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佛陀,부처님)

용녀(龍女)의 成佛(129)

근와(槿瓦) 2015. 8. 8. 01:20

용녀(龍女)의 成佛(129)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세존은 또 모든 보살과 출가 재가의 제자들에게 고하시기를,

“나는 지난 세상, 한량없는 겁(劫) 사이에 법화경을 읽으며 싫증을 몰랐다. 그리하여 언제나 국왕이 되어 원을 일으키고 더없는 각을 구하고 육도(六度)의 행을 원만히 이루고자 나라도 보물도 가족도 육체도 베풀어 조금도 아끼는 바가 없었다. 마침내 법을 위해 위(位)를 버리고 정사를 태자에게 맡겼으며 북을 쳐서 사방에 알리기를 ‘만일 나를 위해 대승을 설해 주는 자가 있다면, 나는 몸을 마칠 때가지 그 사람을 섬기리라’고 했다. 그때 한 선인(仙人)이 와서 ‘나는 묘법 연화라는 대승의 법문을 갖고 있다. 나의 종이 된다면 그 법을 설하리라’고 말했다. 나는 이 말을 듣고 뛸 듯이 기뻐하며 즉시 그 선인을 섬기되 열매를 따고 물을 긷고 땔감을 줍고 식사를 마련하고 혹은 몸을 상좌(狀座)로 사용하게 했지만 조금도 싫증을 내지 않았다. 이렇듯 법을 위해 면려하며 섬기기를 천년의 세월 동안에 걸쳤다. 제자들이여, 그때의 왕은 나, 선인은 지금의 제바달다(提婆達多)이다. 나는 실로 이 제바달다의 선지식에 의해 정각을 얻고 널리 중생들을 구할 수 있었다. 고로 나는 지금 그대들에게 고한다. 제바달다 그는 헤아릴 수 없는 겁을 지난 뒤 부처가 되어 천왕불(天王佛)이라고 불리니라.”

 

이때 다보불을 좇고 있던 지적 보살(智積菩薩)이 다보불에게 아뢴다.

“본토로 돌아가고자 하옵니다.”

 

세존이 지적보살에게 말씀하시기를,

“선제자여, 잠시 기다려라. 문수사리와 만나 오묘한 법을 서로 말한 뒤 본토로 돌아가라.”

 

그때 문수사리는 천엽(千葉)의 연꽃에 앉아 많은 보살을 거느리고, 큰 바다 밑인 사갈라(娑竭羅) 용궁에서 저절로 솟아나와 허공으로 올라 영취산에 이르러 연꽃에 내렸으며 세존께 예배하고 지적 보살에게 가서 서로 예를 나누고 자리에 앉았다.

 

지적보살이 묻는다.

“그대, 용궁에 있으면서 얼마만큼의 중생을 가르쳐 이끌었는가?”

 

문수사리가 대답하기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이다. 지금 그 증거를 보이리라.”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한량없는 보살은 저마다 보련화(寶蓮華)에 앉은 채 바다로부터 솟아났고 영취산에 참예한 뒤 허공 중에 있으면서 대승의 법을 설했다. 지적보살이 노래한다.

 

크나큰 지혜로 용감하게 한없는 중생을 구한다.

실상의 뜻을 설하여 일승의 법을 베풀고 널리 중생들을 이끌어 신속히 증험을 얻게 하네.

 

문수사리 : 나는 바다 속에서 언제나 묘법 연화의 가르침을 설했던 것이다.”

 

지적보살 : 이 가르침은 오묘하며 이 무한히 깊고 모든 가르침 중의 보물이니라. 만일 면려하여 이 가르침을 받아 신속히 부처가 되는 자가 있을까?”

 

문수사리 : 사갈라 용왕의 여덟 살 난 딸이 지혜가 영특하여 찰나 동안에 보리심을 일으키고 미혹에도 물러서지 않은 위(位)에 들어가 모든 공덕을 갖추고 중생들을 자식처럼 사랑하고 있지만, 그녀는 더할 데 없는 각을 얻을 만하다.”

 

지적보살 : 나는 석가모니 세존을 우러러보건데 한량없는 겁에 걸쳐 행하기 어려운 행을 닦으시며 공을 쌓고 덕을 쌓아 각을 구하며 잠시도 쉬시는 일이 없다. 그리하여 이 세간의 겨자만한 땅이라도 중생을 위해 숙세(宿世)에 목숨을 버리시지 않은 곳이란 없다. 더구나 이리하여 겨우 깨달음의 도를 얻으셨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 여자가 수유(須臾) 동안에 깨달음을 얻었다고 하는 것은 믿어지지 않는 일이다.”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용녀는 홀연 몸을 나타내어 세존께 예배하고 노래로써 찬양하기를,

 

한없이 깊고 죄와 복의 상(相)을 알고서 널리 사방을 비추시며, 신비롭고 청정하신 모습은 세상에 공경하지 않는 사람이 없네.

