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보단경(法寶壇經)

육조단경(南頓北漸 제7)

근와(槿瓦) 2015. 9. 15. 01:21

육조단경(南頓北漸 제7)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육조대사는 조계산 보림사에 계셨고, 신수대사(606-706)는 형남산 옥천사에 계셔서 두 종이 모두 성하였으므로, 사람들은 <남쪽 혜능, 북쪽 신수>라고 일컬었다.

 

그래서 남쪽의 두 종이 돈과 점으로 갈라져서 배우는 사람들이 근본취지를 모르므로 조사께서 대중들에게 말씀하셨다. “법은 본래 한 종이지만 사람이 남북으로 나뉘었다. 법은 한가지인데 보는데 따라 더디고 빠름이 있을 뿐이니 무엇을 돈점이라 이르는가. 법에는 돈점이 없건만 사람에게 날카롭고 무딤이 있으므로 돈점이라 하느니라.”

 

그러나 신수의 제자들 가운데서 왕왕히 비난하기를 “남종의 조사가 한 글자도 모르는데 뭐 그리 대단할 게 있겠는가?”하였다. 그러나 신수대사는 그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그 분은 스승이 없이 지혜를 얻으셨고, 높은 뜻을 깊이 깨달았으니 나는 그분만 못하다.”하였다. 또 “우리 스승 오조께서 친히 그에게 가사와 법을 전하셨으니 그것이 어찌 공연한 일이겠는가. 내가 능히 멀리 가서 그와 친근하지 못하고, 또 헛되이 나라의 은혜만 받고 있음을 한탄하노라. 너희 모두 다 여기 머물지 말고 조계산에 가서 배우도록 하라.”하셨다. 이어 그 문인 지성에게 명하여 말씀하시기를 “너는 총명하고 지혜가 많으니 나를 위해 조계산에 가서 법을 듣고 마음을 다해 기억하였다가 돌아와서 나를 위해 설명하여다오.”하였다.

지성이 명을 듣고 조계산에 이르러 대중과 함께 참례하고 법문을 들었으나 어디서 왔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그때 조사께서 대중들에게 말씀하셨다. “지금 법을 도적질하려는 사람이 이 모임 가운데 있도다.” 지성이 곧 나와서 절하고 사실을 말씀드렸다. 조사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옥천사에서 왔으면 필시 염탐꾼이 아닌가?” “그렇지 않습니다.” “어째서 그렇지 않은가?” “말씀드리지 않았을 때는 그랬습니다만, 말씀드리고 난 후에는 그렇지 않습니다.” 조사께서 다시 물으셨다. “너희 스승이 어떻게 대중들을 가르치시던가?” “항상 가르치시기를「마음을 머물러 고요함을 관하고 길이 앉아서 눕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마음을 머물러 고요함을 관하여 라는 그것이 병이니라. 앉아서 몸을 구속하는 것이 선이 아니니 또한 이치에 이득됨이 무엇이랴.” 내 게송을 들으라.

 

살아서는 앉아서 눕지 못하고

죽어서는 누워서 앉지 못하니

한덩어리 냄새나는 뼈덩어리가

어떻게 공과를 세우겠는가.

 

지성이 듣고 두 번 절하며 여쭈었다. “제가 신수대사 처소에 있으면서 배운지가 9년이 되는데 깨달음을 얻지 못하였나이다. 이제 화상이 한 말씀을 듣고 나서 문득 본 마음에 들어 맞나이다. 제자가 나고 죽는 일이 크오니 원컨대 화상께서는 큰 자비로써 다시 가르쳐 주옵소서.” 조사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들으니 너희 스승께서 배우는 사람들에게 계 · 정 · 혜를 가르치신다는데 스승이 말씀하시는 계 · 정 · 혜가 어떤 것인지 내게 말해다오.” 지성이 아뢰었다. 신수대사께서 말씀하시기를「모든 악을 짓지 않는 것이 계요, 모든 선을 받들어 행함이 혜며, 스스로 그 뜻을 맑히는 것이 정이 된다.」고 하셨는데, 저편에서 하심은 이와 같거니와 화상께서는 어떻게 사람들을 가르치십니까?”

