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집경(10)-100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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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그 마음 성냄과 기쁨 없으며,
여래는 뭇 번뇌를 끊나니
그러므로 제16의 업을 펴 말하네.
“선남자야, 여래의 마음은 잊어버리거나 그릇됨이 없어 8해탈에서 생각하는 마음을 잃지 않고, 중생들의 뜻과 행을 항상 관찰하고, 편의에 따라 설법한다. 4무애(無礙)에 있어서도 생각하여 잃음이 없고, 3세(世) 가운데 있어 깊이 생각하여 잊어버리지 않으며, 이미 스스로 깊이 생각하는 마음을 잃지 않고, 또 중생을 위하여 이 생각하는 법을 연설한다. 이것을 여래의 제 17의 업이라 하느니라.”
그때 세존께서 곧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여래는 8해탈을 닦는 까닭에
모든 법에 있어 생각함을 잃지 않고
중생들 마음을 알아 뜻에 따라 연설하여
생각을 얻게 하도록 이 업을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여래는 진실로 정(定)에 들지 않은 마음일 때가 없나니, 다니거나 머물거나 앉거나 눕거나 말하거나 잠잠할 때도 항상 모든 법의 깊고 묘한 뜻을 아느니라. 모든 세간에서 정(定)에 드는 이건 정에 들지 못하는 이건 간에 다 여래의 마음을 알 수가 없나니, 오직 모든 부처님의 도(道)의 힘을 빌리는 이는 제외하느니라. 헤아릴 수 없는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항상 정(定)에 있도록 하기 때문에 이와 같은 업을 말한다. 이것을 여래의 제18의 업이라 하느니라.”
그때 세존께서 곧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여래의 바른 깨달음은 항상 정(定)에 있어
하는 일에 산란함이 없으며
항상 삼매에 들되, 아는 이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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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까닭에 제18업을 펴 말하네.
“선남자야, 여래는 진실로 갖가지 생각이 없다. 복밭[福田]과 복밭 아닌 것을 구별하는 생각이 없으며, 또 모든 중생을 분별하는 생각과 법의 생각·바른 깨달음의 생각·법계의 생각과 계를 가짐과 계를 헐뜯는 것을 분별하는 생각이 없으며, 또 원망하는 생각·친한 생각·받고 받지 않는 것을 분별하는 생각과 바른 소견·삿된 소견을 분별하는 생각이 없다. 이런 까닭에 여래는 갖가지 생각이 없느니라. 중생들의 이와 같은 모든 생각을 무너뜨리기 위하여 이 업을 펴 말하나니, 이것을 여래의 제19의 업이라 하느니라.”
그때 세존께서 곧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여래는 길이 모든 생각을 끊었나니
그러므로 모든 법계를 분명히 알며
중생들의 여러 생각을 깨뜨리기 위하여
여래는 제19업을 펴 말하네.
“선남자야, 여래는 또 지혜를 따라 마음을 버리고 그 버림을 알지 못함이 없다. 무슨 까닭인가. 몸을 닦는 때문이며, 계(戒)를 닦는 때문이며, 마음을 닦는 때문이며, 지혜를 닦는 때문이며, 어리석음을 끊은 때문이다. 여래가 마음을 버리고 세간에 나온 것은 곧 이 성스러운 버림[聖捨]이며, 이 필경의 버림이며, 범륜(梵輪)을 굴리는 버림이며, 공통되는 대자비의 버림이며, 중생을 이롭게 하는 버림이며, 다스림[對治]을 아는 버림이다. 이와 같은 따위의 버림은 늘거나 줄지도 않으며, 높지도 낮지도 않으며, 번뇌가 섞이지 않아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니며, 때를 관찰하지 않아 걸림 없고 상대가 없으며, 머물지 않고 움직이지 않고 숨기지 않고 드러나지 않으며, 진실하여 헛되지 않느니라. 여래는 이러한 큰 버림을 성취하였으므로 모든 중생을 위하여 설법하나니 이것을 여래의 제20의 업이라 하느니라.”
