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변(轉變)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轉化變異란 뜻. ① 범어 parinama의 번역으로 轉異라고도 한다. 有部에서는 有爲法이 相續하는 가운데 앞의 순간에서 뒤의 순간으로 옮기면서 體가 改變하는 것(自體轉變)은 허락되지 않지만 작용이 일어날 것, 일어나는 것, 일어난 것, 이 미래·현재·과거의 변화라는 점에서는 轉變(作用轉變)을 인정한다. 唯識宗에서는 (1) 第八識 가운데 거두어지는 種子로부터 諸法을 變生하며, 혹은 現行의 八識 위에 見分·相分의 二分을 變現하는 것을 轉變이라고 한다(果能變). (2) 또 이 둘을 특히 구별하여 後者를 變現 또는 緣變이라고 하는데 대해 前者를 轉變 또는 生變이라고 한다. ② 불·보살이 定自在力에 의해서 自在로 諸法을 變質시키는 것. ③ 有爲轉變 등의 일반용어로서도 사용된다. 곧 萬有의 生滅變化를 일컫는다.
참고
전화(轉化) : ① 옮겨서 다른 것으로 바뀜. ② 高僧大德이 사바세계의 인연이 다해 다른 국토의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 떠나는 것. 入滅.
변이(變異) : ① 변화하여 달라진 모양으로 되는 것. ② 변화. 바뀌는 것.
전이(轉移) : ① 옮김. ② 악성의 종양 등이 피나 림프를 따라 딴 조직에 옮아 감.(국어사전)
전이(轉異) : 범어 vaikrta. 상캬철학에서 자아의식을 뜻함.
유위법(有爲法) : 인연법에 의해 爲作 · 造作되는 法. 곧 인연에 의해 離合集散하는 생멸하는 法을 말한다.
인연법(因緣法) : 범어 pratitya-samutpada. 緣起와 같음. 인연의 도리. 십이인연의 가르침.
상속(相續) : 因은 果를 내고, 果는 또한 因이 되어 또 다른 果를 내므로 이렇게 因果가 차례로 연속하여 끊어지지 않는 것.
작용(作用) : 力用이라고도 하며 줄여서 用이라고도 한다. 事物에 갖추어 있는 활동. 無爲法에는 작용이 없으며, 有爲法에도 현재법에만 작용이 있고, 과거 · 미래의 법에는 작용이 없다. 또 불 · 보살이 중생을 濟度하는 등의 작용. 識이 인식의 대상을 識別하는 작용 등이 있다.
유식종(唯識宗) : 法相宗 · 應理圓實宗 · 普爲乘敎宗 · 唯識中道宗 · 中道宗이라고도 하며, 이 宗의 所依經典은 解深密經 · 成唯識論 · 瑜伽師地論이다. 佛滅 후 1천년경 북인도 사람인 無着과 世親이 세우고, 중국에서는 인도의 戒賢論師에게 법을 배운 玄奘이 窺基에게 전하다. 窺基는 慈恩寺에서 주석하였으므로 慈恩宗이라고도 한다.
우리 나라에서는 신라의 圓測이 당나라에 유학하여 玄奘에게 瑜伽論과 唯識論을 배우고 唯識疏抄를 저술하였다. 또한 경덕왕 때에는 眞表律師가 金山寺에서 戒法과 占察法을 수행하고 법상종의 宗旨를 寶宗 · 永深 · 信芳 등에게 전하여 法住寺와 桐華寺에서 크게 성하였다. 이 宗은 우주 만유의 本體보다도, 현상을 자세히 분류 설명하였으므로 법상종이라 하고, 유식종이라 함은 일체 萬有는 오직 識이 변해서 이루어 진 것에 불과하다고 말하고 불교의 唯識論으로서 萬有는 오로지 아뢰야식으로 緣起한 것이라 주장한다. 그 緣起의 本體인 能變의 처음은 제 8識이요, 2能變은 제 7識, 3能變은 通 6識이라 하고, 이것들은 모두 內心으로 外境을 變現하는 것이므로 三界唯一心과 心外無別法이라 말한다.
