ㅈ(지읒)~ㅊㅋㅌㅍᄒ(히읗)

취(趣)

근와(槿瓦) 2018. 8. 6. 00:30

()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범어 gati의 번역으로 라고도 번역한다. 중생이 자신이 지은 行爲 에 의해서 이끌려 가는 生存의 상태. 또는 그 세계. 중생이 자신이 지은 곧 스스로의 行爲에 의해서 스스로 찾아 또는 스스로 만들어 가는 生存의 상태, 또는 그 세계. 여기에 五趣(五道) · 六趣(六道) · 善趣(善道) · 惡趣(惡道) 등으로 분류된다. 곧 지옥 · 아귀 · 축생(傍生) · 아수라(修羅) · 인간 · 六趣라 하고, 六趣 가운데 아수라를 빼고 五趣라고 한다. 六趣說은 대승에서 많이 말하고 소승(有部)에서는 五趣說을 말한다. 五趣說의 경우에는 아수라는 餓鬼 · 하늘 가운데 포함된다. 五趣를 또 五惡趣라고 하는 것은 無漏 · 無爲淨土에 대해서 有漏 · 生死穢土(世界)이기 때문이다. · · 아수라는 善業에 의해서 나는 곳이므로 三善趣(三善道), 지옥 · 아귀 · 축생은 惡業에 의해서 태어나는 곳이므로 三惡趣(三惡道)라고 하며, 三惡趣에 아수라를 더해서 四惡趣라 한다. 三惡趣三途三塗라고도 하는 것은 혹은 의 뜻(또는 塗炭의 뜻)으로 三塗라 하면 火塗 ·刀塗 · 血塗의 셋을 말하기도 한다.

 

참고

() : 범어 marga의 번역으로 末伽라고 음역하며 목적지에 이르게 하는 通路. 밟아 행해야 할 길(軌路)을 뜻하는 말이다. 俱舍論卷二十五에는, 라 함은 涅槃(깨달음)으로 가는 길이고 열반의 를 얻기 위해 마땅히 의지할 바라고 했다. 이와 같이 는 주로 불교의 궁극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행의 법칙을 의미한다. 또 널리 에 이르게 하는 通路의 뜻도 있다.

예컨대 智度論卷八十四에는, 人天 · 聲聞 · 연각 · 보살의 4종의 가 있다. 사람이나 하늘은 十善이나 布施로 하여 세간적인 福樂을 구하고, 二乘三十七道品로 하여 열반을 구하고, 보살은 삼십칠도품이나 六波羅蜜로 하여 佛果를 구한다고 했다.

이상과 같은 의미의 와는 달리 · · 三道라고도 하는데 이때의 , , 을 가져오는 通路로서,  三者는 서로 바퀴와 같이 돌아가기 때문에 붙인 이름이다. 三惡道 · 五道 · 六道라고 할 때의 善惡에 의해 지옥 등의 로 들어가는 통로가 되는 , 그것은 應報을 따라 각각 다르고 순환하는 인 것이다. 菩提(깨달음의 지혜)로 번역하는 수가 있기 때문에, 구별하여 菩提果道라 하며 그 이전의 因道라 부르기도 한다.

열반에 이르기 위하여 번뇌를 制伏하거나 혹은 이것을 끊는 가운데에 有漏道無漏道二道가 있다. 유루도는 世間道 · 世俗道라고도 하며, 앞에서의 人天도 이에 해당된다. 三界 · 九地 가운데 有頂地를 제외한 下八地修惑을 끊기 위한 見道加行位(加行道라고도 함)에서 유루지를 가지고 六行觀을 닦는 것도 이에 해당된다. 구사종에서는 이와 같이 유루도에 있어서도 번뇌를 끊을 수가 있다고(有漏斷)하여 유루도도 斷道라고도 하나, 유식종에서는 유루도는 번뇌의 現行을 조복하는 번뇌의 種子까지도 끊을 수 없다고 하며, 이것을 伏道(能伏道)라고 한다. 무루도는 出世間道 · 聖道라고도 하며 未至 · 中間 · 四根本 · 下三無色九地所依로 하여, 무루지에 의해서 번뇌를 끊는(無漏斷)로서, 유식종에서는 이것을 斷道에서도 伏道라고 한다. 여기 斷道能斷道의 뜻으로서 對治道 · 能治道라고도 한다. 이 유루 · 무루의  · · 無學三道配對하면, 見道無學道는 반드시 무루도로서, 修道에는 무루도도 유루도도 있다.

