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보적경(大寶積經)

대보적경-3435-687

근와(槿瓦) 2018. 8. 29. 22:22

대보적경-3435-687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3431 / 3476]

마치지 못한 상속하는 번뇌를 마침내 끊은 까닭에 할 일[所作]을 이미 다 마친 지혜가 생겼다고 할 수 있나이다.
세존이시여, 나중의 몸[後有]을 받지 않는 지혜를 생한다고 말하는 것은 곧 아라한과 벽지불은 모든 번뇌를 다 끊지 못하였고 온갖 태어남을 받는데 대한 지혜도 환히 알지 못하였음을 뜻합니다. 왜냐 하면 이 아라한과 벽지불은 번뇌에 남음이 있어서 다 끊지 못하였고 온갖 생사를 환히 알지 못하기 때문이옵니다.
번뇌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주지(住地)의 번뇌와 일으킴[]의 번뇌이옵니다. 이 주지의 번뇌에도 네 가지가 있는데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하면 견일처주지(見一處住地)와 욕애주지(欲愛住地)와 색애주지(色愛住地)와 유애주지(有愛住地)이옵니다.
세존이시여, 이 네 가지 주지 번뇌가 두루 일어나는 온갖 번뇌를 냅니다. 두루 일어나는 번뇌[起煩惱]라 함은 찰나찰나마다 마음과 상응하는 것이옵니다.
세존이시여, 무명주지(無明住地)는 없는 때로부터 마음과는 상응하지 않나이다.
세존이시여, 이 네 가지 주지번뇌의 힘은 두루 생겨나는 번뇌의 의지할 곳이 되지만 무명주지에 비교하면 산수(算數)와 비유(譬喩)로도 미칠 수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이와 같은 무명주지는 유애주지(有愛住地)보다 그 힘이 가장 크나이다. 비유하면 악마 왕의 모습과 힘과 위덕과 대중 권속은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의 모든 하늘들보다 뛰어난 것처럼 이 무명주지는 나머지 네 가지 주지번뇌보다 뛰어나나니, 항하의 모래보다 더 많은 번뇌가 의지하는 것이요, 또한 네 가지 번뇌로 하여금 오래 머무르게 하나이다. 그러므로 성문이나 독각의 지혜로는 끊을 수 없고 오직 여래의 지혜만이 끊을 수 있을 뿐이옵니다.
세존이시여, 이와 같고 이와 같아서 무명주지의 힘은 가장 크나이다.
세존이시여, 마치 집착함[]이 연()이 되어 유루업[有漏業]을 인()하여 세 가지 있음[三有]을 생하는 것처럼 무명주지가 연이 되고 무루의 업


                                                                             [3432 / 3476]

[無漏業]을 인하여 아라한과 벽지불과 큰 힘 지닌 보살이 생각하는 대로 생기는 몸[意生身]을 내는 것이니, 이 세 가지 지위에서의 생각하는 대로 생기는 몸과 무루의 업은 모두가 무명주지를 의지할 곳[所依處]으로 삼으니 그것에 비록 연()이 있다 하더라도 역시 연이 될 수도 있나이다.
세존이시여, 그러므로 세 가지 생각대로 생기는 몸[意生身]과 무루의 업은 모두가 무명주지를 연()으로 삼나니, 유애(有愛)주지에서와 같나이다.
세존이시여, 유애주지는 무명주지의 업()과는 같지 않고 무명주지는 네 가지 주지번뇌와도 다르며 네 가지 주지번뇌와 다른 것은, 오직 부처님만이 끊을 수 있나이다. 왜냐 하면 아라한과 벽지불은 네 가지 주지번뇌를 끊지만 번뇌가 다한[漏盡]힘에 있어서는 자유자재할 수 없으며 증득함을 나타내지도 못하기 때문이옵니다. 왜냐 하면 '세존'이라고 함은 '번뇌가 다함(漏盡)'의 다른 이름이기 때문이오니, 그러므로 아라한과 벽지불과 최후의 몸[最後有]으로 있는 보살들은 무명주지에 가려지기 때문에 저 여러 법을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며 저 여러 가지 법을 알지도 보지도 못하기 때문에 끊어야 할 것을 끊지 못하고 다하여야 할 것을 다하지도 못하나이다. 저 여러 모든 법에 끊지도 다하지도 못했기 때문에 남음이 있는[有餘] 해탈을 얻고 모든 해탈을 얻지 못하며 남음이 있는 깨끗함을 얻고 온갖 깨끗함을 얻지 못하며 남음이 있는 공덕을 얻고 온갖 공덕을 얻지 못하나이다.
세존이시여, 남음이 있는 해탈은 완전한 해탈이 아니요 나아가 남음이 있는 공덕은 완전한 공덕이 아니기 때문에 남음이 있는 괴로움[]을 알고 남음이 있는 괴로움의 원인[]을 끊으며 남음이 있는 사라짐[]을 증득하고 남음이 있는 도()를 닦게 되나이다.”
그 때 승만 부인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만일 다시 남음이 있는 괴로움을 알고 남음이 있는 괴로움의 원인을 끊으며 남음이 있는 사라짐을 증득하고 남음이 있는 도를 닦는다면 이것을 조그마한 부분의 멸도[少分滅道]라 이름하며 조그마한 부분의 열반을 증득하여 열반의 경계를 향하는 것입니다. 만일 온갖 괴로움을 알고 온갖 괴로움의 원인을 끊으며 온갖 번뇌의 사라짐을 증득하고 온갖 도를 닦는다면 그것은 덧없고 무너지는 세간에서 항상 고요하고 맑고 시원한 열반을 증득하