萬有를 분류하여 五位百法으로 정하며, 만유의 진정한 理 · 事 · 迷 · 悟를 밝히기 위하여 遍計所執性 · 依他起性 · 圓成實性의 3性을 말한다. 識이 外境을 인식하는 과정에 나아가서는 이것을 4分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萬法唯識의 이치를 깨달아 알게 하는 방법으로 5重唯識觀을 세웠다. 중생의 해탈하는 방법에 있어서는 중생의 성품에는 선천적으로 菩薩定性 · 緣覺定性 · 聲聞定性 · 三乘不定性 · 無性有情의 5性이 각각 다르므로 영구히 해탈할 수 없는 사람이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그 宗의 三乘敎만이 옳고, 다른 종파의 一乘敎는 假說이라 하므로 이 宗을 權大乘이라 부른다.
제팔식(第八識) : 아뢰야식(阿賴耶識)의 다른 이름. 여러 식 가운데 여덟째이므로 이렇게 이름함.
종자(種子) : ① 穀類의 싹이 종자로부터 나오는 것처럼 物 · 心의 모든 존재 현상을 나게 하는 因種을 가리키는 말. 또 種이라고도 하며 곡류등의 종자를 外種 또는 밖의 種子(外種子)라고 하는데 대해, 唯識宗에서는 같은 이치로 우리의 마음의 종자가 아뢰야식 가운데 藏識(감추어져 있음)되어 있다고 하여 이것을 內種 또는 內種子라고 한다. 이 內種子는 生果의 功能(결과를 내는 작용)을 가리키며, 이것은 現行의 諸法(현재 나타나서 작용하는 모든 현상)에 의해서, 흡사 향을 담았던 상자에 향내가 배어서 나는 것처럼 아뢰야식 가운데 熏習되어 있는 일종의 慣習이라고 할 수 있으므로 이것을 習氣라고도 한다. 이 種子說은 하나의 비유로 阿含經에 보이며, 部派佛敎 당시에는 化地部에서 窮生死蘊의 識 가운데 物心의 種子가 항상 존재한다는 說을 세운바 있으며, 經量部에서는 色法(물질)과 心法(정신)이 상호 種子로서 다른 것(相體)을 熏附(서로 영향하고 相依함)하여 보존한다고 하여 色心互熏說을 세우기도 했다.
② 唯識宗에서는 種子는 아뢰야식 가운데 藏在해 있다고 하며 그 관계를 成唯識論 卷二에서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아뢰야식은 體, 種子는 用, 혹은 아뢰야식은 果, 種子는 因이라고도 하며 또 그 관계는 不一不異라고 하고, 또 種子는 아뢰야식의 相分[四分→相分(주관적인 心에 인식되는 객관의 형상), 見分(相分을 인식하는 주관의 心작용), 自證分(自體分이라고도 하며 見分과 다음의 證自證分과를 證知하는 인식작용), 證自證分(自證分을 다시 證知하는 인식작용)] 가운데 존재한다고 한다.(단, 이상은 有漏種子에 대한 해석임). 또 同卷二에서, 種子는 다음의 여섯 조건을 갖추지 않으면 안된다고 하여 이것을 種子六義라고 했다. 곧 (1) 刹那滅. 不動不變의 無爲法이 아니라 生滅變化하는 有爲法일 것. (2) 果俱有. 種子로부터 생긴 現行 곧 果를 여의지 않고 존재하는 것. 다시 말하면 果가 발생하는 현상과 반드시 동시에 존재하며 現前에 和合하여 떨어지지 않는 것. (3) 恒隨轉. 항상 간단 없이 轉起하여 一類相續하는 것. (4) 性決定. 種子를 熏附한 現行의 善惡을 따라서 그 種子로부터 생긴 現行의 善惡을 결정하여 索亂하지 않은 것. (5) 待衆緣. 