림 없음을 안다면

이를 보살의 물러남이 없는 인이라 합니다.

중생들이 지닌 여러 근기의

상·중·하를 두루 관찰하고

능히 생사를 관하여 저 언덕에 이른다면

이를 보살의 물러남이 없는 인이라 합니다.

여러 글자·뜻·글귀 다함이 없어

한량없는 겁 동안 연설하여도

파괴하거나 걸림을 일으킬 수 없으면

이를 보살의 물러남이 없는 인이라 합니다.

허공 끝도 다 할 수 있고

세간의 맹렬한 바람도 얽맬 수 있지만

보살이 지닌 물러나지 않는 마음은

일체 세간도 흔들 수 없나이다.

한량없는 다라니를 성취하여서

여러 법 속에서 염(念)함을 잃지 않고

차례로 여러 법 뜻을 연설함은

부처님 말씀과 다름이 없나이다.

시방세계 부처님 세존께서

 

                                                                                 [179 / 1773] 쪽

중생을 제도하려 한량없이 하신 말씀

다 받아 가져 깊은 뜻을 안다면

이를 보살의 물러남이 없는 인이라 합니다.

한량없는 겁 동안 들은 법을

마치 현재 들은 것처럼 연설하고

한량없는 세상에 다라니를 배워서

이와 같은 다함없는 인을 얻었나이다.

이러한 다라니와 위없는 참된 지혜

원만하게 성취하여

보살의 물러남이 없는 인을 얻는다면

능히 이러한 법을 펴 말하리다.

만일 일체 법이 공한 것을 관하여

친근하지 않고 멀리 여의지도 않으면서

물러나지 않는 마음을 성취한다면

이 사람이야말로 공한 인(印)을 지닌 줄 알리다.

일체 법의 공한 인이란

그 성품 본래 나고 멸함이 없나니

이 법계를 분명히 안다면

이를 보살의 물러남이 없는 인이라 합니다.

여러 법은 다 인연을 따라 있고

여러 인연을 떠나서는 법계 없나니

만일 이런 것을 분명히 안다면

마땅히 물러남이 없는 인을 지닌 줄 알리다.

 

                                                                                [180 / 1773] 쪽

지닌 위의와 여러 소리 빛깔을

잠깐 사이에 다 나타내 보임은

중생을 교화하려 하기 때문이니

이는 곧 보살의 물러남이 없는 인이 되나이다.

보시하는 마음은 허공과 같아

한량없는 겁에 다하지 않고

한량없는 공덕을 성취하나니

이는 곧 보살의 물러남이 없는 인이 되나이다.

깨끗한 계(戒)를 닦아 부처님 계 삼고

부처님 계를 얻음은 허공과 같나니

이러한 위없는 계를 성취함은

이는 곧 보살의 물러남이 없는 인이 되나이다.

중생들의 여러 가지 계

학계(學戒)와 무학계(無學戒)

이러한 한량없는 계가 있을 지라도

물러남이 없는 것의 16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만일 최상의 무생인(無生忍)을 얻으면

그 성취 한량없고 그지없으며

이러한 무생인을 얻으면

과거 부처님의 얻음과 같으리다.

중생을 위한 때문에 잘 장엄하여

한량없는 세상에서 쉬지 않고

항상 부지런히 정진을 닦는다면

이는 곧 보살의 물러남이 없는 인이 되나이다.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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