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의 수명과 관음보살(130)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그때 세존은 모든 보살과 대중에게 말씀하시기를,
“그대들은 부처가 설하는 참된 말을 믿으라.”
이렇듯 말씀하시기를 세 차례에 이르자, 대중들은 또,
“세존이시여, 부디 설해 주십시오. 저희들은 세존의 말씀을 믿겠습니다.”
고 세 번 아뢰었다. 세존은 대중들이 청해 마지않음을 아시고 고하셨다.
“제자들이여, 부처의 기이한 힘을 들어 보라. 세간의 모든 중생은 석가모니가 가비라 성의 궁전을 나와 가야의 숲속에서 무상의 깨달음을 얻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나는 부처가 되고 나서부터 지금까지 참으로 한량없는 겁을 거치고 있다. 그 동안 나는 언제나 이 사바세계에 있으면서 중생들을 가르쳐 이끌었다. 그 밖의 한량없는 국토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일찍이 연등불의 앞에 뜻을 발한 일 등을 설하고 혹은 근간 멸도한다고 말한 것은 모두 방편에 지나지 않는다.
제자들이여, 만일 혹인이 나에게 올 때에는, 나는 불안(佛眼)으로 기근(機根)의 이둔(利鈍)을 보고 그 마땅함에 좇아 혹은 다른 이름을 칭하고 혹은 목숨의 길고 짧음을 시현하고 혹은 멸도를 시현하는 등 중생들에게 기쁨을 일으키게 한다. 또한 부처는 덕이 박하고 때가 무거운 작은 법을 원하는 중생을 위해서는 ‘나는 젊었을 때에 집을 나와 부처의 깨달음을 얻었다고 설하지만, 실은 내가 부처가 된 것은 멀고 먼 옛날의 일로서 다만 중생들을 이끄는 방법으로 그렇게 설했을 뿐이다.
제자들이여, 부처가 설한 경은 모두 중생들을 미혹에서부터 여의게 하기 위해서이다. 그 설하는 바는 여러 가지가 있더라도 어느 것이나 참이지 거짓은 없다. 왜냐하면 부처는 여실히 세간의 상을 앎으로 생사에 미혹하여 빠지는 일도 없거니와 생사를 벗어나는 일도 없으며 세간에 있는 일도 없거니와 세간을 떠나는 일도 없다. 참이라고도 할 수 없고 거짓이라고도 할 수 없고 그대로라고도 할 수 없고 그 밖의 것이라고도 할 수 없다. 이 세간을 보기를 방황하는 사람이 보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부처는 그와 같은 일을 명백히 알아 그르치는 일이 없다. 모든 중생에게는 저마다 각각의 성(性), 각각의 욕(欲), 행(行), 억(憶), 분별이 있으므로 부처는 그들의 선근을 기르기 위해 갖은 인연과 비유 등으로 여러 가지로 법을 설하는 것이다. 즉 내 목숨에는 한이 없지만 욕을 탐하며 싫어하지 않는 중생들을 위하여 방편을 꾀하고 부처가 세간에 나는 것은 만나기 어렵다고 설하여 그들로 하여금 공경하는 생각, 사모하는 마음을 품게 하는 것이다.
비유컨대 많은 아들을 갖고 있는 양의(良醫)가 타국에 간 뒤, 자식들이 독약을 마시고 신음하여 땅에서 뒹군다고 하자, 아버지인 양의가 그곳에 돌아와서 좋은 약을 주었다. 그들 가운데 본심을 잃지 않은 자는 약 때문에 화를 입어서 해독약을 주어도 그 약을 마시려고도 하지 않는다. 때문에 아버지는 방편을 써서 말한다. ‘나는 늙어 죽음이 다가왔다. 여기 좋은 약을 남겨 둘 테니 너희들은 이것을 먹어라’고 했다. 이와 같이 하고서 다시 타국으로 가서 사람을 보내어 그 죽음을 고하게 했다. 자식들은 이 말을 듣고서 깊이 슬퍼하며 ‘아버지가 계시면 저희들을 사랑하셨을 텐데 이제 먼 타국에서 돌아가셨다. 우리들은 의지할 데 없는 고아가 되었다.’ 그리하여 유언을 생각하고 그 약을 먹었는데, 그 병이 나을 무렵에 아버지가 다시 돌아오는 것과 같다.