                                                                             [3433 / 3476]

는 것이옵니다.
세존이시여, 그는 보호할 데 없고 의지할 데가 없는 세간에서 보호하는 이가 되고 의지할 곳이 되나이다. 왜냐 하면 모든 법 가운데서 높고 낮음을 보는 이는 열반을 증득하지 못하거니와 지혜가 평등한 이와 해탈이 평등한 이와 청정함이 평등한 이는 열반을 증득하기 때문이니, 그러므로 열반을 평등한 한 맛[等一味]이라 하나이다. 어떤 것을 한 맛이라 하는가 하면 해탈의 맛[解脫味]을 말하나이다.
세존이시여, 만일 무명주지를 끊지도 못하고 다하지도 못하면, 열반인 한 맛의 평등한 맛을 얻지 못하옵니다. 왜냐 하면 무명주지가 끊어지지도 않고 다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끊어야 할 항하의 모래보다도 더 많은 온갖 허물의 법을 끊지 못하고 마땅히 다해야 할 것을 다하지 못하기 때문이오니, 항하의 모래보다 더 많은 온갖 허물의 법을 끊지도 못하고 다하지도 못하였기 때문에 항하의 모래보다도 더 많은 모든 공덕의 법을 알지도 못하고 증득하지도 못하나이다. 그러므로 무명주지번뇌는 완전히 끊어야 할 법인 모든 수번뇌(隨煩惱)가 생기게 하기 때문에 그로부터 마음을 장애 하는[障心] 번뇌와 그침을 장애 하는[障止] 번뇌와 관찰을 장애 하는[障觀] 번뇌와 선정을 장애 하는[障靜慮] 번뇌가 생기고 이와 같아서 나아가 삼마발지(三摩鉢底)와 가행(加行)과 지혜와 증과[]며 힘[]과 두려움이 없음[無畏]을 장애 하는 모든 항하의 모래보다 더 많은 온갖 번뇌를 생기게 하며 여래의 보리와 부처님의 금강 같은 지혜[金剛智]로 끊을 수 있는 번뇌도 무명주지에 의지하고 무명주지를 인연으로 삼기 때문이옵니다.
세존이시여, 이 일어나는[] 번뇌는 찰나찰나마다 마음과 상응하나이다.
세존이시여, 무명주지는 끝없는 때로부터 오면서 마음과는 상응하지 않나이다.
세존이시여, 만일 다시 항하의 모래보다 더 많은 여래의 보리와 부처님의 금강 같은 지혜로 끊어야 할 법은 모두가 이 무명주지를 의지하여 이룩되며 세워지나이다.
비유하면 온갖 종자와 우거진 숲이 대지(大地)에 의지하여 나고 자라며 만일 대지가 무너지면 그것들도 또한 무너지는 것처럼, 이 항하의 모래보다


                                                                             [3434 / 3476]

