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보적경(大寶積經)

대보적경-3430-686

근와(槿瓦) 2018. 8. 28. 21:49

대보적경-3430-686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3426 / 3476]

...것을 바른 법을 거두어들이는 선남자와 선여인이 대지를 이룩하여 세워서 유정이 그를 만나기만 하면 곧 네 가지 큰 보배를 얻게 된다고 하나이다.
세존이시여, 큰 보배가 나온다 함은 진실하게 바른 법을 거두어들인다는 것이옵니다.
세존이시여, 바른 법을 거두어들인다는 말은 또 다른 바른 법이 있는 것도 아니며 달리 바른 법을 거두어들인다는 것도 없으니, 바른 법이 곧 바른 법을 거두어들이는 것이옵니다.
세존이시여, 또 다른 바라밀도 없고 달리 바른 법을 거두어들임도 없나니, 바른 법을 거두어들이는 것이 곧 바라밀이옵니다. 왜냐 하면 바른 법을 거두어들이는 선남자와 선여인은 마땅히 보시[]로써 성숙시켜야 할 사람이면 보시로써 성숙시키고 심지어는 몸을 버리면서 그의 뜻을 따르며 그를 성숙시켜 그 유정으로 하여금 바른 법에 편안히 머무르게 하나니 이것을 보시바라밀이라 하기 때문이옵니다. 계율[]로써 성숙시켜야 할 사람이면 여섯 감관을 지키고 보살펴서 몸과 말과 뜻 나아가 위의를 깨끗하게 하면서 그 뜻을 따라 그를 성숙시키어 그 유정으로 하여금 바른 법에 편안히 머무르게 하나니, 이것을 계율바라밀이라 하기 때문이옵니다. 인욕[]으로써 성숙시켜야 할 사람이면 설령 그 유정이 꾸짖고 욕하고 헐뜯고 비방하고 요란 시킨다 하여도 성냄이 없는 마음과 이익을 주려는 가장 으뜸가는 인욕의 힘으로써 심지어 얼굴빛조차도 변하지 않고 그의 뜻을 따르며 성숙시키어 그 유정으로 하여금 바른 법에 편안히 머무르게 하나니, 이것을 인욕바라밀이라 하기 때문이옵니다. 정진(精進)으로써 성숙시켜야 할 사람이면 그 유정에 대하여 게으르거나 보잘것없다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고 크나큰 의욕을 일으켜 으뜸가는 정진으로써 네 가지 위의(威儀)에서 그의 뜻에 따라 성숙시키어 그 유정으로 하여금 바른 법에 편안히 머무르게 하나니, 이것을 정진바라밀이라 하기 때문이옵니다. 선정[靜慮]으로써 성숙시켜야 할 사람이면 그 유정에 대하여 산란함이 없음으로써 바른 생각을 성취하여 일찍이 짓는 일을 끝내 잊거나 잃지 않으면서 그의 뜻을 따라 그를 성숙시켜 저 유정으로 하여금 바른 법에 편안히 머무르게 하나니, 이것을 선정바라밀이라 하기 때문이옵니다. 지혜(智慧)로써 성숙시켜야 할 사람이면 그 모든 유정들의 이익을 위하


                                                                             [3427 / 3476]

여 모든 법을 물을 때에는 게으른 마음이 없이 그를 위하여 모든 이론과 온갖 명처(明處)와 나아가 갖가지 공교처(工巧處)를 연설하여 궁극을 얻도록 그 뜻을 따르며 그를 성숙시키어 그 유정으로 하여금 바른 법에 편안히 머무르게 하나니, 이것을 지혜바라밀이라 하기 때문이옵니다.
그러므로 세존이시여, 바른 바라밀도 없고 달리 바른 법을 거두어들임도 없나니, 바른 법을 거두어들이는 것이 곧 바라밀이옵니다.“
때에 승만 부인이 또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제 부처님의 위신력과 변재의 힘을 받들어서 다시 큰 이치를 말씀드리겠나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무엇을 큰 이치라 하는 것이냐?”
세존이시여, 바른 법을 거두어들인다 함은 달리 바른 법을 거두어들임도 없고 또 다른 바른 법을 거두어들이는 이도 없습니다. 바른 법을 거두어들이는 선남자와 선여인이 바로 바른 법을 거두어들이는 것이옵니다. 왜냐 하면 만일 바른 법을 섭수하는 선남자와 선여인이면 바른 법을 위하여 몸과 목숨과 재물을 버리기 때문이옵니다. 이와 같은 사람들은 몸[]을 버리기 때문에 나고 생사를 벗어나 늙고 병듦을 멀리 여의면서 항상 무너지지 않는 힘을 얻어 달라지거나 바뀜이 없으며 마침내 고요하고 불가사의한 여래의 법신(法身)을 증득합니다. 목숨[]을 버리기 때문에 나고 죽는 생사를 영원히 벗어나 끝없이 항상 함을 얻고 불가사의한 모든 착한 공덕을 성취하며 온갖 부처님 법과 신통 변화에 편히 머무름을 증득합니다. 재물[]을 버리기 때문에 생사를 벗어나 유정을 뛰어넘어 다함도 없고 줄어듦도 없는, 과보(果報)가 원만하며 불가사의한 공덕으로 장엄함을 갖추므로 모든 유정들의 존중과 공양을 받게 되나이다.
세존이시여, 몸과 목숨과 재물을 버리고 바른 법을 거두는 선남자와 선여인들은 모든 여래의 수기를 받게 되나이다.
세존이시여, 만일 선남자와 선여인은 바로 법이 소멸하려 할 때 어떤 비구·비구니·우바새·우바이가 서로서로 편을 갈라 분쟁을 일으키면 아첨하지 않고 속이지 않는 마음으로 바른 법을 좋아하고 바른 법을 거두어 착한


