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일아함경-1150-230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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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무엇인가? 이른바 정근이란 마음속에 어지러움이 없고 여러 가지 생각이 없으며 언제나 그 뜻이 전일한 것이니, 이것을 삼매근(三昧根)이라 한다. 지혜근(智慧根)이란 무엇인가? 이른바 괴로움을 알고 그 발생을 알며 그 소멸을 알고 소멸에 이르는 길을 아는 것이니, 이것을 지혜근이라 한다. 이것을 5근이라 하느니라.
비구가 이 가운데서 평등하게 해탈하고 평등하게 그 이치를 분별한다면 평등하게 괴로움을 벗어날 것이니라. 내가 설명하는 다섯의 주장·다섯의 이치·다섯의 연설은 바로 이것을 말하는 것이니라.
나는 무슨 이유로 여섯의 주장·여섯의 이치·여섯의 연설을 말하는가? 이른바 여섯 가지 중요한 법이니라. 여섯 가지란 무엇인가? 이에 비구는 항상 몸으로 자애로운 마음을 행하여 혹 고요하고 깨끗한 방안에 있더라도 언제나 한결같은 마음이어서 높일 만하고 귀히 여길 만하며, 늘 남과 화합한다. 이것이 비구의 첫 번째 중요한 법이다. 또 입으로 자애로운 마음을 행하여 마침내 거짓이 없고 공경할 만하고 귀히 여길 만하면 이것은 두 번째 중요한 법이다.
또 뜻으로 자애로움을 행하여 미워하는 마음을 내지 않고 공경할 만하고 귀히 여길 만하면 이것이 세 번째 중요한 법이다. 또 만일 법다운 이양을 얻어 발우에 남은 것이 있으면 여러 범행인(梵行人)들에게 평등한 마음으로 베풀어준다. 이것이 네 번째 중요한 법으로서 공경할 만하고 귀히 여길 만한 것이다. 또 계율을 받들어 지키고 빠뜨림이 없어 성인이 귀히 여길 만하면 그것은 다섯 번째 중요한 법으로서 공경할 만하고 귀히 여길 만한 것이다. 또 바른 소견으로 성현들의 벗어나는 길을 얻어 괴로움을 벗어나고 뜻이 어지럽지 않으며 여러 범행인들과 같이 그 행을 닦으면 이것이 여섯 번째 중요한 법으로서 공경할 만하고 귀히 여길 만한 것이니라.
그 때 비구가 평등하게 싫어하고 평등하게 해탈하며 평등하게 그 이치를 분별한다면 평등하게 괴로움을 벗어날 것이다. 내가 말하는 여섯의 주장·여섯의 이치·여섯의 연설은 바로 이것을 말하는 것이니라.
나는 무슨 이유로 일곱의 주장·일곱의 이치·일곱의 연설을 말하는가? 이른바 식(識)이 머무르는 일곱 곳이니라.
일곱 가지란 무엇인가? 어떤 중생은 여러 가지 생각에 여러 가지 몸을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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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고 있으니 이른바 하늘과 사람들이다. 또 어떤 중생은 여러 가지 몸에 한 가지 생각을 가지고 있으니 이른바 범가이천(梵迦夷天)으로 맨 처음 태어났을 때이다. 또 어떤 중생은 한 가지 생각에 한 가지 몸을 가지고 있으니 이른바 광음천(光音天)이 바로 그들이다. 또 어떤 중생은 한 가지 몸에 여러 가지 생각을 가지고 있으니 이른바 변정천(遍淨天)이 바로 그들이다. 또 어떤 중생은 허공의 영역이 한량없으니 이른바 공처천(空處天)이 바로 그들이다.
또 어떤 중생들은 식의 영역이 한량없으니 이른바 식처천(識處天)이 바로 그들이다. 또 어떤 중생은 아무 것도 없는 영역이 한량없으니 이른바 불용처천(不用處天)이 바로 그들이다. 또 어떤 중생은 생각이 있기도 하고 생각이 없기도 한 영역이 한량없으니 이른바 유상무상천(有想無想天)이 바로 그들이니라.
