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보적경(大寶積經)

대보적경-3245-649

근와(槿瓦) 2018. 7. 22. 00:32

대보적경-3245-649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3241 / 3476]

내는 이는 또한 누구인가.'
이것을 비구가 마치 개가 흙덩이를 쫓아가듯 하지 않는다 하느니라.
가섭아, 비유하면 마치 잘 길들일 줄 아는 마부는 말이 사나운데도 잘 다스리는 것처럼 수행하는 이도 역시 그러하여 마음이 외부로 향하더라도 곧 거두어서 방일하지 않게 하느니라.
가섭아, 마치 목이 막히면 곧 죽게 되는 것처럼, 그러하느니라. 가섭아, 온갖 견해 가운데서 오직 나라는 견해[我見]가 있기만 하면 즉시 지혜의 목숨이 끊어지게 되느니라.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속박 당할 때마다 벗어나려 하는 것처럼, 가섭아, 그와 같이 마음이 집착하는 것을 마땅히 벗어나려 하여야 하느니라.
또 대가섭아, 출가(出家)한 사람에게는 두 가지의 깨끗하지 않은 마음이 있느니라. 무엇을 두 가지라 하는가 하면 첫째는 로가야(路伽耶) 등 외도의 경서(經書)를 읽거나 외우는 것이요, 둘째는 좋은 옷과 발우 등을 많이 저축하는 것이니라.
또 출가한 사람에게는 두 가지 견고한 속박이 있느니라. 무엇을 두 가지라 하는가 하면 첫째는 견해의 속박[見縛]이요, 둘째는 이익의 속박[利養縛]이니라.
또 출가한 사람에게는 두 가지의 장애 되는 법이 있느니라. 무엇을 두 가지라 하는가 하면 첫째는 속인을 가까이 하고 사귀는 것이요, 둘째는 착한 사람을 미워하는 것이니라.
또 출가한 사람에는 두 가지 때[]가 있느니라. 무엇을 두 가지 때라 하는가 하면 첫째는 번뇌를 참고 받는 것이요, 둘째는 모든 보시하는 이[檀越]를 탐내는 것이니라.
또 출가한 사람에게는 두 가지 서리와 우박이 있어서 모든 착한 뿌리를 무너뜨리느니라. 무엇을 두 가지라 하는가 하면 첫째는 바른 법을 부수고 거역하는 것이요, 둘째는 계율을 깨뜨리고서 남의 믿음 있는 보시[信施]를 받는 것이니라.
또 출가한 사람에게 두 가지 종기가 있느니라. 무엇을 두 가지라 하는가 하면 첫째는 다른 이의 허물을 엿보는 것이요, 둘째는 스스로 그의 죄를 덮


                                                                            [3242 / 3476]

어두는 것이니라.
또 출가한 사람에게는 두 가지 불에 타는 법이 있느니라. 무엇을 두 가지라 하는가 하면 첫째는 때[]있는 마음으로 법의(法衣)를 받아 입는 것이요, 둘째는 계율을 지니는 착한 사람의 공양을 받는 것이니라.
또 출가한 사람에게는 두 가지 병이 있느니라. 무엇을 두 가지라 하는가 하면 첫째는 증상만(增上慢)을 품으면서 마음을 다스리지 않는 것이요, 둘째는 다른 사람이 대승의 마음을 내는 것을 무너뜨리는 것이니라.
또 대가섭아, 사문(沙門)에는 네 부류의 사문이 있느니라. 무엇을 네 부류의 사문이라 하는가 하면 첫째는 형상과 의복만의 사문이라 하느니라.
무엇을 위의로 속이는 사문이라 하는가 하면 어느 한 사문이 몸의 가고 서고 앉고 눕는 네 가지의 위의가 있고 한 마음으로 조용하면서 의젓하여 모든 맛있는 음식을 끊고 네 가지 성스런 성품[四聖種]을 닦으며 대중의 모임을 멀리 여의고 집이나 시끄러운 데를 떠나 있으며 말이 부드러운 등의 이러한 법을 행하기는 하나 모두가 그것은 거짓이며 착하고 깨끗하지 않으면서 공한 법에서 얻는 것이 있고, 얻을 것이 없는 법에서 두려운 마음을 내는 것이 마치 깊은 데에 임한다는 생각과도 같으며, 공을 말하는 비구에게는 원수라는 생각을 내는 사람이니, 이것을 위의로 속이는 사문이라 하느니라.
 