번뇌를 끊어서 해탈의 진리를 증득하는 과정을 구사종이나 유식종에서는 四道(四種道)로 나눈다.

(1) 加行道. 方便道라고도 하며, 번뇌를 끊기 위한 준비적 실천(가행위를 다시 가행도라고도 부르는 것과는 다르다).

(2) 無間道. 라고도 하며, 바로 번뇌를 끊는 로서 앞에 말한바와 같이 斷道란 것이다. 直後(無間)에 번뇌가 끊어졌으므로 無間隔의 의미로 無間이라 한다.

(3) 解脫道. 번뇌를 끊어서 해탈의 진리를 증득하는 .

(4) 勝進道. 勝道라고도 하며, 다시 나아가서 다른 이의 번뇌를 끊기 위하여(이 때는 승진도는 다음의 번뇌를 끊기 위한 가행도가 된다), 혹은 만족해서 이미 끊어진 것을 觀察하는

기타 敎道 · 證道, 難行道 · 易行道라고 하는 熟語가 있으나, 또한 聖道 또는 無上道(悟道)하는 것을 得道(得度)라 하고, 禪宗에서는 하는 뜻으로 참선해서 心眼을 여는 것을 라고 한다.

菩提의 번역이다.

 

중생(衆生) : 有情 · 含識이라고도 번역하는데 이것은 心識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含識含生 · 含情 · 含靈이라고도 하며, 또 많은 生類라는 뜻으로 群生 · 群萠 · 群類라고도 한다. 대체로 이같은 말들은 "生存하는 것"이란 뜻으로 일체의 生類를 가리킨다. 衆生이란 말은 흔히 迷惑의 세계에 있는 生類를 가리키므로 때로는 넓은 의미로 불 · 보살까지도 포함한다. 雜阿含經 卷四十三에는  · · ·  · · 六根(여섯 感官)  · · · · · 6종의 동물에 비유하여 흔히 이것을 六衆生이라 하고 六獸라고 한다.

 

() : 범어 karman의 번역. 羯磨音譯한다. 造作의 뜻. 行爲·所作·意志에 의한 身心의 활동. 意志에 의한 身心의 생활을 의미한다.

일반으로 ··三業으로 나눈다. 有部의 해석에 따르면, 이러이러한 것을 하려고 하는 뜻이 意業이고, 그 의지를 신체적 행동과 言語的 표현으로 나타낸 것이 身業語業(口業이라고도 한다)이라고 한다. 意志의 활동인 思業思業이 끝나고서 행하는 思已業二業으로 나누는데 이 경우, 思業意業이고, 思已業·語 二業이다. 三業으로서의 작용의 本體(業體·業性)에 대해서, 有部등에서는 意業(意志), ·語業色法(物質的인 것)이라고 하고, 經量部大乘에서는 모두 (意志)라고 한다. 불교 본래의 입장은 후자라고 생각된다.

有部등에서는 物質的인 것을 本體로 하는 (色業) 身業語業으로, (·)無表(無作·無敎)가 있다고 한다. 表業은 밖으로 표현되어 타인에게 보일 수 있는 것, 無表業無表色이라 이름 지어지는 일종의 色法(보통의 물질과 같이 粗雜하지 않다)本體로 하고, 강한 善惡에 의해서 일어나는데, 身表業語表業과 및 등이다. 無表業3종이 있다. 受戒(어느 것이나 다 )에 의해서 일어난 律儀, 습관적이고 특히 강한 결단을 가지고 한 惡業에 의해서 일어난 바의 不律儀, 그 이외의, 때에 따라 선악의 업에 의해서 일어난 非律儀非不律儀(處中無表)3종이 그것이다. 律儀無表를 버리고 에서 나오기까지 계속되고, 그 밖에 無表는 특별한 障害가 없는 한 일생동안 계속된다. 이들 無表 중에서 無表에는 을 방해하는 작용이 있고, 無表에는 을 방해하는 작용이 있어서, 각기 그 사람의 後天的 성격을 형성한다고 한다. ·의 각기 無表 無表業意業을 더하여 五業이라고 한다.