제자들이여, 세상에 이 양의의 거짓을 책망하는 자가 있을까. 부처가 된 이래 한없는 시간을 거듭했지만, 중생을 구하기 위해 방편으로 세상을 떠나는 것을 설하는 자이다.”
(1) 나는 부처가 되고 나서부터 천만 겁을 지났지만, 그 동안에도 줄곧 법을 설하고 한량없는 중생을 부처의 도에 들게 했노라.
또한 한량없는 겁 동안 중생을 구하고자 방편으로 멸도를 시현했지만, 실은 멸도 했음이 아니라 항상 이곳(영산=靈山)에 있으며 법을 설했노라.
실로 내 이곳에 머물러 온갖 신통력을 나타내었건만, 방황하는 중생은 그걸 모르고 참으로 ‘내가 죽었다’하며 모두 내 유골에 공양하고 애모의 마음을 일으킨다.
(2) 마음은 바르고 곧게, 한마음으로 부처를 보고자 원하며 목숨도 아깝지 않다는 경지에 이른다면 나는 제자들을 이끌고 영취산에 나타나 그 사람에게 말하리라.
나는 마침내 이곳에 있으면서 멸하지 않고, 다만 방편으로 멸과 불멸을 나타낼 뿐, 다른 국토에 있는 중생도 공경하고 신심을 일으키면 내 그곳에 나타나 한없는 법을 설하리라.
그대들은 이를 모르고 나를 멸도했다고 생각한다. 하나 그대들은 고해(苦海)에 있으면서 나의 법신(法身)을 보지 못할 뿐이라.
만일 마음으로써 나를 보고자 애모의 염이 일어나면, 내 즉시 나타나 법을 설하리라.
(3) 한량없는 시간을 거듭하여 내 영원히 영취산과 나의 모든 주처(住處)에 머물러 있으리라. 겁이 다하여 중생들이 불태워지는 일이 있을지라도 내 나라는 항상 평안하며 신들이 언제고 넘치듯 모이고 꽃밭도 누각도 보물로 장엄되고 보물의 나무에는 꽃과 열매가 많고 중생들이 놀며 즐기는 곳, 신들이 북을 울리고 부처와 대중에게 꽃을 뿌려 주리라.
(4) 내 정토는 무너지지 않지만 중생들은 욕의 불길에 불타서 괴로움이 넘친다고 생각하리라. 이러한 죄가 있는 중생들은 그 몸을 악업 때문에 한량없는 겁을 거듭해도 삼보의 거룩한 이름을 듣지 못하리라.
그러나 공덕을 쌓아 닦고 성품이 부드럽고 곧은 자는 내 몸이 항상 이 곳에 있으며 법을 설함을 보리라.
(5) 때로는 이러한 중생을 위해 부처의 수명이 한량없다고 설하고 또한 오랜 후에 드디어 부처를 뵐 중생을 위해 부처를 만나기란 참으로 어렵다고 설하리라.
내 지혜의 힘은 이와 같다. 그 비추는 곳은 끝이 없고 그 목숨에는 다함이 없다. 이는 오래 닦은 도의 공덕 때문이다.
그대들 지혜 있는 중생들은 의심을 일으키지 말지어다. 부처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미륵보살은 자리에서 일어나 세존께 배례하고 노래로써 말씀드리기를,
(1) 이제 부처께서 희유한 법을 설하셨다. 그건 옛날부터 듣지 못한 것.
세존께는 큰 힘이 있어, 목숨이 영원하고 끝이 없다네.
헤아릴 수 조차 없는 세계에 사는 수많은 중생도 부처의 수명이 무량함을 듣고 모두 다 부처가 되겠다는 갸륵한 원을 일으켰네.
세존은 묘법을 설하고 그 큰 은혜는 하늘에 끝이 없음과 같네.
(2) 신들이 꽃을 뿌리면서 새처럼 날아오고 전단 향수를 뿌려 부처님을 공양한다네.
