六祖大師法寶壇經 略序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지금으로부터 약 1380년경 정확히 말하면 서기 638 무술년 2월 8일 자시에 육조 혜능대사는 사바세계에 인간의 모습으로 태어났다. (광동성 영남) 태어날 당시의 아버지의 성은 노씨이며 이름은 행도라고 한다. 그리고 어머니는 이씨로 전해지고 있다. 그 당시 중국의 역사는 수나라(서기 618년)가 멸망한 지 12년이 지났을 때 육조대사는 인간으로 탄생되었다.
그때 평범한 보통사람이 아닌 대도인의 탄생을 축복하듯이 한 호랑이의 밝은 광명의 빛이 집 근처 하늘에 떠오르고 방안에는 좋은 향기와 향냄새가 온 집안과 주위에 가득하였으며 새벽이 지나갈 때가 다 되어서는 하늘에서 신통력으로 내려왔는지 아니면 땅에서 솟았는지 신기하게도 두 분의 큰스님이 나타나서 대사의 부친에게 다가와서 이름을 스님들이 지어주고 떠날터이니 조금전 밤에 태어난 아기의 이름을 윗자로 혜(慧), 아랫자는 능(能)이라 하십시오 하고 이름지어드리니 그때 부친은 스님께 묻기를 “어째서 꼭 혜능이라 지었습니까?” 그렇게 물으니 스님들이 대답하기를 “혜는 지혜의 법으로써 중생들에게 베푼다는 뜻이요, 능은 능히 불사를 수행하리라는 뜻입니다” 이렇게 말씀을 간단히 하시자마자 순식간적으로 신통력을 사용하셨는지 종적을 감추고 사라졌다고 한다. 그리고 또 신기한 것은 대사는 어린아기때부터 즉 태어나자마자 일반 아기와 달리 어머니의 젖을 먹지 않았고 한밤중이면 신통력이 있는 인간이 아닌 즉 신인이 나타나서 감로수를 주었는데 그것을 먹고 갓난아기때부터 어린이로 성장을 하였는데 24세가 되었을 때(서기 662) 경(經)을 듣고 도를 깨달아 황매에 가서 인가를 구하였다. 홍인대사(601-674)는 그릇으로 여기고 가사와 법을 부촉하며 조사의 자리를 잇게 하셨으니 그때는 서기 661 신유년이었으며 오조 홍인선사는 60세이며 육조 혜능은 24세였다.
남쪽으로 돌아와서 숨어 지낸지 16년. 서기 676 병자 1월 8일에 인종법사를 만났다. 인종이 대사의 종지를 깨달아 계합했고 이달 보름에 널리 사부대중을 모아 대사를 위하여 머리를 깍이고 서기 676년 2월 8일에 이름있는 큰스님들을 모아서 구족계를 주셨다.
서경의 지광율사는 수계사를, 소주의 혜정율사는 갈마사, 형주의 통응율사는 교수사, 중천국의 기다라율사는 설계사, 서국의 밀다삼장은 증계사가 되었다.
그 계단을 송나라때의 구나발다라 삼장이 처음 세우면서,
“뒷날 육신보살이 여기에 와서 계를 받을 것이다.” 하였고 또 양나라 천감 원년(서기 502 양무제 1년)에 지약삼장이 인도로부터 바다를 건너 와서 인도의 보리수 한 그루를 이 계단 옆에 심으면서 예언하였다. “백칠십년 후에 육신보살이 이 나무 아래에서 가장 훌륭한 법을 펴서 고통받는 많은 중생들을 제도하리니 이분은 바로 부처님의 마음을 참으로 전하는 법왕이니라.”
대사가 바로 이 계단에서 머리를 깎고 계를 받으셨으니 사중과 더불어 전해 오던 마음의 법을 열어 보이시니 예전의 송나라때 인도 지약삼장이 예언한 일과 꼭같았다.
-법력으로 도량을 넓히셨다-
이듬해 봄이 되어 대사는 인종법사와 광주 법성사의 정들었던 대중들과 작별하고 조계산으로 돌아갈 때 인종법사는 출가, 재가의 대중 천여명과 함께 법성사에서 멀리 떨어진 곳까지 나와서 환송하였다. 대사가 조계산에 이르렀을때 형주의 통응율사가 학자 수백인과 더불어 육조대사의 법을 배우기 위하여 먼저 기다리고 있었다.
보림사에 도착하자마자 육조대사께서는 첫 번째 해결할 일은 도량이 너무 좁아 대중들이 기거할 수 없으므로 도량을 넓히고자 마음먹었다. 대사는 그 당시 가장 부유하고 땅이 많은 마을의 진아선이라는 거사(조계산 근처 땅주인으로 당시 지방유지)를 만나, “승이 시주께 앉을 땅을 구하고자 하는데 될 수 있을까?” 라고 물었다.
진아선이 말하기를 “화상의 앉을 자리가 얼마나 넓습니까?” 하였다.
