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보단경(法寶壇經)

육조단경(悟法傳衣 第一)

근와(槿瓦) 2015. 7. 16. 00:43

육조단경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悟法傳衣 第一

-첫 법문을 공식적으로 하셨다-

그때 대사께서 보림사에 이르렀는데 소주 위사자가 관료들과 함께 산에 올라 대사를 뵙고 대범사 강당으로 모시어 대중을 위한 인연을 열어 금강경법을 연설해 주시기를 청하였다. 대사께서 자리에 오르자 위사자와 높은 직관료 30여명, 유가의 선비 몇몇사람과 비구, 비구니 등 도를 닦는 불심이 깊은 속인 일천명이 동시에 예배드리고 법문을 듣고자 원하였다. 그때 대사께서는 법상위에서 말씀을 하시지 않고 묵묵히 죄선을 하고 있다가 약간의 시간이 흘러 스스로 마음과 정신을 가다듬고 나서 말씀하셨다. “선지식이여, 이 마음을 온전히 깨끗이 하여 마하반야바라밀을 생각하라.” 대사는 한참 있다가 다시 대중들에게 말씀하셨다. “선지식이여, 보리의 자성이 본래 맑고 깨끗하니 이 마음만 그대로 쓰면 곧 바로 부처를 이루리라.”

 

-스승을 찾아가는 과정과 만남-

선지식이여, 이제 혜능의 내력과 법 얻은 사연을 말하리라. 나의 선친은 본관이 범양이오, 일찍이 낙양(그 당시 중국의 서울)에서 관사(공무원)로 있다가 무슨 일로인지 좌천되어 신주의(현재의 광동성 신흥현) 산골 백성이 되었는데, 나는 아버지와 인연이 없어 아버지께서 일찍 3살 때 돌아가시고, 늙은 어머니만 외롭게 모시게 되었노라. 그 뒤 남해로 집을 옮겼으나 가난한 살림에 쪼들려서 모친과 함께 먹고살기 위하여 산에서 나무를 하여서 장터에 나가 땔나무를 팔아 모자가 지내게 되었다. 하루는 한 나무를 사주신 손님을 따라 주막에 나무를 팔고 돈을 받아 문을 나서는데 주막에서 많은 사람중에서 경 읽는 한 객승이 다음과 같은 글귀를 소리를 내어 읽는 것이었다. “마땅히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내어라.” 그때 숙세의 깊은 불법 인연있는 대사께서는 짧은 게송을 귀에 스쳐 듣는 순간 마음이 밝아지면서 확철대오를 하셨다.

중생성불이 찰라간이라고 범부에서 성인의 경지에 드는 순간이었다. 곧 마음 깨달은 대사는 경을 읽은 스님에게 다가가서 묻기를,

 

“스님이 외우는 경이 무슨 경입니까?”

“금강경입니다.”

“어느 곳에서 오셨는데 그렇게 좋은 경전을 갖고 계십니까?”

“나는 기주 황매현 동선사에서 왔습니다. 그 절에는 오조 홍인대사가 계시면서 중생에게 법을 펴시며 교화하는데 그 문하인이 일천명이 넘습니다. 나도 소문을 듣고 거기가서 예배하고 이 경의 공덕을 오조 홍인대사의 법문을 듣고 그 뒤 경을 받았는데, 홍인대사께서 항상 말씀하시기를, 다만 금강경만 수지하면 곧 성품을 보아 부처를 이룰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틈만 나면 이렇게 장소를 가리지 않고 주막집에서도 외우고 있던 중입니다.”

 

그러나 혜능이 예부터 숙세의 인연이 있어서 금생에 태어나 처음으로 그 말을 들었고 마음이 달라지고 기쁨의 환희가 가득찬 것을 알아본 경을 읽던 손님은 직감으로 범상한 젊은이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열냥을 주면서 말하기를, 젊은이가 이렇게 나무하면서 가난하게 노모만 모시고 세월을 보낼 것이 아니고 내가 은열냥을 드리겠으니 이것을 팔아서 혼자 계시는 노모의 옷과 양식을 충당하고 황매산에 계시는 오조를 스승으로 모시고 직접 이런 경계를 점검 받고 탁마를 받도록 하십시오라고 하였다. 혜능이 이에 어머니를 편히 모시고 하직한 뒤에 삼십여일만에 황매산에 이르러 오조를 친견하고 예배드렸다. 이때가 바로 당나라 용삭원년(서기 661년)이었다. 그때 오조께서 먼저 물으셨다.

 

“너는 어디서부터 왔으며 무엇을 구하는가?”

“제자는 영남 신주 사람인데 멀리 와서 스님께 예배드리옴은 오직 부처를 구할뿐이지 다른 것은 없나이다.”

“네가 영남사람이면 오랑캐인데 어찌 부처가 될 수 있겠는가?”

‘사람은 비록 남과 북이 있지만 부처의 성품에는 남북이 없는 것이니, 오랑캐의 몸은 화상과 같지 않사오나 부처의 성품에야 어찌 차별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이 말을 들은 오조 홍인대사는 깜짝 속으로 놀라면서 더 말씀하려다가 주위에 사람들이 서서이 모인 것을 보고서는 하시던 말씀을 일단 멈추시고,

“나가서 대중과 함께 일이나 하여라.” 하였다.

 

이때 혜능이 다시 물었다.

“화상께 여쭈옵니다. 제가 생각하기로는 마음에 항상 지혜를 내어 자기 성품을 떠나지 않는다면 곧 복의 밭이 아니겠는가 하는데 화상께서는 어떤 일을 하라시는 것입니까?”

 

“이놈! 저 오랑캐가 제법 아는 체를 하는구나. 이제 잔소리 그만하고 나가서 방아나 찧어라.” (당시 천명 대중의 식량을 찧는 일은 가장 힘든 일이며 신심있고 건강한 혜능은 키가 작아서 디딜방아가 잘 내려오지 않아 등에 돌을 업고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일을 하였다 한다.)

 

혜능이 후원에 물러 나와서 어느 행자가 시키는대로 방아찧고, 장작패기 여덟달 생활을 하면서 세월이 지났는데 어느날 오조께서 일하는 방앗간으로 스스로 찾아오셔서,

“네 소견이 쓸만하다고 생각했지만 혹 나쁜 사람이 너를 해칠까 두려워 더 말하지 않았는데 네가 그 뜻을 알았는가?” 물었다.

“제자도 역시 스님의 뜻을 짐작하였기 때문에 남이 알지 못하도록 하려고 스님 계신 방문턱에도 가지 않았습니다.”

 

오조 홍인대사께서 어느날 문인들을 다 불러 모았다.