선악의 업을 지으면, 그것에 의해서 그에 상응한 고락의 갚음(果報·異熟)이 생긴다. 이것을 業因에 의해서 業果가 생긴다고 한다. 非善非惡無記業를 끄는 힘이 없다. 業因業果의 관계를, 有部에서는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그것은 三世實在하는 것으로서, 업이 현재에 있을 때 이것이 이 되어서 어떠한 未來를 끌것인가가 결정되고(이것을 取果라고 한다), 업이 지나가 버림으로부터 에 힘을 주어서 를 현재에 이끌어 낸다(이것을 與果라고 함). 또한 經量部에서는, 은 순간에 없어져 버리는데, 를 생하는 종자를 위에 심어 주어, 그 종자가 를 끌어 일으킨다고 한다. 이 종자의 思想有部無表業說과 같은 것이다.

을 여러 가지로 분류한다. 總體로서의 일생의 果報(갚음)를 이끄는 . 人間界라든가 畜生界에 태어나게 하는 강한 힘이 있는 引業(牽引業·總報業·引因)이라 하고, 人間界등에 태어난 자에 대해서 개개의 구별을 주어서 개체를 완성시키는 滿業(圓滿業·別報業)이라고 한다. 引業의 갚음을 總報, 滿業의 갚음을 別報라고 하여, 二業總別二業이라고 한다. 더욱 有部에서는 하나의 引業에 의해서 一回을 받아 다시 그 위에 많은 滿業에 의해서 이 이 완성된다고 하고, 多業이 일생을 이끌거나, 一業多生을 끌거나 하는 것은 없다고 한다. 에는, 山河大地(器世間)와 같은, 많은 生物에 공통하는 果報를 끌어 일으키는 共業, 개개의 生物의 신체와 같은, 개개의 생물에 固有果報引起하는 不共業이 있다.

善心에 의해서 일어나는 善業(安穩法), 惡心에 의해서 일어나는 不善業(惡業 不安穩法), 善惡 어떤 것도 아닌 無記心에 의해서 일어나는 無記業의 셋을 三性業이라고 한다. 惡業하지 않으면 안되는 이기 때문에 罰業 이라 하고, ··三罰業 또는 三罰이 있다. 中阿含經 三十二에는 ··三業중에서 意業이 가장 하다고 하여, 불교가 動機論에 입각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에 대해서 자이나에서는 ··三罰身罰을 가장 하다고 하여, 結果論에 빠져 있다. 熟慮한 뒤에 決斷하여 일부러 한 故思業(故作業)과 그렇지 않고 뜻밖에(無意識的) 잘못한 不故思業은 그것만으로는 갚음을 받지 않는다고 한다. 故思業중에 적극적으로 한 강하고 중대한 增長業이라고 하고, 소극적으로 한 약하고 가벼운 故思業不增長業이라고 한다. 점점 강하게 되는 增上業 혹은 增長業이라고 하고, 그렇지 않은 것을 造作業이라고 한다. 欲界惡業과 같이, ····五識으로 받는 만을 果報로 가져오는 身受業, 色界·無色界(初禪天)善業과 같이 제六意識으로 받는 만을 受果報로 가져오는 心受業이라 하고, 합하여 二受業이라 한다. 苦受樂受捨受(不苦不樂受)果報는 각기 欲界惡業欲界에서 色界 第三禪까지의 善業, 色界 第四禪 이상의 善業에 의해서 오기 때문에, 이 세 을 각기 順苦受業·順樂受業·順不苦不樂受業이라 하고, 합하여 三受業이라고 한다. 欲界善業은 행복을 가져오기 때문에 福樂, 欲界惡業은 불행을 가져오기 때문에 非福業, 色界·無色界善業은 그 禪定의 힘에 의해서 갚음()이 정해져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不動業이라 하고, 합하여 등의 三業(또는 三行)이라고 한다. 惡業黑業, 善業白業이라고도 하고, 여기에 異熟의 좋아함직()한 것과, 좋아하지 않는 것()에 배당하면, 欲界不善業은 성질이 不善하여 異熟도 좋아하지 않는 黑黑異熟業, 色界·無色界善業은 성질은 하고 異熟도 좋아하기 때문에 白白異熟業, 欲界善業은 성질도 異熟黑白相雜하여 있기 때문에 黑白黑白異熟業, 번뇌와의 관계가 斷切無漏業은 상대적인 黑白을 초월하여 異熟을 초래하지 않기 때문에 非黑非白無異熟業이라 하고, 이것 둘을 합하여 四業이라 한다. 四業중에 앞의 3有漏業으로, 이것들은 최후의 無漏業에서 斷滅하지 않으면 안 된다. 內心을 남 모르게 감추고 아첨하는 것으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曲業이라고 하고, 또한 성냄에 의해서 일어나는 穢業이라 한다. 탐냄으로 의해서 일어나는 濁業이라고 하고, 이것들을 합하여 曲穢濁三業이라고 한다. 八聖道第四支正業으로, 그 반대는 邪業이다.

