色이 곧 空이다 132

반야심경-117(알기쉬운반야심경,23페)

반야심경-117(알기쉬운반야심경,23페)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인생은 소인 찍힌 속달 소포- “바쁘다”, 이 말은 날마다 쓰이는 일상적인 인사말이 되어 버릴 만큼 우리들은 날마다 무엇인가에 쫓기고 있습니다. 교통 수단이 편리하게 되면 될수록 개인의 주변은 더욱 더 바쁘게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실로 어처구니 없는 부조리이며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지만 또한 숨길 수 없는 현실입니다. 이렇게 분주한 몸과 마음의 소용돌이 속에서 시달림을 받고 있는 현대인 가운데 한 시인(詩人)이 어느 시골의 역을 통과하는 특급 열차에 앉아서 차창 밖을 바라보며 지은, 다음과 같은 라는 시를 읽어 보는 가운데 우리는 무엇인가를 공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급하게 서둘러도 되는 것일까 모내기 하는 사..

반야심경-116(알기쉬운반야심경,30페)

반야심경-116(알기쉬운반야심경,30페)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네 자신의 말로 집을 지어라- 이란 글자를 보면, 공중(空中)·공허(空虛)·공백(空白)·공간(空間)과 같은 몇 가지 의미로 쓰이는 글자임을 알 수 있습니다. 사전에는 ① 속이 빈 것 ② 공간·하늘 ③ 근거가 없는 일 ④ 헛 일 등으로 풀이되어 있습니다. 잡을 곳이 없는 마음이기 때문에 근거가 없는 것입니다. 어떤 계기에서 붙잡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지만, 사실은 실체가 없어서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 것, 그러나 결코 없다고 할 수는 없는 것, 있는 것 같으면서도 없고, 없는 것 같으면서도 있는 것이 마음의 본질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수년 전 일본의 어느 국제공항에서 불행한 사고로 죽음을 당한, 한 학생의 일기에 다음과 같은..

반야심경-115(알기쉬운반야심경,32페)

반야심경-115(알기쉬운반야심경,32페)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보이는 것은 모두 무너지는가- 스스로 깨닫고 자각을 가진, 자신의 말로 이야기하고 쓰지 않는 한, 아무리 멋진 이야기를 했다 하더라도 메울 수 없는 공허감이 따라다닙니다. 그것은 단순히 말하라는, 이야기해 달라는 부탁에 의해서, 마치 이야기가 쏟아져 나오는 기계처럼 이야기가 쏟아져 나온 것이며, 글을 써 달라는 부탁에 의해서 그 글이 써지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자각된 자신의 의지로 인생을 걸어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또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깊이 사색하는 가운데 고민하고 괴로워해 본 일이 없는 사람들이 행동하기 때문에 모두가 공허하게 되는 것입니다. 더구나 이 공허함을 바르게 메우고, 채우려 하지도 않고 ..

반야심경-114(알기쉬운반야심경,27페)

반야심경-114(알기쉬운반야심경,27페)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소중한 자기 자신- 사람은 세상 일이 바빠지면 누구나 는 현상이 생깁니다. 흔히 소지품을 잊고 아무 곳에나 떨어뜨리고 다녀서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곤 합니다. 이 바쁠 망(忙) 자를 위로 세워서 배치하면 잊을 망(忘) 자가 되는 것으로 매우 기발한 착상인 듯합니다. 일찍이 공자(孔子)가 여러 나라를 순력(巡歷)하고 귀국했을 때, 태수(太守)인 애공(哀公)에게 귀국인사를 하며 여행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보고했습니다. 그러자 애공도 공자에게 여행의 피로를 풀도록 위로해 드리고 싶은 마음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생님께서 이곳을 비우고 여행 중에 계실 때에, 이웃나라로 이전해 간 부하가 있었습니다. 그 자는 대단한 건망증이 ..

반야심경-113(알기쉬운반야심경,45페)

반야심경-113(알기쉬운반야심경,45페)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증발하더라도 돌아오지 못하면- 지금의 네팔왕국 다라이 지방에 해당되는 히말라야산 기슭에 카필라바스투(Kapilavastu)라는 작은 나라가 있었습니다. 석가는 카필라바스투의 영주(領主)인 집정관(執政官), 즉 최고 통치자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어렸을 때 이름은 싯달타라고 불렀습니다. 한 마디로 이 석가도 역시 자기의 생활 환경에서 증발해 버릴 것을 계획했고 그것이 성공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석가는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어서 어머니를 여의고 말았기 때문에, 어린 싯달타는 자애로운 어머니의 모습도, 따뜻한 젖도 모르고 자랐습니다. 일찍이 어린 나이에 맛보아야만 했던 덧없는 인생, 즉 무상(無常)의 실감은 성장하고..