많은 緣이 和合하는 것을 기다려서 비로소 種子가 現行을 내는 것. (6) 引自果. 色 · 心이 각각의 自果를 따로 따로 引生하는 여섯. 種子가 어떻게 하여 일어났느냐 하는데 대해서는 本有說(護月의 說) · 新熏說(難陀 · 勝軍의 說) · 新舊合生說(護法의 說)의 三說이 있어서, 이것을 주장하는 學流를 각각 本有家 · 新熏家 · 新舊合生家라고 일컫는데, 法相宗에서는 第三說을 옳다고 한다. 곧 種子에는 無始이래로 아뢰야식 가운데 선천적으로 존재하는 本有種子(本性住種)와 후천적으로 現行의 諸法에 의해 熏附된 新熏種子(習所成種)가 있어서 이 2種의 種子가 합하여 現行法으로서의 모든 現象을 낸다고 한다. 다만 見道에 이르러 처음으로 無漏智를 내는 것은 本有無漏種子에 의한다고 하고, 또 五姓의 차별을 일으키는 것을 이 本有無漏種子의 種別이나 그 有無에 의한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本有說에 있어서는 本有種子만을 세워서 新熏種子를 인정하지 않고 現行의 熏習이 新熏種子를 내는 것이 아니라 다만 本有種子를 增長할 따름이라고 주장하는데 대해, 新熏說에서는 新熏種子만을 인정하고 本有種子를 인정하지 않는다. 일반으로 菩提의 因인 無漏種子의 2종의 種子가 있어서, 有漏種子에는 또 名言種子와 業種子의 2종의 種子가 있다. 名言種子는 名言(言語的表象)에 의해서 아뢰야식 가운데 熏附된 種子로서 物 · 心 일체의 현상이 현재에 나타나서 작용하는(現行의) 직접의 因이 되는데, 여기에 또 2種이 있다. 表義名言種子는 의미를 나타내는 言語(곧 表義名言)를 第六意識이 반연하여(곧 인식하여) 그 언어에 따라 諸現象을 變現할 때 熏習되는 種子를 말하며, 顯境名言種子는 心 · 心所法인 前七識의 見分(主觀)등 (곧 顯境名言)이 對境을 반연할(곧 인식)지음에 熏習된 種子를 가리킨다. 心 · 心所法이 名言은 아니지만 名言이 각각의 존재를 표현하는 것처럼 心 · 心所가 對境을 變現하므로 顯境名言이라 한다. 대저 名言種子는 種子와 같은 종류의 現行(現象)을 생기게 하므로 等流習氣라고도 한다. 다음에 業種子는 능히 異熟(果報)을 내는 직접적인 因인 名言種子를 도와서 善惡業에 따른 異熟을 생기게 하는 작용이 있는 種子로서 第六意識과 相應하는 善惡의 思(意志의 정신작용인 業의 體)에 의해서 熏附된다. 異熟은 無記이므로 異熟을 내는 名言種子는 無記이며 따라서 스스로 現行하는 힘은 없지만 善惡의 業種子의 힘이 강하면 그것이 增上緣이 되어 異熟을 生한다. 그러므로 業種子를 異熟習氣라고도 한다. 또 名言種子 가운데 我執에 의해서 熏習되고 그것에 의해서 自他의 차별을 감지하고 迷惑의 바탕인 我見 · 我所見을 일으키는 種子를 특히 我執習氣라 한다. 我執習氣 · 名言習氣 · 有支習氣(業種子에 해당)를 三種習氣라고 한다. 또 山河大地처럼 많은 有情에 공통한 환경을 내는 名言種子를 共相名言種子(共種子)라고 하는데 대해, 육체처럼 그 사람만이 받아 가지고 쓰는 것을 일으키는 種子를 不共相名言種子(不共種子)라고 하며, 이런 名言種子가 現行을 내기 위해서는 共業 · 不共業의 業種子의 도음을 받지 않으면 안된다.