에 의해서 그 갚음을 받는 시기에 다름()이 있기 때문에, 順現業(順現法受業)·順生業(順次生受業)·順後業(順後次受業)三時業을 나누어, 각각 이 세상에서 지은 에 응해서, 그 갚음을 이 세상에서 받는 것. 다음 태어난 세상에서 받는 것, 3이후에 받는 것으로 구분한다. 三時業은 갚음을 받는 시기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定業이라 하고, 여기에 대해서 시기가 정해져 있지 않은 것을 不定業(順不定受業)이라 하고, 거기에 三時業을 더하여 四業이라고 한다. 不定業을 갚음의 내용(異熟)·不定에 의해서 時不定異熟定業時不定異熟不定業의 둘로 나누고, 여기에 三時業을 더하여 五業으로 하며 또 三時業을 각기 時定異熟定時定異熟不定으로 나누어 6으로 하고 둘의 不定業을 더하여 八業이라고도 한다.

이 작용할 또는 의지할 곳이 되는 것. 혹은 有情苦樂果報(갚음)에 인도하는 通路가 되는 것을, 業道(根本業道)라 하는데, 여기에 十善業道十惡業道가 있다. 有部에서는, 十善·十惡에는 인 것과 이 아닌 것(無貪·無瞋·正見, ··邪見)이 있는데, 어느 것이나 意志()가 거기에 작용하는 바의 의지할 곳이 되기 때문에 業道라 한다고 했다. 經量部大乘에서는, 十善·十惡은 모두 이어서 意志()로 하는데, 처음의 七業道에 있어서는 ·發動하는 意志(), 思惟하여 결정하는 意志()의 작용하는 바가 되기 때문에 業道라 하고, 또 그 發動의 생각에 의해서 생긴 생각의 종자도 業道라 한다. 뒤의 셋 곧 ··등은 順次, 交互로 생기기 때문에, 앞의 것은 뒤의 것 때문에 가 되고, 有情을 지옥등의 惡趣등에 인도되는 가 되기 때문에 業道라고 . 에는 준비적 행위(加行)와 목적을 수행하는 그 순간의 행위(根本)完遂한 뒤의 종속적인 행위(後起)가 있는데, 이 가운데 근본만을 業道라고 한다.

煩惱道·業道·苦道(三道).

은 갚음(果報, 異熟)을 내는 이 되기 때문에 業因·因業이라 하고, 에 의한 갚음을 業果, 業報라 한다. 業因에는 을 일으키는 원인(번뇌등)이라고 하는 의미도 있고, 因業에는 (主因助緣)이라고 하는 의미도 있다. 業果를 끌어 당기는 힘을 業力, 에 의한 괴로운 갚음, 또는 과 그 인 갚음을 業苦라고 한다. 惡業과 번뇌를 아울러서 業結·業惱라고 한다. 惡業 때문에 생긴 가리움, 障害業障·業累라고 한다. 에 의해서 갚음을 받는 것은 業感, 過去世(前生·前世)에 지은 宿業 또는 前業, 宿業에 의해서 받은 壽命業壽·業受. 宿業에 의한 벗을 수 없는 중한 業病, 宿業에 의해 재앙은 業厄이라고 한다. 이 갚음을 하는 도리는 天道와 같이 必然이기 때문에 業天, 은 그림자와 같이 몸을 따라다니기 때문에 業影, 업은 중생을 迷界에 묶어 놓기 때문에 業繫(繫業이라고 하여도 거의 같다)·業羂·業縛·業繩이라 한다. 은 그물과 같이 사람을 붙잡아서 迷界에 머물게 하므로 業網, 惡業은 때나 먼지와 같이 몸을 더럽히기 때문에 業垢·業塵이라고 한다. 惡業의 작용을 ··에 비유해서 業火·業魔(十魔1)·業賊등이라 하고, 지옥에는 중생의 선악의 을 비추어 내고 재고 기록하는 業鏡·業秤·業簿 등이 있다고 한다. 惡業의 힘을 바람에 비유해서 業風이라고 하는데, 惡業에 의해서 招來猛風(지옥등의)業風이라고 한다. 宿業에 의한 神通力으로서 業通(報通)이 있다.

