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일아함경-1255-251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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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너희들에게 분부하니 마땅히 가섭 비구처럼 되어야 한다. 왜냐 하면 가섭 비구는 12두타행을 스스로 행하고 또 남을 가르쳐 그 요긴한 법을 행하게 하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너희들에게 분부하니 마땅히 면왕(面王)[면왕(面王, Moghar jan)은 또한 모하라야(謨賀囉惹)라고도 한다.]비구처럼 되어야 한다. 왜냐 하면 면왕 비구는 나쁘고 헤어진 옷을 입고 장식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비구들아, 이것이 나의 교훈이니 부디 생각하고 닦아 행하라. 비구들아, 꼭 이와 같이 공부해야 한다. 그 때 발제바라는 3개월이 지나도록 세존께서 계신 곳에 나아가지 않았다. 그래서 아난은 3개월이 지난 뒤에 처음으로 발제바라 비구에게 가서 말하였다. "지금 모든 비구들은 모두 누더기 옷을 깁고 있다. 그리고 여래께서는 곧 세간에 유행(遊行)하실 것이다. 지금 가서 뵙지 않으면 후회해도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다." 이 때 아난은 발제바라를 데리고 세존께 나아가 땅에 엎드려 발아래 예배하고, 세존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의 참회를 받아 주십시오. 지금부터 다시는 범하지 않겠습니다. 여래께서는 금계를 정하셨으나 제가 받지 않았습니다. 원컨대 용서해 주십시오." 이와 같이 재삼 되풀이하였다. 이 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너의 참회를 받아주니 뒤에는 다시 범하지 말라. 왜냐 하면 내가 그 무수한 생사(生死)를 생각하건대, 혹은 나귀 · 노새 · 낙타 · 코끼리 · 말 · 돼지 · 염소 따위가 되어 풀을 먹고 그 몸을 길렀으며, 혹은 지옥에서 뜨거운 쇠 구슬을 먹었으며, 혹은 아귀가 되어 항상 고름과 피를 먹었고, 혹은 인간이 되어 5곡을 먹었으며, 혹은 하늘 사람이 되어 자연의 감로(甘露)를 먹었었다. 그리하며 무수한 겁 동안에 온갖 목숨을 받아 서로 다투면서 조금도 만족할 줄 몰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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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파리야, 마땅히 알아야 한다. 마치 불이 섶을 얻어 조금도 만족할 줄 모르고 또 큰 바다가 온갖 물을 머금어 만족할 줄 모르는 것처럼, 지금 범부들도 그와 같이 음식을 탐내어 만족할 줄 모른다." 그 때 세존께서 이런 게송을 말씀하셨다.
생사가 끊어지지 않는 것 그것은 모두 탐욕 때문이다. 원망과 미움으로 악을 키우는 것은 어리석은 사람이 익히는 것이라네.
"그러므로 발제바라야, 항상 욕심이 적어 만족할 줄 알기를 생각하고 탐욕과 온갖 잡된 생각을 일으키지 말라. 우파리야, 꼭 이와 같이 공부해야 한다." 그 때 발제바라는 여래의 교훈을 받고 한적한 곳에서 스스로 힘쓰고 꾸짖었으니, 그 까닭은 족성자로서 출가하여 도를 배우는 이가 위없는 범행을 닦으면 '삶과 죽음은 이미 다하였고 범행은 이미 섰으며, 할 일을 이미 다 마쳐 다시는 몸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사실 그대로 알았기 때문이었다. 이 때 발제바라는 곧 아라한이 되었다. 그 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내 성문 제자들 중에서 음식을 제일 많이 먹는 이는 길호(吉護) 비구이다."
그 때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 8 ]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앙예촌(鴦藝村)에서 대비구들 5백 명과 함께 계셨다. 그 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사람들은 모두 너희들을 사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만일 너희들에게 '너희들이 사문이냐?' 하고 물으면 너희들은 '사문이다'라고 대답한다. 나는 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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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들에게 사문의 행과 바라문의 행에 대하여 말하리라. 너희들이 생각하고 닦아 익히면 뒤에 반드시 성취하리니, 그것은 확실하여 틀림이 없을 것이다. 나는 이제 그 이유를 설명하리라. 사문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으니, 습행(習行) 사문과 서원(誓願) 사문이다. 무엇을 습행 사문이라고 하는가? 말하자면 비구로서 가고 옴 · 나아감과 머무름 · 바라봄 · 용모 · 옷을 입음 · 발우를 지니는 것이 모두 법과 같고, 탐욕 · 성냄 · 어리석음에 집착하지 않으며, 다만 계(戒)를 가키고 정진하여 법이 아닌 것을 범하지 않고 모든 계를 평등하게 배우는 것이니, 이것을 습행 사문이라고 한다. 어떤 것을 서원 사문이라고 하는가? 말하자면 비구로서 위의 · 계율 · 출입 · 나아감과 머무름 · 걸음걸이 · 용모 · 바라봄 · 거동이 모두 법과 같고, 번뇌를 없애 번뇌가 없게 되며, 현재에서 몸으로 증득하여 스스로 유행하면서 교화한다. 그래서 '삶과 죽음이 이미 다하였고 범행은 이미 섰으며, 할 일을 이미 다 마쳐 다시는 몸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사실 그대로 아는 것이니, 이것을 서원 사문이라고 한다. 비구들아, 이것을 일러 '두 종류의 사문'이라고 한다." 