그때 육조대사는 가사를 내어 보이시며 눈깜짝할 사이에 신통력으로 가사를 허공으로 집어던지자 조계산의 사방을 가사가 다 덮었다. 이때 허공에서는 사천왕이 몸을 나타내어 동서남북 사방에 앉아 터를 진압하셨는데 지금에도 사찰경내에 있는 사천왕고개란 이름이 붙은 고개가 있는데 이것은 이 일 때문에 붙여진 지명이다. 그때 이 신통력있는 육조대사를 보고 크게 놀란 진아선이 말하기를 “화상의 법력이 광대하심을 알았습니다. 제 고조 할아버지의 묘가 이곳에 있는데, 다음번에 탑과 절을 지으실 때 그대로 두어 주시면 다행이옵고, 땅은 절터로 바치겠습니다. 그러나 이 땅은 용과 흰 코끼리가 내린 산맥이오니 다만 하늘은 평정하시되 땅은 평정치 말아 주십시오” 하였다. 화상이 훗날 절을 지을 때에 그말에 의거하였다. 대사가 경내를 두루 다니며 산수가 뛰어난 열 세곳에 도량을 세웠는데 이것이 오늘날 화과원이라는 이름으로 절문에 써 놓은 것이다.
-용을 제도하셨다-
이 보림도량 또한 인도의 지약삼장이 남해로부터 조계산 입구를 지날 때에 물을 마셨는데 그맛이 향기로움을 기이하게 여겨 문도들에게 말했다. 이 물이 서역의 물과 다름이 없으니 상류에 틀림없이 명송지가 있어 절을 세울만 할 것이다. 물의 흐름을 좇아 위로 올라가서 사방을 둘러보니, 산수가 수려하고 봉우리가 빼어났다.
그는 “아, 인도의 보림산과 꼭 같구나” 찬탄하고 조후촌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이 산에 사찰을 세우도록 하라. 백 칠십년 후에 위없는 진리를 얻은 대사가 법문을 해서 도를 얻은 이가 수풀처럼 많을 것이니 절 이름을 보림이라 하라.” 소주목사 후경중이 그 말을 듣고 표를 갖추어 황제께 청하였다. 황제는 그러리라 여기고 <보림>이라는 약호를 하사하여 큰사찰을 이루게 명령하였으며, 양나라 천감 삼년(서기 504년)에 낙성하였다. 그 뒤 170년후 예언처럼 육조대사가 진아선 거사의 시주로 대 도량을 건립하고 지냈는데 하루는 그 사찰의 전각 앞에 큰 연못이 하나있고 이 연못 속에 용이 나와 노닐며 나무에 부딪쳐 흔들곤 하였다. 하루는 용이 그 모습을 아주 크게 연못에 나타내어 출렁이는 물결같고, 뭉게구름 같아서 사부대중이 다 두려워 공포에 떨었다. 그날 그 광경을 목격한 대사께서는 용을 도력으로 꾸짖으시면서 제도하셨다.
“네가 다만 큰 몸만 나타내고 작은 것은 나타내지 못하는구나! 만일 신통력이 있는 용이라면 마땅히 마음대로 변화할 줄 알아서 작은 것으로써 큰 것을 나타내고 큰것으로써 작은 것을 나타내야 하리라.” 그러자 큰 용은 갑자기 사라지고 조금 있다가 작은 몸을 나타내어 물위에 뛰어 올랐다. 그때 육조대사는 발우를 펴 보이며 다시한번 말하였다. “네가 노승의 이 발우속에는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그러자 작은 용은 곧 헤엄쳐서 앞으로 다가왔다. 대사가 신통력으로 발우에 담으니 용이 도마뱀처럼 더 작아져서 발우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대사가 작은 용을 담은 발우를 가지고 법당에 올라 용을 위해 설법하니 용이 마침내 뼈를 벗고 해탈했다. 그 뼈의 길이가 일곱 촌이요, 머리 · 꼬리 · 뿔 · 오 · 발이 다 갖추었으며, 그 용의 유골을 절에서는 오랜 세월이 지날때까지 사중에서 보관하였다고 하는데 지금은 알 수가 없다. 그리고 그 뒤 대사는 후에 흙과 돌로써 그 연못을 메웠는데 지금의 대웅전앞 왼쪽 철탑이 바로 용을 진압한 그 당시의 장소라고 전하여진다.
-광주 조계 남화사-
소관성 남쪽의 남화산사는 이름 날렸던 선종, 남종으로 불교에서 중요한 이정표로 되고 있다. 처음에는 보림사라고 불리었는데 양나라 천감 3년(504년)에 세워졌다. 천감 원년(502년)에 천축의 고승 지약삼장(智藥三藏)이 배를 타고 광주를 지나다가 조계의 입구에서 야릇한 향기를 맡고 그 물을 마셔보고 “이 물의 상류가 바로 성지이니라!”고 하면서 여기에 보림사를 세웠다.
이 절이 조계와 가깝기에 “조계 남화사”라고 불리운다.
남화산사는 오랜 세월을 두고 휘황한 시대가 있었는데 선종 육조혜능의 도래로 하여 중국불교 역사의 휘황한 한 페이지로 남아있다. 혜능을 조계대사라고도 부르는데 남종 일파의 대명사로 불리운다.
출전 : 육조단경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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