들어서 깨달음을 얻는 중생은 다만 부처님만이 알고 계시네. 나는 수승한 법을 듣고 괴로워하는 중생을 구하리라.

 

사리불이 용녀에게 말하기를,

“그대는 오래지 않아 더할 데 없는 깨달음을 얻으리라 생각하고 있지만, 그것은 믿기 어렵다. 왜냐하면 여자의 몸은 더러운 것으로 법의 그릇이 아니다. 어찌 더할 데 없는 깨달음을 얻을 수가 있으랴.”

 

그때 용녀는 세존께 값비싼 보옥을 바치자 세존은 이것을 받으셨다. 용녀는 지적보살과 사리불에게 말하기를,

“세존이 지금 제가 바친 보옥을 받으신 것보다도 저는 부처가 빨리 되리라.”

 

이리하여 용녀는 곧 남자의 모습으로 바뀌어 보살의 행을 갖추고 남쪽 무구 세계(無垢世界)로 가서 보련화에 앉아 깨달음을 얻었고 모든 중생에게 묘법을 설했다. 모든 중생은 이것을 보고 기뻐하였으며 저마다 도를 구하는 마음을 일으켰다.

 

이때 많은 보살들은 세존의 존전에서 이 가르침을 받아 전할 것을 맹세했으며 소리를 모아 노래하기를,

(1) 원컨대 마음을 번거롭게 하지 마시라. 세존께서 세상을 떠나신 뒤 이 가공할만한 악세(惡世)에서 우리들은 널리 가르침을 설하여 펴리라.

어리석은 중생들이 나쁜 욕을 하고 칼과 몽둥이를 가할지라도 우리들은 이를 참고 견디리라.

내 행을 믿고서 남을 얕보고 이욕(利欲)을 위해 법을 설하여 중생의 공경을 받는 그와 같은 사람, 즐겨 우리들의 허물을 들으라!

‘이 제자들, 이욕과 명예를 위한 것으로서 외도와 다름 없는 가르침을 설하고 세간의 중생을 미혹한다네.’

 

(2) 이리하여 사람들 중에서 우리들을 헐뜯고자 모든 중생을 향하여 사견을 가진 사람이라고 말하리라.

그렇지만 우리들은 모두 부처님을 공경하므로 이 같은 악을 참으리라.

흐린 자에게는 악귀가 달라붙고 우리들을 꾸짖고 욕하리라. 그렇지만 부처님을 믿는 우리들은 인욕의 갑옷을 걸치리라.

이 가르침을 설하고자 이런 환난을 능히 참으리라.

우리들은 몸도 목숨도 아끼지 말고 더없는 오직 도만을 공경하리라.

 

(3) 우리들은 길이 말세에 부처와 부촉(咐囑)을 지키리라.

탁세의 제자들은 좋은 방편의 법인 줄도 모르고 악하게 욕하며 우리들을 몇 번이고 물리치고 마침내는 절에서 내쫓으리라. 이 같은 모든 악이라도 우리들은 오직 부처님의 분부를 염하며 참으리라.

어느 곳의 누구일지라도 거룩한 법을 구하는 자 있다면, 우리들은 그곳을 찾아가 부촉(咐囑)하신 부처님의 법을 설하리라.

우리들은 세존의 사자이다. 어떤 사람일지라도 두려워하지 않으리라. 능히 이 거룩한 법을 설하여 펴리라.

세존이시여, 안심하옵소서.

세존 앞에 모인 시방의 부처 앞에서 우리들은 이와 같이 맹세합니다.

원컨대 이것을 알려 주소서.

 

문수사리 보살이 세존께 아뢰기를,

“세존이시여, 이 보살들은 세존을 공경하고 받들기 위해 이 가르침을 설하겠다고 맹세하고 있습니다. 내세에 이 보살들은 여하이 법화경을 설하게 되옵니까?”

 

세존이 말씀하시기를,

“내세에 이 가르침을 설하고자 생각하는 자는 네 가지의 일에 마음을 주(住)하는 게 좋다.

첫째로는 그 행이다. 즉 참고 견디어 부드럽게 거칠지 않게, 마음에는 두려움을 품지 않고 사물에 집착하지 않고 사물 그대로의 상에 관하여 모계(謀計)를 섞지 않도록 하는 것이 좋다.