“내가 너희들에게 이르노라. 세상 사람들은 죽고 사는 일이 큰 일인데, 너희들은 종일토록 복밭을 구할 생각이나 하며 생사의 고해를 벗어날 일은 구하지 않는구나. 자기의 성품을 올바로 깨닫지 못한다면 어찌 복을 구할 수 있겠는가. 너희들은 각기 돌아가서 스스로의 지혜를 보아 참 마음의 반야성품을 취하여 게송을 하나씩 지어서 나에게 가져오라. 만일 큰 뜻을 깨달았으면 그에게 가사와 법을 전하여 여섯 번째의 조사를 삼으리라. 어서 돌아가서 지체하지 말라. 생각으로 헤아린다면 맞지 않으리라. 견성한 사람은 말이 끝나면 곧 보는 것이니 만약 이와 같은 사람은 칼을 들고 싸움터에 나가더라도 또한 얻어 보게 될 것이니라.”

 

대중들이 분부를 받고 물러나서 서로 쑤근거리기를,

“우리들은 마음을 밝혀서 게송 지을 뜻을 낼 필요도 없다. 화상께 지어 바친다 해도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맞어! 신수스님(606-706)이 현재 으뜸가는 뛰어난 상수제자이며 학덕과 인품 그리고 수행력과 나이 승납 등으로 보나 오조 홍인대사께서도 마땅한 후계인물이 없기 때문에 신수스님 그분이 틀림없이 후계자 육조가 될 것이다. 우리들이 부질없이 게송을 지어 봐야 마음만 헛되게 수고할 따름이다.” 하였다. 모두 이 말을 듣고 마음을 쉬면서 말하였다. “그래 맞어! 우리들은 이 다음에 신수대사에게 의지하면 될텐데 번거롭게 시는 지어서 무엇하겠는가.”

 

신수는 생각했다.

‘여러 사람이 게송을 짓지 않는 것은 내가 저들을 가르치는 교수사가 된 때문일 것이다. 내가 마땅히 게송을 지어서 화상께 바쳐야겠다. 내가 만일 게송을 바치지 않는다면 화상인들 어떻게 내 마음 속에 있는 깊고 얕음을 아시겠는가. 내가 게송을 짓는 뜻이 법을 구하는 것이면 옳지만 큰 스님이 되려 한다면 나쁜 일이다. 만약 그렇다면 성인의 자리를 뺏으려는 범부의 마음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이제 만약 게송을 바치지 않으면 법을 얻지 못할 것이니 어렵고 어려운 일이로다.’

 

오조가 있는 당 앞에 복도 세칸이 있는데 그 벽에 공봉을 맡은 노진을 청하여 능가경변상과 오조의 혈맥도를 그려 붙여서 대중에게 보여 공양하려 하였다. 신수대사가 게송을 다 지어서 이것을 바치려고 여러번 홍인대사가 계시는 방장실 앞에 왔으나 마음이 두근거려 온몸에 땀을 흘리며 그냥 돌아서기를 나흘동안 열세번이나 되풀이 하였을뿐 바치지 못하였다. 신수는 드디어 생각하기를,

 

‘차라리 저 복도에 이것을 써 붙여 화상께서 지나시다가 보시도록 하는 것이 낫겠다. 보시고 좋다고 하면 그때 곧 나가서 예배드리고 제가 지은 것이라고 하고, 만약 덜 되었다 하시면 그 동안 수년간을 헛되이 산중에 들어와서 남의 공경만 받았을 뿐 무슨 도를 닦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하고 그날밤 세시쯤에 아무도 모르게 등불을 밝혀 들고 남쪽 복도 벽 사이에 다음과 같은 게송을 써 붙이므로써 마음의 소견을 나타내었다.

 

몸은 이 깨달음의 나무요           身是菩提樹

마음은 밝은 거울바탕일세         心如明鏡台

때때로 털고 부지런히 닦아서     時時勤拂拭

먼지 끼거나 때묻지 않도록 하세 勿使惹塵埃

 

신수가 게송을 써 놓고 가만히 자기방에 돌아 갔으므로 아는 사람이 없었다. 신수는 생각하였다.

‘오조께서 내일 보시고 기꺼워 하시면 내가 법과 인연이 있는 것이지만, 만약 아직 이르지 못하였다고 하시면 내 스스로 어리석은 것이니, 숙세의 업장이 두터워서 법을 얻지 못하는 것이라. 성인의 뜻은 헤아리기 어렵도다.’ 방안에서 이런 저런 생각으로 앉았다 누웠다 하며 불안하게 밤을 지샜다.

 

조사는 이미 신수가 아직 자성을 깨닫지 못하여 방장실에 들어오지 못함을 알고 있었다. 날이 밝자 조사는 노공봉을 불러 남쪽 복도 벽 사이에 그림을 그리려 하다가, 그 게송을 보고 공봉에게 말하였다.

“이제 그림이 필요없게 되었다. 멀리 오느라고 수고했구나. 경에 말씀하시기를「무릇 있는 모습이란 모두 헛된 것이다」하셨으니 이 게송만 남겨서 사람들과 함께 수지하게 하라. 이 게송대로 읽고 외우고 닦으면 악도에는 떨어지지 않고 큰 이익이 있으리라.”

 

그리고 문인들에게 향을 피워 예경케 하고,

“이 게를 외우면 곧 견성하게 되리라.” 하였다.

문인들이 그 게를 외우며 훌륭하다고 찬탄하였다. 홍인대사는 그날밤 새벽에 신수를 방장실로 불렀다.

“게송은 네가 지은 것인가?”

 

신수가 대답했다.

“제가 지은 것은 사실이지만 감히 조사의 자리를 바란 것은 아닙니다. 원컨대 스승께서는 자비로 보시옵소서. 저에게 조그마한 지혜라도 있는 것입니까?”

 

조사가 말했다.

“네가 지은 이 게송은 본성을 본 것이 아니며, 다만 문 밖에 이르렀고 문안에는 들지 못한 것이다. 이와 같은 생각으로는 위없는 깨달음을 아무리 찾는다 해도 도저히 얻을 수 없을 것이다. 위없는 깨달음이란 말이 떨어지자 마자 곧 자기의 마음을 알고, 본래의 성품이 나고 죽음이 없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언제나 모든 이치에 막힘이 없으므로 하나가 참되면 모든 것이 참되며, 만가지 경계가 참 그대로임을 생각생각에 끊임없이 보아야 한다. 참 그대로인 마음은 곧 진실함이요 만약 이렇게 본다면 이것이 곧 위없는 깨달음의 자성이다. 너는 나가서 하루 이틀 더 생각하여 다시 게송을 지어 나에게 보이라. 너의 게송이 만약 문에 들어 왔으면 너에게 가사와 법을 전할 것이다.” 신수가 절하고 물러나서 며칠이 지났지만 게송을 짓지 못하고 마치 꿈을 꾸는 것처럼 마음이 어지럽고 불안하여 앉고 움직임이 편하지 못하였다.

 

그리고 이틀이 지났을 때 한 동자가 방앗간 앞을 지나면서 외우는 게송을 혜능이 들었다. 혜능은 한 번 듣고 이 글귀가 견성한 사람의 글이 아님을 바로 알았다.

비록 혜능이 가르침을 받지 않았으나 그 대의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자에게 물었다.

“외우는 게송이 무엇인가?”

 

동자는 대답하였다.