 

“내가 만약 법이 있어서 사람에게 준다고 말한다면 곧 너를 속이는 것이다. 다만 형편에 따라서 얽힌 것을 풀어 주는 것을 거짓 이름하여 삼매라 하느니라. 너희 스승이 말하는 계 · 정 · 혜는 실로 헤아릴 수 없거니와 내가 보는 계 · 정 · 혜는 그런 것이 아니니라.”

지성이 말했다. “계 · 정 · 혜는 다만 한가지인줄 아는데 어찌 다를 수가 있겠습니까?”

 

“너희 스승의 계 · 정 · 혜는 대승인을 맞이하는 것이요, 나의 계 · 정 · 혜는 최상승인을 맞이하는 것이다. 깨닫고 아는 것이 같지 않기 때문에 소견이 또한 더디고 빠른 것이 있느니라. 내가 말하는 것이 그것과 같은지 다른지 들어 보도록 하라. 내가 말하는 법은 자성을 떠나지 않으니, 본체를 떠나서 설하는 법은 현상에 얽매인 설명이기 때문에 언제나 자기 성품을 어지럽히게 된다. 마땅히 알라. 일체만법이 모두 자기 성품으로부터 작용을 일으키는 것이 참된 계요, 정이요, 혜이니라. 나의 게송을 들으라.

 

마음바탕에 잘못 없음이 자성의 계요

마음바탕에 어리석음 없음이 자성의 지혜며

마음바탕에 어지러움 없음이 자성의 정이며,

더하고 덜하지 않음이 자기의 금강이고

몸이 가고 몸이 오는 것이 본래 삼매이니라.

 

지성이 게송을 듣고 뉘우쳐 감사드리면서 한 게송을 바치었다.

 

“오온의 헛개비 몸

헛개비가 어찌 마지막이리요

진리를 찾아 돌이킨다면

법이 오히려 깨끗치 못하리.”

 

조사께서 그러리라하시고 또 말씀하셨다. “너희 스승의 계 · 정 · 혜는 작은 근기의 지혜를 지닌 사람들에게 권하는 것이요, 내가 말하는 계 · 정 · 혜는 큰 근기의 지혜를 지닌 사람들에게 권하는 것이다. 만약 자기 성품을 깨달으면 깨달음도 열반도 세우지 않으며, 또한 해탈했다는 생각도 세우지 않아서 한 법도 얻을 것이 없어야 만법을 세우느니라. 이 뜻을 알면 이것이 곧 부처님의 몸이요, 깨달음이요, 열반이요, 또한 해탈지견이니라. 견성한 사람은 세워도 되고 안세워도 되며, 가고 옴이 자유로워 막힘이 없고, 걸림이 없어서 경우에 따라 작용하고, 말에 응하여 대답한다. 널리 화신을 나타내지만 자성을 떠나지 않으므로 곧 자재한 신통과 유희삼매를 얻으니 그것을 이름하여 견성이라 하느니라.”

 

지성이 다시 조사께 여쭈었다. “어떤 것이 세우지 않는 뜻입니까?” “자성은 그름이 없고 어리석음이 없고 어지러움이 없어서 생각생각이 반야로 비추어 보며 항상 법이라는 생각을 떠나 자유자재하며 종횡으로 모든 것을 얻으니 무엇을 가히 세울게 있겠는가. 자성을 스스로 깨달아서 문득 깨닫고 닦으면 또한 늦고 더딤이 없으므로 일체법을 세우지 않는다. 모든 법이 적멸할 뿐인데 어찌 순서가 있겠는가.”

지성이 예배드리고 모시기를 원하여 아침 저녁으로 항상 게을리 하지 않았다.

 

지철(혜능의 10대 제자중 1명)이라는 스님은 강서사람이다. 본성은 장씨이고 이름은 행창인데 어렸을 때부터 용기가 있었다. 남종과 북종으로 나뉘어 교화함에 두 종주(宗主)는 비록 네편 내편이 없었지만 문인과 도반들이 다투어 서로 미워하였는데, 그때 북종의 문인들이 신수대사를 내세워 여섯 번째 조사를 삼으려고 했으나 가사와 법이 혜능에게 전해진 일이 천하에 알려졌음을 꺼렸다. 이에 행창을 시켜서 육조대사를 해치게 하였다. 조사께서는 타심통으로 이 일을 미리 아시고 자리맡에 돈 열냥을 놓고 기다렸다. 그날밤 늦게 행창이 조실로 들어와 해치려 하는데 조사께서 목을 내밀었다. 행창이 칼을 세 번이나 휘둘렀으나 조금도 베어지지 않았다. 이에 조사께서 말씀하시기를 “바른 칼은 삿되지 않고, 삿된 칼은 바르지 못하니라. 다만 나는 너에게 돈을 빚졌을 지언정 목숨 빚은 지지 않았느니라.”하셨다.행창이 놀래어 쓰러졌다가 한참만에 깨어나서 슬피 울며 허물을 뉘우치고 출가하기를 간청하였다. 조사께서 돈을 주시면서 “너는 먼저 가거라. 무리들이 도리어 너를 해칠까 두렵도다. 네가 다른 날, 모습을 바꾸어 오면 내가 너를 받아 주리라.”하셨다.