 

둘째로는 그 가까이하는 곳이다. 그들은 국왕이나 대신 등에게 가까이해서는 안 된다. 또는 도를 달리하는 사람들, 세간의 문필에 종사하는 자, 갖은 놀이에 종사하는 자, 생물의 목숨을 빼앗아 생업을 하는 자와도 가까이해서는 안 된다. 이런 사람들이 다가온다면 단지 법을 설하는데 그치고 그와 같은 일에 희망을 걸어선 안 된다. 또 비루한 가르침을 구하는 중생들과 가까이해서도 안 된다.

 

부인에 관해서는 욕의 마음을 일으키는 상(相)을 하고서 법을 설해서도 안 된다. 또는 부인을 보고자 생각하고 처녀와 과부 등의 집에 들어가 친하게 이야기해서도 안 된다. 만일 혼자 그들의 집에 들어간다면 마음을 하나로 하여 부처를 염하는 게 좋다. 부인을 위해 법을 설할 경우에는 이빨을 보여 웃거나 가슴을 드러내는 듯한 짓을 해서는 안 된다. 법을 위해서도 가까이해서는 안 된다. 하물며 다른 일에 관해서는 말할 것도 없다. 또 나이 젊은 제자를 기르는 것을 원해서는 안 된다. 항상 고요한 곳에 있으며 그 마음을 닦는 게 좋다. 문수사리여, 이것을 가장 먼저 친해야 하는 것이라고 이름하는 것이다. 또 다음으로 보살은 차별 있는 법을 행하지 않고 남녀의 구별을 보지 않고 모든 법을 공이라 관하고 ‘다만 인연에 있어서만 있고 불순(不順)에 의해서 태어난다’고 생각해야 한다. 이와 같이 법상(法相)을 관하고자 원하는 게 좋다. 이것을 보살의 두 번째로 가까이하는 것이라고 이름한다.

 

또한 문수사리여, 셋째로 부처가 세상을 떠난 뒤에 이 가르침을 설하고자 생각하는 자는 마음을 편하게 갖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하여 법을 설할 때에는 다른 법사를 깔보지 않고 남의 허물이나 호오(好惡)나 장단점을 말해서는 안 된다. 또는 비열한 도를 행하는 사람에 관해서도 그 허물을 어루만져 주되 결코 칭찬하거나 또는 기피하고 속여서도 안 된다. 이렇듯 평안한 마음을 갖는다면 듣는 사람도 거슬리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으리라. 그러면, 욕하는 사람도 없고, 물리치는 사람도 없고 칼이나 몽둥이를 가하는 사람도 없으리라. 그것은 참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만일 묻는 사람이 있다면 비열한 법으로 답하지 말고 수승한 법으로 설하여 일체지를 얻게 하여라.

 

또한 문수사리여, 이 가르침을 지니는 자는 질투나 아첨의 마음을 품어서는 안 된다. 또한 갖가지 불도를 배우는 자를 가벼이 여겨서는 안 된다. 그들에게 향하여 ‘너희들은 도(道)와는 멀리 떠나 있다. 일체지를 얻지는 못하리라. 왜냐하면 도를 닦는 데 방일하므로’라는 등의 말을 하여 괴롭게 하고 의심나게 해서는 안 된다. 또는 부질없이 논의를 일삼고 다투어 쟁론(爭論)해서는 안 된다. 즉 일체의 중생에 대해서는 대비(大悲)와 상(想)을 일으키고 모든 부처님에 대해서는 자부(慈父)의 상을 일으키고 모든 보살에 대해서는 대사(大師)의 상을 일으키는 게 좋다. 이렇듯 덤비는 마음을 타파하고 일체의 중생에 대해서 평등하게 법을 설하고, 법을 따르는 자에게도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도 치우쳐 설해서는 안 된다. 문수사리여, 이 제삼의 안락의 행을 갖추고 법을 설하는 자를 괴롭히고 어지럽히는 자는 없으리라.

 

