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방등대집경

대집경(9)-90쪽

근와(槿瓦) 2015. 10. 2. 01:25

대집경(9)-90쪽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81 / 1773] 쪽

2승(乘)들은 그 경계를 알지 못하네.

중생으로 하여금 과거를 생각하게 하기 위하여

뜻에 따라 제8의 업을 펴 말하네.

 

“선남자야, 여래는 하늘 눈[天眼]이 청정하고 미묘하여서 모든 중생들이 나고 죽음과 떨어짐[墮落]에 있어 훌륭한 용모[善色]를 받기도 하고 추한 용모[惡色]를 받기도 하며, 선한 세계에 나기도 하고 악한 세계에 나기도 하는 것을 보며, 또 능히 모든 업인(業因)을 분명히 알며, 이 중생들이 몸·입·뜻의 악으로써 성인(聖人)을 비방하고 삿된 소견을 더 자라나게 하여 악한 업 때문에 이 몸을 버리고 곧 지옥에 떨어지는 것을 알며, 이 중생들이 몸·입·뜻의 선으로써 성인을 비방하지 않고 바른 소견을 더 자라나게 하여 선업(善業)의 연(緣)으로써 이 몸을 버리고 곧 좋은 세계에 나는 것을 아느니라.

 

여래의 하늘 눈은 그지없기가 마치 허공 같고 한량없기가 마치 법계와 같은 시방의 모든 부처님 세계를 보나니, 중생들이 나고 죽을 때를 다 알며, 모든 세계가 이루어 질 때와 무너질 때를 알며, 중생들이 보리 마음을 낼 때와 없어질 때를 알며, 모든 부처님이 처음 바른 깨달음을 이루어 바른 법바퀴를 굴리시다가 열반에 드는 때를 알며, 모든 성문이 해탈을 증득하고 열반을 취(取)할 때를 알며, 모든 연각이 신통력으로써 중생에게 은혜 갚은 것을 아느니라.

 

이런 일은 5신통·성문·연각·모든 보살로서는 알 수 없는 것이다. 여래의 하늘 눈은 이와 같은 한량없는 공덕을 성취하였고, 하늘 눈을 지닌 까닭에 모든 중생에게 있어 누구는 부처님의 교화 제도를 받을 수 있고, 누구는 성문·연각의 교화 제도를 받을 수 있는 것을 아느니라. 만일 부처님을 따라 교화 제도를 받을 사람이면 여래는 곧 그 몸을 나타내 보여줄 것이다. 그러나 다른 나머지 중생으로서는 볼 수 없을 것이니, 이것을 여래 제9의 업이라 하느니라.”

 

그때 세존께서 곧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82 / 1773] 쪽

한량없는 겁 가운데 선한 업을 닦아

이와 같은 깨끗한 하늘 눈을 얻고

능히 시방 모든 중생을 보며

선하고 악한 색을 모두 성취하였네.

위·중간·아래의 모든 중생을 보고

또 선하고 악한 세계 받는 것을 보며

몸·입·뜻의 선한 업(業)과

업인(業因)이 얻는 모든 과보(果報)를 아네.

또 성문·벽지불·보살들의

선한 법 경계를 알며

시방 부처님이 악마 군사들을 깨뜨리고

바른 법바퀴를 굴려 열반에 듦을 보네.

모든 성문이 해탈을 얻어서

중생들을 교화하여 멸도(滅度) 취(取)함을 보고

벽지불이 신통을 보임으로써

시주(施主)의 은덕 갚음을 보네.

여래가 말씀한 진실한 법은

듣기만 해도 생사의 바다를 건너니

성문·연각·보살들은

부처님이 보는 곳을 알지 못하네.

여래는 몸소 미세한 티끌을 보고

또 한량없고 그지없는 경계를 보며

여래는 부처님의 제도할 바를 교화하나니

그러므로 제9의 업을 펴 말하네.