그 때 아난이 세존께 아뢰었다. "그 어떤 것을 사문의 법행(法行)이라고 하고 바라문의 법행이라고 합니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이른바 비구로서 음식에 만족할 줄을 알고 밤낮으로 경행(經行)하며 때를 잃지 않고 여러 가지 도의 갈래를 행하는 것이다. 어떤 것을 비구의 온갖 감각기관이 고요한 것이라고 하는가? 말하자면 비구가 눈으로 빛깔을 보고도 집착하거나 어지러운 생각을 일으키지 않고, 거기에서 감각기관인 눈을 깨끗이 하여 온갖 나쁜 생각을 없애고 착하지 않은 법을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귀로 소리를 듣고 코로 냄새를 맡으며 혀로 맛을 보고 몸으로 감촉을 느끼며 뜻으로 법을 알더라도 거기에 집착하거나 어지러운 생각을 일으키지 않아서 감각기관인 뜻을 청정이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것을 비구의 모든 감각기관이 청정한 것이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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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것을 비구가 음식에 만족할 줄 아는 것이라고 하는가? 비구가 배를 요량해 먹고 살지거나 희어지기를 바라지 않으며, 다만 그 몸을 보존하려고 할 뿐이요, 묵은 병을 고치고 새 병은 다시 생기지 않아 범행을 닦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마치 어떤 남녀가 몸에 부스럼이 나면 때를 따라 고약을 바르는 것은 다만 부스럼을 고치려고 하는 것인 것처럼, 지금 이 비구들도 그와 같아서 배를 요량해 먹을 뿐이다. 또 수레에 기름을 치는 것은 멀리 가려고 하는 것인 것처럼, 비구가 배를 요량해 먹는 것은 목숨을 보존하려고 하는 것일 뿐이다. 이와 같은 것을 비구가 음식에 만족할 줄 아는 것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을 비구가 항상 깨어 있을 줄 아는 것이라고 하는가? 이른바 비구로서 초저녁과 새벽에 항상 깨어 있어 37도품(道品)의 법을 생각하고 낮에는 거닐면서 나쁜 생각과 온갖 번뇌[結]를 없애며, 초저녁과 새벽에도 거닐면서 나쁜 번뇌와 좋지 못한 생각을 없애고, 밤중에는 오른쪽으로 누워 다리를 포개고 다만 광명을 향하는 생각을 가지며, 또 새벽에는 드나들고 거닐면서 좋지 못한 생각을 버리는 것이니, 이와 같은 것을 비구가 늘 때를 알아 깨어 있는 것이라 하느니라. 아난아, 이것이 사문이 해야할 요긴한 행이다. 그 어떤 것이 바라문이 해야할 요긴한 행인가? 비구는 괴로움에 대한 진리를 사실 그대로 알고, 괴로움의 발생 · 괴로움의 소멸 ·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방법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안다. 그리고는 욕루(欲漏)의 마음 · 유루(有漏)의 마음 · 무명루(無明漏)의 마음에서 벗어나 해탈을 얻는다. 해탈을 얻고는 곧 해탈하였다는 지혜[解脫智]를 얻는다. 그래서 '삶과 죽음은 이미 다하였고 범행은 이미 섰으며, 할 일을 이미 다 마쳐 다시는 태(胎)를 받지 않는다'는 것을 사실 그대로 아는 것을 말한다. 이것을 바라문이 해야할 요긴한 행의 법이라고 한다. 아난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것을 요긴한 행의 의미라고 하느니라." 그 때 세존께서 곧 이런 게송을 말씀하셨다.
사문을 식심(息心)이라 하나니 온갖 악을 영원히 다 끊었기 때문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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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지를 청정(淸淨)이라 하나니 온갖 어지러운 생각을 다 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난아, 사문의 법행과 바라문의 법행을 항상 생각하고 닦아 행하여야 하느니라. 어떤 중생이라도 이 법을 행한 뒤에야 사문이라고 일컬을 수 있다. 무엇 때문에 사문이라고 하는가? 온갖 번뇌를 아주 없애기 때문에 사문이라고 한다. 무엇 때문에 범지라고 하는가? 어리석고 미혹한 법을 모두 버렸기 때문에 범지(梵志)라고 한다. 또 찰리(刹利)라고도 하나니, 무엇 때문에 찰리라고 하는가? 음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끊었기 때문에 찰리라고 한다. 또 목욕(沐浴)이라고도 하나니, 무엇 때문에 목욕이라고 하는가? 21결(結)을 다 씻어 없앴기 때문에 목욕이라고 한다. 또 깨달음[覺]이라고도 하나니, 무엇 때문에 깨달음이라고 하는가? 어리석은 법과 지혜로운 법을 밝게 깨달았기 때문에 깨달음이라고 한다. 또 저 언덕[彼岸]이라고도 하나니, 무엇 때문에 저 언덕이라고 하는가? 이 언덕에서 저 언덕에 이르기 때문에 저 언덕이라고 한다. 아난아, 이런 법을 행할 수 있는 이라야 비로소 사문 · 바라문이라고 한다. 이것이 그 의미이니 부디 생각하고 받들어 행하라."
그 때 아난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 9 ]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석시(釋翅) 가비라월(迦毗羅越) 니구류원(尼拘留園)에서 대비구들 5백 명과 함께 계셨다. 그 때 제바달두(提婆達兜) 왕자는 세존께 나아가 땅에 엎드려 발아래 예배하고 한쪽에 앉아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에게도 도(道)에 들어가 사문이 되는 것을 허락해주소서." 부처님께서 제바달두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속가에 있으면서 시주가 되어 보시하는 것이 좋겠다. 사문이 된다는...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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