또한 문수사리여, 넷째로 이 가르침을 지니는 자는 보살의 도를 구할 수 없는 중생들에 대해서 대비의 마음을 일으켜 ‘이들 중생은 부처의 옳은 가르침을 듣지 못하고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고 묻지 못하고 믿지 못하여 전혀 그것을 지나쳐 버리거나 잃고 있다. 하지만 내가 만일 부처의 각을 얻을 때에는 어느 곳에 있더라도 지혜와 힘으로써 그들을 이 법 안에 들도록 하리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문수사리여, 이렇듯 제 사의 법을 갖추는 자는 모든 중생이 공경하고 찬양하여 항상 모든 신이나 부처님의 두호를 받으리라. 비유하면 전륜왕이 싸움에 공이 있는 군사에게 코끼리, 말, 수레, 의복, 재물 등을 주어 기쁘게 하지만, 그 중 가장 용감한 하기 어려운 일을 한 자에게는 그 상투 속의 보옥을 끌러 주는 것과 같다. 부처 역시 이것과 똑같다. 부처는 참으로 법의 왕으로서 크게 참는 힘을 갖춘 지혜의 보장(寶藏)이다. 고(苦)를 안고 있는 중생이 해탈을 구하여 모든 악마와 싸우는 것을 보면, 그들을 위해 갖은 법을 설하고 이미 그들이 힘을 얻은 것을 알면 마지막으로 이 법화경을 설하는 것이다. 고로 그대들은 편안히 이 가르침을 설하고 싶다고 생각한다면 이 네 가지 법에 가까이해야 한다.”

 

그때 시방의 국토에서 온 많은 보살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세존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만일 허락해 주신다면 세존께서 세상을 떠나시고 난 뒤 저희들은 이 사바세계에서 면려하여 이 경을 간직하고 널리 설하겠습니다.”

 

세존이 말씀하시기를,

“착한 제자들이여, 그대들은 이 가르침을 간직할 것은 없다. 우리 사바세계에는 수없는 보살이 있어 내가 세상을 떠난 뒤에 이 가르침을 설하리라.”

 

세존이 이렇게 말씀하시자 대지는 일시에 흔들리며 갈라지고 그 속에서 한량없는 보살들이 솟아나와 다보불과 석가모니불을 예배하고 찬양했다.

 

이 보살 중에 네 도사(導師)가 있어 첫째로는 상행(上行), 둘째로는 무변행(無邊行), 셋째로는 정행(淨行), 넷째로는 안립행(安立行)이라고 이름하였다. 그들은 세존 앞으로 나아가 간곡히,

 

“귀체 대안하십니까?”

고 삼가 물었다.

 

미륵보살도 많은 보살들의 생각을 알고 세존께 삼가 물었다.

“세존이시여, 지금 갑자기 대지로부터 솟아나온 이 수없는 대보살은 한 사람도 옛날에 만난 일이 없습니다. 어디로부터 이곳에 무슨 인연으로 모였을까요. 부디 그 내력을 말씀해 주십시오.”

 

세존은 미륵을 위해 게를 설하셨다.

(1) 면려하여 마음을 하나로 가져라. 내 이제 그것을 설하리라. 의심하지 말지어다. 부처의 지혜는 헤아리기 어렵다.

지금 그대, 심신의 힘을 내고 참는 마음을 지녀라.

아직껏 듣지 못한 그 법을 이제 들을 수가 있으리라.

내 지금 그대들을 위로하리라. 의심을 품지 말지어다.

부처는 거짓말을 하지 않노라. 그 지혜 헤아리기는 참으로 어렵다.

얻은 제일의 교법은 한없이 깊어 알기 어렵도다. 내 지금 그것을 설하리라. 마음을 하나로 들으라.

 

(2) 미륵이여, 밝게 알지어다. 이들 대보살들은 한량없는 옛날부터 부처의 지혜를닦으면서 내 이끌림에 의해서만 대도심(大道心)을 일으켰도다.

이는 모두 내 아들이니라. 사바세계에 머물러 항상 고요한 곳에 주하여 도를 닦고 밤을 낮삼아 면려했노라.

내 가야성림(伽耶城林)의 보리수 아래 각을 얻고 더없는 법륜을 굴리면서 이끌어 도심을 발하게 했노라.

이들은 모두 이제 물러서지 않는 도의 위(位)에 있는 자이니라. 모두 부처가 될 수 있으리라. 내 지금 참된 말로써 설하노라. 마음을 하나로 믿으라. 내 아득한 옛날부터 이 중생들을 가르쳐온 것임을.

 

미륵보살이 세존께 아뢰기를,

“세존이시여, 세존이 정각을 얻고 나서 겨우 40여 년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렇건만 어찌 그 동안에 이렇듯 수없는 중생들을 이끌어 정각을 얻게 하실 수가 있었습니까?” 이 보살들은 실로 아득한 옛날부터 한량없는 부처님 밑에 있으면서 온갖 선근을 기르고 항상 스스로를 이롭게 하고 남을 이롭게 하는 도를 닦았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존이시여, 이것은 믿기 어려운 일이옵니다. 비유하면 용모가 아름답고 어리며 머리가 검은 스물 다섯 살된 사람이 백 살 먹은 사람을 가리켜 이는 내 자식이라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부디 이것을 풀이하여 저희들과 후세 중생들을 위해 의문을 제거해 주십시오.”

 

 

출전 : 불교성전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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