 

장행창(혜능대사를 암살하려던 자)이 뜻을 받들어 그 밤으로 도망하여 다른 곳에서 스님이 되었다. 계행을 갖추고 정진하다가 하루는 조사께서 하신 말씀을 생각하고 멀리 찾아와서 절하며 뵈었다. 조사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오랫동안 생각하고 있었는데 찾아 옴이 어찌 이다지 늦는가”하셨다. “그때 화상께서 죄를 용서해 주셔서, 그 뒤로 출가하여 고행하였으나 그 은혜를 갚을 길이 없습니다. 오직 법을 전하고 중생을 제도할까 합니다. 제가 일찍이 열반경을 보았으니 <늘 있음>과 <덧 없음)의 뜻을 깨닫지 못했으니 간략히 가르쳐 주시옵소서.”

 

“덧없다는 것은 곧 부처의 성품이고, 늘 있다는 것은 곧 일체선악과 모든 현상법을 분별하는 마음이니라.”

 

“화상의 말씀이 경문과 크게 다릅니다.” “내가 부처님의 마음의 진리를 전하거늘 어찌 감히 불경을 어기겠는가.” “경에는 불성을 <늘 있는 것>이라 하셨는데 화상께서는 도리어 <덧 없음>이라 하시고 선악의 모든 법과 보리심까지도 덧없는 것이라 하셨는데, 화상께서는 도리어 <늘 있음>이라 하시니 이것이 서로 틀리는 것입니다. 저로 하여금 점점 의혹만 더하게 됩니다.”

 

“내가 전에 무진장이라는 비구니가 열반경을 독송하는 것을 한번 듣고 설명해 준 일이 있는데 한 글자, 한 뜻도 경문에 맞지 않는 것이 없었으며 이제 너를 위해서 말하는데도 역시 두 가지 말을 하지 않느니라.”

 

행창이 말씀드렸다. “제가 아는게 없고 소견이 얕고 어두우니 원컨대 화상께서는 좀 더 자세히 말씀해 주십시오.”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너는 아는가, 모르는가? 불성이 만약 늘 있는 것이라면 다시 어떻게 선악의 온갖 법을 설명하겠는가. 또 겁이 다 지나더라도 한사람도 보리심을 일으킬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덧없다는 것은 바로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참으로 늘 있는 것이다. 또 일체의 법이 다 덧없는 것이라면 물건마다 모두 제 성품이 있어서 생과 사를 받아 들이므로 참으로 늘 있는 성품이 두루하지 못하게 되리라. 그러므로 내가 말하는 늘 있음이란 바로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참으로 덧없음의 뜻이다. 부처님께서 범부와 외도들이 삿된 집착에 빠지고 모든 이승인이 늘 있는 것을 덧없음으로 알아서 여덟가지 뒤집힌 생각을 이루기 때문에 열반요의교를 말씀하시면서 치우친 소견을 부수기 위해 참 있음 참 즐거움 참 나 참 깨끗함을 나타내어 설하신 것이다. 그런데 이제 네가 말만 따르고 뜻을 등져서 아무 것도 없는 덧없음과 헛된 있음으로써 원묘하신 최후의 말씀을 잘못 알고 있으니 천번을 읽은들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

 

행창이 홀연히 크게 깨치고 게송을 지어 바쳤다.

 

덧없음 지키는 마음 있기에

부처님 늘 있는 성품을 말하셨네.

이것이 방편인줄 알지 못하면

봄 못속에 조약돌 줍는 격이리

내 이제 아무 공도 베풀지 않으니

불성이 눈앞에 나타나네.

스승께서 주심도 아니요

내 또한 얻은 것도 없노라.

