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보적경(大寶積經)

대보적경-3375-675

근와(槿瓦) 2018. 8. 17. 00:36

대보적경-3375-675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3371 / 3476]

()의 근본과 악()의 근본을 일으키지만 무상(無常)한 데로 돌아가고 나면 인연의 모임도 없게 되는지라 습관도 없는 것으로부터 모든 법을 일으키지 않는다'라고 하느니라.
그가 이렇게 관찰하여 모든 법을 환히 깨달으면 귀착하는데도 역시 아무것도 없어서 공하여 모양도 없고 소원도 없으며 짓는 공덕과 공덕이 없는 것 등 그가 하는 모든 일은 마치 허깨비와 같아서 덧없다고 보게 되나니 마땅히 정진을 받들어 행하면서 설령 인연이 일어났다 하여도 열 가지 높은 행으로서 극히 으뜸가고 더 숭상할 수 없는 것이 있으므로 인연을 제거하고 큰 법[大法]에 뜻을 두어야 하느니라.
어떤 것을 열 가지라 하는가 하면 몸이 깨끗하여 더러움이 없고 모든 상호(相好)와 종호(種好)로 정수리를 볼 수 없어서 온갖 모든 침해를 벗어나며 뜻하는 성품이 청정하여 열 가지 일을 두루 갖추고 그 마음이 청정해져서 바른 행을 완전히 갖추며 60억의 음성을 내어 중생을 즐겁게 하여주며 그 마음이 청정한 이는 항상 인자한 생각을 품고 온갖 것을 가엾이 여기어 해를 끼침이 없으면서 그 뜻은 언제나 안정하여 일찍이 산란함이 없느니라. 변재가 청정하여 강설(講說)할 때에는 법의 이치에 알맞으면서 변재가 다함이 없으며 큰사랑[大慈]이 청정하여 중생을 깨우쳐주고 교화하여 모두가 열반의 경계를 즐기게 하며 크게 가엾이 여기고 청정하여 수없는 겁 동안 나고 죽음을 싫어하지 않으며 열 가지 힘을 청정하게 하여 중생의 근원과 생각하는 바가 각각 같지 않음을 환히 깨달아 아느니라. 청정하고 두려움이 없으면서 헤아릴 수 없는 법과 중생의 쌓인 무더기[積聚]를 분별하고 어거하며 모든 부처님만이 지니는[] 법을 갖추고자 하면서 과거·미래·현재의 지혜가 3()에 걸림이 없으며 모든 부처님의 법이 청정하여 작용이 자재하면서 거룩한 지혜에 돌아가게 하기 때문이니, 이것이 열 가지니라.
그는 이미 이 높고 묘하고 극히 으뜸가서 더 능가할 것이 없는 큰 법의 열 가지 행에 이르게 되면 헤아리고 생각해서 싫어하거나 게으르지 않으며 공훈을 쌓으면서 덕이 없는 행에 떨어지지 않고 은근하게 정진하는 것이니라.
무엇을 말하여 모든 법이 근원에서 오는 처소가 없게 되며 머무르는 모든 묵은 번뇌[塵勞]에서 건너간다고 하는가 하면 만물이 모두 무상한 것인 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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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깨달았기 때문에 무상삼매(無常三昧)를 이루게 되고 이 선정을 얻은 이는 견고하고 긴요한 생각[緊要想]이 없으면서 삼매에서 산란하지 않으며 그 본래의 서원[本願]에 따라 향하여 태어날 곳을 보이며 그로부터 와서 들어가는 바가 있어서 다시 태어나게 되어 공덕의 행을 널리 펴면서 중생을 교화하나니, 이것이 족성자 보살·대사(大士)가 좋은 방편으로 경전을 두루 설하여 모든 법을 관찰해서 본래 법이 없는 줄 통달하여 뜻에 머무는[意止] 행이니라.