신계(神界)의 북은 허공에 울리고 신의(神衣)는 훨훨 춤추며, 숱한 노래로 부처님을 찬양한다네.
(3) 이는 예부터 없던 일, 부처의 수명이 무량하다 듣고 모두가 기뻐 춤춘다네.
거룩한 이름은 시방에 들리고 널리 중생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네.
온갖 선근을 갖추게 하고 보리심을 키우시네.
세존이 미륵보살에게 말씀하시기를,
“미륵이여, 만일 어떤 사람이 부처의 목숨이 한량없다는 말을 듣고 일념의 신해(信解)를 일으킨다면, 그 사람은 한없는 공덕을 얻으리라. 즉 부처의 도를 구하는 사람이 한없는 겁에 걸쳐 보시, 지계(持戒), 인욕, 정진, 선정의 다섯 가지를 행하더라도 이 일념의 신(信)의 공덕에 비하면 천만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미륵이여, 이러한 공덕을 가졌으면서도 부처의 깨달음에서 물러설 턱이 없다.
미륵이여, 만일 부처의 목숨이 끝없다는 것을 듣고서 그 말의 유래를 깨친다면 그 사람은 한없는 공덕을 얻고 더할 데 없는 부처의 지혜를 일으키리라.
또한 미륵이여, 만일 어떤 사람이 나의 목숨이 한없다는 말을 듣고 깊이 마음으로 믿는다면, 그 사람은 ‘부처는 언제고 영취산에 있으며 많은 대중에게 둘러싸여 설법하는 것을 보리라. 그리하여 그 사람은 또 이 세계가 그대로 유리나 황금의 빛이 찬란한 정토라는 것을 보고 부처의 깨달음을 구하는 많은 중생들을 그 속에서 보리라.’
또 부처가 세상을 떠난 뒤에 이 가르침을 들어 헐뜯지 않고 수희(隨喜)의 마음을 일으킨다면 그것은 깊이 이 가르침을 신해(信解)하는 상이다. 하물며 이를 지닌다면 이 사람은 부처를 우러러보는 사람이다. 고로 미륵이여, 이 사람은 탑사(塔寺)를 세우든가 승방(僧坊)을 짓는다든가 등의 공덕이 필요 없다. 왜냐하면 이 경을 읽고 지니는 자는 이미 그와 같은 공덕을 이룩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세존이 상정진(常精進) 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착한 남녀가 이 가르침을 지니고 중생들을 위해 설한다면 그들은 눈으로 갖가지 수승한 공덕을 얻어 모든 세계의 모든 중생들을 볼 수가 있고 귀로 많은 공덕을 얻어 모든 세계의 갖가지 소리를 들을 수가 있으리라.
또 코와 혀와 몸과 뜻으로 공덕을 얻을 수가 있고 그 말하는 바는 의취(義趣)에 잘 맞고 행하는 바는 바른 법에 잘 어울리리라.”
다음으로 세존은 대세지(大勢至) 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아득한 옛날 위음왕(威音王)이라는 부처가 세상에 나오셔서 모든 중생을 이끌어 깨달음에 이르게 하셨지만, 이 부처가 세상을 떠나신 뒤 정법의 시기가 지나고 다음에 상법(像法)의 시대가 되자 증상만(增上慢)의 출가자들이 세력을 얻고 있었다. 이때 상불경(常不輕)이라는 보살이 있어, 재가 출가의 제자들을 보면 언제나 ‘저는 깊이 그대들을 공경합니다. 결코 가벼이 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대들은 이윽고 부처가 되실 것이므로’라고 말했다. 이렇기 때문에 상불경이란 이름을 얻었던 것이다. 이 보살은 경을 읽지 않고 다만 예배를 행할 뿐이었으므로, 대중들 가운데는 이에 불만을 가진 자도 있어, ‘이 어리석은 출가자는 어디에서 와서 우리들을 위해 거짓으로 깨닫는 날을 고하는 것일까’하고 욕했다. 하지만 그는 조금도 노하지 않고 언제나 ‘그대들은 이윽고 부처가 되리라’고 말했다. 대중들이 성이 나서 몽둥이와 돌로 그를 때리자 피해 달아나며 그래도 소리높이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이와 같이 하여 긴 세월이 지났는데 이 보살은 목숨이 끝날 때, 허공 가운데서 수없는 법화경의 게를 듣고 이를 모조리 마음에 간직했으며 육근(六根)을 청정히 하고 한없는 긴 수명을 증장하고 그리하여 대중들을 위해 법을 설했다.
