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보적경(大寶積經)

대보적경-3330-666

근와(槿瓦) 2018. 8. 8. 00:36

대보적경-3330-666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3326 / 3476]

그때 대지(大地)는 부처님의 신력 때문에 여섯 가지로 진동하면서 덧없는 모양을 나타냈는데 만 6천 명이 모두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었고 7백의 비구와 3천의 우바새와 4만억의 우바이와 6천억 나유타의 6욕천(欲天)의 하늘들이 티끌을 멀리하고 때를 여의어[遠塵離垢] 모든 법 가운데서 법안(法眼)의 깨끗함을 얻었다. 그때 아난이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 어깨를 드러내고 오른 무릎을 땅에 대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무슨 인연 때문에 이와 같이 대지가 여섯 가지로 진동하나이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복전에 대한 차별이 없는 모양을 말하였기 때문에 이런 상서(祥瑞)를 나타내느니라. 옛날 모든 부처님께서도 역시 이 곳에서 이렇게 복전의 모양을 말씀하시어 중생을 이익 되게 하시자 온갖 세계가 여섯 가지로 진동하였느니라.”
사리불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문수사리는 바로 불가사의하나이다. 왜냐 하면 말한 바의 법 모양이 불가사의하기 때문이옵니다.”
부처님께서 문수사리에게 말씀하셨다.
그러하느니라, 그러하느니라. 사리불의 말과 같아서 네가 말한 것은 실로 불가사의하구나.”
문수사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불가사의는 말로나 생각으로는 미루어 헤아릴 수 없는 것이니, 이와 같이 생각으로 미루어 헤아릴 수 있는 것과 헤아릴 수 없는 성품은 다 같이 말할 수 없으며 온갖 소리의 모양도 생각으로 미루어 헤아릴 수 있는 것이 아니요 또한 헤아릴 수 없는 것도 아니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너는 불가사의의 삼매(三昧)에 들어갔느냐?”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아니옵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곧 생각하거나 헤아릴 수 없어서[不思議] 어떤 마음으로도 생각으로 미루어 헤아릴 수 있는 것을 보지 못하거늘 어떻


                                                                             [3327 / 3476]

'불가사의의 삼매에 들어갔다'라고 하겠습니까? 저는 처음 발심하면서 이 선정에 들어가려 하였사오나 지금 생각하면 실로 들어가려는 마음의 모양이 없이 이 삼매에 들어가나이다. 마치 사람이 활쏘기를 배우면서 오래오래 익히면 익숙하여져서 뒤에는 비록 마음이 없다 하더라도 오랫동안 익혔기 때문에 쏘는 화살마다 모두가 적중하는 것처럼 저도 역시 그와 같습니다. 처음 이 불가사의 삼매를 배울 적에는 마음을 한 반연에 매어두었으나 오래 익혀서 성취한지라 다시는 마음이나 생각이 없어도 항상 선정과 함께 하고 있나이다.”
사리불이 문수사리에게 말하였다.
다시 더 뛰어나고 묘한 번뇌가 고요히 사라지는[寂滅] 선정이 있습니까?”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만일 불가사의 선정이 있다 한다면 당신은 '고요히 사라지는 선정이 있는가'라고 물을 수 있겠거니와 내가 이해하기로는 불가사의의 선정조차도 오히려 얻을 수 없거늘 어떻게 '고요히 사라지는 선정이 있느냐'라고 묻겠습니까?”
사리불이 말하였다.
불가사의의 선정은 얻을 수 없는 것입니까?”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생각으로 미루어 헤아리는 선정[思議定]은 바로 얻을 수 있는 모양이거니와 불가사의의 선정은 얻을 수 없는 모양이며 모든 중생은 실로 불가사의의 선정을 성취합니다. 왜냐 하면 온갖 마음의 모양은 곧 마음이 아니기 때문이니, 이것을 불가사의한 선정이라 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중생의 모양과 불가사의한 삼매의 모양은 평등하여 분별이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문수사리를 찬탄하셨다.
장하고 장하구나. 너는 모든 부처님께 오래도록 선근을 심어서 청정한 행[梵行]을 닦았기에 이 같이 깊은 삼매를 연설할 수 있느니라. 너는 이제 이와 같은 반야바라밀 안에 편히 머물렀느니라.”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만일 제가 반야바라밀 안에 머물러 있다면 '곧 그것은 있다는 생각이어서