그때 세존께서 곧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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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래는 몸·계·마음·지혜를 닦아
그 지혜에 따라 버리는 마음 닦으며
모든 중생에게 사랑도 미움도 없고
움직이지 않고 머물지 않아 진실로 버린다.
대자대비의 위없는 높은 이는
이와 같은 큰 버림을 갖추었고
걸림 없는 지혜로 중생을 조복하고자
청정한 제20업을 연설하네.
“선남자야, 여래의 욕업(欲業)은 늘거나 줄지 않는다. 어떤 것을 욕업이라 하는가. 선한 법을 행하고자 함이니라. 이른바 대자대비로 설법하여 사람을 제도하고, 고요한 데 편히 머물러 모든 보살을 권하여 보리도를 배우게 하고, 3승(乘)의 종자를 서로 이어서 끊어지지 않게 하느니라. 이와 같은 모든 욕업은 욕심을 따라 나지 않고 지혜를 따라 나는 것이니,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구족케 하려고 하기 때문에 바른 법을 연설한다. 이것을 여래의 제21의 업이라 하느니라.”
그때 세존께서 곧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여래의 욕심이란 더하고 덜함이 없어
대자대비한 까닭에 설법하나니
3승을 끊지 않는 그지없는 그 몸
중생을 위하여 이와 같은 업 연설하네.
“선남자야, 여래의 정진(精進)은 쉬는 일이 없다. 어떤 것을 쉬지 않는다 하는가. 이른바 중생을 조복하여 설법하고 교화한다. 가령 어떤 사람이 헤아릴 수 없는 겁 동안 부처님 곁에서 법을 들어도 여래는 그를 위하여 말씀하기를 쉬지 않을 것이며, 만일 어떤 부처님이 헤아릴 수 없는 겁 동안 법을 연설하는 이가 있다면, 여래는 또 그 법 듣기를 마음에 게을리 아니할 것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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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항하의 모래보다 많은 세계에 교화를 받을 어떤 중생이 있으면, 여래는 마땅히 그를 버리지 않고 먹지 않고 쉬지 않아도 피로하거나 게으르거나 후회하거나 물러나는 마음을 내지 않고, 항상 중생에게 권하여 부지런히 정진하게 하리라. 이것을 여래의 제22의 업이라 하느니라.”
그때 세존께서 곧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정진을 갖춘 사람의 사자왕
대중 가운데 정진을 찬탄하고
정진·설법 쉬는 때가 없어
그러므로 제22의 업에 나아가네.
“선남자야, 여래가 생각하는 마음은 늘거나 줄지 않는다. 무슨 까닭인가. 여래는 처음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을 때 일체 과거·미래·현재 중생들의 마음을 두루 관찰하고, 뒤에 설법할 때 먼저의 기억을 잊어버리지 않는다. 기억은 3취(聚) 및 3근(根)에 근본 되나니, 무릇 연설할 때마다 기억을 일으키지 않음이 없다. 이것을 여래의 제23의 업이라 하느니라.”
그때 세존께서 곧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여래가 처음 보리를 얻었을 때
중생들 여실한 마음 두루 관찰하고
무릇 설법함에 기억을 잊어버리지 않나니
제23업은 부처님이 말씀하신 바이다.
“선남자야, 여래의 삼매는 일체 법에 평등하여 줄지 않나니, 그런 까닭에 모든 부처님은 다 평등하니라. 1억 가지 탐냄·성냄·어리석음과 1억 가지 탐냄 없고 성냄 없고, 어리석음 없음에 있어서도 그 마음이 평등하여 차별이 없으며, 함이 있고[有爲] 함이 없고[無爲], 나고 죽고 열반하는 데 있어서도 또한 그러하니라. 이와 같은 평등한 삼매를 갖추고 눈·귀·코·혀·몸·뜻을 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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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大), 삼계(三界)는 이것도 아니며 저것도 아니며 또 일체 것도 아니며 늘지도 않고 줄지도 않는다. 중생으로 하여금 이 삼매를 얻게 하기 위하여 바른 법을 연설하나니, 이것을 여래의 제24의 업이라 하느니라.”