③ 種字라고도 쓰는 경우가 있다. 곧 密敎에서는 불 · 보살등의 諸尊을 表象하는 梵字를 가리킨다. 이것을 種子라고 하는 것은 一字에서 多字를 生하고 또 多字는 一字에 歸結됨을 뜻하는 말. 혹은 種字를 관하면 佛智를 깨닫고(了因), 種字로부터 三昧耶形등을 일으키며(生因), 種字는 본래의 性德이고 軌範으로서 모든 事物의 근원인 本有란 뜻이 있으며 여러 諸尊의 眞言의 一字를 사용한다. 예컨대 胎藏界의 大日如來의 種字를 अ(아)라고 하는 것과 같은 것으로 一尊에의 種字 밖에 1類의 諸尊에 통하는 通種字도 있다. 種字만을 쓴 曼茶羅를 種字曼多羅, 種字에 의해서 觀行하는 것을 種字觀이라고 한다.
제법(諸法) : 여러 가지 법. 萬法과 같음. 우주에 있는 有形 無形의 모든 사물. 諸有. 諸行.
현행(現行) : 有爲의 諸法(모든 것)이 현재에 나타나서 나오는 것. 有部宗에선 모든 법은 雜亂하게 住하고 있는 미래라는 영역에서 인연의 화합으로 現行한다고 생각한다. 유식종에서는 아뢰야식으로 일체의 것으로 생기는 능력이 있다고 보고, 種子라 한다. 이 종자에서 모든 것이 생기는 것, 혹 그렇게 생긴 法(곧 現行法)을 現行이라고 한다. 이와 같이 인연의 화합에 의하여 아뢰야식이 갖고 있는 종자가 現行을 生하는 것을 種子生現行이라고 한다. 다음에 그 현행법은 반드시 새로운 種子(곧 新熏種子)를 아뢰야식 위에 熏附하여 저장한다. 이것을 現行熏種子라고 한다. 먼저 종자와 현행법과 신훈종자와의 세 가지에 있어서 현행법은 현행법대로 신훈종자를 熏하므로 「種子生現行」과 「現行熏種子」와의 因緣果는 동시에 행해진다. 이것을 三法展轉 因果同時라고 한다.
견분(見分) : 객관의 형상을 보는 작용. 主觀 八識의 四分의 하나. 見分이라고 하는 것은 能此相分을 아는 작용이다. 아는 것이 있다 해도 옳게 아는 功能이 없다면 어찌 알 수 있으랴. 그래서, 心體가 轉變하여 능히 사물을 아는 功用을 일으켜서 이에 의해 능히 알게되므로 見分이라 한다.
상분(相分) : 心識이 認識작용을 일으킬 때, 동시에 認知할 그림자를 心中에 떠오르게 하여 대상을 삼는다. 이것을 相分이라 한다.
변현(變現) : 모습을 바꾸어 나타내는 것.
과능변(果能變) : 唯識論의 말. 제8아뢰야식 가운데 내포되어 있는 種子에서 생긴 八識. 8식이 종자로부터 現行됨은 종자에 대하여 果가 된다. 그 果의 8식이 각기 그 힘에 따라 각자의 相分과 見分으로 變現되므로 이를 果能變이라 한다.
연변(緣變) : 또 變現이라고도 한다. 能緣의 識이 緣慮의 작용을 일으킬 때 見·相 二分을 變現하는 것을 말함. 果能變과도 같다. 二變의 하나.
생변(生變) : 唯識宗에서 第八識 가운데 있는 종자식으로부터 諸法(一切存在)이 變生해 나오는 因能變을 轉變이라고도 하고 生變이라고도 한다.
불보살(佛菩薩) : 부처와 보살을 아울러 일컬음.
정자재력(定自在力) : 정(定)→① 마음을 하나의 대상에 專注하여 散亂하지 않게 하는 정신작용. 또는 그런 상태를 定이라고 하며, 이와 반대로 마음이 흩어지고 어지러워(散亂) 움직이는 상태를 散이라 한다. 定散이라 幷稱하기도 한다. 定은 본래 三摩地의 번역으로, 구사종과 유식종에서는 心所(마음의 활동작용)의 하나로 셈하며, 구사종에서는 十大地法의 하나로, 유식종에서는 五別境의 하나로 친다. 또 일반적으로 마음을 산란하지 않게 하는 修行, 또는 그것에 의해 이루어진 특수한 寂靜의 정신상태를 총칭해서 定이라 한다.