                                                                             [3428 / 3476]

벗 안에 들어가나니, 이 착한 벗 안에 들어간 이는 반드시 모든 부처님의 수기를 받게 되나이다.
세존이시여, 저는 바른 법을 거두어들일 때에는 이런 큰 힘이 있음을 보거니와 여래께서는 이것으로 눈을 삼고 법의 근본을 삼으며 인도하는 법을 삼고 통달하는 법을 삼으시나이다.”
그 때 세존은 승만 부인이 말한 바른 법을 거두어들임에 큰 위력이 있다 함을 들으시고 찬탄하셨다.
그러하느니라, 그러하느니라. 장하구나 승만아, 너의 말과 같이 바른 법을 거두어들일 때의 큰 위덕의 힘은 마치 힘센 역사[大力士]가 살짝 손끝으로 만지기만 해도 큰 고통이 생기고 무거운 병이 더욱 더해지는 것처럼 승만아, 가령 조금이라도 바른 법을 거두어들여서 악마 파순(波旬)으로 하여금 몹시 근심하고 괴로워서 슬피 울고 탄식하게 하는 것도 역시 그와 같으니라.
승만아, 나는 언제나 그 밖의 하나의 착한 법이라도 악마로 하여금 근심하고 괴롭게 하는 것은 보지 못하였나니, 마치 조금이라도 바른 법을 거둘 때와 같은 경우이니라.
승만아, 비유하면 소왕[牛王]은 생김새가 단정하고 몸의 크기가 특출하여 다른 모든 소보다 뛰어나는 것처럼 승만아, 대승을 닦는 이가 설령 조금이라도 바른 법을 거두면 곧 성문이나 독각의 온갖 착한 법보다 뛰어나는 것이 그와 같으니라.
승만아, 또 마치 수미산이 높고 넓고 장엄하고 고와서 많은 산들보다 뛰어난 것처럼 승만아, 처음 대승에 나아가는 이가 이롭게 하려는 마음으로 몸과 목숨을 돌보지 않고 바른 법을 거두면 곧 몸과 목숨을 돌보며 오래도록 대승의 온갖 선근에 머무르는 이를 뛰어넘을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승만아, 마땅히 바른 법을 거두어들이면서 온갖 유정을 깨우쳐 보이고 교화해야 하느니라. 이와 같아서 승만아, 바른 법을 거두면 큰 복의 이익과 큰 과보를 얻게 되느니라.
승만아, 내가 수없는 아승기겁 동안 이와 같이 바른 법을 거둘 때에 얻게 되는 공덕을 칭찬한다 하여도 다함이 없으리니, 그러므로 바른 법을 거두어들이면 이와 같이 한량없는 공덕을 성취하느니라.”