“이 오랑캐야 그것도 모르는가. 큰 스님이 말씀하시기를「세상 사람들에게는 나고 죽는 일이 큰 것이오. 이제 가사와 법을 전해 받을 사람을 구하고자 한다.」고 말씀하시고 문인들에게「게를 지어오라. 만약 대의를 깨달았으면 곧 가사와 법을 전하여 육조로 삼으리라.」고 분부하셔서 신수상좌가 남쪽 복도 벽 위에 무상게를 써 붙이셨는데 큰 스님이 보시고 칭찬하시며 사람들에게「이 게송을 외우라. 이 게송을 의지하여 닦으면 악도에 떨어짐을 면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고 하였다. 혜능이 말했다. “나도 또한 게송을 잘 외워서 내생의 인연을 맺어 함께 부처님의 땅에 태어 나고자 한다. 내가 방아를 찧은지 여덟달이 되었는데 아직 방장실 앞에 가본 적도 없으니 나를 인도하여 그 게송 앞에 예배드리게 해 달라.”고 하였다. 동자가 게송앞에 인도하여 예배하도록 하니, 혜능이 말하기를 “나는 문자를 알지 못하니 원컨대 읽어 주시오.”하였다. 그때 강주(지방관리) 별가를 지낸 장일용이란 사람이 소리높여 읽어 주었다. 혜능이 다 듣고 나서 말하였다.

 

“나도 게송을 하나 지어 볼 테니 별가는 써 주시오.”

“너같은 사람이 다 게송을 짓겠다니 흐뭇한 일이구나.”하고 별가는 조롱하였다. 혜능이 엄숙한 태도로 “위없는 깨달음을 배우는데 처음 들어온 사람을 가볍게 대하지 말라. 아무리 둔하고 낮은 사람일지라도 밝고 높은 지혜가 있을 수 있고, 밝고 높은 사람이라도 어리석을 수가 있는 법인데, 사람을 업신여기는 것은 한량없고 끝없는 죄가 되리라.”

 

“그렇다면 그대는 게를 외우라. 내가 그대를 위해 써 주리라. 그대가 만약 법을 얻으면 모름지기 나부터 먼저 제도해 다오. 부디 내 말을 잊지 말라.”

혜능이 게송을 불렀다.

 

깨달음에는 본래 나무가 없고     菩提本無樹

밝은 거울 또한 틀이 아닐세       明鏡亦非臺

본래 한 물건도 없는데              本來無一物

어느 곳에서 먼지끼고 때가 일까 何處惹塵埃

 

별가가 게송을 다 받아 써 놓았을 때 온 대중이 모두 놀래고 의아해 했다. 서로 말하기를 “참 기이한 일이로다. 겉모습만 보고서 사람을 알 수 없구나. 얼마나 오랫동안 우리가 육신보살을 부렸던가.” 하였다. 오조 홍인대사는 대중들이 놀라고 수근 수근 거리는 것이 이상하게 여기는 것을 보고서, 누가 해칠까 염려하여 드디어 신발로 그 게송을 문질러 없애고 “이것 역시 성품을 보지 못한 글이다.”하니 대중들은 “그럼 그렇지” 다 고개를 끄덕거리며 “역시 신수가 최고야!”하며 다 의심을 쉬게 되었다.

 

다음날 조사가 가만히 방앗간에 와서 혜능에게 허리에 돌을 달고 방아찧는 것을 보았다.

“도를 구하는 사람이 법을 위해 몸을 저버리는 것이 마땅히 이와 같아야 하리라. 쌀이 얼마나 익었는가?”

 

혜능이 말하였다.

“쌀이 익은지 이미 오래이오나 아직 키질을 못했습니다.” 조사는 지팡이로 방아를 세 번 내리치고 돌아갔다. 혜능은 홍인대사의 뜻을 아고 그날밤 대중들이 잠들었을 때 도량에 사람의 눈을 피하여 삼경에 방장실 뒷문으로 들어 갔는데, 조실은 기다리고 있었다가 반갑게 혜능을 맞이하여 방안으로 안내하고 조사가 방문을 잠그고 방안 그림자가 밖으로 새나갈 것을 염려하여 가사로 둘레를 막아 사람들이 보지 못하게 하고, 금강경을 설하였다. 금강경 가운데, 마땅히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내어라, 하는 구절에 이르러 혜능은 크게 깨닫고, 모든 만법이 자기의 성품을 떠나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드디어 조사께 말씀드렸다.

 

성품이 어찌 본래 스스로 깨끗함을 알았으리까?

성품이 어찌 본래 스스로 갖추어짐을 알았으리까?

성품이 어찌 본래 스스로 흔들림 없음을 알았으리까?

성품이 어찌 능히 만법을 내는줄 알았으리까?

 

조사는 혜능이 성품을 깨달았음을 알고 곧「대장부. 인천의스승. 부처님」이라고 이름하셨다. 삼경에 법을 받으니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리하여 가사와 발우를 주면서,

“네가 이제 제 6대조가 되었다. 잘 보호하고 지켜서 널리 중생을 제도하여 앞으로 끊어짐이 없도록 하라. 내 게송을 들으라. 유정의 씨를 뿌리니 원인되어 결과를 받지만 무정은 씨가 없어 성품없고 태어남도 없노라.”

 

오조 홍인대사께서 다시 말하기를,

“옛날 달마대사가 처음으로 이 땅에 오셨을 때 사람들이 믿지 않으므로 이 옷을 전하여 믿음의 바탕을 삼으심에 대대로 전해 내려 온 것이니라. 법이란 마음으로 마음에 전하여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알게 하는 것이다. 예부터 부처와, 부처가 오직 본체를 전하셨고, 조사와 조사가 은밀히 본심을 전하셨다. 그런데 이 옷과 발우는 이제 서로 다투는 조건이 되기 쉬우니, 너에게서 그치고 다시 전하지 말라. 만약 이 옷과 바루를 전한다면 후대에는 받는 사람들의 목숨이 실에 달린 것처럼 될 것이다. 너는 속히 이곳을 떠나도록 하라. 남이 너를 시기질투하여 해칠까 두렵노라.”

 

이렇게 극비밀리 부처님으로부터 내려오던 정법의 맥을 5조 홍인대사께서 노혜능행자에게 넘겨주니 역사적인 6조로 인가를 받고 6조 혜능이 탄생하는 역사적 순간 의발을 전수하였던 큰 사건이었던 것이다.

 

우선 신수대사를 어느 육조단경에서나 적당히 가볍게 다루는 것을 확실히 신수를 연구하여 혜능과 다른 점을 비교 분석할 필요가 있다. 우선 신수는 혜능보다 나이가 32세가 많았다(서기 606). 혜능은(서기 638) 탄생. 그리고 외모가 수려하였으며 키는 8척 장신으로 큰 눈썹과 큰 귀, 잘 생긴 얼굴로 출가를 하기 전에 벌써 불교를 배웠고, 노자와 장자를 배웠고 서기 625년 19세에 낙양 천궁사로 출가하여 스님이 되었다. 그리고 그 뒤 30년뒤 655년에 오조 홍인 대사를 찾아가 6년간 참선만 하였다고 한다. 학덕과 참선을 겸비하였으며 인격적으로나 나이를 보나 그 당시 오조 홍인의 2인자가 될 것은 틀림없는 사실인데 24세의 혜능대사가 부처님의 32대 법을 이어온 홍인대사의 법을 받는다는 것은 그 당시 대중들의 상식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큰 사건이 틀림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뒤 신수대사의 성품이나 행적을 다시 더듬어 보면 혜능이 나타나기 전 홍인대사도 “오조의 모든 법은 신수에게 있다!”하였다.