                                                                             [3328 / 3476]

곧 나라는 생각[我想]에 머무른 것'이라고 말할 수 있나이다. 만일 있다는 생각과 나라는 생각 안에 머물렀다면 반야바라밀에는 곧 처소가 있는 것입니다. 반야바라밀이 없음[]에 머물러도 역시 이는 나라는 생각이며 역시 처소가 있다고 할 것이니, 이 두 가지 처소를 여의고 머무를 바 없는 데[無所住]에 머무르면 마치 모든 부처님이 머무르는 것과 같이 고요히 사라진 불가사의한 경계에 편안히 있게 될 것이옵니다. 이와 같이 불가사의함을 반야바라밀의 머무를 곳이라 하나이다. 반야바라밀은 온갖 법의 모양이 없고, 지음이 없는 데에 처하나니, 반야바라밀은 곧 불가사의요 불가사의는 곧 법계(法界)이며 법계는 곧 모양이 없고 모양이 없으면 불가사의하며 불가사의는 곧 반야바라밀이옵니다. 반야바라밀과 법계는 둘이 아니고 구별도 없으며 둘이 없고 구별도 없으면 곧 법계요 법계는 곧 모양이 없으며 모양이 없음은 곧 반야바라밀의 경계요 반야바라밀의 경계는 곧 불가사의의 경계며 불가사의의 경계는 곧 생김도 없고 사라짐도 없는 경계요 생김도 없고 사라짐도 없는 경계가 곧 불가사의의 경계이옵니다.”
문수사리가 이어 말하였다.
여래의 경계와 저의 경계는 곧 둘이 없는 모양[不二相]이오니, 이와 같이 반야바라밀을 닦는 이면 곧 보리를 구하지 않나이다. 왜냐 하면 보리의 모습을 여의면 곧 반야바라밀이기 때문이옵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나의 모양은 집착할 수 없음을 알아서 아는 것도 없고 집착하는 것도 없으면 이것이 부처님께서 알 것입니다. 불가사의하여 아는 것도 없고 집착이 없는 것이 바로 부처님께서 알 것이옵니다. 왜냐 하면 알음[] 자체의 본래 성품은 있는 모습이 없으니 어떻게 법계(法界)를 굴릴 수 있겠나이까? 만일 앎의 본래 성품이 자체도 없고 집착도 없다면 곧 물건이 없다[無物] 합니다. 만일 물건이 없다면 이것은 처소도 없고 의지할 곳도 없고 머무를 곳도 없는 것이오니, 의지한 데도 없고 머무른 데도 없으면 곧 생김도 없고 사라짐도 없으며 생김도 없고 사라짐도 없으면 곧 그것은 유위(有爲)와 무위(無爲)의 공덕이옵니다. 만일 이와 같이 알면 마음이나 생각이 없으며 마음이나 생각이 없으면 어떻게 유위와 무위의 공덕을 알겠나이까? 앎이 없는 것이 곧 불가사의요 불가사의면 바로 부처님만이 알 것이어서 역시 취하는 것도 없고 취하지 않는


                                                                             [3329 / 3476]