定 곧 三昧는 戒 · 慧와 더불어 三學의 하나로서 불교실천수행에 있어 網要的인 道이며, 또 八正道의 하나로서 正定을, 五根 · 五力의 하나로서 定根 · 定力을 들게 된다. 그러나 육바라밀의 하나로서의 定바라밀의 定은 禪(靜慮)이다.
② 禪(靜慮), 삼매 등의 낱말 가운데 포함되는 外延의 범위와 定이란 말이 가지는 뜻의 廣狹에 관해서는 종래 종종의 異說이 있어 왔다. 넓게는 禪定이란 말을 써왔는데, 唯識了義燈卷五에는 定의 異名으로 일곱가지를 들고 있다. 곧,
(1) 三摩呬多. 等引이라 번역하며, 이 譯語가 갖는 뜻은, 等이란 마음이 들떴다(掉擧), 가라 앉았다(惛沈)하는 번뇌를 여의고 平衡을 가지므로 身心이 편안해지는 상태를 가리키며, 引은 定力이 이것을 끌어 일으킴을 나타낸다. 따라서 이 等引은 有心 · 無心의 2定에 통하는데 散心의 位에는 통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2) 三摩地(三昧). 等持라고 번역하며, 心을 平等하게 가진다는 뜻의 말이다. 定 · 散에 통하지만 有心位에만 통하고 無心에는 통하지 않는다. 定의 體라고 일컬어지고 있다.
(3) 三摩鉢底. 等至라 번역하며 身心의 平等에 이른다는 뜻. 유심 · 무심의 2定에 통하지만 散位에는 통하지 않는다. 定의 自相이라 한다.
(4) 禪那. 靜慮라 번역하며 音略하여 禪이라고도 한다. 思慮를 고요하게 한다는 뜻으로 유심 · 무심에 통하고 유루 · 무루에 다 통하지만 色界의 定에 한하므로 따라서 無色界의 定에는 통하지 않는다.
(5) 質多翳迦阿羯羅多. 心一境性이라 번역한다. 心을 하나의 대상을 향해서 집중시킨다는 뜻으로 定의 自性이라고 한다.
(6) 奢摩他. 止 · 正受라 번역하며 邪亂을 여의고 想念을 그친 心의 定靜이란 뜻으로 有心의 淨定에 한한다.
(7) 도리 수타달마 스카 비하라. 現法樂住라 번역하며 現在世에서 定의 悅樂 가운데 안정됐다는 뜻으로 色界의 四根本定에 한한다.
③ 定에는 색계 · 무색계에 태어남으로 해서 자연히 선천적으로 얻어지는 生得定과 欲界(散地)에서는 定을 얻기 위해 수행을 해서 그 노력에 의해 얻는 후천적인 修得定의 구별이 있다. 色界定의 경우에는 이 둘을 각각 生靜慮 · 定靜慮라 하고 無色定의 경우에는 生無色 · 定無色이라고 한다. 또 定의 내용이나 수행의 階程에 의해서 종종의 定이 있으나 구사종 등에서는 이를 대별하여 有心定과 無心定의 二定으로 함.
有心定에는 4靜慮(四禪 · 四色界定)과 4無色定의 8定(八等至)이 있다. 곧 初靜慮 · 第二靜慮 · 第三靜慮 · 第四靜慮와 空無邊處定 · 識無邊處定 · 無所有處定 · 非想非非想處定이 그것이다. 이와 같은 定에는 틀림 없이 각각의 定에 들어간 단계와 그 定에 가까와진 준비적 入門의 전단계가 있어서, 前者를 根本定(根本等止), 後者를 近分定이라고 한다. 다만 初靜慮의 前단계만은 近分定이라 하지 않고 未至定이라 이름하며, 또 初靜慮와 第二處定의 近分定과의 중간단계에 中間定이 있어서 이를 닦으면 大梵天에 난다고 한다. 또 第四靜慮에도 下下品으로부터 上上品까지의 9품이 있는데 그 마지막인 上上品은 色界의 定 가운데 최고가 되므로 邊際定이라고 한다.