 

                                                                                 [83 / 1773] 쪽

“선남자야, 여래이신 세존은 모든 번뇌가 다하고 끝까지 해탈하여 나의 생(生)은 이미 끝나고, 범행은 이미 서고 할 일은 이미 마쳐 다시는 후생의 몸[後有]을 받지 않을 것을 아느니라. 부처님의 번뇌가 다한 지혜[漏盡智]는 청정하고 미묘하다. 청정이란 모든 습(習)이 없는 것을 말한다. 성문의 지혜는 끝이 있고 한량이 있다. 무슨 까닭인가. 습(習)이 있기 때문이다. 벽지불의 지혜도 끝과 한량이 있다. 무슨 까닭인가. 큰 슬픔이 없기 때문이다. 부처님의 번뇌 다한 지혜는 한량없고 그지없다. 무슨 까닭인가. 일체 행을 알기 때문이며, 일체 지혜를 모두 성취한 때문이며, 길이 일체 습(習)을 끊은 때문이다. 대자대비를 거두어 가지고 4무소외(無所畏)를 장엄하고, 일체 법에서 상(相)을 취하는 버릇이 없고 일체 세간에서 가장 훌륭하고 다니고, 머물고, 앉고, 눕는 데 아무런 허물 없음이 마치 빈 공중이 청정하고 밝아서 연기와 구름이 끼지 않는 것 같으니라.

 

부처님의 번뇌 다한 지혜도 이와 같아 모든 번뇌의 습(習)이 섞이지 않는다. 여래는 청정함을 성취하고 이 번뇌 다한 지혜를 구족하여, 능히 중생을 위해 펴 연설하여서 듣는 이로 하여금 모든 번뇌를 끊게 하느니라. 보살들이 듣고는 큰 장엄을 일으켜 번뇌를 끊으니, 이것을 여래의 제10의 업이라 하느니라.”

 

그때 세존께서 곧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부처님의 번뇌 다한 지혜 그지없고

청정하여 번뇌의 습(習) 섞이지 않네.

성문·연각은 습(習)으로 맺힌 기운 있어

그 때문에 번뇌 다한 지혜 맑지 못하네.

여래는 대자비를 갖추었으므로

그의 지혜 그지없으며

모든 행을 모두 성취하였으므로

중생들 번뇌의 가는 곳을 아네.

 

                                                                                 [84 / 1773] 쪽

덧없음[無常]과 나 없음[無我]을 연설하시어

중생들로 하여금 공(空)하여 즐거움 없음을 알게 하고

선한 생각 닦고 깨끗한 눈 얻어

중생도 없고 장부(士夫)도 없음을 아네.

대비로 모든 중생을 불쌍히 여겨

시방의 4무소외를 구족하고

번뇌를 끊은 그 지혜 걸림 없으니

그런 까닭에 제10의 업을 펴 말하네.

 

“선남자야, 여래는 4무소외를 구족하여 여래의 업을 이루느니라. 여래의 업이란, 모든 법을 다 깨달아 아는 것이니, 하늘이거나 사람이거나 악마거나 법왕이거나 바라문이거나, 사실 그대로 말함으로써 여래가 깨닫지 못하고 알지 못한다는 것은 그럴 리가 없느니라. 왜냐하면 여래이신 세존은 바른 깨달음[正覺], 또는 평등한 법을 깨달은 이이기 때문이다. 범부의 법이거나 성인의 법이거나 성문·연각·보살· 부처님 법이거나, 배움 있는 법이거나 배움 없는 법이거나, 세간법이거나 출세간법이거나, 선한 법이거나 선하지 않은 법이거나, 번뇌 있는 법이거나 번뇌 없는 법이거나, 함이 있는 법이거나 함이 없는 법이거나, 이러한 법을 평등하게 깨달아 안다. 그러므로 바른 깨달음이라 하느니라.

 

평등을 말함은 공(空)의 평등과 법의 진실을 보았기 때문이다.

 

무상(無相) 평등은 모든 모양을 무너뜨리기 때문에, 무원(無願) 평등은 삼계(三界)에 집착하지 않기 때문에, 무생(無生) 평등은 나는 성품이 없기 때문에, 무행(無行) 평등은 행의 성품이 없기 때문에, 무출(無出) 평등은 나가는 성품이 없기 때문에, 무지처(無至處) 평등은 이르는 곳의 성품이 없기 때문이다. 진실한 평등은 3세(世)의 성품이 없기 때문에, 지혜 해탈의 평등은 무명(無明)의 성품이 없기 때문에, 열반의 평등은 생사(生死)의 성품이 없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법이 다 평등함을 아나니 그런 때문에 여래를 바른 깨달음이라 하느니라.