 

대사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이제 똑똑히 알았으니 마땅히 지철이라 이름하라.”하시니 지철이 절하고 사례한 후 물러 갔다.

 

한 동자가 있으니 이름은 하택 신회(670~744)이고 양양 고씨의 자손이다. 열세살 때 옥천사로부터 찾아 와 뵙고 참배하였는데 조사께서 말씀하셨다. “선지식이여, 멀리 오느라 고생이 많구나. 도대체 근본을 얻어 가지고 왔는가, 만약 근본이 있다면 의례히 주인을 알 것이니 한번 말해 보라.” 신회가 말했다. “머무름 없는 것으로 근본을 삼으니 보는 그것이 바로 주인인가 합니다.” “사미야, 어찌 그리 쉽게 말하는가?” 하시고 주장자로 세 번 내리 치셨다. 신회가 여쭈었다. “화상께서 좌선을 하실 때 보십니까, 보시지 않으십니까?” “내가 너를 때렸는데 아픈가, 아프지 않은가?” “아프기도 하고 아프지 않기도 합니다.” “나도 또한 보기도 하고 보지 않기도 한다.” 신회가 다시 여쭈었다. “어떤 것이 보기도 하고 보지 않기도 하는 것입니까?” “나의 보는 바는 항상 내 마음의 허물만 보고 다른 사람의 옳고 그름과 좋고 나쁨을 보지 않는다. 그러므로 또한 보기도 하고 보지 않기도 하느니라. 그런데 네가 말하는 아프기도 하고 아프지 않기도 한 것은 어떤 것인가. 만약 아프지 않다고 하면 나무나 바위와 같으며, 만약 아프다면 범부와 같아서 곧 성내고 원한을 일으킬 것이다. 네가 말한 보고 안본다는 것은 두 가지의 극단이요, 아프다 안아프다하는 것은 생멸이로다. 네가 아직 자성을 보지 못하고 감히 그런 희롱의 말을 하느냐.”

 

신회가 예배하고 뉘우쳐 사과드렸다. 조사께서 말씀하셨다. “네가 만약 마음이 어리석어서 보지 못한다면 선지식에게 물어서 길을 찾을 것이며, 네가 만약 마음을 깨달았다면 스스로 성품을 알아서 법대로 수행해야 하리라. 그런데 너는 왜 스스로 어리석어서 제 마음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나에게 와서 나의 보고 보지 않음을 묻는가. 내가 보는 것은 스스로 앎이니 어찌 너의 어리석음을 대신하며, 네가 만약 스스로 본다면 또한 나의 어리석음을 대신할 수 없는데 어찌 스스로 알고, 스스로 보지 못하면서 나의 보고 보지 않음을 묻는가?”

 

신회가 다시 백여번 절 하여 허물을 사죄하였고 부지런히 모셔서 좌우를 떠나지 않았다.

 

어떤 날 조사께서 대중들에게 말씀하셨다. “나에게 한 물건이 있는데 머리도 없고 꼬리도 없으며 이름도 없고 글자도 없으며 등도 없고 얼굴도 없으니 여러 사람들은 아는가, 모르는가?” 신회가 나와서 아뢰었다. “이것은 모든 부처님의 본원이요, 신회의 불성입니다.” 조사께서 말씀하셨다. “너에게 말하기를 이름도 없고 글자도 없다고 했는데 네가 이제 다시 본원이니, 불성이니 하였다. 네가 돌아가서 한 지방의 지도자가 되면 다만 한 개의 지해종도를 이루리라.”

 

신회가 훗날 낙양에 들어가서 조계의 돈교를 크게 넓히고「현종기」를 지어서 세상에 행하였다.

 

대사께서 여러 종파에서 어려운 질문을 가지고 올때 모두 나쁜 마음을 일으켜서 자리에 모임을 보시고 불쌍히 여겨 말씀하셨다. “도를 배우는 사람이 마땅히 일체의 착한 생각과 악한 생각을 다 없애고 무어라고 이름할 게 없음을 자성의 둘 아닌 성품이라 하며, 이 이름이 참다운 성품이니라. 이 참다운 성품위에 일체의 가르침을 건립한 것이니 말 끝에 스스로 볼지어다.”

 

모든 사람들이 말씀을 듣고 나서 다 예배 드리고 스승으로 모실 것을 청하였다.

 

 

출전 : 육조단경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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