그가 도()에 이르고 경전을 좇아 닦으면서 만일 도품(道品)의 법을 깨달아 알면 많은 선()을 짓지도 않고 항상 있다고 보지도 않으며 또한 집착하는 것도 없고 악한 법을 제거하지도 않으며 도의 마음[道心]으로 보는 것과 있는 대상에 끊어짐도 없고 또한 항상 있다고 헤아리지도 않고 아주 없음[斷滅]에도 떨어지지 않느니라. 만일 어떤 보살이 항상 있다거나 아주 없다고 보는 일을 버리고 마음을 평등하게 가지면서 머무르지 않으면 중간(中間)에 처하게 되나니, 무엇을 중간이라 하는가 하면 무명(無明)의 어두움을 생각하거나 행하지 않아야 하고 이것을 모두 없애버리면 이것을 중간이라 하며 명령함도 없고 가르쳐 줄 만한 것도 없으며 언어도 없고 설명도 없는 것을 중간이라 하느니라. 요약하면 무명·지어감[인식[이름과 물질[名色여섯 감관[六入접촉[느낌[욕망[집착[존재[태어나고[] 늙고 죽고[老死] 근심하는 괴로움이 모일 만한 것도 없고 모두 이미 없애고 다하면 이것을 중간이라 하느니라. 그가 가르치는 바에 지혜도 없고 또한 일정한 곳도 없으면 이것을 중간이라고 한다.
그 중간이란 역사(驛舍)도 없고 또한 파견한 이나 이와 같이 묵을 곳[宿處]도 없으며 그 있는 바를 헤아려 보아도 명령함이 없고 가르쳐 주는 이도 없으며 이 본말(本末)을 헤아려 보아도 결단하여 마칠 수도 없고 아직 처한 데도 없으며 붙잡을 수도 없고 집착하는 것도 없으며 고요하고 쓸쓸하며 담박(澹泊)하여 홀연히 벌써 사라져 버리나니, 이것을 중간이라 하느니라. 비유하면 족성자야, 메아리가 나오는 곳은 일정한 처소가 없으되 그는 가까운 곳으로 나아가 소리를 대치해 내는 것처럼 진리를 보면 진실과 거짓에 떨어지게 된다. 이것이 중간이 되어 언어도 없고 설명도 없나니, 그것은 곧 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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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없고 처소도 없느니라.
그와 같아서 족성자야, ()이 되어 인식과 물질[識色]을 일으키는 일과 그러한 인()이 합하여 이루어지도록 시키는 것은 두 연()이 상대함에 따른다. 그 중간에는 가르치는 것도 없고 설명도 없나니 이것을 중간이라 하며, 인과 연[因緣]이 합하여 이루어지면 이치가 소용이 없고 그 이치란 것을 얻을 수 없으며 그것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거듭 오지 않고 그것이 거듭 오지 않기 때문에 이것을 중간이라 하느니라. 또 나라는 것을 헤아려 보면 곧 []가 없고 사라져서 고요하며 이것에서는 나와 나가 아님이 저절로 청정하게 환히 아나니, 이것이 중간에 처하는 것이다. 사람과 수명을 헤아려 보면 사람과 수명은 보이는 것이 없고 청정하여 자연이므로 이것을 중간이라 하느니라. 또 생각과 생각이 없는데서 생각하는 즐거움이 없는 것을 중간이라 하고 뒤바뀐 일에 있는 바가 없는 것을 중간이라 하느니라. 허망함과 어리석음과 지극한 정성의 가르침을 모두 얻을 수 없는 것을 중간이라 하며 이 언덕[]과 저 끝[彼際]으로 자기 몸을 소화하여 집착함이 없게 하고 유위(有爲)와 무위(無爲)에서 모든 것을 익히지 않는 것을 중간이라 하며 생사를 제거하고 열반도 버리면서 모든 언어와 가르침이 없는 것을 중간에 처한다고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족성자에게 말씀하셨다.
그 법()을 관찰하되 법은 본래 없는 줄 환히 알면서 뜻에 머무르는[意止] 사람은 법계(法界)를 무너뜨리지 않고 그 뜻이 스스로 그러하여[自然] 그 뜻으로 하여금 대경에 머무르게 할 수 있나니, 그는 법계에 인도하여 모든 법을 깨달아 알므로 그 법의 경계와 사람의 경계를 헤아릴 때에는 그 법의 경계에 있어서도 역시 무너뜨리는 것이 없고 사람의 경계도 헐어뜨리지 않아서 사람의 경계와 법의 경계 이 두 가지 일에 똑같아서 마치 허공의 경계[空界]와 같으니라.
그는 한 경계로써 모든 법을 널리 보되 혜안(慧眼)으로써 보고 법의 경계로써는 부처님께서 행하신 것을 관찰하거니와 만일 어떤 사람이 법을 선택하지 않으면 그는 곧 보는 것이 없나니, 이 때문에 모든 법은 약간이라도 본래 법이 없다고 보면 약간의 것도 보지 못하느니라. 만일 법을 관찰하여 본래