대세지여, 그때의 상불경 보살은 실로 나였었다. 나는 지난 세상에 이와 같이 이 가르침을 지니고 중생들에게 설했기 때문에 속히 이 더할 데 없는 깨달음을 얻을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때 저 대지에서 솟아난 한없는 보살들은 한마음으로 합장한 뒤 세존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세존이 멸하신 뒤 세존과 인연이 있는 국토에 태어나 널리 이 경을 설하고 퍼뜨리게 되겠습니다. 그것은 우리들 또한 이 대법(大法)을 얻어 밝게 설하고 베껴 지니고 싶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 말을 들으시자 세존은 모인 대중들을 위해 기이한 신력(神力)을 나타내셨다. 그 모임에 있던 모든 부처도 이를 본받아 마찬가지로 신력을 나타냈다. 대중들은 모두 기쁨에 마음이 들떠 합장하고 배례하며 갖가지로 공양물을 바쳤다. 세존은 상수(上首)의 모든 보살에게 고하셨다.
“선남자들이여, 부처의 신력은 이렇듯 한이 없고, 넓고, 크고 또한 불가사의하다. 하지만 이 신력의 힘으로써 한없는 겁에 걸쳐 설한다 하더라도 이 묘법은 다 설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이 경에는 모든 부처가 지니고 있는 모든 법과 모든 신력 또 그 법의 비요(秘要)를 간직한 깊은 내력을 남김없이 설하여 시현하고 있다. 때문에 그대들은 부처가 멸한 뒤에 한마음으로 이 경을 지니고 설하여 외우고 또는 베껴 전하여 가르침과 같이 향하는 것이 좋다. 선남자여, 적어도 이 경이 있는 곳이라면 화원이든 숲이든 승방이든 재가의 집에서든 어떠한 곳에서든 모두 탑을 세워 공양을 하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이 경이 있는 곳은 그대로 모두 부정이 금지된 도량으로써 모든 부처는 이곳에서 각을 얻고 법을 설하고 또한 멸도를 제시하기 때문이다.”
그때 세존은 신통력으로써 헤아릴 수 없는 법을 설하시면서 보살의 정수리를 오른손으로 어루만지셨다.
“나는 참으로 헤아릴 수 없는 겁에 걸쳐 이 얻기 어려운 깨달음의 법을 닦아 이제 이것을 그대들에게 물려 준다. 그대들은 이 법을 마음에 지니고 널리 설하여 모든 중생들에게 들려 주는 것이 좋다. 부처는 대자비의 분이시라 아낌없고 두려워할 바도 없다. 능히 모든 중생에게 부처의 지혜, 자연의 지혜를 주는 것이다. 부처는 모든 생물을 위한 큰 시주(施主)이다. 그러므로 그대들은 부처의 법을 배우되 아끼는 마음을 일으켜선 안 된다. 만일 내세에 어떤 사람이 부처의 지혜를 믿는 자는, 역시 중생에게 부처의 지혜를 얻게 하기 위해 이 가르침을 설하리라. 이와 같이 한다면 참으로 부처의 은혜에 보답할 수가 있는 것이다.”
모든 보살들은 듣고 나자 몸도 마음도 기쁨으로 넘쳤다.
이리하여 세존은 다시 숙왕화(宿王華)보살의 물음에 답하여 약왕(藥王)보살의 과거지사를 설하셨다.