 

                                                                                 [85 / 1773] 쪽

이렇게 보고는 곧 크게 슬픈 마음으로써 모든 중생을 위하여 펴 연설한다. 만일 세존이 아니면서 세존의 생각을 일으키고, 바른 깨달음이 아니면서 바른 깨달음의 생각을 일으키고, 번뇌가 다하지 않았으면서 번뇌가 다했다는 생각을 일으킨다면, 여래는 4무소외를 구족하여 이와 같은 모든 악의 생각을 무너뜨릴 것이다. 이것을 여래의 제11의 업이라 하느니라.”

 

그때 세존께서 곧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부처님은 모든 법의 평등함을 아나니

그런 까닭에 일체지(一切智)란 이름을 얻었네.

범부·성인·보살·부처님의 업

세간과 출세간의 선하고 악한 업

공(空)·무상(無相)·무원(無願)과 생멸(生滅) 없는 것

모든 그 진실함을 다 보네.

여래는 모두 평등함을 보는 까닭에

중생을 위하여 제11의 업을 펴 말하네.

 

“선남자야, 또 여래는 진실로 길이 모든 번뇌를 다하였느니라. 그런 까닭에 외쳐 말하기를 ‘나는 모든 번뇌를 다하였다. 나는 도무지 사람·하늘·악마·범천·사문·바라문들이 진실로 부처님은 아직 번뇌를 다하지 못하였다고 말하는 것을 보지 못하였다’고 하느니라.

 

무엇을 여래가 번뇌를 다하였다 하는가. 부처님은 욕계(欲界)의 번뇌에서 마음의 해탈을 얻고 일체 유루(有漏)·무명루(無明漏)·일체 습기·일체 견(見)의 누(漏)에서 마음의 해탈을 얻었다. 그런 까닭에 여래를 번뇌가 다한 이라 하느니라. 제일의 진리 가운데 성인의 참된 지혜란 각(覺) 없고 단(斷) 없고 증(證)도 없고 수(修)도 없지만, 유포(流布)하기 위한 때문에 번뇌가 다하였다 하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다함[盡)]란 것은 곧 이 생(生)도 없고 멸(滅)도 없는 것이며, 다함이 없다는 것은 펴 설할 수 없는 것이니, 설할 수

 

                                                                                [86 / 1773] 쪽

없기 때문에 함이 없다[無爲]고 한다. 함이 없다는 것은 남과 없어짐과 머묾이 없는 것이니, 부처님이 세상에 나오거나 말거나 법의 성품은 항상 머무는 것이다.

 

여래는 나[我]와 나의 단[我斷]을 깨닫지 않는다. 여래는 대자대비에 머물러 중생을 위하기 때문에 나의 단을 펴 말하나니, 이것을 여래 제12의 업이라 하느니라.”

 

그때 세존께서 곧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여래는 길이 모든 번뇌의 맺힘과

그지없는 여러 습(習)을 끊으니

그러므로 세상 법으로선 더럽게 할 수 없음이

마치 꽃이 물에 있으면서도 진흙에 묻지 않는 것 같네.

대비는 사람 가운데 사자의 왕

중생을 위한 까닭에 말씀으로 유포하네.

진실은 나고 없어짐이 없음을 아나니

나[我]와 내 것[我所] 없음도 또한 그렇네.

모든 법은 더하고 멸함이 없어

그 성(性)과 상(相)에 따라 진실히 말하나니

여래는 큰 자재한 힘을 얻어

중생을 위한 까닭에 제12의 업을 말하네.

 

“선남자야, 여래는 진실히 도(道)를 막는 법을 말한다. 나는 도무지 사람·하늘·악마·범천·사문· 바라문들이 이 법은 막을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을 보지 못하였느니라. 어떤 것을 막는다 하고, 어떤 것을 막지 않는다 하는가. 도를 막는 한 법이 있으니 이른바 방일(放逸)이며, 두 가지 법이 있으니 남에게 부끄럼 없음[無慚]과 스스로에게 부끄럼 없음[無愧]이며, 또 세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몸·입· 뜻의 악함이며, 네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탐냄·성

 