무엇을 명성을 구하는 사문이라 하는가. 어느 한 사문이 나타나는 인연으로 계율을 지니면서 자기의 힘으로 읽고 외운다 함을 사람들로 하여금 알게 하려 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견문이 많다 함을 알게 하려 하며 자기의 힘으로 혼자 한적한 데에 있으면서 사람들에게 아련야(阿練若)에 있음을 알게 하려 한다. 욕심이 적어서 만족할 줄 알고 멀리 여의는 행[遠離行]을 행하나 다만 사람들이 알아주기를 원하여 싫증내어 여의는 것도 아니며 고요함을 위해서도 아니고 도를 얻기 위해서도 아니며 사문이나 바라문의 과위[]를 위해서도 아니고 열반을 위해서도 아니다. 이것을 이름하기를 구하는 사문이라 하느니라.
다시 가섭아, 어떤 이를 진실로 수행하는 사문이라 하는가 하면 어느 한 사문은 몸과 목숨도 탐내지 않는데 하물며 이익이겠느냐. 모든 공하고 모양이 없고 구함이 없음을 듣고 마음으로 통달하여, 들은 대로 따라서 수행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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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열반을 위하여 청정한 행[梵行]을 수행하지도 않거든 하물며 삼계(三界)이겠느냐. 오히려 공하고 나 없다는 견해조차도 일으키기를 좋아하지 않거늘 하물며 나라는 견해와 중생이며 사람이라는 견해이겠느냐. 의지하는 법[依止法]을 여의면서 온갖 번뇌에서 해탈하기를 구하고 온갖 모든 법은 본래 때[]가 없어서 마지막까지 깨끗하다고 보면서 스스로를 의지하고 또한 남을 의지하지 않느니라.
바른 법[法身]으로 오히려 부처님을 보지 않거늘 하물며 형색이겠느냐. 공하고 멀리 여읨으로 오히려 교법을 보지 않거늘 하물며 음성과 언설을 탐착하겠느냐. 함이 없는 법으로써도 오히려 승가(僧伽)를 보지 않거늘 하물며 화합한 대중이 있다고 보겠느냐. 그러면서 모든 법에 대하여 끊어 없애는 것도 없고 수행하는 것도 없으며 생사에 머무르지도 않고 열반에 집착하지도 않으며, 온갖 법은 본래부터 번뇌가 사라져 고요함[寂滅]을 알아서 속박이 있다고도 보지 않고 해탈하기를 구하지도 않는 이이니, 이것을 진실로 수행하는 사문이라 하느니라.
그러하느니라. 가섭아, 너희들은 마땅히 진실로 수행하는 사문의 법을 익혀야 하며 이름만을 간직한 사문이 되지 말지니라. 가섭아, 비유하면 가난하고 천한 사람이 부유하며 귀한 이의 이름을 빌린다면,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런 이름으로 부릴 수 있겠느냐?”
아니옵니다, 세존이시여.”
 

그와 같으니라. 가섭아, 이름만의 사문과 바라문에게는 사문과 바라문으로서의 진실한 공덕과 행이 없나니, 역시 가난한 사람에게 부자의 이름을 부를 수 없는 것과 같으니라.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큰 물에 빠져서 떠내려가면서도 목이 말라죽게 되는 것과 같으니라.
그러하느니라. 가섭아, 모든 사문들이 경전을 많이 독송하면서도 탐냄·성냄·어리석음의 목마름을 그치게 하지 못하고 법의 바다에 떠내려가면서도 번뇌에 목이 말라죽은 뒤에는 모든 악한 세계에 떨어지는 것이니라. 비유하면 약사(藥師)가 약 주머니를 가지고 가면서도 자기 몸의 병을 고치지 못하는 것처럼 많이들은 사람에게 있는 번뇌의 병도 역시 그와 같아서 비록 견문이 많이 있다 하더라도 번뇌를 그치지 못하면 스스로 이익이 있을 수 없느


                                                                            [3244 / 3476]