無間地獄의 갚음을 부르는 것을 無間業, 有情欲界등의 三界에 매어두는 三界繫業이라고 한다. 번뇌는 을 일으켜서 有情을 가지가지의 세계에 태어나게 한다. 을 윤택하게 하고, 이 미래의 을 부르는 潤業·潤生業이라고 한다. 또 자기의 지은 의 갚음을 자기가 받지 않으면 안되는 것을 自業自得이라고 한다.

十二緣起第十支를 해석하는데, 후대에 와서는(阿毘達磨에서는) 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보고, 이것을 業有라고 한다.

觀無量壽經에는 ··三福淨土往生하기 위한 正因으로, 淨業(淸淨業)이라고 해져 있다. 일반으로 염불해서 彌陀淨土往生하고자 원하는 것을 淨業이라 한다.

 

오취(五趣) : 五道 · 五惡趣라고도 한다. 우리의 현실생활에 있어서 功罪에 의하여 생기는 5가지 境界, 5가지의 領域, 5가지 생활방법 등 즉 지옥과 아귀와 축생과 인간과 이 있는 곳. 阿修羅를 더하여 六趣라고도 일컫는다.

 

육취(六趣) : 중생이 에 의해 輪廻하는 6世界. 5라고도 하나 犢子部6를 주장한다. (1) 地獄趣. 범어 naraka-gati. 88등의 무서운 고통받는 곳으로 땅속 깊은데 있다.

(2) 餓鬼趣. 범어 prea-gati. 항상 배가 고파 밥을 구하는 귀신들이 사는 곳.

(3) 畜生趣. 범어 tir=yagyoni-gati. 禽獸가 사는 곳으로 인간세계와 있는 곳을 같이 한다.

(4) 阿修羅趣. 범어 asura-gati. 항상 미워하는 마음이 있어 싸움을 좋아한다는 大力神이 사는 곳으로 심산 유곡을 依處로 한다.

(5) 人間趣. 범어 manusya-gati. 인류가 사는 곳. 남섬부주 등의 4大洲.

(6) 天上趣. 범어 deva-gati. 몸에 광명을 갖추고 자연히 쾌락을 받는 중생이 사는 곳으로 6欲天 · 色界天 · 無色界天(大毘婆沙論)(法華經方便品).

 

선취(善趣) : 좋은 業因에 대한 果報로 중생이 태어나는 곳. 인간·天上2. 또는 阿修羅·인간·천상의 三趣를 들기도 한다.

 

악취(惡趣) : 범어 durgati. 阿波伽耶底音譯하며, 惡業에 의해 태어나는 세계. 三惡趣·四惡趣·五惡趣·六惡趣가 있다.

 

