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문촬요

참마음을 닦는 네 가지 위의(眞心四儀)

근와(槿瓦) 2015. 10. 9. 00:42

참마음을 닦는 네 가지 위의(眞心四儀)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어떤 이가 물었다.

"앞에서 망심 쉬는 법을 말씀하셨는데, 다만 앉아서만 익힙니까? 아니면 다니거나 섰거나 할 때도 통하는 것입니까?"

 

나는 답하였다.

"여러 경과 논에서 앉아서 익히는 법을 많이 말씀하셨으니 그것은 이루기 쉽기 때문이며, 다니거나 섰을 때에도 통한다 하였으니 오래오래 익혀야 차츰 익혀지기 때문이다.”

 

<기신론>에 말하기를 '만일 선정(止)을 닦는 사람이 고요한 곳에서 단정히 앉아 뜻을 바로 할 때에는 호흡에도 의지하지 않고 몸에도 의지하지 않고 공(空)에도 의지하지 않고 땅 · 물 · 불 · 바람에도 의지하지 않으며, 나아가서는 보고 듣고 깨닫는 것에도 의지하지 않고, 망심이 일어나면 일어나자 곧 버리며, 버린다는 생각까지 버려야 한다. 그것은 모든 법은 본래 생각이 없어 생각생각에 나지도 않고 생각생각에 사라지지도 않는 것이므로, 또 마음을 따라 밖으로 대상을 생각한 뒤에 마음으로 마음을 버리지 못할 것이요, 만일 마음이 흩어지거든 곧 거두어들여 바른 생각에 머루르게 할 것이니, 그 바른 생각이란 오직 마음뿐으로서 바깥 대상이 없으며, 또 그 마음도 자기모양이 없어 생각생각에 얻을 수 없는 것이다.

 

만일 자리에서 일어나 가고 오고 나아가고 물러가며, 온갖 분별동작을 하더라도 언제나 항상 방편을 생각해서 분수에 따라 관찰해서 오래 익히어 순일하게 익어지면 그 마음이 머물게 될 것이다.

 

마음이 고요하기 때문에 차츰 용맹해져서, 그것을 따라 진여삼매(眞如三昧)에 들어가서 번뇌를 깊이 굴복시키며 신심이 늘어나서 물러나지 않는 지위를 빨리 얻게 될 것이다. 그러나 오직 의혹하고 믿지 않으며, 비방하고 죄가 중하고, 업장이 두텁고 교만하여 게으른 사람들은 들어가지 못한다'하였으니 여기에 의하면 네 가지 자세에 통하는 것이다.

 

<원각경>에 말하기를 '먼저 여래의 사마타행(奢摩他行)에 의하여 계율을 굳게 지키어 대중 속에서도 편안히 있을 것이며, 고요한 방에도 조용히 앉는다'하였으니 이것은 처음으로 익히는 사람을 위함이다.

영가스님이 말하기를 '다니는 것도 선정이요, 앉아있는 것도 선정이거니, 말하거나 침묵하거나 움직이고 고요할 때에도 본체는 언제나 태연하다'하니 이 말에 의하여도 역시 네 가지 자세에 통하는 것이다. 총괄해서 그 공부를 말하다면 앉아서도 마음을 쉬기 어렵거늘 하물며 다니고 멈추는 등에서 어찌 능히 도에 들 수 있겠는가?

 

그러나 공부의 작용이 완전히 익숙한 사람이라면 천성인이 나타나더라도 꼼짝도 하지 않고, 만 가지 요망한 마귀가 있더라도 돌아보지도 않거늘 어찌 다니고 멈추고 앉는 가운데서 공부하지 못하겠는가?

 

마치 어떤 사람이 원수를 갚으려 하여도 다니거나 섰거나, 앉거나 눕거나 음식을 먹는 동안에도 항상 잊지 못하며, 또 누구를 사랑하는 데도 그와 같다. 그런데 더구나 미워하거나 사랑하는 일은 유심(有心)의 일로서 그 유심의 가운데서도 오히려 이룰 수 있거늘 지금 이 공부는 무심의 일이니, 어찌 사의(四儀)가운데서 항상 앞에 나타나지 않을까 의심하겠는가? 다만 믿지 않고 행하지 않을까 두려울 뿐이요, 만일 행하고 믿으면 네 가지 위의 가운데서 도를 결코 잃지 않을 것이다.

 

 

출전 : 선문촬요(普照眞心直說)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