 

그런데 말씀으로는 인가(인증)를 하였으나 부처님의 가사와 의발은 전하지 않았던 것이다. 혜능이 가사와 의발을 전해 받았다는 사실을 전해 들은 신수는 큰 충격을 받고 56세~72세까지 혼자 토굴로 들어가 수행하였다고 전해진다.

 

왕궁이 그 당시 중국에는 낙양 장안에 있었는데 측천무후 황후가 불교 신자로 신심이 깊기 때문에 특별히 신수를 왕궁으로 초청하여 법회를 보고 개인법문을 듣고 하였다. 그 뒤 장안, 낙양을 중심으로 신수대사의 법을 펼치니 그것이 북종선이 되었고 따르는 큰 제자로 보적과 의복이라는 당시 큰 인물을 배출하였다.

기록 자료에 의하면 97세(605?~706)까지 살았다고도 하며 706년까지 100세를 살았다고도 전해지는데 틀림없는 것은 장수를 하였다는 사실이다.

 

다시 상황을 그 당시 혜능으로 돌려보자. 그리고 혜능은 아뢰었다.

“어디로 가면 좋겠습니까?”

조사께서 말씀하셨다.

“회(懷)자가 든 지방을 만나면 머무르고 회(會)자 든데 가면 숨어라.”

혜능이 삼경에 이곳 남중 사람이 아니어서 이 지역지리는 전혀 모르오니 어떻게 한밤중에 어디로 빠져서 강가에까지 나아가야 할런지 모르겠습니다.”

 

오조께서 말씀하셨다.

“너는 너무 걱정하지 말라. 내가 친히 너를 바래다주리라.”하고서 서로 헤어지기 위해 바로 구강나루터(양자강 중하류 근처에 있는)에 이르렀다. 때마침 한 척의 나룻배가 있었는데 조사가 혜능에게 먼저 배에 오르라 하고 친히 노를 잡고 배를 저었다. 혜능이 “원컨대 화상께서는 앉아 계십시오. 노는 제자가 젓겠습니다.”하였다.

“아니다. 마땅히 내가 너를 건네줄 것이다.”

“제가 깨닫지 못했을 때는 스님께서 건네 주셨으나 깨닫고 나서는 스스로 건너는 것이 마땅한 줄 압니다. 건넌다는 말은 비록 같지만, 쓰임새는 같지 않을 것입니다. 혜능이 변방에 태어나서 사투리가 많지만 스님의 전법을 받아 이미 깨달았사오니 마땅히 스스로 건너가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그렇다. 앞으로 불교의 진리가 너로 말미암아 크게 불법이 흥할 것이다. 네가 떠난지 13년(5조 홍인대사는 서기 675년에 입적. 많은 책자에서 3년후 하는 것은 잘못된 것임)이 되면 나는 세상을 떠날 것 같다. 너는 이제 남방으로 가라. 그러나 내려가서는 마땅히 빨리 불법을 설하는 것이 옳을 것 같으나 불법의 난이 있으리라. 그러니 빨리 불법을 펴려고 하지 말고 때를 기다려야 하느니라.”

 

「5조 홍인대사의 예언은 적중하였다. 그 뒤 당나라에서는 법난이라고 불교를 박해하고 불상과 불탑 그리고 건물을 부수고 불경을 불살라 버리는 삼무일종의 난이 있었다. 왜 이와 같은 일이 벌어지는가 하면 육조혜능 선사 이전에 이미 천년 전부터 자리잡고 있던 교종에서는 열반경, 법화경, 금강경, 화엄경, 원각경 등 대승경전을 중심으로 확실히 자리를 잡고 있었고 권력과 밀접한 관계에 있었으며 일반 서민들은 불교를 접하고 싶어도 그림의 떡과 같고 그 당시의 불교는 대부분이 귀족적인 귀족불교이고 권위적인 불교로서 일반 서민들이나 글을 모르는 무지한 백성들에게는 불교가 있으나 없으나 피부적으로 접하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그때쯤 마침 선종은 고행 참선만 하고 속세와 멀리 떨어져 있는 산중에 있었으므로 권력이 바뀌었어도 피해가 전혀 없었고 또한 건실한 수행자로써 새로 바뀐 정권에서도 인정을 하고 있었을 시절이다. 또한 지리적으로 권력의 중심지는 중국의 낙양이나 서안, 장안을 중심으로 벌어지고 있었기 때문에 5조 홍인대사가 머물던 양자강 중류 근처의 황매산이나 6조 혜능대사가 머무르던 광동성 소관 조계산과는 지리적으로도 너무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화를 당하지 않을 수 있었던 여건이었다.

 

그 뒤 육조 혜능선사의 선종이 크게 흥할 수 있었던 것은 측천 황후가 불심이 깊었는데 궁궐로 신수대사(97세 당시)를 초청하여 개인법문을 듣고 위로를 받을 수 있었는데 선종에 날카로운 선사이시고 조사이신 육조 혜능대사는 측천 황후의 왕궁 입성 법문을 요청받았으나 몸이 아프다는 등 병을 핑계로 황실을 출입하지 않은 것은 정권이 바뀐 후에도 정치에 개입하지 않은 것이 더 높은 대사의 철두철미한 수행자의 자세가 교종보다 선종이 발전할 수 있었던 큰 계기가 된 것으로 추측된다.」

 

날이 밝아오자 이 일을 알게 된 5조 문하의 대중 모두는 갓들어온 24살의 젊은 행자에게 의발이 전수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큰 충격을 받고 일부는 시기, 경악, 분노를 하여 추격을 하기도 하였는데..... .

 

그날밤 강을 건너간 혜능은 강가에서 조사와 하직하고 혼자서 남쪽으로 계속 걸어서 두달 반(75일)만에 대유령에 이르렀는데, 그때까지도 수백인이 그 뒤를 따라와서 옷과 발우를 뺏으려 하였다. 그중에 속성은 진씨고, 이름은 혜명이라는 스님이 있었는데, 삼품장군(오늘날 계급으로는 별2개 소장정도)을 지낸 이 스님은 출가하기전 속세에서 장군출신 스님으로 성격과 행동이 거칠고 포악하고 사나웠다. 이 스님이 힘을 다해서 혜능대사를 등뒤까지 선두가 되어 혜능을 가까이까지 따라왔다. 그때 혜능은 의발을 큰 바위 위에 도력으로 던져 놓으면서,

 

“이 의발은 믿음을 나타내는데 감히 힘으로써 다투겠단 말인가?” 하고 몸을 풀덩쿨 속에 숨기었다. 그때 혜명이 먼저 와서 의발을 들어 올리려 하였으나 힘으로는 도저히 움직이지 않았다. 이에 혜명은 혜능대사가 도력이 있는 것을 깨닫고,

 

“행자여 행자여, 나는 법을 위해 온 것이지 의발을 탐내어 온 것이 아닙니다.”라고 기가 죽어 떨면서 말했다. 그뒤 혜능이 바위 위에 앉으니, 혜명이 절을 하면서,

“원컨대 행자는 나를 위해 법을 설하여 주소서.”