그때 세존께서 곧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여래는 평등하게 일체 법을 관하므로
항상 정(定)한 마음 어지러움 없고
삼계의 거두는 바 되지 않아
모든 근(根)·4대 또한 그러네.
일체 법은 차별이 없어
평등하게 선하고 선하지 않음을 관찰하여
여래가 이와 같은 업을 연설함은
모든 중생을 위하여 이 정을 얻게 함이네.
“선남자야, 여래의 지혜는 항상 늘지 않는다. 이 지혜 힘으로 모든 법을 알고 능히 중생들의 뜻 가는 데를 따라 설법하여 걸림 없는 지혜를 얻고 모든 이치를 알고 모든 글자를 알고 모든 글귀를 알고 헤아릴 수 없는 겁 동안 한 글귀 법을 연설하고 헤아릴 수 없는 이치를 내어 일체 의심을 끊고 3승(乘)의 법과 8만 4천 법문을 말하고, 또 8만 4천의 법취(法聚)를 말한다. 이것을 한량없고 그지없는 지혜라 하느니라. 중생으로 하여금 이 지혜를 얻게 하기 위하여 바른 법을 펴 말하나니, 이것을 여래의 제25의 업이라 하느니라.”
그때 세존께서 곧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부처님 지혜 걸림 없고 그지없이
능히 걸림 없고 그지없는 법을 말하고
한 글자를 늘여 한량없는 글귀 짓고
한 글귀 늘여서 한량없는 뜻을 짓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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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만 4천 법문과 또 그곳
모든 법취(法聚)를 말하여
중생들로 하여금 걸림 없는 지혜를 얻게 하려고
이와 같은 업을 펴 말하네.
“선남자야, 여래의 해탈은 덜함이 없다. 성문(聲聞)은 다른 이로부터 들음으로써 해탈을 얻고, 연각은 인연을 따라 해탈을 얻고, 여래는 스승 없이 스스로 깨달아 길이 번뇌와 습기를 끊고, 과거는 끊지 않고 미래에도 집착하지 않고 현재에도 머물지 않으며, 눈과 색의 두 가지 법에 탐착하지 않고 나아가 뜻[意]과 법(法)에 이르기까지도 또한 그러하며 마음과 성품의 깨끗함을 안다. 그런 까닭에 외쳐 말하기를 ‘여래는 한 생각[一念]으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다’한다. 중생들로 하여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게 하려고 바른 법을 연설하나니, 이것을 여래의 제26의 업이라 하느니라.”
그때 세존께서 곧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모든 성문들은 들어서 해탈하고
연각들은 인연을 따라 깨닫고
여래는 해탈하여 존재[有]에 집착하지 않고
3세에도 집착하지 않으니, 마음 성품 깨끗하네.
무릇 연설하는 바 해탈하기 때문에
중생에게 위없는 도를 권하고
제26의 업은 법이 아닌 까닭에
대자대비를 중생 속에서 말씀하네.
“선남자야, 여래의 몸의 업[身業]은 지혜를 따라 행하므로 지혜에 둘러싸인다. 이 업을 지닌 까닭에 중생들은 (부처님의) 설법과 침묵과 다니고 머물고 앉고 눕고 먹고, 성읍 촌락에 드나들 때 32상(相)과 80종호(種好)를 듣고 봄으로써 다 조복된다. 이런 까닭에 여래는 몸의 업을 지혜를 따라 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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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을 여래의 제27의 업이라 하느니라.”
그때 세존께서 곧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여래의 몸의 업은 중생을 위한 까닭에
갖가지 묘한 상호(相好)를 보여주며
무릇 거동하는 중생을 조복하고
대비로써 중생을 위하여 이 업을 말하네.