비구들아, 이것이 식(識)이 머무르는 일곱 곳이다. 비구가 거기서 평등하게 해탈하고……(내지)……평등하게 괴로움을 벗어날 것이다. 내가 말하는 일곱의 주장·일곱의 이치·일곱의 연설은 바로 이것을 말하는 것이니라.
나는 여덟의 주장·여덟의 이치·여덟의 연설이라고 설명하는데, 무슨 이유로 이렇게 말하는가? 이른바 세상의 여덟 가지 법으로서 그것은 세상을 따라 윤회하게 하는 것이니라.
여덟 가지란 무엇인가? 이른바 이익·손실·헐뜯음·찬양·칭찬·꾸짖음·괴로움·즐거움이니, 이것이 세상을 따라 윤회하게 하는 세상의 여덟 가지 법이니라. 만일 비구가 거기서 평등하게 해탈하고……(내지)……괴로움을 벗어날 것이다. 내가 말하는 여덟의 주장·여덟의 이치·여덟의 연설은 바로 이것을 말하는 것이니라.
나는 아홉의 주장·아홉의 이치·아홉의 연설이라고 설명하는데 무슨 이유로 이렇게 말하는가? 이른바 중생이 사는 아홉 곳이니라.
아홉 곳이란 무엇인가? 어떤 중생은 여러 가지 몸을 가지고 있으니 이른바 하늘과 사람들이다. 어떤 중생은 여러 가지 몸에 한 가지 생각을 가지고 있으니 이른바 범가이천으로 맨 처음 태어났을 때이다. 어떤 중생은 한 가지 생각에 한 가지 몸을 가지고 있으니 이른바 광음천이 바로 그들이다. 어떤 중생은 한 가지 몸에 여러 가지 생각을 가지고 있으니 이른바 변정천이 바로 그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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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어떤 중생은 허공의 영역이 한량없으니 이른바 공처천이 바로 그들이다. 어떤 중생은 식(識)의 영역이 한량없으니 이른바 식처천이 바로 그들이다. 어떤 중생은 아무 것도 없는 영역이 한량없으니 이른바 불용처천이 바로 그들이다. 어떤 중생은 생각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영역이 한량없으니 이른바 유상무상천이 바로 그들이다. 여기에 생각이 없는 중생과 거기서 태어나는 중생들을 합해 식(識)이 머무르는 아홉 곳이라 하느니라.
거기서 비구가 평등하게 해탈하고……(내지)……괴로움을 벗어날 것이다. 내가 말하는 아홉의 주장·아홉의 이치·아홉의 연설은 바로 이것을 말하는 것이니라.
나는 무슨 이유로 열의 주장·열의 이치·열의 연설을 말하는가? 이른바 열 가지 생각이다. 즉 부처님을 생각하고, 법을 생각하며, 비구스님들을 생각하고, 계율을 생각하며, 보시를 생각하고, 하늘을 생각하며, 휴식을 생각하고, 호흡을 생각하며, 몸을 생각하고,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니, 이것을 열 가지 생각이라 하느니라.
만일 비구가 평등하게 해탈하고……(내지)……괴로움을 벗어날 것이다.
비구들아, 열의 주장·열의 이치·열의 연설이란 이와 같으니, 이처럼 비구들아, 하나에서 열까지 이르느니라.
비구들아 마땅히 알라. 만일 외도 이학들이 이 말을 듣는다면 얼굴빛을 자세히 보지도 못하겠거늘 하물며 대답하려 하겠는가? 이런 이치를 이해하는 비구가 있다면 그는 현세에서 제일 높은 사람이 될 것이다. 또 만일 비구·비구니가 이 이치를 10년 동안 사유한다면 그는 반드시 두 가지 과위를 성취할 것이니 아라한이 되거나 아나함이 될 것이다.