                                                                                 [87 / 1773] 쪽

냄·두려움·어리석음이며, 다섯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살생·도둑질·음행·거짓말·술 마시는 것이며, 여섯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부처님·법·승단·계율·삼매·방일하지 않음을 공경하지 아니함이며, 일곱 가지 법이 있으니, 첫째는 난 체[慢], 둘째는 보다 난 체[大慢], 셋째는 더 잘난 체[慢慢], 넷째는 그릇 난 체[邪慢], 다섯째는 삿된 말[邪語], 여섯째는 삿된 생활[邪命], 일곱째는 삿된 기억[邪念]이며, 여덟 가지 법이 있으니, 첫째는 삿된 견해[邪見], 둘째는 삿된 사유[邪思惟], 셋째는 삿된 말[邪語], 넷째는 삿된 업[邪業], 다섯째는 삿된 생활[邪命], 여섯째는 삿된 방편[邪方便], 일곱째는 삿된 기억[邪念], 여덟째는 삿된 선정[邪定]이며, 아홉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어떤 사람이 여러 악한 짓을 하고자 하여 현재 그 악한 짓을 하고 자기 벗에게도 짓게 하는 것이며, 또 어떤 사람이 착한 일로써 자기의 원수에게 하게 하고, 어떤 사람이 악한 것으로써 자기에 더하기를 또 이와 같이 하는 것이니, 이것을 아홉 가지라 한다. 열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열 가지 악한 것이다. 첫째는 살생, 둘째는 도둑질, 셋째는 음행, 넷째는 거짓말, 다섯째는 두 가지 말, 여섯째는 악독한 말, 일곱째는 뜻이 없는 말, 여덟째는 탐내고 질투하는 것, 아홉째는 성내고 해치는 것, 열째는 삿된 소견이다.

 

만일 어떤 비구가 악한 생각을 일으켜 이 인연으로써 많은 허물이 있음을 알지 못한다면, 알지 못하는 까닭에 뒤바뀐 마음을 내고 뒤바뀐 인연으로 5개(蓋)를 더 자라게 하고 5개가 더하는 까닭에 모든 번뇌로써 선한 법을 가로 막고 번뇌의 인연과 몸·입·뜻의 업도 모든 악을 짓느니라. 여래는 여실히 이런 법이 도를 막는 것임을 알고, 중생을 위하여 연설하나니 이와 같이

 

                                                                                 [88 / 1773] 쪽

도를 가로 막는 법을 무너뜨리기 때문이다. 이것을 여래 제13의 업이라 하느니라.”

 

그때 세존께서 곧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만일 방일을 닦아 쌓음이 있으면

진실히 해탈을 얻을 수 없을 것이니

몸·입·뜻 따위의 모든 악한 업과

부끄러움 없는 그 모든 번뇌.

악한 법을 친근히 하면 도를 막나니

대치(對治)와 부대치(不對治)를 잘 깨달아서

번뇌를 무너뜨리기 위한 까닭에 연설함은

대자대비한 이의 제13의 업이니라.

 

“선남자야, 여래는 진실로 성도(聖道)의 구경(究竟)을 말한다. 만일 어떤 중생이 바른 생각에 가까이 한다면 반드시 해탈을 얻으리니, 나는 도무지 사람·하늘·악마·범천·사문·바라문들이 도 닦는 이는 끝내 위없는 해탈을 얻지 못하리라고 말하는 것을 보지 못하였느니라. 어떤 것을 진실한 성도라고 하는가. 한 가지가 있으니 이른바 1승(乘)이며, 두 가지가 있으니 사마타(舍摩陀)와 비바사나(毘婆舍那)이며, 세 가지가 있으니 공삼매(空三昧)·무상(無相)·무원(無願)이며, 네 가지가 있으니 4념처(念處)이며, 다섯 가지가 있으니 믿음 등의 5근(根)이며, 여섯 가지가 있으니 6념처(念處)이며, 일곱 가지가 있으니 7각분(覺分)이며, 여덟 가지가 있으니 8정도(正道)이며, 아홉 가지가 있으니 이른바 초선(初禪)에서 멸정(滅定)까지이며, 열 가지가 있으니 이른바 10선(善)이다. 이것을 구경 진실한 성도라 하느니라.

 

또 필경도(畢竟道)란 것은 늘고 줄고 취하고 버림을 짓는 일이 없으며, 집착 없고 방일 없으며,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니다. 이것을 진실한 필경도라 하느니라. 여래 세존은 모든 것을 가엾고 불쌍히 여겨 모든 중생을 위하여 이와 같은 도를 말한다. 이것을 여래의 제14의 업이라 하느니라.”