니라. 마치 어떤 사람이 왕의 귀한 약을 먹었으면서도 몸에 알맞지 못하면 해를 당하는 것처럼 이들은 사람에게 있는 번뇌의 병도 역시 그와 같아서 좋은 법 약을 얻고서도 선()을 닦지 못하여 스스로 지혜의 뿌리를 해치느니라. 가섭아, 마치 마니보주(摩尼寶珠)를 깨끗하지 못한 곳에 떨어뜨리면 다시는 쓰게 되지 못하는 것처럼 많이들은 이도 이익에 탐착하면 다시는 하늘과 사람들을 이익 되게 할 수 없느니라. 마치 죽은 사람이 금과 영락을 차고 있는 것처럼, 들은 것은 많으나 계율을 깨뜨린 비구가 법의를 입고 다른 이의 공양을 받는 것도 역시 그와 같으니라. 마치 장자의 아들이 손톱과 발톱을 잘 깎고 깨끗이 목욕한 뒤에 붉은 전단(旃壇)을 바르고 새옷을 입고 머리에 꽃다발을 쓰면 안팎이 모두 알맞는 것처럼, 가섭아, 들은 것이 많으면서 계율을 지닌 이가 법의를 입고 다른 이의 공양을 받는 것도 역시 그와 같으니라.
또 대가섭아, 계율을 잘 지닌 것 같으면서도 계율을 깨뜨리는 네 부류의 비구가 있느니라. 무엇을 네 부류의 비구라 하는가 하면 어느 한 비구가 구족하게 계율을 지니면서 크고 작은 모든 죄에 항상 두려워하는 마음을 내며, 듣게 된 계율의 법은 모두 잘 이행하면서 몸의 업이 깨끗하고 입의 업도 깨끗하고 뜻의 업도 깨끗하며, 바르고 깨끗한 생활[正命]을 하지만 이 비구는 나가 있다는 이론을 세우나니, 이것이 첫 번째로 계율을 잘 지닌 것 같으면서도 계율을 깨뜨리는 비구이니라.
 

또 가섭아, 어느 한 비구는 계율을 외우고 지니면서 행하지만 몸에 대한 소견[身見]이 없어지지 않았나니, 이것이 두 번째로 계율을 잘 지닌 것 같으면서도 계율을 깨뜨리는 비구라 하느니라.
또 가섭아, 어느 한 비구가 구족하게 계율을 지니면서도 중생의 모양을 취하면서 인자한 마음을 행하고 온갖 법이 본래 생김이 없다 함을 듣고 마음으로 크게 놀라면서 두려워하나니, 이것이 세 번째로 계율을 잘 지닌 것 같으면서도 계율을 깨뜨리는 비구라 하느니라.
또 가섭아, 어느 한 비구가 구족하게 수행하면서 열두 가지 두타(頭陀)로 얻을 것이 있다고 보나니, 이것이 네 번째로 계율을 잘 지닌 것 같으면서도 계율을 깨뜨리는 비구라 하느니라.


                                                                            [3245 / 3476]

또 가섭아, 계율을 잘 지닌다 함은 나가 없고 내 것도 없으며 지음도 없고 짓지 않음도 없으며 지을 대상도 없고 짓는 사람도 없으며 행()도 없고 행이 아닌 것도 없으며 빛깔도 없고 이름도 없으며 모양도 없고 모양이 아닌 것도 없으며 사라짐도 없고 사라짐이 아닌 것도 없으며 취함도 없고 버림도 없으며 취할 만한 것도 없고 버릴 만한 것도 없으며 중생도 없고 중생이라는 이름도 없으며 마음도 없고 마음이라는 이름도 없으며 세간도 없고 세간이 아닌 것도 없으며 의지도 없고 의지가 아닌 것도 없으며 계율로써 스스로 높은 체하지도 않고 다른 이의 계율을 깎아 내리지도 않으며 또한 이 계율을 기억하거나 생각하여 분별하지도 않나니, 이것을 모든 성인으로서의 지닐 계행이라 하여 무루(無漏)에도 매이지 않고 삼계(三界)를 받지도 않으며, 모든 의지하는 법을 멀리 여의느니라.”
 

그 때 세존께서 이 뜻을 분명히 알게 하려고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깨끗하게 계율을 지니는 이는
[]도 없고 또한 아무 것도 없으며
계율을 지니면 교만함이 없고
또한 의지하는 바도 없느니라.

계율을 지니면 어리석음이 없고
또한 모든 속박도 없으며
계율을 지니면 더러움[塵汚]도 없고
또한 어기거나 잃는 일도 없느니라.

계율을 지니면 부드럽고 착하여
끝내 번뇌가 고요히 사라지며
온갖 것에 대하여 기억하고 생각하는
분별을 멀리 여의느니라.

모든 동요하는 생각에서 벗어남이...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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