 

혜능이 말했다. “네가 법을 위해 왔다면 모든 인연을 쉬고 한 생각도 내지 말 것이니라. 내가 그대를 위해 말하리라. 선도 생각하지 말고 악도 생각하지 말아라. 바로 이럴 때에 어떤 것이 그대의 본래 모습인가?” 혜명이 그 말을 듣자 곧 깨닫고 다시 물었다.

“이제 하신 그 비밀한 말씀과 비밀한 뜻 외에 또 다시 어떤 비밀한 뜻이 있습니까?”

혜능이 말하기를 “그대에게 지금 말한 것은 비밀한 것이 아니니라. 그대가 만약 마음속으로 관조해 보면 비밀스러운 것은 바로 그대에게 있느니라.”

 

그 법문을 들은 혜명이 수많은 절을 하고 나서 또 말하였다. “제가 그동안 황매산에 있었으나 실로 제 본래 모습을 알지 못했었는데 이제 가르침을 듣고 마치 물을 마셔 보고서 차고 더움을 알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이제 행자께서는 혜명의 스승이십니다.”

 

혜능이 말했다. “네 뜻이 그렇다면 나와 함께 홍인대사를 스승으로 모실 것이니 잘 지키어 보호하도록 하라.” 혜명이 또 물었다. “저는 이제 어디로 가야 하겠습니까?”

“원(袁)자 든 곳을 만나면 머무르고 몽(蒙)자 든 곳을 만나거든 살아라.” 혜명이 절하고 하직하였다. 그뒤 혜명은 스스로 법명을 도명(道明)으로 앞자 하나를 바꾸었다. 왜냐하면 존경하는 존경심의 표현으로 스승으로 모신 혜능대사와 본인의 혜자가 같기 때문이었다.”

 

그 뒤로 혜능은 조계산에 이르렀으나 또 다른 파들에게 쫓겨서 사회현으로 피신하여 머리는 기르고 속세의 복장으로 산짐승 동물을 잡아 살아가는 사냥꾼들 틈에 끼어서 열다섯해 동안 (39세까지) 숨어서 때를 기다리며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그때 대사는 사냥꾼들에게 설법을 하고 사냥꾼들이 동물을 잡는 올가미그물을 지켜달라고 부탁하면 언제나 산 목숨은 자비심으로 되살려서 놓아 주었다. 대사는 철두철미하게 채식을 하셨는데 항상 식사때가 되면 공양은 그들의 고기남비에 나물을 뜯어 혼자만 나물을 먹곤 하였는데 혹 사냥꾼중에서 고기밖에 없는데 식사는 어떻게 해결하시느냐고 묻는 사람이 있으면 고기곁의 나물만 먹는다고 대답하였다. 그뒤 변장을 하고 하산하여 농사꾼, 상인 등과 숨어서 15년을 그런 악조건 환경속에서도 오직 정진과 청정계율을 지키며 20대 30대를 보내셨다. 그때는 행자도 아니고 스님도 아닌 거사의 신분으로 지내셨는데 법명은 부용거사라고 기록에 전하여 진다.

 

대사께서 하루는 생각하되 “이제는 때가 되었다. 숨어 지내지 않아도 공식적으로 세상에 드러나도 아무 문제가 없다. 때가 되었다. 불법을 펼 시절 인연이 되었다. 이제는 더 피하지 못하겠구나.”하고 드디어 676년 1월 8일 광주 법성사에 이르렀는데 그 당시 당대최고의 열반경의 대가 인종법사(627~713)가 열반경을 강의하고 있었다. 그 당시 혜능대사(정확히 말하자면 부용거사)의 나이는 39세. 인종법사는 49세였다. 그 당시도 오늘날 강원에서 학인스님들이 공부하고 있는것 처럼 공부하다 절을 표시하는 긴 대나무 위에 깃발을 보고 있던 스님들이 그때 마침 바람이 불어 깃발이 펄럭이고 있었다. 그것을 보고 한 스님이 말하기를,

 

“바람에 깃발이 움직인다.”하였고, 또 한 스님은 “깃발이 바람에 움직인다.”하여 서로 옳다, 그르다 토론이 그치지 않았다. 이때 이 광경을 보고 있던 혜능이 말하기를 “그것은 바람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오, 깃발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며, 여러 스님들의 마음이 움직이는 것입니다.”하였다. 그중 가장 큰스님이신 인종법사는 혜능(부용거사)을 윗자리로 청하여 깊은 뜻을 물었다. 혜능의 답변은 간략하고 이치가 도리에 맞아 글월에 이끌리지 않음을 보고 인종법사가 묻기를, “거사는 결코 범상한 분이 아닌듯 한데 오래전부터 들리는 말에 의하면 오조 홍인대사의 의발과 법이 남쪽으로 왔다하는데 바로 거사가 아닙니까?” 혜능이 대답했다. “부끄럽습니다.” 이에 인종대사는 그 순간부터 제자의 예를 갖추고 대중앞에서 그 의발을 좀 보여 달라고 청하였다. 그리고 인종이 묻기를 “황매산의 오조 홍인대사의 가르침과 가풍은 어떠한 가르침이었습니까?”하였다.

 

혜능이 대답했다. “가르쳐 준 것이 따로 없으니 오직 자기 성품보는 것만 말했고 선정과 해탈은 논하지 않았습니다.” “어째서 선정과 해탈을 논하지 않았습니까?” “그렇게 되면 두 가지 법이 되어서 불법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불법은 두 가지 법이 아닙니다.” 인종이 다시 물었다. “어떠한 것이 둘이 아닌 불법의 도리입니까?” “법사가 열반경을 강의하여 불성을 밝게 보는 것이 불법의 둘아닌 법입니다. 열반경에 고귀덕왕 보살이 부처님께 말씀드리기를「네 가지 금계를 범한 이와 오역죄를 지은 이와 일천제 등은 선근과 불성을 끊는 것이옵니까?」하니 부처님이 대답하시기를「선근에 둘이 있으니 하나는 늘 있음이요, 둘째는 늘 있지 않음인데, 불성은 늘 있음도 아니요, 늘 있지 않음도 아니니, 이렇게 끊어지지 않는 것을 둘아닌 법이라 한다. 또 다른 하나는 착함이요, 둘째는 착하지 않음인데 불성은 착함도 아니오 착하지 않음도 아니므로 그것을 둘 아닌 법이라 하느니라.」하셨습니다. 다섯가지 쌓임과 열여덟 세계를 범부는 둘로 보지만 지혜있는 이는 그 성품이 둘 아님을 꿰뚫어 아는 것이니, 이 둘 아닌 성품이 곧 불성입니다.” 인종이 이 말을 듣고 기뻐서 합장하며 말하기를 “제가 경을 강의하는 것은 깨어진 기왓장과 같은 것이고, 대사의 말씀하심은 마치 순금과 같습니다.”하였다.