더 많은 여래의 보리와 부처님의 금강 같은 지혜로 끊어야 할 법도 모두가 이 무명주지에 의지하여 나고 자라며 만일 그 무명주지가 끊어지면 항하의 모래보다 더 많은 여래의 보리와 부처님의 금강 같은 지혜로 끊어야 할 법도 모두 따라 끊어지나이다.
이와 같이 항하의 모래보다 더 많은 끊어야 할 법인 온갖 번뇌와 일어난 번뇌가 이미 끊어졌기 때문에 곧 항하의 모래보다도 더 많은 불가사의한 모든 부처님의 법을 증득하고 온갖 법에서 걸림이 없는 신통을 증득하며 모든 지견(智見)을 얻고 온갖 허물을 여의며 모든 공덕을 얻어 대법왕(大法王)이 되고 법에 자재하면서 온갖 법의 자재한 지위를 증득하여 바르게 사자처럼 외치되 '나의 생()은 이미 다하였고 범행은 이미 섰으며 할 일을 다 마쳤고 나중의 몸을 받지 않는다'라고 하나니, 그 때문에 세존께서는 사자후(師子吼)로써 분명한 이치[了義]에 의거하여 한결같이 말씀하시옵니다.
세존이시여, 나중의 몸을 받지 않는 지혜에 두 가지가 있나이다. 어떤 것이 두 가지인가 하면, 첫째는 모든 여래는 조복하고 제어하는 힘으로 네 가지 악마를 꺾어 항복 받아 모든 세간을 초월하며 온갖 유정들이 우러러 쳐다보는 바 되며 불가사의하고 깨끗한 법신(法身)을 증득하며 알 자리[所知地]에서 법의 자재함을 얻고 가장 뛰어나며 위가 없어서 다시는 할 일이 없으며 다시는 증득할 지위도 보지 않고 10()을 두루 갖추며 가장 뛰어나고 두려움이 없는 지위에 올라가 온갖 법에 걸림이 없이 관찰하면서 바르게 사자처럼 외치며 나중 몸을 받지 않나이다.
둘째는, 아라한과 벽지불은 한량없는 생사의 두려움을 건너서 해탈의 즐거움을 받으면서 생각하기를 '나는 이제 이 생사의 두려움을 이미 여읜지라 모든 괴로움은 받지 않는다'라고 하는 것이옵니다.
세존이시여, 아라한과 벽지불은 이와 같이 관찰하면서 나중 몸을 받지 않는다고 여기나 제일 소식열반(第一蘇息涅槃)을 증득하지는 못하나이다. 그들은 아직 증득하지 못한 자리에서 법을 만나지 못하였기 때문에 '나는 이제 남음이 있는 자리[有餘依地]를 증득한지라 결정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하리라'고 스스로 깨달아 아나이다. 왜냐 하면 성문이나 독각이 모두 대승(大乘)에 들어가면 대승은 곧 그것이 불승(佛乘)이기 때문이옵니다. 그러


                                                                             [3435 / 3476]

므로 3()이 곧 1()이요, 1승을 증득하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며 아뇩다라삼먁삼보리는 곧 그것이 열반이옵니다.
열반이라 함은 곧 그것이 여래의 깨끗한 법[法身]이오니, 법을 증득하면 곧 1승이어서 여래와 다름이 없고 법신과도 다름이 없나이다. 여래라 함은 곧 그것이 법신이오니, 마지막의 법신을 증득하면 곧 마지막의 일승이요 마지막의 일승은 곧 상속[相續]함을 여의나이다. 왜냐 하면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머무르는 때는 한량이 없으며 미래에도 그러합니다. '여래는 한이 없는 대비(大悲)와 한이 없는 서원으로 세간을 이익 되게 하신다'라고 이렇게 설명하면 이것을 '잘한 말씀[善說]'이라 하나이다.
만일 또 '여래는 바로 항상 계시고 그지없는 법이며 모든 세간이 마지막 의지할 분이다'라고 말한다면 역시 '잘한 말씀'이라 하나니, 그러므로 보호함이 없는 세간과 의지할 데 없는 세간에서 미래에도 더불어 함께 하여 끝없이 귀의[無盡歸依]하고 항상 머무르며 귀의[常住歸依]하며 마지막으로 귀의[究竟歸依]할 이가 귀의하면 여래·응공·정등각이시옵니다.
()이란 바로 1승의 도()요 승()이란 바로 3승의 대중이니, 이 둘에 귀의함은 마지막의 귀의가 아니므로 조그마한 부분의 의지처[少分依]라 하나이다. 왜냐 하면 1승의 도에서 마지막 법신을 증득한다고 말하면 다시는 1승의 도를 말함이 없고, 3승의 대중이란 두려움이 있기 때문에 또 여래께 귀의하여 출가를 구하고 닦고 배우니 할 일이 있기 때문에 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향하기 때문에 이 두 가지 귀의는 마지막 의지처가 아니라 이것은 한정이 있는 의지처[有限依]이옵니다.
만일 모든 유정이 여래의 조복으로 여래께 귀의하면 법과 율에 젖어들어 믿고 좋아하는 마음으로 말미암아 법과 비구승에게 귀의하게 되나이다. 이 두 가지 귀의는 법과 율에 젖어들어 믿어 들어가 귀의하게 되거니와 여래께는 법과 율에 젖어들어 믿음으로 들어가는 귀의가 아니옵니다.
여래라 함은 바로 진실한 귀의며 이 두 가지에도 진실한 이치로써 귀의하기 때문에 곧 마지막에는 여래께 귀의한다 하나이다. 왜냐 하면 여래는 이 두 가지 귀의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오니, 그러므로 여래는 곧 세 가지 귀의이옵니다. 왜냐 하면 1승의 도로 말하면 여래는 가장 뛰어난 네 가지 두려움...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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