“한량없는 옛날 일월정명덕(日月淨明德)이라는 부처가 세상에 나오셨을 때, 일체중생의견(一切衆生意見)이라는 보살이 이 부처를 따라 한마음으로 각을 구하고 1만 2천년이라는 오랜 뒤에 이르러 갖가지 몸을 나타낼 수가 있는 선정을 얻었다. 그는 기뻐하며 ‘이러한 몸을 얻은 것은 오직 법화경을 들었기 때문이다. 다만 부처님을 삼가 공양하리라’ 마음먹고 선정에 들어가 하늘에서부터 전단의 향을 내리게 하고 다시 1천2백년에 걸쳐 온갖 향유(香油)를 마시고 또한 이것을 몸에 바르고, 또 그것을 뿌린 보의(寶衣)를 두르고서 일월정명덕불의 앞에 나아가 신통으로써 스스로 몸을 불태웠다. 그 빛은 가이없는 세계를 비추고 모든 부처는 이를 찬탄하셨으며 1천2백년 동안 계속 불탔다. 그는 목숨이 끝난 뒤 다시 이 부처의 나라에 태어나 앞으로 나아가 부처의 덕을 찬탄하기를,
존안도 오묘하여 거룩한 빛이 시방을 비추신다. 옛날 공양해 올린 이 몸, 지금 또 돌아와 친히 모시네.
그때 일월정명덕불은 모든 법을 이 보살에게 맡기고 그날 밤 조용히 멸도에 드셨다. 그는 한없는 슬픔을 품고 부처를 사모했고, 이윽고 팔만사천의 탑을 세워 각 탑 앞에서 백 가지의 덕으로써 장식된 팔뚝을 불태워 7만2천년의 긴 세월에 걸쳐 공양을 올렸다.
숙왕화여, 이 일체중생의 견보살은 지금의 약왕 보살이다. 그는 이와 같이 한량없는 겁에 걸쳐 몸을 버리고 보시를 행하였다. 그러므로 부처의 각을 구하는 자는 손가락, 또는 발가락을 불태워 부처의 탑에 공양하는 것이 좋다. 그것은 모든 보시보다 수승하리라. 또 비록 삼천대천세계에 칠보를 깔아 부처나 성자를 공양한다 하더라도 이 법화경의 사구게(四句偈)를 지닌 복에는 미치지 못하리라. 숙왕화여, 비유하면 모든 내(川)나 강보다도 바다가 훨씬 큰것처럼 이 가르침은 모든 가르침 중에서 가장 깊고 큰 것이다. 맑은 연못의 물이 목마른 자를 축여주고 불은 추운 자를 따뜻하게 해주듯, 혹은 벌거숭이인 사람이 옷을 얻고 어둠에 등불을 얻은 것처럼, 이 가르침은 능히 중생들의 온갖 괴로움과 망집을 풀어 주는 것이다.
또 숙왕화여, 말세에 이 보살의 과거지사를 듣고서 그 가르침처럼 닦는다면 목숨이 끝난 뒤 안락 세계에 아미타불의 어전에 가서 연꽃의 보좌 위에 태어나 탐욕, 진에, 우치, 교만, 질투 등에 괴롭히는 일도 없이 보살의 신통과 법안을 얻으리라.”
그때 무진의(無盡意)보살이 자리에서 일어나 세존께 배례하고 아뢰옵기를,
“세존이시여, 관세음 보살은 어떠한 인연으로 그 이름을 얻은 것입니까?”
세존께서 대답하시기를,
“선남자여, 한량없는 많은 중생들이 온갖 괴로움을 받을 때, 만일 이 보살의 이름을 듣고서 한마음으로 염한다면 관세음 보살은 즉시 그 소리를 듣고서 그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해주리라. 그 이름을 염하는 자는 이 보살의 위신력에 의해 불에도 타지 않고 물에도 빠지는 일이 없다.
또 관세음 보살은 이 사바세계에 노닐며 부처가 될 자를 위해서는 불신을 나타내고 국왕, 장자, 이교의 스승, 출가의 제자, 재가의 신자, 나아가서는 용(龍), 야차(夜叉) 등 저마다의 몸을 나타내고 구할 수가 있는 자에게는 그것에 응하여 그것과 똑같은 상(相)을 나타내어 법을 설하는 것이다.”
무진의 보살은 게로써 묻는다.
(1) 오묘하신 상을 지닌 세존이시여, 저가 거듭 묻겠습니다. 어떠한 인연이 있어서 관세음이라고 이름 지으셨나이까?