 

법문을 듣고 감동을 한 인종은 혜능(부용거사)의 덥수룩한 머리를 깎게 하고 스승으로 섬길 것을 원하였다. 이에 드디어 혜능이 보리수 밑에서 동산 홍인선사와 같은 조사선 가풍의 법회를 열게 되었다. 혜능선사의 태어나서 첫 공식 법문을 말하는 것이다. 그 동안 24살 출가 15년간 갖은 고생을 행자도 속인도 스님도 아닌 거사의 신분에서 39세에 정식으로 삭발 수계하여 법상에서 당당히 첫 개당 상단법문을 하는 역사적 순간을 기록에 의하면 소문을 듣고 몰려온 대중의 숫자가 일만명이라고 전해진다. 그러므로 지금부터의 혜능선사의 말씀은 곧 확철대오를 한 대도인의 살아있는 법문이다.

 

「혜능이 5조 홍인대사께 법을 얻고 숱한 고생을 다 하였고, 그동안 목숨은 마치 실과 같았다. 오늘날 사군 및 관료, 승니, 도속(道俗)과 더불어 한 회상에 같이 일만명이 모여서 법회를 보게 된 것은 여러생 여러겁의 인연이 아닐 수 없다. 또한 전생에 모든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는 선근을 함께 심었기 때문에 이와 같은 돈교와 법을 얻은 인연을 듣게 된 것이다. 이 가르침은 옛 성인이 전하신 바이며 혜능 자신의 지혜가 아니니, 옛 성인의 가르침을 듣고자 하는 사람은 먼저 그 마음을 깨끗하게 할 것이오, 듣고 나서는 의심을 없애어 옛 성인과 다름이 없도록 하라. 대사께서 다시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선지식이여, 보리반야의 지혜를 세상 사람들이 본래 가지고 있건만 다만 마음이 어지럽기 때문에 스스로 깨닫지 못하는 것이니 모름지기 큰 선지식의 인도를 받아서 자기의 성품을 보도록 할지니라. 마땅히 알아라. 어리석은 사람이나 슬기로운 사람이나 불성은 본래 차별이 없건만 다만 어리석고 깨달은 것이 같지 않기 때문에 어리석음이 있고 지혜로움이 있게 되는 것이다. 내가 이제 금강경법을 설해서 그대들로 하여금 각각 지혜를 얻게 하리니 지극한 마음으로 잘 들으라. 선지식이여, 세상 사람들이 하루 종일 입으로는 반야를 생각한다고 하지만 자성반야를 모르니, 마치 말로만 음식 이야기를 아무리 해도 배 부르지 않음과 같아서 성품을 볼 수 없는 것이어서 마침내 아무런 이익이 없으리라.

 

-금강경 법문-

(1) 마하반야바라밀

선지식이여, 마하반야바라밀이란 범어인데 우리말로는「큰 지혜로 저 언덕에 닿는다.」라는 뜻이다. 이것은 모름지기 마음으로 행할 것이요, 입으로 외우는데 있지 않은 것이다. 입으로 외우면서 마음으로 행하지 않는다면 꼭두각시와 같고 허깨비와 같으며, 입으로도 외우고 마음으로도 외운다면 마음과 입이 서로 통해서 곧 본성품이 이 부처일 것이니 성품을 떠나서 따로 부처가 있지 아니한 것이다. 무엇을 마하라 이름하는가? 마하란 크다는 뜻이니 마음이 광대하여 마치 허공처럼 가이없고, 또한 모난 것도 둥근 것도 아니며, 큰 것도 작은 것도 아니며, 또한 푸르고 누르고 붉고 흰 빛깔도 아니오. 또한 위 아래와, 길고 짧은 것도 없고, 성날 것도 기쁠 것도 없으며, 옳은 것도 그른 것도 없으며, 머리도 꼬리도 없어서 모든 부처님의 세계가 허공과 같으니라. 세상 사람들의 묘한 성품이 본래 공한 법도 가히 얻을 것이 없으니, 참된 공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선지식아, 공하다는 나의 이 말을 듣고 공에 집착하지 말 것이니 무엇보다도 공에 걸리지 말아야 한다. 만일 모든 생각을 쉬어 고요히 앉아 있기만 한다면 멍청한 공에 떨어질 것이다. 선지식이여, 우주의 허공이 능히 모든 현상세계를 다 포함하는데, 해와 달과 별이 이 허공 가운데 있고 약한 사람, 착한 사람, 악한 법, 좋은 법, 천상과 지옥, 그리고 큰 바다와 수미산도 다 이 허공속에 있으니 세상 사람들의 성품이 공한 것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선지식이여, 자성이 능히 모든 법을 포함하는 이것이 큰 것이니 우주의 온갖 원리가 다 모든 사람의 성품 속에 있느니라. 만일 모든 사람의 악과 선을 볼 때에도 취함도 없고 버림도 없어야 하며 거기에 물들고 걸리지 않아서 마음이 허공과 같은 이것을 이름하여 크다 하나니 그렇기 때문에 마하라고 하는 것이다.

 

선지식이여, 어리석은 사람은 입으로만 말하고 지혜로운 사람은 마음으로 행하느니라. 또 어떤 어리석은 사람이 마음을 비우고 고요히 앉아서 백 가지 생각을 없앤 것을 스스로 크다고 일컫는다면 이런 사람들과는 말할 것도 없는 것이니, 삿된 소견이기 때문이다. 선지식이여, 마음이 광대하여서 법계에 두루하여 그 작용이 아주 역력한데, 그 쓰임새에 바로 일체를 알아서 전체가 곧 하나요, 하나가 곧 전체이어서 가고 옴에 자유자재하고 마음자리에 막힘이 없는 이것이 곧 반야이니라.

 

선지식이여, 모든 반야지가 자기의 성품으로부터 나온 것이요, 밖으로부터 들어온 것이 아니니 뜻을 그릇되게 쓰지 않는 것이 참된 성품을 스스로 쓰는 것이니라. 하나가 참되면 모든 것이 참되며, 마음에 큰 일만 헤아리고 작은 도는 행하지 않으면서, 입으로만 온종일 공을 말하면서 마음으로는 행을 닦지 않는 그와 같은 일을 하지 말라. 마치 보통사람이 아무리 국왕이라 자칭하여도 그렇게 될 수 없는 것과 같아서, 이러한 사람은 내 제자가 아니니라.