                                                                             [3429 / 3476]

부처님께서 이어 승만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제 다시 내가 말한 바른 법을 거두어들이면 모든 부처님도 같이 좋아함을 연설해야 하느니라.”
승만이 말하였다.
거룩하시옵니다. 세존이시여, 바른 법을 거두어 받음을 곧 대승(大乘)이라 하나이다. 왜냐 하면 대승에서는 온갖 성문과 독각과 세간과 출세간(出世間)의 모든 착한 법을 출생시키기 때문입니다. 마치 아뇩달지(阿耨達池)에서 팔대하(八大河)가 나오게 되는 것처럼 이 대승에서도 온갖 성문과 독각과 출세간의 모든 착한 법이 나오나이다.
세존이시여, 또 마치 온갖 종자와 초목과 우거진 숲은 대지(大地)에 의지하여 나고 자라는 것처럼 이 성문과 독각과 세간과 출세간의 모든 착한 법도 모두가 대승에 의지하여 나고 자라게 되나이다.
그러므로 세존이시여, 대승에 머물러서 대승을 거두어 받아들임이 바로 성문과 독각, 세간과 출세간의 모든 착한 법에 머물러 거두어 받아들이는 것이옵니다.
마치 부처님·세존께서 말씀하신 여섯 가지 처소[]와 같습니다. 그것은 곧 바른 법이 머무름[正法住]과 바른 법이 사라짐[正法滅]과 따로따로의 해탈[別解脫]과 비나야(毘奈耶)와 바른 출가[正出家]와 구족계를 받는[受具足] 것이니, 대승을 위하여 이 여섯 가지 처소를 말씀하셨나이다.
왜냐 하면 바른 법이 머무른다 함은 대승을 위하여 말씀한 것으로서 대승이 머무르면 곧 바른 법이 머무르기 때문입니다. 바른 법이 사라진다 함도 대승을 위하여 말씀한 것으로서 대승이 사라지면 곧 바른 법도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따로따로의 해탈과 비나야의 이 두 가지 법은 뜻은 하나인데 이름만 다른 것입니다. 비나야는 곧 대승의 배움[大乘學]입니다. 왜냐 하면 부처님에게 출가해서 구족계(具足戒)를 받게 되기 때문이옵니다. 그러므로 대승의 계율[戒蘊]이 바로 비나야며, 이것이 바른 출가요 이것이 구족계를 받는 것이옵니다.
세존이시여, 아라한에는 출가함과 구족계를 받는 것이 없나이다. 왜냐 하면 아라한은 여래가 되려고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지 않기 때문이오니, 아라


                                                                             [3430 / 3476]

한은 두려운 생각이 있기 때문에 여래께 귀의하나이다. 왜냐 하면 아라한은 온갖 행에서 두려워함이 마치 어떤 사람이 칼을 쥐고 자기를 해치려고 하는 것과 같이 여기기 때문이니, 이 때문에 아라한은 모든 번뇌를 벗어나 궁극의 안락을 증득하지 못하나이다.
세존이시여, 의지하면서도 의지함을 구하지 않음은 마치 모든 중생은 귀의함이 없으나 저 여러 가지를 두려워하여 안온함을 위하기 때문에 귀의를 구함과 같나이다.
세존이시여, 이와 같이 아라한은 두려움이 있기 때문에 여래께 귀의합니다. 그러므로 아라한과 벽지불은 태어나는 법[生法]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고 범행(梵行)은 아직 세우지 못하였으며 할 일[所作]도 아직 마치지 못하고 끊어야 할 것도 아직 다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열반과는 거리가 머나이다.
왜냐 하면 오직 여래·응공·정등각만이 열반을 증득하고 한량없고 불가사의한 온갖 공덕을 성취하며 끊어야 할 것을 모두 이미 끊었고 마지막까지 청정하여 모든 유정들이 우러러 사모하며 이승과 보살의 경계를 뛰어나기 때문이오니, 아라한들은 이렇게 되지 못하므로 열반을 증득한다는 말은 부처님의 방편이옵니다. 그러므로 아라한들은 열반과는 거리가 머나이다.
세존이시여, 아라한과 벽지불이 해탈하는 지혜를 관찰하여 마침내 쉬게 된다는 말은 모두가 여래께서 다른 이의 뜻을 따라 한 말씀이요, 분명하지 않은 이치[不了義]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왜냐 하면 두 가지 죽음[]이 있기 때문이옵니다.
어떤 것이 두 가지 죽음인가 하면 첫째는 분단(分段)이요, 둘째는 변역(變易)이옵니다. 분단의 죽음이라 함은 유정으로서 상속(相續)함을 말하며 변역의 죽음이란 곧 아라한과 벽지불과 자재한 보살이 보리에 이르기까지 생각하는 대로 생기는 몸[意生身]을 말하나이다.
두 가지 죽음 가운데서 분단의 죽음[分段死]으로써 아라한과 벽지불에게 '나의 생[我生]은 이미 다했다는 지혜가 생한다 합니다. 남음이 있는 과위[有餘果]를 증득한 까닭에 '범행(梵行)은 이미 섰다'라는 지혜가 생겼으며 범부로서는 할 수 없는 것이며 일곱 부류의 배울 것 있는 사람[學人]이 아직...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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