이상의 未至 · 中間 · 七近分 · 8根本의 諸定을 尋(尋求推度하는 粗雜한 정신작용)과 伺(伺察思惟하는 深細한 정신작용)의 有無에 따라서 나누면, 未至定과 初靜慮는 有尋有伺三摩地(有覺有觀定), 中間定은 無尋唯伺三摩地(無覺有觀定), 第二靜慮의 近分이상은 無尋無伺三摩地(無覺無觀定)가 되며, 이것을 三定이라고도 , 三三摩地라고도, 三三昧라고도 한다.
또 定의 性質여하에 따라서 味定 · 淨定 · 無漏定의 三定(三等至)으로 나눈다. 味定(味等至)은 貪愛와 相應하여 일어나고 前念(前刹那)의 淨定에 愛樂味着하는 바의 定으로 8根本定과 中間定에 있다. 淨定(淨等至)은 유루의 善心과 相應하여 일어나는 定으로 順退分(自他의 번뇌에 順해서 味定을 일으킴) · 順住分(自他의 淨定에 順한다) · 順勝進分(上地의 淨定에 순응한다) · 順決擇分(無漏地에 순응하여 無漏定을 일으킨다)의 4종으로 나누어지며, 未至定 · 中間定 · 7近分定 · 8根本定의 모두에 있다. 無漏定(無等等至)은 聖者가 그것을 所依로 하여 無漏智를 얻는 定으로서 未至定 · 中間定 · 4根本定(靜慮) · 下三無色定에 있으며 번뇌를 끊는 작용이 강하다. 또 有心定에는 止(奢摩地)와 觀(毘鉢舍那)이 평균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 있다. 未至定과 中間定은 觀하는 쪽이 殊勝하며, 四無色定은 止의 쪽이 뛰어난데, 다만 색계의 4根本定만은 止 · 觀이 均等하므로 靜慮라 이름한다고 한다. 無心定에는 無想定과 滅盡定의 2無心定이 있는데 그 어느 것이든 心 · 心所를 다 滅하는 定이지만 前者는 범부 및 외도가 無想의 상태를 참된 깨달음으로 誤認하여 닦는 것이며, 後者는 聖者가 그 定의 경지를 無餘涅槃界의 寂靜을 닦는 것이다. 四禪(四靜慮) · 四無色 · 滅盡의 9定은 異心을 섞어서 차례를 따라 順次로 修得하는 경우에는 九次第定, 無間禪이라고 일컬어지지만, 定에서 自在力을 얻은 不時解脫의 아라한은 四禪 · 四無色의 8定을 차례에 따라서 순차적으로 닦는 것이 아니라 一地를 뛰어서 더욱 높은 단계의 定을 닦을 수 있는데, 이것을 超定(初等至 · 超越三昧) 이라 한다. 有部의 正說에 따르면 欲界는 散地로서 修地 · 離欲地는 아니고 定地는 다만 欲界 · 無色界만이라고 하지만 異師나 大衆部에서는 欲界에도 定이 있다고 한다.
④ 大乘에서는 아주 많은 종류의 定을 說示한다. 곧 유식종이나 眞言宗의 瑜伽의 觀行, 천태종의 四種三昧, 禪宗의 坐禪 등에서처럼 깨달음에 이르기 위한 실천 방법으로서 定을 닦고, 佛陀가 說法 전에 定에 든 것처럼 다른 이를 인도하기 위해 定에 드는 수도 있다. 또 유식종에서는 四善根位의 하나하나에 있어서 主觀과 客觀이 假有實無임을 觀하기 위해, 각각 明得定(환位) · 明增定(頂位) · 印順定(忍位) · 無間定(世第一法位)〔이상을 四定이라 함〕에 든다고 한다. 이렇게 定에 드는 것을 入定이라고 하며, 禪宗에서는 入禪 · 放禪이라 하기도 한다. 또 깨달음을 이룬 高德이 죽는 것을 入定이라고 하는 수도 있다.