무루(無漏) :  는 누설·누락의 뜻으로 모든 번뇌를 말한다. ·····六根에서 허물을 항상 만들어 누출한다는 뜻이다이런 번뇌에서 이탈하여 그것이 없어지고 증가함이 없음을 無漏라 하며 四諦 중의 道諦에서 주장하는 것이다. 가령 7覺支·8正道 등이 그것이다. 소승에서는 번뇌를 增上하지 않음을 말하고 대승에서는 번뇌와 함께 있지 않음을 말한다. 有部에서는 18 삼계는 유루·무루에 통하며15 단계는 유루에만 한한다고 하는데 잡아함경의 무루법설을 이어받아 대중부에서는 佛身 중에 있는 것은 18계 모두 같이 무루라 하는 등 그 구분과 해설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무위(無爲) : 범어 asamskrta의 번역으로 有爲에 상대된다. 因緣에 의해서 作爲되는 것이 아니고, 생멸변화를 여읜 常住絶對을 일컬으며, 자세히는 無爲法이라고 한다. 본래는 涅槃異名이지만 뒤에는 열반이란 말 이외에도 여러 가지 無爲를 세워서 三無爲 · 六無爲 · 九無爲 등의 이 있게 되었다. 三無爲有部 등의 로서 擇滅 · 非擇滅 · 虛空을 가리키며, 六無爲唯識宗로서 三無爲不動無爲 · 想受滅無爲 · 眞如無爲를 더한 것을 말한다. 다만 종의 無爲法이 따로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眞如法性에 대해서 설명하는 방법 여하에 따라서 거짓으로 종의 이름을 세운 것에 지나지 않는다. 예컨대 眞如無障礙임을 허공에 비유해서 虛空無爲라고 한다. 본래 自性淸淨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非擇滅無爲라고 한다. 第四靜慮滅盡定에서 나타나는 眞如不動無爲 · 想受滅無爲라고 하는 것과 같다. 眞如는 말이나 생각을 초월한 것으로 더구나 有爲法 밖에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란 뜻에서 假設이지만, 다만 眞如에 의해서 眞如의 뜻 위에 이러한 六無位를 세운 것을 依如六無爲라고 했다. 六無爲를 가끔 듣고 생각한다든지 하는 것에 의해서 마음 속으로 六無爲와 같은 相分이 일어나는 것을 識變六無爲라고 한다. 大衆部에서는 三無爲四無色處(無色界五蘊이 깃드는 곳)緣起支性(十二緣起의 원리)聖道支性(八聖道의 진리)無爲를 더해서 九無爲라고 한다. 化他部에서는 四無色處대신 不動 · 善法眞如 · 不善法眞如 · 無記法眞如를 더해서 九無爲로 하고 있다.

 

정토(淨土) : 衆生의 세계는 · · 三毒에 의해 이루어진 穢土인데 대해 佛陀가 머무는 세계는 오직 깨달음에 의한 거룩한 淸淨光明覺의 세계이므로 淨土라 한다. 淨刹 · 淨界 · 淨國이라고도 한다. 대승불교에서는 열반의 적극적인 활동을 인정, 열반을 성취한 無數이 각각 무량한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敎導활동을 전개하는데 그 이 머무는 세계를 佛國淨土라고 한다.

維摩經卷上佛國品에는 마음이 淸淨하면 國土 또한 청정하다고 했으며, 깨달음을 열면 이 娑婆世界가 그대로 정토가 된다 라고 했다. 또 화엄경의 靈山淨土, 화엄경의 蓮華藏 세계, 大乘密嚴經密嚴淨土 등을 설하고 있음이 그것이다. 또 무량수경 등에서는 사바세계 이외의 他方에 존재하는 불국정토를 說示했으며, 또 다른 경에서는 미래에 건설될 정토가 있다고도 했고, 이러한 정토는 보살이 本願에 의해 구상하고 무량한 수행을 통해서 성불할 때에 완성되는 국토로서 그 불세계에 나고자 하는 중생들이 왕생한다고 한다. 타방세계에 있는 정토로서 아미타불의 西方極樂세계, 阿閦佛東方妙喜세계, 釋迦佛西方無勝세계, 藥師佛東方淨瑠璃세계 등이 있으며, 이들 諸佛의 정토는 각각 사바세계로부터 각각 다른 방향에 있으므로 十方정토라고 한다. 淨土敎에서는 특히 아미타불의 서방정토를 소중하게 여기고 저 세계에의 왕생을 강조한다.

극락세계는 須摩提의 번역으로 妙樂 · 安樂 · 安養 · 樂邦 등의 뜻을 갖는다. 이 정토는 보살이 닦는 因行로서 이루어진 報土, 그것도 불타가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거짓으로 나타낸 應化土인데, 서방으로 10만억 국토를 지나서 실재하는 것인가? 중생의 마음 가운데 있는 것인가? 하는 등에 대한 諸說이 있다. 정토교에서는 報土로서 서방에 실재한다고 하며, 거기에 왕생하여 받는 낙에 대해 往生要集卷上,

(1) 聖衆來迎樂(臨終할 때 아미타불과 관음 · 세지의 2보살 등이 와서 맞이하여 정토에 인도하는 것).

