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문촬요

선정과 지혜를 설명함(正示二門定慧)

근와(槿瓦) 2015. 10. 3. 00:37

선정과 지혜를 설명함(正示二門定慧)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어떤 이가 물었다.

“깨달은 뒤에 닦는 법문 가운데 선정과 지혜를 고루 가진다는 이치를 아직도 분명히 알지 못하겠으니, 다시 설명하시고 자세히 보이셔서 미혹을 깨우치고 해탈의 문으로 이끌어 들어가게 하소서.”

 

이렇게 답하였다.

“만일 법과 이치를 말한다면 이치에 들어가는 천가지 문이 모두 선정과 지혜 아닌 것이 없다. 그 강요(綱要)를 들면, 제 성품 위에 본체와 작용의 두 가지뿐이니, 앞에서 말한 바 비고 고요하고 신령스런 앎이 바로 그것이다. 선정은 본체요 지혜는 작용이니, 본체인 작용이기 때문에 고요하면서 항상 알고 지혜가 곧 선정이기 때문에 알면서 항상 고요하다.

 

조계(曹溪)화상이 말하기를 ‘마음의 바탕에 어지러움 없는 것이 자기 성품의 선정이요, 마음 바탕에 어리석음 없는 것이 자기 성품의 지혜이다’한 것과 같다. 만일 이와 같음을 깨달아서 고요함과 앎에 자재하여 선정과 지혜가 둘이 아니게 되면, 그것은 단박 깨치는 문에 들어간 이가 선정과 지혜를 겸해 닦는 것이다.”

 

“만일 먼저 고요함으로써 반연하는 생각을 다스리고 그 뒤에 또랑또랑함(惺惺)으로써 혼침을 다스려서 처음과 나중의 다스림으로 혼침과 산란을 균등히 조절해서 고요함에 들어가는 이는 차츰 깨달음(漸門)에 속하는 열등한 무리가 행할 바이다.

 

비록 또랑또랑함과 고요함을 고이 가진다 하나 고요함만을 취해 수행함을 면하지 못할 것이니, 어찌 할 일을 마친 사람의 본래 고요함과 본래의 앎을 떠나지 않고, 자유자재로 두 가지를 고루 닦는 것이 되리오. 그러므로 조계화상이 말하기를 ‘스스로가 깨닫고 수행하는 것은 다투는데 있지 않나니 앞과 뒤를 다투면 미혹한 사람이다’하였다.”

 

“그러므로 달인의 경지에는 선정과 지혜를 고루 지닌다는 뜻은 힘씀과 작용(功用)에 떨어지지 않고 원래부터 함이 없어서 더 이상 특이한 경지가 없는 것이다. 즉 빛을 보거나 소리를 들을 때에도 그저 그렇게 하고, 옷을 입고 밥 먹을 때에도 다만 그러하며, 똥을 누고 오줌을 눌 때에도 그저 그렇게 하며, 나아가서는 다니거나 멈추거나 앉거나 눕거나 말하거나 잠잠하거나 기뻐하거나 성내거나에 이르기까지 항상 이와 같이 하되, 마치 빈 배를 파도 위에 띄우면 높아졌다 낮아졌다 하는 것 같으며, 물이 산골을 지나면 곧았다 굽었다 하는 것 같아서 마음마다에 아무런 지각이 없다.

 

그리하여 오늘도 훨씬 자유로우며 내일도 훨훨 자유로와서 뭇 인연에 따라 순응하되 아무런 장애가 없어서 선과 악에 대하여 닦으려고도 하지 않고 끊으려고도 않으며, 곧고 거짓이 없어서 선과 악에 대하여 닦으려고도 않고, 끊으려고도 않으며, 곧고 거짓이 없어서 보고 듣는 일에 예사로워서 한 티끌도 상대되는 것이 없는지라. 번뇌를 털어 버리려는 애씀이 필요없으며, 한 생각도 망정(妄情)을 낼 것이 없거니 반연을 잊으려는 힘을 쓸 필요가 없느니라.

 

“그러나 장애가 진하고 습기가 무거우며 수행이 미약하고 마음이 들떠서 무명의 힘이 크고 반야의 힘이 작으므로 선과 악의 경계에 대하여 시끄럽거나 고요함에 끄달리지 않을 수 없어서 마음이 편안치 않은 이에게는 반연을 잊고 떨어뜨리는 공부가 없을 수 없다.

 

그러므로 옛사람이 말하기를 ‘여섯 감관이 대상을 거두어 마음이 반연을 따르지 않는 것을 선정이라 하고 마음과 대상이 모두 공하여 비추어보아 미혹이 없는 것을 지혜’라 한다.

 

이것이 비록 겉모습을 따르는 문중의 선정과 지혜로서 점차로 깨치는 닦는 문의 못난 근기들이 행할 바이기는 하나 다스려 나아가는 문중에서는 없을 수 없다는 것이다. 만일 들뜸이 심하면 먼저 선정의 문으로 이치 그대로 산란을 거두어 잡아 마음이 반연을 따르지 않고 본래의 고요함에 합하게 하며, 만일 혼침이 더욱 많거든 지혜의 문으로써 법을 선택하고 ‘공(空)’을 관찰해서 비추어 보아 미혹이 없어 본래의 앎에 합하게 한다.

 

선정으로써 어지러운 생각을 다스리고 지혜로써 무기(無記)를 다스려서 시끄러움과 고요함을 모두 잊고 물리치는 공부가 끝나면, 대상을 대하여도 생각생각에 근본으로 돌아가고 반연을 만나도 마음마음이 도에 합하여 걸림없이 쌍으로 닦아야 비로소 일 없는 사람이 될 것이다. 만일 이렇게 하면 참으로 선정과 지혜를 고루 가져 불성을 분명히 본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출전 : 선문촬요(수심결)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