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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한 관찰(불교성전)

근와(槿瓦) 2018. 8. 5. 00:32

진실한 관찰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부처님은 카샤파에게 말씀하셨다.

훌륭한 보배의 모음(大寶積)인 이 법문에 의해 배우려는 보살은 존재에 대해서 올바르게 수행하지 않으면 안된다. 무엇이 존재에 대한 올바른 수행인가. 그것은 곧 모든 존재에 대한 진실한 관찰이다. 그러면 또 무엇이 존재에 대한 진실한 관찰인가. 자아(自我)가 없다고 보는 관찰과 중생이 없다, 목숨 있는 것이 없다, 개인이 없다, 개아(個我)가 없다, 인간이 없다, 인류가 없다고 관찰할 경우 그것을 곧 중도(中道)라 하고, 존재에 대한 진실한 관찰이라고 한다.

 

중도, 즉 존재에 대한 진실한 관찰이란 물질()에 대해서 영원하지도 않고 무상하지도 않다고 보는 관찰이다. 이와 같이 느낌()과 생각()과 의지작용()과 의식()에 대해서도 영원하지 않다고 본다. 이것이 중도이고 존재에 대한 진실한 관찰이다.

 

어떤 존재를 가지고 영원한 것이라거나 무상한 것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한쪽에 치우친 극단론이다. 이 영원과 무상 사이의 올바른 것은 어떤 형체를 가지고 있지도 않고 보이지도 않으며, 나타나지도 않고 인식될 수도 없으며 무어라 이름 붙일 수도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이 관찰하는 것이 중도, 즉 존재에 대한 진실한 관찰이다.

 

자아가 있다고 한다면 이것은 한쪽에 치우친 극단론이다. 무아(無我)라고 하여도 이것 역시 극단론이다. 이 유아(有我)와 무아 사이의 올바른 것은 어떤 형체를 가지고 있지도 않고 보이지도 않으며 나타나지도 않고 인식될 수도 없으며 무어라 이름 붙일 수도 없다. 이와 같이 관찰하는 것이 중도, 즉 존재에 대한 진실한 관찰이다. 마음이 실재한다거나 실재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것도 위의 경우와 같다.

 

또 존재에 대한 진실한 관찰이란 다음과 같은 관찰이다. ()한 성질이 있어 그것이 모든 것을 공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 존재 그 자체가 본래 공한 것이다. 무상(無相)이 있어 그것이 존재하는 것을 무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존재 그 자체가 본래 상()이 없는 것이다. 무원(無願)이 있어 그것이 존재를 바램이 없는 것으로 하는 것은 아니다. 존재 그 자체가 본래 바램이 없는 것이다. 무자성(無自性)이 있어 어떤 존재를 자성이 없는 것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존재 그 자체가 본래부터 자성이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이 관찰하는 것이 중도이고 존재에 대한 진실한 관찰이다.

 


출전 : 불교성전(寶積經 迦葉品)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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