(2) 蓮華初開樂(연꽃에 의탁하여 정토에 왕생(化生)하므로 그 연꽃이 처음 열릴 때 정토의 莊嚴을 보게 되는 것).

(3) 身相神通樂(三十二相의 몸과 天眼 등의 5종의 신통(五通)을 얻는 것).

(4) 五妙境界樂(· · · · 5勝妙한 것).

(5) 快樂無退樂(즐거움을 받는 일이 무궁하여 끝이 없는 것).

(6) 引接結緣樂(전에 을 맺었던 恩人 등을 정토에서 맞이하는 것).

(7) 聖衆俱會樂(많은 보살들이 한 곳에 모이는 것).

(8) 見佛聞法樂(불타를 뵙고 그 법문을 쉽게 들을 수 있는 것).

(9) 隨心供佛樂(마음대로 자유자재하게 十方諸佛을 공양하는 것).

(10) 增進佛道樂(수행정진이 잘 되어 마침내 佛果에 오르는 것).十樂을 설하고 있다.

또 극락에는 邊地 · 疑城 · 胎宮 · 懈慢界(극락에 도달하는 도중에 있는 나라라고도, 또는 彌陀정토의 化土라고도 한다) 등이 있어서 佛智를 의심하는 중생들이 태어나는 곳이라고도 한다. 佛土에는 없지만(정토는 불의 세계) 미륵보살의 兜率天이나 관세음보살의 普陀洛山 등도 淨土라고 할 수 있다.

 

유루(有漏) : 漏泄의 의미로 번뇌를 말함. 번뇌가 있는 것을 有漏라 하고, 없는 것을 無漏라 한다. 有漏는 또 有染 · 有染汚 · 有諍이라고도 한다. 染汚도 번뇌를 말함. 또 잘못된 견해를 내는 依處이기 때문에 見處라고도 한다. 有部에서는 번뇌를 隨增하는 것(곧 번뇌에 隨順하여, 번뇌를 增長한다)有漏法이라 하고, 그렇지 않는 것을 無漏法이라고 한다. 四諦중에서 苦集二諦諸法有漏法이고, 滅道二諦諸法無漏法이다. 有漏의 육체를 有漏身, 有漏境界(의 경계)有漏路라 하고, 無漏淸淨佛身無漏身, 無漏淸淨境界(의 세계)無漏路라고 한다. 많은 世俗을 대상으로 하여 일어나는 지혜를 有漏智라 하고, 四諦證見하는 見道이후의 聖者의 지혜를 無漏智라 한다. 見道에 이르기까지의 범부가 일으키는 有漏善이라 하고, 見道에 들어가서의 聖者가 일으키는 번뇌의 더러움이 없는 無漏善이라 한다. 有漏智를 가지고 행하는 세속의 행위를 有漏行, 有漏智를 가지고 닦는 六行觀有漏道라 하고, 無漏智를 가지고 닦는 四諦觀行 등을 無漏行, 無漏道라 한다. 有漏道를 가지고 번뇌를 끊는 것을 有漏斷, 無漏道를 가지고 번뇌를 끊는 것을 無漏斷이라고 한다. 有漏行人間 · 天上등의 五趣有漏果(有漏의 번뇌나 으로 해서 생긴 有漏果報. 人間 · 天上 35의 몸과 국토를 말한다)를 초래하기 때문에 有漏因이라 하고, 無漏行은 열반의 깨달음인 無漏果를 얻기 때문에 無漏因이라 한다. 凡夫六行觀을 닦아서 하는 四禪 · 四無色定 · 四無量心定 등의 禪定有漏定 · 有漏禪이라 하고, 聖者無漏智發得하는 禪定無漏定 · 無漏禪이라 한다. 無漏定無漏九地(未至定 · 中間定 · 四根本定 · 下三無色定)에 있어서 일어난다. 法相宗에서는 佛果淨識無漏識이라 하고, 佛果에 이르기 이전의 有漏識이라고 한다. 第六識 · 第七識初地入見道에서 1轉識得智하여 無漏識이 되고, 前五識第八識佛果에 이르러서 비로소 無漏識이 된다고 한다. 無漏의 깨달음의 본래 寂然無漏無爲라 하고, 그것이 작용하여 起動하는 無漏有爲라 한다.