“선남자야, 여래의 입의 업[口業]은 지혜를 따라 행한다. 무슨 까닭인가. 설법이 깨끗한 때문이며, 벗어나거나 잃음이 없기 때문이다. 참다운 바른 말, 이해하기 쉬운 말, 알기 쉬운 말, 높지 않은 말, 낮지 않은 말, 왜곡되지[曲] 않은 말, 거칠지 않은 말, 악하지 않은 말, 어둡지[闇] 않은 말, 부드럽고 연한 말, 가볍지 않은 말, 빠르지[疾] 않은 말, 두려움[畏] 없는 말, 뜻을 알지 못하지 않는[非不解義] 말, 거친 음성[惡聲]이 아닌 말, 느리지[緩] 않는 말, 단 이슬의 말, 사랑스러운[可愛] 말, 차례 있는 말, 장엄(莊嚴)한 말, 공경하는 말, 듣기 즐거운 말, 탐냄이 없는 말, 때[垢]가 끼지 않은 말, 청정한 말, 필경(畢竟)의 말, 속이지[誑] 않는 말, 어리석지 않은 말, 걸림이 없는 말, 넓은 말, 진실한 말, 조작하지 않는 말, 다하지 않는 말, 안락한 말, 몸이 고요한 말, 마음이 고요한 말, 탐냄이 고요한 말, 성냄이 고요한 말, 어리석음이 고요한 말, 악마를 무너뜨리는 말, 사론(邪論)을 깨뜨리는 말, 범천에서 나오는 소리, 가륭빈가(迦陸頻伽) 소리, 제석천 소리[釋聲], 큰 바다 조수 소리[大海湖音聲], 구륜사(拘崙闍) 소리, 추월공작(秋月孔雀) 소리, 구지라(拘枳羅) 소리, 명명새(命命鳥) 소리, 거위[鵝] 소리, 사슴[鹿]의 소리, 거문고[琴] 소리, 북 소리, 고둥 소리, 풍악[伎樂] 소리, 사람이 즐겨 듣는[人樂聞] 소리, 귀에 즐거운 소리, 선한 법을 늘이는 말, 글귀 뜻[句義] 다함이 없는 말, 글자· 글귀· 뜻을 합친 말, 때에 맞은 말, 간략한[略] 말, 족함을 아는[知足] 말, 모든 근(根)을 고루는 말, 장엄을 베푸는 말, 계를 청정히 하는 말, 인행(忍行)을 같이 하는 말, 정진 신통한 말, 멀리 욕계(欲界)를 여의는 말, 지혜를 구족하는 말, 사랑하는 말, 슬퍼[悲]하는 말, 기뻐하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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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리는[捨] 말, 3승(乘)을 연설하는 말, 삼보(三寶)를 끊지 않는 말, 3취(聚)를 아는 말, 3세(世)를 아는 말, 3해탈을 아는 말, 4제(諦)를 분별하는 말, 닦는 말, 찬탄하는 말, 부처님 말, 성인의 말, 그지없는 말, 행(行)이 없는 말이기 때문이다.
선남자야, 여래는 이러한 말을 성취하였다. 그런 까닭에 여래는 모든 입의 업을 지혜를 따라 행하나니 이것을 여래의 제28업이라 하느니라.”
그때 세존께서 곧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여래의 말씀 깨끗한 구슬 같아
한량없는 모든 공덕을 성취하고
그 소리 두루 시방세계에 가득하여
한 음성으로 능히 갖가지를 알게 하네.
무릇 연설하는 것 생각을 일으키지 않고
중생들의 마음 경계 관찰하지 않으면서
여래의 음성은 메아리와 같아
말없고 들림 없음 또한 그러하네.
대자대비는 청정한 말씀으로
중생을 위하여 갖가지 법을 해설하네.
이런 까닭에 여래의 업을 펴 말하니
제28의 업을 과거 부처님과 같이하네.
“선남자야, 여래의 뜻의 업[意業]은 지혜를 따라 행한다. 무슨 까닭인가. 여래는 일체 중생의 마음[心]과 뜻[意]과 식별[識] 등을 명확히 알고, 또 뜻이나 인연이나 탐냄이나 성냄이나 어리석음에 따르지 않으며, 속임[誑]과 의혹[惑]과 나[我]와 내 것[我所]과 무명의 어둠과 가림을 멀리 여의며, 평등 청정하여 그지없기 허공과 같으니라. 그런 까닭에 여래는 닦은 뜻의 업을 지혜를 따라 행하나니, 이것을 여래의 제29의 업이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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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세존께서 곧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여래의 마음 헤아릴 수 없음이
가는 털로써 수미산(須彌山)을 드는 것 같아
항상 중생들의 마음 인연한 바를 관하여
모든 악마와 번뇌 말함을 멀리 여의네.