것도 없으며 3()의 가고 오는 모양도 보지 않으며 나고 없어짐과 모든 일으키고 짓는 것도 취하지 않으며, 또한 아주 없어지지도 않고[不斷] 항상 있지도 않나이다[不常]. 이와 같이 알면 이것을 바른 지혜[正智]요 불가사의한 지혜[不思議智]라 하나니, 마치 허공은 이것도 없고 저것도 없고 비교할 것도 없으며 좋아하거나 싫어함도 없고 같은 것도 없고 형상도 없고 모습도 없는 것과 같나이다.”
부처님께서 문수사리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그렇게 알면 물러나지 않는 지혜[不退智]라 하느니라.”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조작이 없는 지혜[無作智]를 물러나지 않는 지혜라 하리니, 마치 금광(金鑛)은 먼저 쇠몽둥이로 두드린 다음에야 비로소 좋고 나쁜 것을 알고 만일 다듬고 두드리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처럼 물러나지 않는 지혜의 모양도 그와 같아서 중요한 행[要行]의 경계는 생각하지도 않고 집착하지도 않으며 일으킴도 없고 지음도 없으며 움직이지도 않고 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음을 두루 갖춘 때라야 비로소 나타나게 되나이다.”
그 때 부처님께서 문수사리에게 말씀하셨다.
마치 모든 여래께서 스스로 당신들의 지혜를 말씀함과 같거늘 그 누가 믿을 수 있겠느냐.”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이와 같은 지혜는 열반의 법도 아니요 나고 죽는 법도 아니며, 이것은 번뇌가 고요히 사라진 행이요 움직임이 없는 행이어서 탐냄·성냄·어리석음을 끊지도 않았고 또한 끊지 않은 것도 아니옵니다. 왜냐 하면 다함도 없고 사라짐도 없으며 나고 죽음을 여의지도 않고 또한 여의지 않은 것도 아니며 도를 닦지도 않고 도를 닦지 않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오니, 이런 견해를 지으면 바른 믿음[正信]이라 하나이다.”
부처님께서 문수사리에게 말씀하셨다.
장하고 장하구나. 네가 말한 것과 같나니, 이런 이치를 깊이 이해하였도다.”
그 때 마하가섭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3330 / 3476]

세존이시여, 장차 오는 세상에 만일 이와 같이 매우 깊은 바른 법을 말하면 그 누가 믿고 이해하면서 들은 대로 받아들여 행하나이까?”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지금의 이 모임 안에 있는 비구·비구니·우바새·우바이로서 이 경을 듣게 된 이러한 사람들이 미래 세상에 만일 이 법을 듣게 되면 반드시 믿고 이해해서 매우 깊은 반야바라밀을 읽고 외우고 믿고 이해하여 받아 지닐 것이며 또 다른 사람을 위하여 분별하고 베풀어 설할 것이니라. 비유하면 마치 장자(長者)가 마니보(摩尼寶)를 잃고는 근심하고 괴로워하다가 뒤에 도로 얻게 되면 마음에 몹시 기뻐하는 것처럼 가섭아, 비구·비구니·우바새·우바이들도 역시 그와 같아서 믿고 좋아하는 마음이 있는데도 만일 법을 듣지 못하면 괴로워하다가 만일 듣게 되었을 때에는 믿고 이해하여 받아 지니면서 항상 읽고 외우기를 좋아하며 매우 크게 기뻐하리니, 이러한 사람은 곧 부처님을 뵈었고 또한 곧 모든 부처님을 가까이에서 공양하고 있는 줄 알아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어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비유하면 마치 도리천(忉利天) 위에 파리질다라수(波利質多羅樹)에서 움이 처음 나올 때에 그 곳에 있는 모든 하늘들은 이 나무를 보고 모두가 크게 기뻐하면서 '이 나무는 오래지 않아서 반드시 꽃이 피겠구나'라고 하는 것처럼, 만일 비구·비구니·우바새·우바이들이 반야바라밀을 듣게 되면 믿고 이해하는 것도 역시 그와 같아서 이 사람들도 오래지 않아서 역시 온갖 불법의 꽃이 피게 될 것이니라. 장차 오는 세상에 어떤 비구·비구니·우바새·우바이로서 반야바라밀을 들은 이가 믿고 받아 읽고 외우면서 마음에 뉘우치거나 침몰하지 않으면 이 사람이야말로 이 모임에서 경을 들어 받았고 또한 사람들을 위하여 마을과 성읍에서 널리 연설하고 유포하였는 줄 알 것이요, 이 사람이야말로 부처님의 보호와 염려를 받음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와 같은 매우 깊은 반야바라밀 가운데서 믿고 좋아하며 마음에 의혹이 없으면 이 선남자와 선여인은 과거 세상의 모든 부처님께 오래도록 닦고 배우면서 모든 선근을 심은 것이니,
비유하면 마치 어떤 사람이 손으로 구슬을 꿰다가 홀연히 최상의 진짜 마니보(摩尼寶)를 얻게 되어서 마음에 크게 기...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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