 

                                                                                  [89 / 1773] 쪽

그때 세존께서 곧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여래는 고요한 법을 분명히 알므로

친근하는 이 있으면 해탈을 얻네.

여래는 스승 없고 가르치는 이도 없어

스스로 단 이슬의 맛을 얻었네.

37조도법(助道法)을 닦으면

번뇌의 맺힘을 없애고 해탈을 얻으리니

생각하여 진실한 법을 잘 알면

법의 성품에 집착하지 않고 참되게 해탈하리라.

여래는 법 보기를 저 허공과 같이 하여

마치 요술의 조화와 아지랑이처럼

10력(力)을 구족한 그지없는 몸

중생을 위하여 제14의 업을 말하네.

 

“선남자야, 여래의 몸의 업[身業]은 허물이 없다. 어리석은 이거나 지혜 있는 이거나 여래에게 허물이 있다고 말하는 이는 없다. 무슨 까닭인가. 여래는 다니거나 앉거나 머물거나 옷을 입고 발우를 들고 음식을 받거나 보거나 듣거나 어떤 말을 하거나, 도시·촌락·사택에 드나들 때 발로 땅을 밟지 않고 언제나 천엽(千葉) 연꽃 위를 다니신다. 만일 어떤 중생이 부처님의 그림자에 부딪친다면 7일 동안 안락하여서 음식의 생각이 없고, 몸이 죽은 뒤에는 좋은 세계[有]에 나리라. 여래의 옷은 몸에서 네 치[寸] 정도 떨어져 있지만 아무리 거센 바람의 힘으로도 움직일 수 없다. 여래는 이와 같은 일이 있어도 그 속마음은 언제나 고요하게 있나니, 이런 까닭에 여래의 몸에는 허

 

                                                                                 [90 / 1773] 쪽

물이 없느니라.

 

선남자야, 여래의 입의 업[口業]도 허물이 없다. 무슨 까닭인가. 때에 맞는 말, 참된 말, 사실대로 하는 말, 바른 말, 틀림없는 말, 옳은 말, 수다하지 않은 말, 무게 있는 말, 깨끗한 말, 일체 것을 아는 말, 미묘한 말, 야릇하지 않은 말, 한 소리의 말을 한다. 이런 까닭에 여래는 입의 허물이 없느니라.

 

여래의 뜻의 업[意業]도 허물이 없다. 무슨 까닭인가. 여래는 항상 모든 불사를 짓는다. 그러나 그 속마음은 처음부터 교만함이 없고, 지혜와 생각을 고달프게 아니하여도 법 알기를 극진히 안다. 이것을 여래의 걸림 없는 지혜라고 이름하나니, 이런 까닭에 여래의 뜻은 허물이 없느니라. 중생들의 이와 같은 허물을 무너뜨리게 하기 때문에 법을 펴 설한다. 이것을 여래의 제15의 업이라 하느니라.”

 

그때 세존께서 곧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여래의 몸·입·뜻이 고요하므로

허물 있다고 말하는 이가 없네.

설할 수 없음을 유포하기 때문에

이 업과 업 아님을 말하여 업이라 하네.

 

“선남자야, 여래는 하늘·사람·악마·범천·사문·바라문들과 더불어 싸움을 일으키지 않는다. 무슨 까닭인가. 사랑하고 미워함을 버린 때문이다. 일체 세간에서 공양하고 공경하여도 마음으로 잘난 척하거나 즐거워하고 기뻐하지 않으며, 모든 세간에서 헐뜯고 업신여겨도 근심하거나 걱정하지도 않는다. 무릇 선한 일은 이룩하지 않음이 없고 선하지 않는 일은 하지 아니한다. 여래는 실상 세간과 싸우는 일이 없고 또 항상 싸움 없는[無諍] 삼매를 닦는다. 여래는 나가 없고 내 것이 없다. 중생들의 옳고 그른 싸움을 무너뜨리기 위하여 이와 같은 법을 말하나니 이것을 여래 제16의 업이라 하느니라.”

 

그때 세존께서 곧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여래는 다툼 없는 정[無諍定]을 닦나니.....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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