 

생사(生死) : 輪廻라고도 번역한다. 業因에 의해서 六道迷界에 태어나서 죽기를 거듭하면서 윤회하는 것으로서, 涅槃(깨달음). 生死가 끝이 없는 것을 밑바닥을 알 수 없는 바다에 비유해서 生死海라고 하고, 번뇌의 세계이기 때문에 生死苦海라고도 한다. 생사의 고해를 건너서 열반의 저 언덕에 이르는 것은 쉽지 않기 때문에 難度海라고도 한다.

二種生死. (1) 分段生死. 有漏善惡業으로 하고 煩惱障으로 하여 三界내에 果報를 받을 때 그 과보는 壽命長短이나 육체의 大小 등 일정한 제한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分段身이라고 하고, 분단신을 받아 윤회하는 것을 分段生死라고 한다. (2) 變易生死. 不思議變易生死라고도 한다. 아라한·벽지불·大力의 보살은 분단생사를 받는 일은 없으나, 그러나 無漏有分別으로 하고 所知障으로 하여, 界外 三界 밖의 殊勝細妙果報, 意生身을 받아 이 몸을 가지고 三界내에 와서 보살의 을 닦아서 佛果에 이른다. 그 몸은 悲願의 힘에 의해서 수명도 육체도 자유로히 變化改易할 수가 있으므로 일정한 제한이 없기 때문에 變易身이라고 하고, 변역신을 받는 것을 變易生死라고 한다

四種生死. 분단생사를 三界에 배대하여 3으로 구별하고, 여기에 變易生死를 더하여 4로 한다. 또 변역생사를 方便·因緣·有後·無後四生死로 나눈다. (현세의 卑賤)에서 (死後惡道)으로 들어가고, 에서 (死後善趣)으로 들어가며, (현세의 尊貴)에서 으로 들어가고, 에서 으로 들어가는 44種生死라고 한다

七種生死. 분단생사를 삼계에 배대하여 나누고, 여기에 변역생사의 4종을 더하여 7로 한다. 後世의 해석에서는 이것을 다음의 7종으로 한다. 分段생사·流來생사(眞如의 이치에 하여 생사의 迷界流來하는 처음을 말한다反出생사(發心해서 생사에서 뛰어나는 처음을 말함方便생사(見思을 끊고 삼계의 생사에서 超出하는 入滅二乘에 대해서 말함因緣생사(無漏業으로 하고 無明으로 하여 을 받는 初地이상의 보살에 대해서 말함有後생사(有有생사라고도 한다. 최후의 1의 무명을 남기는 제十地 보살에 대해서 말함無後생사(無有생사라고도 한다. 무명을 끊어버려 後身을 받지 않는 等覺 보살에 대해서 말함).

 

예토(穢土) : 더러운 것이 가득한 國土.

 

선업(善業) : 좋은 결과를 받을 수 있는 · · 行動 · 言語 · 意念. 五戒十善 등의 善行爲를 말함.

 

삼선취(三善趣) : 三惡趣에 대하여 修羅··3를 말함. 3惡趣에 비교하여 약간 수승한 세상이라는 뜻으로 하는 말.

 

악업(惡業) : 악한 결과를 받을 ··3으로 짓는 행위. 5·10등이 있다.

 

삼악취(三惡趣) : 지옥·아귀·축생의 3를 말함.

 

화도(火塗) : 三途의 하나. 地獄道의 별명. .....삼도(三途)三塗라고도 하며, 火塗·刀塗·血塗의 셋을 말한다. 곧 지옥·아귀·축생을 말함.

 

도도(刀塗) : 三途의 하나. 아귀도(餓鬼道)의 다른 이름. 명성(名聲) 등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알려졌음.

 

혈도(血塗) : 三途의 하나. 축생도의 다른 이름. 축생들은 서로 잡아 먹으며 피를 흘리므로 이렇게 부른다.

 

범소유상(凡所有相) : 대저 온갖 모양은,

개시허망(皆是虛妄) : 모두 허망한 것이니,

약견제상비상(若見諸相非相) : 만약 모든 모양이 모양 아닌 줄을 본다면,

즉견여래(卽見如來) : 바로 여래를 보리라.

 


출전 : 불교학대사전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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