                                                                             [3374 / 3476]

없는 것을 본다면 육안(肉眼)으로도 보지 못하고 천안(天眼)으로도 보지 못하며 혜안(慧眼)으로도 보지 못하느니라. 그 까닭은 눈을 부린다고 헤아린 이가 생각[]을 느끼지 않기 때문이니라. 육안으로 보지 않으면 그 눈은 생사(生死)의 행에 떨어지지 않고 만일 천안으로써 보는 바가 없다면 그 눈을 이용하여 방일을 하지 않으며 만일 혜안으로써 보는 바가 없다면 그는 법을 관찰해서 법은 본래 없는 줄 알며 모든 법을 널리 보면서도 처소가 없고 법에 머무르는 것이 없으며 이미 모든 법을 보면서 머무르는 것이 없다면 법의 뜻[]을 행하면서 곧 옛날에 서원한 바에 어긋나거나 상실하지 않으리니, 이것이 보살로서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라서 스스로 뜻을 세워 감히 깊고 묘한 법을 관찰할 수 있으며 도의 마음으로 모든 신통과 지혜[通慧]를 버리지 않는다고 하느니라. 이것이 족성자 보살·대사로서 본래 법이 없다고 관찰하여 뜻에 머무는[意止] 청정한 행이니라.”
부처님께서 족성자에게 말씀하셨다.
이것이 네 가지 의지[四意止: 四念處]의 행이니, 네 가지 정진하는 것이니라. 무엇을 네 가지 정진이라 하는가 하면 몸[]을 몸이라 할 것이 없다고 관찰하면서 실은 깨끗하지 않은[不淨] 것인데도 깨끗하다고 헤아리는 뒤바뀐 생각을 버리는 것이요 느낌[]을 느낌이라 할 것이 없다고 관찰하면서 괴로운 것[]인데도 즐겁다고 여기는 뒤바뀐 생각을 버리는 것이며 마음[]을 마음이라 할 것이 없다고 관찰하면서 항상 없는 것[無常]인데도 항상 있다고 헤아리는 뒤바뀐 생각을 없애는 것이요 법()은 법이라 할 것이 없다고 관찰하면서 나 없는 것[無我]인데도 나라고 여기는 생각을 버리는 것이니라.
네 가지 뒤바뀜[顚倒]에서 평등함을 닦으면 집착할 것이 없게 되나니, 보살이 만일 평등함을 잘 수행하면 온갖 모든 행이 청정하게 되느니라. 보살이 이 평등하고 청정하고 미묘한 행을 받들면 곧 법인(法忍)을 체득하게 되며 사의단(四意斷)이라고 하는 것에서도 역시 법인을 체득하게 되느니라.
무엇을 의단(意斷)의 청정함이라 하는가 하면 수행하는 이가 도법(道法)을 강설하여 이 인연으로써 선의 근본[善本]되는 법행은 자연히 따르고 악의 근본[惡本]은 좇지도 않고 잘못을 일으키지도 않는 것이니라. 모든 선의


                                                                             [3375 / 3476]

근본이 아닌 것이 아직 싹트지 않았으면 일어나지 않도록 정진하여 받들고, 모든 악이 일어났거나 그릇된 법의 일이면 곧 그것이 없어지게 하기 위하여 정진을 닦으며, 모든 착한 법의 일이 아직 일어나지 않았으면 권하여 일으켜 내며 일어난 착한 법으로써 더욱더 정진하여 그것을 두루 갖추게 함과 동시에 잊거나 잃어버림이 없게 하도록 정진하는 것이니라.
또 보살이 본시 행한 청정한 업은 스스로 다스려서 잘 보살피고 착한 법은 잃지 않고 자재로이 머무를 수 있게 하며 점차로 더욱 기르면서 착한 법을 드날리고 착한 법으로서 이미 일어나 있는 것이면 다시는 잊거나 잃지 않느니라.
그 족성자가 이와 같이 청정함을 행하면 이것이 4의단(意斷)이다. 그것이 보살의 행이니, 마음에 자재함을 얻어서 정진에 어지럽지 않고 그 깨끗함과 더러움이 함께 합하지 않으며 청정하여 때[]가 없으면서 부처님의 지혜에 어긋나지 않고 도의 가르침을 따르면서 대비(大悲)를 행하며 마음과 마음이 서로 대하여 그 생각하는 바를 보고 정진을 잃지 않으면서 평등함을 행하므로 의단(意斷)을 얻는다고 하느니라.
그 까닭은 무엇인가 하면 평등하고 찬찬함을 좇으면서 삿된 일을 하지 않게 되기 때문이니, 찬찬함[安祥]으로 인하여 삿된 일을 좇지 않으면 곧 의단(意斷)의 평등한 삼매를 체득하게 되고 이미 삼매를 얻은지라 평등한 4의단이라고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족성자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이 4의단을 잘 수행하면 곧 4신족(神足)을 받들어 행하여 두루 갖추게 되느니라. 탐욕을 끊어 없애고 정진을 받들어 행하면서 도의 마음[道心]으로 하여금 고요해져 더러움이 없게 되며 생각하는 것이 얇고 적어지고 벌써 그릇된 법을 버려서 가볍고 편안하게 되며 대비(大悲)를 이루게 되어 정진이 가쁜 하고 권방편(權方便)을 얻으면서 벌써 타이름[]이 가쁜 해지나니, 이로 인하여 4신족을 성취하여 도의 집[道堂]에 올라 네 가지 자재함[自在]을 얻느니라.
무엇을 네 가지 자재함이라 하는가 하면 수명(壽命)에서 자재하게 되어 이미 목숨이 길어져서 오래 살면서 자기 마음대로 한없이 누리고 명이 짧은...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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