 

(2) 반야품

선지식이여, 반야란 무엇인가. 반야는 우리 말로 지혜이니 어느 곳, 어느 때나 생각 생각이 어리석지 않아서 지혜롭게 행동한다면 이것이 반야행이니라. 한 생각이 어리석으면 곧 반야가 끊어지고 한 생각이 지혜로우면 곧 반야가 생긴다. 세상 사람들이 어리석고 어지러워서 반야를 보지 못하고 입으로는 반야를 말하면서 마음은 항상 어리석어서「나는 반야를 닦는다」고 말하면서 생각 생각에 반야를 떠들면서 참으로 공한 것은 알지 못한다. 반야는 모습이 없으며 슬기로운 마음이 그것이니 만약 이렇게만 깨닫는다면 이것이 곧 반야의 지혜라 하리라. 무엇이 바라밀인가. 이것은 인도말인데 우리 말로는「저 언덕에 도달한다는 뜻이오. 생멸을 떠난다는 뜻이다.」대상에 집착하면 생멸이 일어난다. 마치 물에 물결이 있는 것 같은 이것이 곧 이 언덕이오, 대상을 떠나 생멸이 없으므로 마치 물이 항상 흐르는 것과 같은 그것이 곧 저 언덕이다. 그러므로 선지식이여, 어리석은 사람은 입으로만 외우기 때문에 외울 때에 망령됨이 있고 그릇된 것이 있지만, 만약 생각 생각에 행한다면 이것이 참된 성품이니 이 법을 깨달으면 이것이 반야법이오. 이 행을 닦는다면 이것이 반야행이니라. 닦지 않으면 범부요, 한결같은 마음으로 닦아나가면 이 몸이 부처와 같으니라. 선지식이여, 범부가 곧 부처며 번뇌가 곧 보리니 앞 생각이 어지러우면 곧 범부였으나 뒷 생각에 깨달으면 곧 부처이다. 앞 생각이 경계에 집착했을 때는 곧 번뇌였으나 뒷 생각이 경계를 떠나면 곧 깨달음이니라.

 

선지식이여, 마하반야마라밀이 가장 높고 가장 위이며, 제일 으뜸이니라. 머무름도 없고 가는 것도 없으며, 오는 것도 없어 삼세의 모든 부처님들이 여기서 나오신 것이다. 마땅히 큰 지혜로써 오온의 번뇌와 망상을 타파하라. 이렇게 닦아 나간다면 결정코 불도를 이루어서 삼독을 없애고 계 · 정 · 혜를 만들 것이니라. 선지식이여, 내 이 법문은 하나의 반야로부터 팔만사천의 지혜를 내는데 왜냐하면 세상 사람들에게 팔만사천 번뇌가 있기 때문이니라. 만약 번뇌가 없다면 자성을 떠나지 않고 항상 지혜가 나타날 것이다. 이 법을 깨닫는 이는 곧 생각함도, 기억함도, 집착함도 없어서 망령됨을 일으키지 않고 스스로의 진여한 성품을 쓰므로 지혜로써 관조하여 일체법을 취하지도 않고 버리지도 않을 것이다. 이것이 곧 성품을 보아 불도를 이루는 것이니라.

 

선지식이여, 만약 깊은 법계와 반야삼매에 들고저 하거든 모름지기 반야행을 닦고「금강반야경」을 지녀 외우면 곧 견성하게 되리라. 마땅히 알라. 이 공덕이 한량없고 가이없으니 경 가운데 분명히 찬탄하였는 바 이루 다 말할 수 없노라. 이 법문은 최상승 법문이니 큰 지혜있는 사람을 위하여 설명하며, 근기가 높은 이를 위하여 설하신 것이다. 얕은 지혜를 가진 사람이 들으면 믿지 않기 때문이니라. 왜냐하면 비유컨대 마치 큰 용이 염부제에 비를 내릴 때에 성안의 동네가 떠내려 가는 것이 마치 대추잎이 물에 떠내려가는 것 같겠지만 만약 큰 바다에 비를 내렸다면 물이 더 많아지지도 않고 줄지도 않는 것과 같기 때문이니라. 만약 대승인과 최상승인이 금강경 설하는 것을 들으면 마음이 열리어 깨달아 알게 된다. 그러므로 본성에 스스로 반야의 지혜가 있어서 그 지혜로 항상 관조하기 때문에 문자를 빌리지 않느니라. 비유컨대 비와 물이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고 원래 용이 일으켜서 일체중생과 온갖 초목의 생명 있는 것, 없는 것 등이 다 윤택하게 되고 백천의 흐르는 물이 다 큰 바다에 들어가서 합하여 일체가 되는 것과 같으니 중생의 본래 성품인 반야의 지혜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선지식이여, 낮은 근기의 사람이 이 돈교를 들음은 뿌리가 아직 약한 풀이나 나무가 만약 큰 비를 만나면 뽑히고 거꾸러져서 더 자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리라.

 

원래 갖추어 있는 반야의 지혜는 큰 지혜있는 사람과 서로 다를 바가 없지만 얕은 지혜의 사람은 왜 법을 들어도 스스로 깨닫지 못하는가. 그것은 나쁜 소견의 업장이 무거워서 번뇌의 뿌리가 깊기 때문이다. 마치 큰 구름이 해를 가리웠을 때 바람이 불어서 그 구름을 벗기지 않으면 햇빛이 나타나지 않음과 같으니라. 반야의 지혜도 본래 크고 작음이 없지만 일체중생이 그 마음에 어리석음과 깨달음이 같지 않을 뿐이며, 마음이 어리석어서 밖으로만 보고 닦으며 부처를 찾을 뿐, 제 성품을 깨닫지 못한다. 이것이 낮은 근기이며, 만약 돈교를 깨달아서 밖으로 닦는 것을 고집하지 않고 자신의 마음에 항상 바른 견해를 일으켜서 늘 번뇌 망상이 물들지 못하게 하면 이것이 곧 견성이니라. 선지식이여, 안과 밖에 머물러 있지 않고 가고 옴이 자유로워서 능히 집착하는 마음을 없애고 통달하여 걸림이 없어야 하니, 이 행을 닦으면 반야경과 본래 다름이 없으리라. 선지식이여, 모든 경전과 문자로 된 대소승 십이부경이 모두 사람 때문에 있는 것이오. 지혜의 성품 때문에 세워진 것이다. 만약 세상에 사람들이 없다면 일체만법이 본래 제 스스로 있을 수 없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만법이 본래 사람과 함께 일어난 것임을 알 수 있다. 일체의 경전이 다 사람으로 말미암아 설해지고 있으며 그 사람 가운데 어리석은 이가 있고, 지혜로운 이가 있기 때문에 어리석음은 소인이 되고, 지혜로움은 대인이 된다. 어리석은 이는 지혜로운 이에게 묻고, 지혜로운 이는 어리석은 이에게 법을 설한다. 그러나 어리석은 이도 홀연히 깨달아서 마음이 열리면 지혜로운 사람과 다를 것이 없느니라.

 

선지식이여, 만약 깨닫지 못하면 부처가 곧 중생이오, 한 생각에 깨달으면 곧 중생이 부처이니라. 그러므로 만법이 다 자기의 마음에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어찌 제 마음 가운데의 진여의 본성을 보지 못하는가.「보살계경」에 말씀하시기를 “나의 본원 자성이 원래 스스로 청정하니 만약 제 마음을 알아서 성품을 보면 다 불도를 이루리라.”하셨고「정명경」에 말씀하시기를 “즉시에 확 트이면 도리어 본심을 얻는다”하셨느니라.