비구가 10년은 고사하고 1년 동안만이라도 이 이치를 사유한다면 그도 반드시 두 과위를 성취하여 마침내 중간에 물러남이 없을 것이다. 비구가 1년 동안 사유하는 것은 고사하고, 그 사부대중이 열 달이나 혹은 한 달 동안만이라도 이 이치를 사유한다면 그들도 반드시 두 과위를 성취하고 중간에서 물러나지 않을 것이다. 한 달은 고사하고 만일 사부대중이 이레 동안만이라도 이 이치를 사유한다면 그들도 반드시 두 과위를 성취하여 마침내 의심이 없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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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아난이 부처님 뒤에서 부채를 들고 부처님을 부치고 있다가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이 법은 너무도 심오합니다. 만일 어디에 머물건 이 법을 가진 자가 있다면 곧 여래를 만나는 것인 줄 알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이 법의 이름은 무엇이며, 어떻게 받들어 행해야 합니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이 경의 이름은 '열 가지 법의 진리'이니 이렇게 기억하고 받들어 행해야 하느니라."
그 때 아난과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 8 ]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 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 열 가지 생각을 수행하면 곧 번뇌를 없애 신통을 얻고, 몸으로 증득하여 차츰 열반에 이르게 될 것이다. 열 가지란 무엇인가? 이른바 흰 뼈라는 생각[白骨想]·시퍼런 어혈덩어리라는 생각[靑瘀想]·썩어서 부풀어오른다는 생각[膖脹想]·소화되지 않은 음식이라는 생각[食不消想]·핏덩어리라는 생각[血想]·뜯어 먹힌다는 생각[噉想]·영원하고 영원하지 않다는 생각[有常無常想]·탐욕스럽게 먹는다는 생각[貪食想]·죽는다는 생각[死想]·모든 세상은 즐거워 할 만한 것이 없다는 생각[一切世間不可樂想]이니라.
비구들아, 이것이 이른바 '열 가지 생각을 닦으면 번뇌가 없어져 열반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니라.
또 비구들아, 이 열 가지 생각 중에서 '모든 세상은 즐거워할 만한 것이 없다'는 생각이 가장 제일이다. 왜냐 하면 즐거워할 만한 것이 없다는 생각을 수행하는 사람과 믿음을 가지고 법을 받드는 사람이 있다면, 이 두 종류의 사람은 반드시 차례를 뛰어넘어 진리를 증득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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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비구들아, 만일 나무 밑이나 고요한 곳이나 한데 앉게 되거든 이 열 가지 생각을 깊이 사유하라. 그러므로 모든 비구들아, 꼭 이와 같이 공부해야 하느니라."
그 때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 9 ]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 때 어떤 비구가 세존께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발아래 예배하고 한쪽에 앉아 아뢰었다.
"세존께서는 오늘 비구들을 위하여 열 가지 생각[十想]이란 법을 말씀하시고 '그것을 능히 닦는 사람은 모든 번뇌를 끊고 번뇌가 없는 행을 성취할 것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세존이시여, 저와 같은 사람은 그런 생각을 닦을 수가 없습니다. 왜냐 하면 저는 욕심이 많아 몸과 마음이 불꽃같아서 고요히 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너는 지금 깨끗하다는 생각을 버리고 더럽다는 생각을 깊이 사유하라. 영원하다는 생각을 버리고 무상하다는 생각을 깊이 사유하라. 나[我]가 있다는 생각을 버리고 나가 없다는 생각을 깊이 사유하라. 즐거워할 만하다는 생각을 버리고 즐거워할 만한 것이 없다는 생각을 깊이 사유하라. 왜냐 하면 만일 비구가 깨끗하다는 생각을 사유하면 곧 욕심이 불꽃처럼 일어나고, 더럽다는 생각을 사유하면 곧 욕심이 없어지기 때문이니라.
비구들아, 알아야 한다. 욕심은 똥 무더기처럼 더럽고, 욕심은 앵무새처럼 말이 많으며, 욕심은 저 독사처럼 은혜를 갚을 줄 모르고, 욕심은 햇볕에 녹는 눈처럼 허망하다. 그러므로 시체를 무덤 사이에 버리듯 그것을 버려라. 욕심은 독을 품은 뱀처럼 스스로를 해치고, 욕심은 짠물을 마셨을 때처럼 싫어할 줄을 모르며, 욕심은 강물을 삼켜버리는 바다처럼 채워지기 어렵고, 욕심은 나찰의 마을처럼 매우 두려운 것이며, 욕심은 마치 원수와 같으니 항상 멀리 여의어야 하느니라.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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