반야심경-112(알기쉬운반야심경,49페)

반야심경-112(알기쉬운반야심경,49페)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부처란 진실한 인간성을 의미한다- 기계문명이 발전하면 할수록 인간성이나 생활도 기계화되고 획일화되어 오히려 자유와 창조의 기쁨은 감소되어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마음 속 깊은 밑바닥에 있는 무한한 창조성에 깊이 통달하게 될 때, 우리는 자신의 둘레나 자신 속에도, 참된 것과 착한 것, 아름다운 것, 그리고 거룩한 것이 있음을 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또 그러한 것들을 참된 의미에서 살려 주고 있는 커다란 생명을 응시할 수 있게 될 것이 틀림없습니다. 이 눈은 반야심경의 주인공인 관자재보살의 눈에 상징되어 있습니다. 이 눈은 우리의 마음 속에 태어나기 전부터 묻혀 있었음을 이렇게 깨우쳐 주기도 합니다. ‘관자재보살..

반야심경-111(알기쉬운반야심경,43페)

반야심경-111(알기쉬운반야심경,43페)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풍요는 공허를 안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물건이 부족할 때 욕구불만을 호소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우리 나라도 이제는 개발도상국에서 중진국으로 들어가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에 따라 먹고 입는 의식(衣食)이 족해야 예절을 안다는 말은 무의미하게 되고 말았습니다. 그 단계를 지나서 먹고 입는 것이 족하게 되면 공허(空虛)를 알 수 있게 된다고 말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옛날처럼 쪼들리는 일이 없는, 얼마간 넉넉한 생활이 지속되면 될수록, 소박하고 순진한 마음 속의 진실이 그리워지는 것이 아닙니까. 어느 유치원 원장이 원아들에게 엄마의 모습을 그리게 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어린이가 그려낸 작품은 두 손과 두 다리..

반야심경-110(알기쉬운반야심경,37페)

반야심경-110(알기쉬운반야심경,37페)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허무와 환희와 고뇌와 공감- 죽은 사람이 살아 있는 사람에게 무엇인가 가르쳐 줄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그 사람의 죽음을 통해 누가 가르쳐 주었는가, 누가 알게 해 주었는가, 이 누구를 추구해서 찾아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입니다. 추구해 보면 결과적으로 자기를 파헤치고 자기 안에 있는 스스로의 깨우침이며 터득임을 알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은 바로 자기 안에 깊이 묻혀서 잠겨 있던 진실한 자기 자신을 찾아서 만나게 되는 일임을 깨닫게 해 주는 것입니다. 이 가르침은 현실의 헛되고, 허무함과, 공허함을 철저하게 실감하는 것, 즉 ---이것이 확실해지면 현실에 사는 가치와 뜻을 충분히 자각할 수 있고, 즉 을 깨..

반야심경-109(알기쉬운반야심경,40페)

반야심경-109(알기쉬운반야심경,40페)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자아(自我)에서 풀려난 자유- 현대인들은 개인의 존엄이란 말을 실로 요란스럽게 내세우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 개인 자신이 실제로 존엄을 가지고 있는지 여부는 반성하지 못하고 있는 듯합니다. 그리고 결코 크다고 할 수 없는, 어느 의미에서는 정녕 작은 존재일 수밖에 없는 자신을 중심으로 해서,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생각하는 발상법 때문에 자기가 생각하는 자신의 주위와 주장만이 존엄인 것으로 생각해 버리는 위험도 있습니다. 그 때문에 걸핏하면 상대방을 적대시하기가 일쑤입니다. 한 개인에 지나지 않는 자신을 중심으로 하는 에고이즘이 되어 버립니다. 이 를 불교에서는 자아(自我)라고 이름 지어 계율(戒律)의 말로 쓰고 있습..

반야심경-108(알기쉬운반야심경,278페)

반야심경-108(알기쉬운반야심경,278페)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여래는 길을 가르칠 뿐이다- 부처님에겐 여러 가지 이름이 있었다. 그것은 모두 그분의 덕(德)이나 성격을 나타내는 명칭들이었다. 그 중 대도사(大導師)란 말은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으로 끝없이 헤매는 중생들에게 바른 길을 가르쳐 깨달음의 경지에 들어가게 하는 큰 스승이란 뜻이다. 곧 바른 길을 가르쳐 주는 스승이란 말이다. 부처님은 한평생을 두고 길을 잃고 헤매는 수많은 길손에게 길을 가르쳐 주었다. 어린이에게는 어린이가 가야할 길을, 어른들에게는 어른들이 가야할 길을 가르쳐 주었고, 노인에게는 늙음에서 놓여 나는 길을, 병든 이에게는 병에서 낫는 길을, 그리고 죽음에 이른 사람에게는 영원히 사는 길을 가르쳐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