 

선지식이여, 내가 홍인화상의 처소에서 한번 듣고 말씀 아래 바로 깨달아서 진여의 본성을 보았기에 이 교법을 가지고 널리 퍼지게 하여 배우는 사람들로 하여금 바로 보리를 깨달아서 각각 스스로 마음을 관하여 자기의 본성을 바로 보게 한 것이다. 만약 스스로 깨닫지 못하거든 마땅히 최상승법을 아는 대선지식을 찾아서 바른 길, 가르침을 구하라. 이 선지식이 큰 인연이 있어서 교화하여 견성케 하리니, 모든 선법이 이 선지식에게 능히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삼세제불의 십이부경이 사람의 성품 가운데 있어서 본래 갖추어져 있지만 능히 스스로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마땅히 선지식의 가르침을 구해야만 비로소 보게 되는 것이다. 만약 스스로 깨닫는 자는 밖으로 구함을 빌리지 않는다. 만약 한 쪽으로만 집착하여 말하기를 ‘다른 선지식을 의지하여 해탈을 얻으리라.’고 바란다면 그와 같은 일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제 마음 안에 선지식이 있어서 스스로 깨닫는 것이니 만약 삿된 어리석음을 일으켜서 망령된 생각으로 뒤집혀졌다면 밖의 선지식이 아무리 가르쳐 주더라도 해탈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만약 바르고 참다운 반야를 일으켜서 관조한다면 찰나 사이에 망령된 생각이 모두 없어질 것이니 만약 자성을 알아서 한 번 깨닫는다면 곧 바로 부처의 자리에 이르게 되리라.

 

선지식이여, 지혜로 비추어 보면 안팎이 밝게 통하여 자기의 본심을 알 수 있다. 만약 본심을 알면 곧 본래 해탈이오. 만약 해탈을 얻는다면 곧 그것이 반야삼매이며, 곧 그것이 무념니다. 왜 무념이라 이름하는가. 만약 일체법을 보더라도 마음에 물들고 집착되지 않는다면 이것이 무념이니, 응용하면 모든 것에 두루 하되, 모든 곳에 집착하지 않는다. 다만 본심을 깨끗이 하여 육식으로 여섯 문을 나가지만 육진 가운데 물들고 뒤섞임이 없어서 오고 감에 자재하며, 통용하는데 막힘이 없으므로 곧 이것이 반야삼매이며 자재해탈이니 그 이름이 무념행이니라. 만약 백 가지 일을 다 생각하지 아니하여 생각이 아주 끊어져서 아무 것도 없다면 이것은 법에 얽매이는 것으로서 편견이라 하느니라.

 

선지식이여, 무념법을 깨달은 자는 만법에 다 통하며 제불의 경지를 보며, 부처님의 자리에 이를 것이니라. 선지식이여, 뒷날 나의 법을 얻은 자가 이 돈교법문을 가지고 같은 견해와 같은 행 가운데 큰 서원을 발하여 받아 지니도록 하되 부처님을 섬기는 것같이 함으로써 몸이 다하도록 물러섬이 없는 자는 결정코 성인의 지위에 오르리라. 그러나 위로부터 묵묵히 전하여 내려온 분부를 다시 전하여 주어서 그 올바른 가르침을 숨기지 말아야 하겠지만 만약 같은 견해와 같은 행이 아닌 다른 법 가운데 있게 된다면 분부하심을 전하지 말 것이니라. 앞의 올바른 사람에게 손해를 입혀 마지막에는 이익이 없을 것이니 어리석은 사람이 알지 못하고 이 법문을 비방하므로 백겁 천생에 부처될 성품을 끊을까 두렵노라.

 

선지식이여, 내게 무상송이 하나 있으니 각각 외워 가지도록 하라. 세속에 있는 사람이나 출가한 사람이나 모두 이대로 닦을 것이니 만약 스스로 닦지 않고 오직 나의 말만 기억한다면 아무 소득이 없을 것이다. 나의 게송을 잘 들으라.

 

말로 통하고 마음이 통함이여

해가 허공에 있음과 같으니

오직 견성하는 법을 전하여

삿된 가르침 쳐부수리.

법에는 빠름과 늦음이 없지만

어리석고 깨달음이 빠르고 더딜뿐.

다만 이 견성하는 문을

어리석은 사람은 알지 못하여

만 가지로 설명하지만

이치는 모두 하나로 돌아 가네.

번뇌로 가득찬 어두운 방에

지혜의 빛을 밝히라.

삿됨이 오면 번뇌가 일고

올바름이 오면 사라지리니

삿됨과 올바름을 쓰지 않으면

청정하여 무여에 이르러

깨달음의 성품 가운데

마음을 일으키면 곧 망령.

청정한 마음 망령에 있기 때문이라.

바르게 하면 세 장애 없으리.

만약 사람이 도를 닦으면

모든 것 다 방해되지 않고

항상 스스로 자기의 잘못을 보면

도와 더불어 서로 맞는 것을.

모든 것은 저마다 길이 있고

서로 방해하여 괴롭히지 않으며

도를 떠나 따로 찾으면

몸이 다하도록 보지 못하네

한평생 허송세월 하다가

닥칠때 뒤늦게 뉘우치나니

참다운 도를 보고자 하는가.

바른 것 행함이 이 도이니라.

만약 스스로 도심이 없다하면

어두운 행이라 끝내 도를 못보리라.

참으로 도를 닦는 사람이라면

세간의 잘못을 보지 말라.

만약 남의 잘못을 보면

자기의 허물이 오히려 그것이니

남만 모르고 나는 그르지 않다면

그르다는 그것이 허물이리라.

다만 그르게 여기는 마음을 없애고

번뇌의 뿌리를 뽑아 없애어

밉고 고움에 마음을 두지 않으면

다리 펴고 길이 쉬리라.

다른 사람을 교화하려면

마땅히 방편을 쓰라.

자기 스스로 의심을 없애야

자성이 나타나리라.

불법이란 세간에 있으며

세간을 떠나지 않는 깨달음일세.

세간을 떠나서 깨달음을 구함은

토끼뿔 구함과 같네.

바른 소견은 세간을 떠난 것이요

삿된 소견은 세간이니

삿됨과 올바름을 다 없애면

보리의 자성이 완연하리라.

이 게송이 바로 돈교이며

이름하여 대선법이니

어리석은채 들으면 몇 겁을 지내고

깨닫기로 말하면 일순간일세.

 

대사께서 다시 말씀하시기를 “이제 대범사에서 이 돈교를 설했으니 법계의 중생들이 이 말 끝에 바로 견성하여 성불하기를 원하노라.”하였다. 이때 위사군과 관료와 도속이 대사의 설법을 듣고 깨닫지 않은 이가 없었다며 함께 예를 올리고 “영남에 부처님이 출현하실 줄을 직감이나 했던가!”하며 모두 다 찬탄하였다.

 

 

출전 : 육조단경(수선회)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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