⑤ 觀無量壽經에는 西方의 극락정토에 왕생하기 위한 行으로 定散二善을 說한 것이다. 善導에 의하면 定善은 定心으로 행한 善, 곧 雜念을 쉬고 마음을 집중한 息慮凝心이고, 散善은 散心으로 행한 善 곧 惡을 버리고 善을 닦는 廢惡修善이라고 했으며 이것을 합하여 定散二善이라 하고 이것을 닦는 사람을 定機 · 散機라고 했다. .....자재(自在)→마음대로 무엇이나 자유롭지 않은 것이 없고 장애할 것이 없음을 일컫는 말. 불·보살이 갖춘 功德의 하나. 그래서 佛을 自在人이라고도 한다. 보살이 가진 自在力에 다음과 같은 종류가 있다.
➀ 二種自在.
(1) 觀境自在. 眞如와 다른 경계 곧 현상계를 아울러 觀하는 自在.
(2) 作用自在. 說法敎化의 활동이 自在한 것.
➁ 四種自在. 八地 이상의 보살이 갖춘 自在力.
(1) 無分別自在. 分別의 相을 여의고 任運無功用한 自在.
(2) 刹土自在. 淨土自在. 자유로 種種의 國土에 나서 그 국토를 淸淨하게 하는 自在.
(3) 智自在. 第九地에 이르면 無礙智를 成就하므로 說法敎化에 自在하게 되는 것.
(4) 業自在. 第十地에 오른 보살은 번뇌와 業縛이 없는 自在를 성취함. 또 모든 보살이 있는 戒와 神通과 智와 慧와의 4종의 自在를 四種自在라 한다.
➂ 十種自在.
(1) 命自在. 壽命을 伸縮하는 自在.
(2) 心自在. 三昧에 들어가는 自在.
(3) 財自在. 資具自在, 財物에 관한 自在.
(4) 業自在. 行業 곧 行爲의 自在.
(5) 生自在. 受生自在. 生을 받는 것을 自在로 하는 것,
(6) 願自在. 원하는 대로 깨달음을 얻는 自在.
(7) 信解自在. 解自在. 온 우주에 佛이 遍滿함을 보는 自在.
(8) 如意自在. 神力自在. 神通變化의 힘으로 不思議함을 보이는 自在.
(9) 智自在. 智慧를 얻어서 깨달음을 여는 自在.
(10) 法自在. 無量의 敎를 說示하는 自在를 말함.
변질(變質) : 성질이나 물질이 변함. 또, 그 변한 성질이나 물질.(국어사전)
유위전변(有爲轉變) : 有爲法은 생멸법으로 不變의 實相이 아니므로 轉變한다고 이름한 것. 즉 無常함을 뜻한다.
만유(萬有) : 우주간에 있는 삼라만상(森羅萬象. 우주 사이에 벌여 있는 온갖 사물과 현상).
생멸(生滅) : 生起와 滅盡을 병칭하는 것으로 起滅이라고도 한다. 인연이 화합하여(곧 모든 조건이 만족하게 되어) 성립하는 萬有(곧 有爲法)는 변천하는 성질의 것(無常)이므로 반드시 生滅한다. 인연을 여의고 존재하는 영구불변(常住)하는 것(곧 無爲法)은 無生無滅(不生不滅)이다. 단 대승에서는 유위법에도 불생불멸의 뜻이 있다고 한다. 또 생멸은 시간의 최소단위(刹那)로 논하면 찰라찰라에 생멸하므로 이것을 刹那生滅(刹那滅)이라 한다. 이에 대해 有情이 나서 죽을 때까지 한 평생(一期)을 가지고 생멸(出生과 死滅)이라고 하는 것을 一期生滅이라 하고 합해서 2種生滅이라 한다.
변화(變化) : 사물의 형상·성질 등이 달라짐.(국어사전)
범소유상(凡所有相) : 대저 온갖 모양은,
개시허망(皆是虛妄) : 모두 허망한 것이니,
약견제상비상(若見諸相非相) : 만약 모든 모양이 모양 아닌 줄을 본다면,
즉견여래(卽見如來) : 바로 여래를 보리라.
출전 : 불교학대사전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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