세존은 역시 게로써 대답하셨다.
그대, 관음의 행을 들으라. 온갖 곳에 응하되 맹세는 깊어 바다와 같고 겁을 거듭하더라도 헤아릴 수 없네.
무량의 부처님을 섬기며 크게 청정한 원을 말했도다.
내 지금 그대를 위하여 간추려서 그를 설하리라.
(2) 거룩한 이름을 듣고 몸을 보고 혹은 또 마음으로 생각하여 공(空)하지 않다면 온갖 괴로움이 멸하리라.
이를테면 해하려는 뜻에서 큰 불구덩이에 떨어질지라도 저 관음의 힘을 염하면, 불구덩이가 변하여 연못이 되리라.
혹은 바다에 표류하고 용, 물고기, 귀신의 재난을 만나되 저 관음의 힘을 염하면 물결도 삼키는 힘을 잃으리라.
혹은 산의 험조(險阻)에 떨어지는 일이 있되 저 관음의 힘을 염하면 공중에 걸려 떨어지지 않으리라.
(3) 혹은 악인에게 쫓겨 높은 봉우리에서 떨어지되 저 관음의 힘을 염하면 털끝 하나도 상하지 않으리라.
원수에게 둘러싸여 칼로 위협되는 일이 있더라도 저 관음의 힘을 염하면 원수가 모두 자비심을 일으키리라.
또 왕법(王法)의 환난을 만나 형의 집행에 임할 때 저 관음의 힘을 염하면 칼날이 곧 토막토막 부러지리라.
칼과 쇠사슬을 채워 가두고 수갑과 족쇄로 묶더라도 저 관음의 힘을 염하면 그와 같은 계박도 속히 풀리리라.
(4) 주문, 저주, 독약으로 몸에 해를 입히려 할 때에도, 저 관음의 힘을 염하면 그 재난이 도리어 본인에게 돌아가리라.
나찰, 독룡(毒龍), 악수(惡獸), 뱀, 살모사에게 습격되더라도 저 관음의 힘을 염하면 그들은 즉시 달아나고 말리라.
천둥과 번개가 치고 우박이 내리고 큰비가 쏟아져도 저 관음의 힘을 염하면 이윽고 자취없이 사라지리라.
재난에 이르러 괴로움이 이 몸에 닥칠 지라도 저 관음의 힘을 염하면 화는 곧 사라지리라.
(5) 그에게 비상한 힘이 있어, 지혜의 방편으로 꾀하여 이 세계의 시방 국토에 몸을 나타내지 않는 곳이 없도다.
이리하여 지옥, 아귀, 축생 3악도의 고와 노, 병, 사의 苦는 자취없이 멸망에 이르게 되리라.
그에게는 참과 청정함과 큰지혜와 자비의 눈이 있다. 모두가 우러러보리라.
청정하고 빛나는 지혜의 해(日)는 온갖 어둠을 뚫으리라. 재난의 불과 바람을 다스리고 널리 비추어 은혜를 베푼다.
(6) 자비의 몸에는 계의 천둥 벼락이 울리고 애민(愛愍)의 뜻은 구름처럼 일어난다. 감로(甘露)의 비처럼 법은 쏟아져서 번뇌의 불길은 사라지리라.
소송의 법정과 싸움터가 두려울 때 저 관음의 힘을 염하면 온갖 원한이 모두 물러가리라.
오묘한 소리, 세간을 관하는 소리, 조수의 물결소리, 신의 소리, 그러한 갖가지 소리보다도 수승하다. 그러므로 그를 항상 염하라.
(7) 염하고 염하되, 의심하지 말라. 관세음의 성자는 괴로움, 재난, 죽음에서 능히 중생들의 의지(依支)가 되리라.
그는 모든 공덕을 갖추고 자비로운 눈으로 중생을 본다. 복해(福海)는 헤아릴 수 없다. 그러므로 삼가 배례하라.
모든 보살, 제자들은 모두 세존의 가르침을 기뻐했다.
출전 : 불교성전
-나무 관 세 음 보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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