사람 가운데 상왕(象王), 선한 업을 말함은
중생들 온갖 악을 무너뜨리기 때문이며
중생들 몸·입·뜻을 깨끗케 하기 위하여
제29의 업을 지금 다 말하였다.
“선남자야, 여래의 지혜는 과거세를 아나니, 그 지혜는 걸림 없고 또한 장애가 없느니라. 어떤 것을 지혜라 하는가. 과거 부처님의 헤아릴 수 없는 수와 그 세계에 있는 풀·나무·중생의 수와 그 마음의 반연한 갖가지 음성을 알며, 또 그 부처님이 얼마만큼의 법을 연설하고 얼마만큼의 중생이 성문승(聲聞乘)·벽지불승(辟支佛乘)·보살승(菩薩乘)을 얻었는가를 알며, 또 그 부처님 세계의 수명의 길고 짧음과 중생의 수효 많고 적음과 이름, 갖가지 호흡[喘息]·음식과 중생들의 근계(根界)·의계(意界)·심계(心界)·행계(行界)와 그 마음이 차례로 나고 멸하고 나오고 들어감을 안다. 사실대로 그 수량을 명확히 앎으로써 이것은 보통 지혜로써 알 바 아니다. 이것을 여래의 제30의 업이라 하느니라.”
그때 세존께서 곧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부처님 지혜 걸림 없고 막을 것도 없어
그러므로 한량없는 세계를 다 알고
일체 불사와 중생들의 모든 감관
그 밖의 법계 가지도 분명히 아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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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사자왕이 과거를 아는 것이
손바닥에 아마륵(阿摩勒)을 보는 것 같다.
그지없는 몸 제30의 업을 말함은
중생으로 하여금 과거를 알게 하기 때문이다.
“선남자야, 여래의 지혜는 미래세상을 아나니, 그 지혜는 걸림 없고 또한 장애도 없느니라. 어떤 것을 지혜라 하는가. 여래는 미래세상의 나고 멸함과 모든 세계가 몇 겁(劫)을 겪을 수재(水災), 몇 겁을 겪을 화재(火災), 몇 겁을 겪을 풍재(風災)며, 그 세계가 성립될 때부터 무너질 때까지의 수, 몇 부처님 세계에 몇 부처님이 출세할 것인지, 세계 가운데 얼마만큼 가는 티끌, 얼마만한 성문·연각·보살이 있을 것인가를 안다. 또 그 부처님들이 얼마만큼 먹고 얼마만큼 쉬며, 몇 번이나 다니고 몇 번이나 머물고 몇 번이나 앉고 몇 번이나 누우며, 몇 사람이 성문의 해탈을 얻고 몇 사람이 연각의 해탈을 얻고 몇 사람이 바른 깨달음의 해탈을 얻고 몇 사람이 자(慈)·비(悲)·희(喜)·사(捨)를 닦아 쌓을 것인가를 안다. 또 몇 군데 중생이 차례로 마음이 멸할 것인가를 다 안다. 이런 일을 분명히 앎으로써 보통 지혜가 아니다. 이것을 여래의 제31의 업이라 하느니라.”
그때 세존께서 곧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여래는 오는 세상 모든 법의
나오고 들어감을 다 알고
부처님 세계와 부처님과 중생들
그 마음의 나고 멸하는 것을 아네.
이미 알기 때문에 교만이 없으므로
제31의 여래업이라 이름하네.
“선남자야, 여래의 지혜는 현재세상을 안다. 그 지혜 걸림 없고 또 막는 것도 없느니라. 어떤 것을 지혜라 하는가. 여래는 시방의 현재세계와 여러 부처.....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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